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7.28 09:20

글자크기

[전쟁사]

대전쟁의 전환점

스탈린그라드 전투 [5]

0 0
STAVKA가 현지 사수를 결정하자 소련군 병사들은 도심으로 숨어들어 끈질지게 독일군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출처: RIA Novosti>

요새로 바뀐 폐허

독일은 모든 상황을 낙관했다. 도시 외곽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독소전쟁의 형세를 볼 때 결국 유유자적하게 스탈린그라드를 접수한 뒤 후퇴하지 못한 패잔병들의 항복만 받아내면 될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방어에 나선 소련군은 독일의 의도에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우선 후퇴할 곳이 없었다. 서, 남, 북쪽에는 모두 압박해 들어오는 독일군이 있었고 동쪽은 거대한 볼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볼가 강을 건너서 동쪽으로 후퇴하려면 허락이 필요했으나 실질적으로 STAVKA를 이끄는 소련군 총사령관 대리 주코프(Georgy Zhukov)와 그의 책사인 총참모장 바실렙스키(Aleksandr Vasilevsky)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무의미하게 현지 사수를 남발하다가 궤멸당하곤 했던 개전 초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지휘선상에서 물러난 스탈린도 이 전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는 예료멘코를 신임 남서전선군 사령관으로 직접 선임한 것만으로도 안심하지 못해 신임하던 흐루시초프(Nikita Khrushchev)를 정치국원으로 낙점해 함께 파견했다. 다행히도 이 둘은 상당히 궁합이 잘 맞았다. 이처럼 소련은 힘을 합해 스탈린그라드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전쟁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의도는 없었고 단지 코카서스에 가해지는 독일군의 압박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일 뿐이었다.

소련에서 지휘관과 정치국원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나빴으나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흐루시초프(좌)와 남서전선군 사령관 예료멘코(우)의 궁합은 상당히 좋았다. 이런 관계는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 전투를 벌이던 소련군에게는 결사항전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소련군은 공습으로 생긴 폐허를 요새로 바꾸었다. 아파트는 토치카로 변했고 건물의 층층마다 기관총과 박격포가 배치되었다. 8월 24일, 독일은 공격을 재개했으나 소련군의 저항에 막혀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독일 기갑부대는 돈 강을 건넌 이후 200km를 쾌속 질주해왔지만 도심에 진입해서는 소련군의 집요한 반격에 막혀 하루에 100m도 전진하기 힘들어졌다.


시가전의 늪

부서진 건물 속에서 발사되는 대전차포와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염병에 전차들이 파괴되었고, 근접해서 진군하던 보병들을 향해 기관총탄이 날아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쏘아대는 소련군의 공격에 독일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피아가 엉켜있는 상황에서는 공군이나 포병의 화력 지원이 불가능했으므로 보병이 각개격파해 나가야 했는데, 도심의 폐허 속에 숨어있는 소련군을 일일이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심의 폐허를 수색하여 소련군 소탕에 나섰지만 결론적으로 소련의 의도에 말려들어가는 선택이었다.

독일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적들을 제거하면서 도시를 점령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고 독일군 스스로 소련군이 원했던 시가전의 늪으로 서서히 끌려들어가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시점에서 외곽으로 철수해 시가지를 초토화한 후 재진입을 시도하는 것이 독일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바로 직전에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이 세바스토폴을 그렇게 함락시켰었다.

하지만 파울루스는 지금까지 점령한 것을 포기하려 들지 않았고, 조금만 더 고생하면 스탈린그라드를 완전히 장악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소련군을 하나하나 격파하면서 진군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 달이 지났어도 독일군은 볼가 강까지 다가가지 못한 채 계속 도심에 머무르고 있었다. 제2차 대전이 벌어지고 난 이후 독일군이 처음으로 겪는 이상한 전투였다.

