입력 : 2017.07.0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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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대전쟁의 전환점

스탈린그라드 전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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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된 가교를 이용해 돈 강을 건너 보로네시로 진격하는 독일군. <출처: Bundesarchiv>


소련의 판단

소련은 지난 겨울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고 모스크바 전투에서 감격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곧이어 벌어진 여러 후속 전투에서 참담한 실패를 연이어 맛보았다. 비록 1941년 여름처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작정 밀린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엄청난 혈(血)과 철(鐵)을 독일에게 상납해야 했다. 잠시 동안의 감격에 들떠있던 스탈린은 비록 미련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1941년 11월 모스크바 전투에서 격파된 T-34와 소련군 전사자. 해가 바뀌었어도 소련은 여전히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STAVKA(소련군 최고사령부)는 르제프 탈환의 실패가 확실해진 1942년 3월이 되자 이제는 독일의 반격을 우려할 만한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각종 첩보망에 포착된 정보에 따르면 전방의 독일군이 점차 증강되고 있었는데, 이는 단순한 방어선 강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적어도 여름에는 독일의 대대적인 공세가 재개될 것이 확실했다. 소련은 대비를 해야 했고 경우에 따른 선제 타격도 고려해야 했다.

다만 독일의 공세가 어느 방향으로 펼쳐질지는 미지수였다. 전선의 상황을 고려할 때, 지난 1941년처럼 전선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인 공세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 확실했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독일과 소련의 생각이 일치했다. 2,500km 전선 전체에서 연일 격전이 벌어지고는 있었지만 모든 곳을 일일이 점령하기 어려울 만큼 전선이 광활했던 것이다.

모스크바 도심에 설치된 대공포 진지. 소련은 독일이 또다시 모스크바를 노릴 것이라 판단했다.

소련은 독일이 다시 모스크바를 노릴 것이라 보았다. 비록 지난 겨울 전투에서 독일군을 100여 km나 밀어냈지만 스탈린은 여전히 모스크바의 안위를 걱정했고 독일의 위협으로부터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OKH(독일 육군 최고사령부)도 여전히 모스크바가 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소련의 이런 판단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 도시의 정치적 위상은 여전히 컸다.



뜨거운 감자 모스크바

지난해 가을 이후 지금까지 양측 전력의 절반 정도가 모스크바를 정점으로 하는 동부전선의 중앙부에 몰려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었고 여타 전선은 크림 반도 일대를 제외하면 정적인 상황이었다. 특히 유럽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르제프 돌출부에서 벌어진 끝없는 소모전은 양측 모두가 이곳을 중시한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단지 군사적으로도 독소전쟁의 승패는 여기서 결정을 짓는 게 맞다고 할 수 있었다.

독일 육군 최고사령부는 소련군 주력이 모스크바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고 판단하여 이곳을 향해 새로운 공세를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STAVKA는 차라리 독일의 예봉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하에 르제프 돌출부에서 계속 지엽적인 공격을 펼쳤다.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독일이 공세로 전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독일군의 시선을 끄는 사이에 아직도 위기 상태인 레닌그라드나 크림 반도에서 역공을 취해 전세를 뒤집는 전략도 고려하고 있었다. 스탈린도 이러한 군부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정작 모스크바에 대한 히틀러의 관심은 멀어진 상태였고 이미 코카서스를 점령하기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독소전쟁 개전 직전에 독일은 모스크바를, 소련은 키예프와 코카서스를 중시하고 있었기에 주력 부대를 그런 목적에 부합되도록 배치했지만 1년이 지난 1942년 봄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이런 전략적 판단 불일치는 이후 재개된 독일의 공세를 초기에 저지하지 못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현재 아제르바이잔에 속한 바쿠의 유전 지대. 제2차 대전 당시 소련의 생명줄이었다. <출처: (cc) Bruno Girin at Wikimedia.org>

물론 소련도 전선 남부 깊숙이 위치한 코카서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곡창과 지하자원의 보고인 우크라이나를 잃은 소련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마지막 남은 생명줄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이 모스크바를 노리면서 이곳으로도 동시에 전선을 확대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히틀러가 모스크바를 포기할지도 모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뜻밖의 작전 노출과 강행된 공격

오히려 소련은 스탈린의 주도로 모스크바에 가해지는 독일군의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5월 12일부터 80여만의 소련 남서전선군과 남부전선군을 동원해 이지움(Izyum) 일대에 형성된 돌출부를 제거하기 위한 제한적 공세를 실시했다. STAVKA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의 고집으로 실시된 이 작전이 바로 제2차 하르코프(Kharkov) 전투였는데, 예상치 못한 소련군의 공격에 독일이 상당히 당황했을 만큼 초전의 효과가 대단했다.

