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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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대전쟁의 전환점

스탈린그라드 전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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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 속에서 추위를 피하는 독일 병사들. 그들은 돈 집단군의 선전에 기대를 걸고 악조건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겨울폭풍 작전

돈 집단군이 구원 작전을 한창 준비 중이던 12월 초, 예상했던 만큼의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소련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자 파울루스는 히틀러에게 철수 허가를 재차 요청했다.

“총통 각하! 현재 약속하셨던 보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병력과 장비의 손실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탈출을 허락해 주십시오. 지금 탈출하면 최대한 전력을 보존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물자를 포기하더라도 병력 대부분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히틀러가 괴링을 불러다 혼을 내야 마땅했지만 그는 오히려 파울루스에게 전투의지가 없다고 신경질을 냈다. 이제 와서 철수 명령을 내리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청색 작전 개시 직전에 자리를 함께한 히틀러와 파울루스. 만일 파울루스가 항명하고 부대를 움직였다면 최악의 참사를 막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유부단한 파울루스는 총통의 명령을 받들었다.

이제 독일은 작전을 개시한 돈 집단군의 선전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그라드까지 가장 가까운 길은 베르흐네-쿰스카야(Verkhne-Kumskaya)에서 출발하는 가도로 약 65km 정도였다. 따라서 소련도 최정예 부대인 제5전차군과 제5충격군을 이 일대에 파견해 독일의 반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통로는 치르(Chir) 강과 돈 강에 가로막혀 있어서 이곳으로 진격할 경우 상당히 힘든 과정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만슈타인은 남쪽의 코텔니코보(Kotelnikovo)에서 스탈린그라드로 향하는 철도를 따라 돌격하기로 결심했다. 길이가 약 130km로 배 이상 길었지만 별다른 장애물이 없었고 배치된 소련군도 5개 사단에 불과했다. 만슈타인은 호트 기갑집단이 북동쪽을 향해 나가면 홀리트 파견군이 측면을 보호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파울루스에게 포위망 밖으로 치고 나와 구원 부대와 연결하도록 명령할 생각이었다.

만슈타인은 멀긴 하지만 소련군이 적고 장애물도 그다지 많지 않은 남측 가도를 따라 스탈린그라드로 향했다. 작전이 성공하려면 고립된 제6군의 양동작전이 절대로 필요했다. <출처: ShadeOfGrey at Wikimedia.org>

선봉은 제6전차사단이 맡았다. 이들은 소련 최강의 부대 중 하나인 제2근위군의 가운데를 순식간에 돌파해 버렸다. 예상치 못한 독일군의 공세에 양단된 제2근위군을 제17전차사단과 제23전차사단이 좌우에서 추격하기 시작했다. 천왕성 작전 이후 공세로 나와 독일군을 밀어붙이던 소련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병력과 장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들에게 공세로 나오는 독일군은 여전히 무서운 존재였다.


기적은 이루어질 것인가

우익에 있던 소련 제51군이 무너지는 제2근위군을 돕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약체로 여겨졌던 루마니아 제4군이 이들을 막아내는 기적을 연출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스탈린그라드에 고립된 부대들은 진지를 박차고 나와 남서쪽으로 진격해 북동쪽으로 치고 올라오는 돈 집단군과 연결을 시도해야 했다. 하지만 파울루스는 직위를 걸고 히틀러에게 항명할 용기가 없었다.

제2근위군이 몰리기 시작하자 배후에 있던 제5충격군이 앞으로 나왔으나 이들도 돈 집단군이 뿜어내는 겨울폭풍을 막아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선두에 섰던 제6전차사단이 피로를 느끼기 시작할 무렵 우익에 있던 제23전차사단이 돌파구를 확대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루마니아 제4군이 계속해서 소련 제51군을 잡아두고 있었다. 만슈타인은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룰 것처럼 보였다.

돈 집단군의 선전이 알려지자 스탈린그라드에 고립된 제6군은 사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해 점점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는 소련 제21군의 압박을 물리치고 마리노프카(Marinowka)를 사수했다. 히틀러도 자기 생각대로 전황이 반전되는 것으로 믿고 흡족해했다. 드디어 12월 20일 호트 기갑집단의 선봉 제6전차사단이 스탈린그라드 남부 외곽 50km까지 접근했다.