강철 같은 신념으로 소련 제62군을 이끈 바실리 추이코프.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언급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러한 소련군의 끈질긴 방어전을 가장 앞에서 이끈 인물이 추이코프(Vasily Chuikov)였다. 그는 전투 초기에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은 제62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8월 초 급하게 신임 사령관으로 부임되었다. 추이코프는 독일군이 시가전을 어려워한다는 점을 정확히 간파했다. 그는 포격과 공습으로 폐허가 된 스탈린그라드 도심에서는 기갑부대와 공군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으므로 병력에서 우위에 있고 지형에 익숙한 소련군이 불리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제62군의 항전

8월 말이 되어도 도심의 상황이 쉽사리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파울루스는 그동안 예비대로 외곽에 대기시켜 놓았던 제51군단을 투입해 제62군 격파에 들어갔다. 밀물같이 들이닥친 독일군은 소련군의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스탈린그라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트랙터 공장 입구를 점령했다. 격렬히 저항하던 제62군은 엄청난 희생을 당했지만 놀랍게도 다음 날 전력을 회복하여 전선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소련군은 부서진 건물을 진지 삼아 곳곳에서 독일군을 공격하며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출처: RIA Novosti>

도심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생명선인 볼가 강 선착장을 소련이 끝까지 사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지의 요청이 있으면 STAVKA는 보유하고 있던 예비 병력과 물자를 스탈린그라드에 최우선으로 지원해 주었다. 기초적인 훈련을 거친 후 열차에 실려 볼가 강 동쪽에 도착한 수많은 신규 병력들이 독일 공군의 맹폭이 계속되는 가운데 강을 건너 서쪽에서 고군분투하는 제62군에 신속히 공급되었다.

독일은 지쳐가기 시작했다. 독소전쟁 초기였다면 스탈린그라드의 소련군은 이미 궤멸되거나 전의를 상실해 대규모로 항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도심을 확보한 독일군은 유유자적하게 승자의 여유를 누린 후 다음 작전에 돌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전투가 치열하게 변해가자 독일군은 당황했다. 쏘고 쏘아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볼가 강을 건너 계속 밀려오는 소련군의 행렬에 독일은 질려가고 있었다.

스탈린그라드로 가기 위해 볼가 강을 건너다 독일 공군의 폭격을 받고 배에서 탈출하는 소련 병사들. 소련은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저항했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느덧 9월 초가 되자 독일은 도심 북쪽과 남쪽의 볼가 강 서안까지 진출해 제62군을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포격과 공습을 통해 소련의 나룻배를 격침하며 보급을 제한시켰다. 9월 14일 오후 3시경, 도심에 고립된 일단의 소련군이 폐허를 박차고 나와 반격에 나섰으나 곧바로 궤멸되었다. 기세를 잡은 독일군은 지속적으로 공격을 가했고 소련군은 계속 밀려들어 갔다. 이제 제62군의 최후가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독소전쟁의 모든 것이 되어가다

그러나 독일군이 점령한 곳도 여전히 수많은 소련군이 폐허 속에 숨어 수시로 공격을 가하다 보니 결코 안전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 소련의 저격수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놀라운 의지로 제62군은 도심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밀려났고 독일군은 마침내 방어선을 뚫고 붉은 10월 제철공장으로 육박해 들어갔다.

은 악전고투 끝에 9월 말 붉은 10월 제철공장 부근까지 육박해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출처: Bundesarchiv>

그래도 제62군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만큼 독일군은 지쳐갔다. 이런 밀고 당기기는 어느덧 스탈린그라드의 일상으로 변해갔다. 9월 28일 STAVKA는 남서전선군을 해체하고 대신 스탈린그라드 전선군(Stalingrad Front)을 창설했다. 외형상 간판만 바꿔 달은 것이지만, 전쟁 발발 이후 엄청난 참패를 연이어 당했음에도 곧바로 재건시켜 유지했던 이름을 과감히 버렸을 만큼 스탈린그라드 사수에 대한 소련의 의지는 대단했다.

그렇게 치열했던 9월이 지나고 독일군이 때리다 지쳐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이자 10월 6일, 소련군이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곧바로 독일군에게 저지되었고 오히려 끈질지게 사수해오던 트랙터 공장의 일각이 돌파되었다. 어느덧 독일군도 소련군 못지않게 시가전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10월 14일에 이르러 제62군이 80퍼센트의 손실을 입자 결국 냉혈한 추이코프도 전선을 좀 더 안쪽으로 축소시켜야 했다. 하지만 저항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폐허로 변한 도심 상공을 비행 중인 독일군 Ju 87 폭격기. 이제 스탈린그라드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했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공방전이 석 달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독일군은 도시를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고 쓰러질 것 같던 소련군은 끝까지 방어에 나서고 있었다. 스탈린그라드는 퍼붓는 폭탄을 삼켜버리기만 하는 전선의 블랙홀이 되어버렸다. 대신 도시에서 나오는 것은 엄청난 사상자들의 피와 절규, 폭발음이었다. 이런 상황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스탈린그라드는 어느덧 독소전쟁의 모든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