청색 작전 초기에 소련군 T-70 경전차를 격파하고 전방을 경계 중인 독일군.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하지만 당시 독일 남부집단군은 크림 반도를 공략 중인 제11군을 제외한 모든 부대가 한창 공세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곧바로 독일군의 반격이 개시되어 전세가 역전되었고 5월 28일, 30여만의 소련군이 붕괴하며 전투는 막을 내렸다. 이때 OKH는 청색 작전이 노출되어 소련이 선제 공격에 나선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이처럼 제2차 하르코프 전투는 독일을 긴장시키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작전을 편하게 이끌도록 만든 면도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대승을 거두어 진격로 앞에 놓여있던 소련군이 미리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잠시 지체가 있었지만 2,000여 대의 전차와 1,600여 기의 항공기로 무장한 130여만의 독일 남부집단군은 6월이 되자 앞으로 달려나갈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장장 8개월 넘게 벌어진 세바스토폴(Sevastopol) 전투도 이제 독일의 승리로 막을 내리고 흑해 연안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일보 직전이어서 배후의 위험은 제거된 상태였다.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격파된 소련의 해안 포대. 독일의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청색 작전을 위한 배후의 위험은 제거되었다.

바로 그 즈음이던 6월 9일, 작전 계획서를 소지한 독일군 장교가 탄 연락기가 소련군 진영에서 격추되는 사고가 벌어졌다. 독일은 뒤늦게 작전을 변경시킬 수 없어 고민이 많았지만 정작 이 정보를 획득한 소련은 마타도어라고 생각했다. 지난 1941년 소련군 주력을 남부에 배치했다가 모스크바가 위협을 받은 뼈아픈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6월 28일, 독일은 소련이 획득한 작전 계획서대로 진격을 개시했다.



같은 도시에 대한 다른 생각

공군의 맹폭과 포병들의 대대적인 포격을 시작으로 지난 겨울의 태풍 작전 이후 6개월 만에 독일군의 전략적 공세가 재개되었다. 돈 강을 넘은 독일 남부집단군이 처음으로 쇄도해 들어간 곳은 동서남북으로 철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 보로네시(Voronezh)였다. 이 도시에서 남쪽으로 가면 코카서스지만 반대편의 북쪽으로 가면 모스크바였는데 오히려 거리는 이번 작전의 최종 종착점인 바쿠보다 모스크바가 훨씬 가까웠다.

독일 남부집단군은 교통의 요지인 보로네시를 향해 진격하며 공세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곳은 바쿠보다 모스크바가 훨씬 가까운 곳이었다. <출처: 구글 지도>

450여 km 정도의 거리였지만 지리적으로 별다른 방해물이 없어서 독일이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모스크바로 쇄도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소련은 브리얀스크 전선군(Bryansk Front)과 남서전선군을 집중 배치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중 남서전선군은 직전에 있었던 제2차 하르코프 전투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지만 신속히 복구되었고 6월이 되었을 때 소련은 보로네시 인근에 무려 130여만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름대로 준비를 갖추고 있던 곳으로 독일군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자 STAVKA는 예상대로 이번 공세의 목표가 모스크바라고 단정하고 저지에 나섰다. 정작 독일의 입장에서 이 도시는 단지 지나쳐가는 곳일 뿐이라 그냥 우회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소련이 강력한 저항에 나서면서 엄청난 소련군이 집결되어 있음이 확인되자 남부집단군 사령관 보크는 생각을 바꿨다.

그는 좌익을 담당한 제4기갑군으로 하여금 도시를 점령하도록 명령했다. STAVKA는 남쪽의 코카서스로 가고자 하는 독일군을 북쪽의 모스크바로 가는 줄로 착각했지만, 그런 사정과 상관없이 보로네시 일대는 양측 모두가 격돌을 결심한 이상 혈전이 벌어질 운명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외형적인 전력은 소련이 앞섰지만 전황은 독일이 유리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의 경험 때문인지 쉽사리 굴복하지는 않았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