격파된 T-34 전차를 지나 전진하는 돈 집단군 소속 티거 전차. 선봉인 호트 기갑집단은 놀라운 뒷심을 발휘하며 포위망 35km까지 진격했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제6군 병사들은 구원부대가 쏘아대는 포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에겐 너무나 아름다운 굉음이었다. 만슈타인이 제6군에게 남서쪽으로 치고 나오라고 명령을 내리자 총통의 말을 충실히 따르던 파울루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탈출은 지난 넉 달간 피를 흘리면서 탈취한 스탈린그라드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현지를 사수하라는 히틀러의 엄명을 거역하는 일이기도 했다.


파울루스의 망설임

골수 나치인 제6군 참모장 슈미트. 그의 입김에 눌려 흔들리던 파울루스는 탈출을 포기했다.

파울루스가 주저하자 만슈타인은 항공편으로 연락장교를 파견해 결정을 독촉했다. 그러나 제6군 참모장인 골수 나치당원 슈미트(Arthur Schmidt)가 총통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자 우유부단한 파울루스는 현지를 사수하기로 결정했다. 파울루스는 만슈타인에게 현재 제6군이 보유한 연료로는 30km 정도 밖에 움직이지 못하니 돈 집단군이 더욱 진군해 전선을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만슈타인은 직접 히틀러에게 제6군이 탈출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히틀러의 대답은 일관되었다.

“철수는 없다. 더구나 연료가 없다면 탈출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결국 연료는 후퇴에 관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구실일 뿐이었다. 12월 22일, 호트의 부대는 스탈린그라드에 고립된 제6군의 지척인 35km까지 접근했지만 더 이상의 분전을 기대하기란 무리였다. 사실 지금까지 돈 집단군의 선전은 능력을 이미 초과한 상태였다.

결국 겨울폭풍 작전 기간 동안 예상외의 분전을 보여준 루마니아 제4군이 소련 제51군에게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제17전차사단과 제6전차사단의 벌어진 간격을 통해 소련 제5충격군이 밀려들어왔고, 와해될 위기에 몰렸던 소련 제2근위군이 긴급 재편되어 호트 기갑집단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저 멀리 북쪽에서 B집단군의 좌익을 담당하던 이탈리아 제8군이 궤멸되었다.

처참하게 격파된 이탈리아 제8군의 잔해. 전선의 북쪽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만슈타인은 더 이상 작전을 펼칠 수 없었다.

이제 상황은 반전되었다. 자칫 돈 집단군마저 포위당할 위기에 몰리자 만슈타인은 예하부대에 철수 명령을 하달했다. 만슈타인에게는 더 이상의 예비가 없었고 제6군이 탈출을 포기한 이상 돈 집단군까지 고립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직 코카서스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A집단군이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철수 속도를 조절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구출을 포기하다

그날 저녁 만슈타인은 파울루스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긴급히 치료를 요하는 2만 명의 부하가 폐허 속에 있습니다. 스탈린그라드 교외에서 반격전을 감행할 예정이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방법이 없고 오히려 자신들도 위기에 처한 돈 집단군은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는 제6군을 포기하고 100km를 다시 되돌아가야만 했다. 히틀러는 짜증을 냈지만 이러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돈 집단군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진했으나 제6군이 양동작전을 거부하면서 겨울폭풍 작전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돈 집단군의 후퇴와 제6군의 비참한 최후는 이후 사가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온 주제가 되었다. 우선 코카서스로 깊숙하게 진격했던 독일 A집단군이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도록 길목에 위치한 제6군을 전략적으로 산화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A집단군 사령관 리스트가 후퇴를 청원하자 히틀러는 즉각 그를 해임하고 A집단군 사령관을 자신이 겸임하겠다고 나섰다. 한마디로 이성적인 판단을 포기한 상황이었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또한 만슈타인도 히틀러의 눈치를 본 인물이어서 실제로 파울루스에게 적극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튀어나오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당시 여건에서 만슈타인이 더 이상 가용할 자원이 없어 공세를 지속할 수 없었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사실 그동안 코카서스에 머물러 있던 A집단군이 신속히 탈출할 수 없도록 방해한 것은 소련군이 아니라 히틀러였다. 진격로의 배후인 스탈린그라드에서 격전이 계속되는 것을 항상 우려하고 있던 A집단군 사령관 리스트는 제6군이 포위망에 걸리자 위험을 직감하고 코카서스에서 후퇴하겠다고 했었다.

이에 히틀러는 리스트를 해임하고 자신이 A집단군 사령관을 겸하는 초유의 횡포를 부렸다. 사실 히틀러가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그때 철군을 독려했어야 했다. 만일 A집단군이 신속히 로스토프로 빠져나왔다면 제6군도 조기에 탈출이 가능했거나 아니면 A집단군이 돈 집단군과 함께 제6군 구출 작전에 참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A집단군은 제6군의 산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후퇴를 허가받았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