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7.2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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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대전쟁의 전환점

스탈린그라드 전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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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유유자적하게 보병을 태우고 파괴된 도심 안으로 진입하는 독일군 3호 돌격포. 이곳이 독소전쟁 최악의 지옥이 되리라곤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었다.

운명의 도시

1925년, 스탈린은 공산주의 혁명 역사에 중요한 이력을 남긴 차리친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스탈린그라드로 바꾸고 소련 기계공업의 중심지로 집중 개발했다. 덕분에 스탈린그라드는 소련 내에서도 가장 잘 사는 곳으로 손꼽혀 스탈린의 애착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난 1941년 10월에 하르코프가 점령된 이후 대다수의 중화기를 집중 생산할 만큼 전쟁 수행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스탈린그라드 기계공업단지에 위치한 트랙터 공장. https://seditor.chosun.com/articleview/edit#이후 격전의 무대가 된다.

당연히 독일 또한 이 도시를 주목하고 있었다. 볼가 강에서 코카서스 산맥에 이르는 지역은 독일이 진격할수록 전선이 불룩하게 돌출되어 급격히 길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부대 간의 간격이 넓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때문에 아조프 해로 흐르는 돈 강과 카스피 해로 이어지는 볼가 강이 최대한 가깝게 붙은 이 도시를 장악하거나 봉쇄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련의 반격을 받는다면, 독일군은 돈 강까지 다시 밀려날 수도 있었다.

또한 스탈린그라드는 도시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코카서스에서 러시아 내륙으로 통하는 철도는 로스토프 방면과 스탈린그라드 방면의 2개 노선뿐이었는데, 로스토프가 함락된 이후에는 스탈린그라드가 소련의 유일한 통로가 되어버렸다. 거기에 더해 스탈린그라드는 볼가 강의 수운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였다. 코카서스에서 생산된 석유와 식량은 이처럼 스탈린그라드를 거쳐 내륙으로 공급되고 있었다.

전투 중 파괴된 스탈린그라드 중앙역의 모습. 스탈린그라드는 코카서스에서 생산된 석유와 식량이 소련 내륙으로 운송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차로였다. <출처: Bundesarchiv>

다시 말해 스탈린그라드의 점령은 소련의 생명줄을 차단해 버리는 것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스탈린그라드는 독일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빼앗아야 할, 소련의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할 도시였다. 이처럼 양측 모두는 이 도시를 두고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당연히 격전이 예고된 상태였다. 하지만 여름이 절정으로 치닫던 8월이 될 때까지도 그곳이 사상 최악의 지옥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히틀러의 낙관

독소전쟁 내내 독일군은 공군의 화력 지원을 받는 강력한 기갑부대가 적의 배후를 깊숙이 치고 들어가 퇴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후속해서 쫓아온 보병부대가 포위망을 완성하여 적을 고립시킨 후 일거에 섬멸하는 전법을 구사해 왔다. 어느덧 독일군의 말단 병사들조차 연이어 대승을 이끌어 온 이런 패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이후로도 전투는 당연히 이렇게 하는 것이라 여겼을 정도였다.

독일은 제 병과가 유기적으로 연합해 작전을 펼치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적이 끈질기게 저항하는 변칙적인 시가전에서는 이런 작전을 그대로 차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서쪽에는 돈 강 지류, 동쪽에는 볼가 강이 흘러, 마치 여의도처럼 강 한가운데 위치한 스탈린그라드는 이러한 독일의 전술이 쉽게 먹히지 않는 지형이었다. 거대한 강과 주변의 호수들 때문에 기갑부대가 신속히 우회해 배후로 치고 들어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쪽 외곽에서부터 볼가 강 방향으로 차츰차츰 밀고 들어가 도시를 장악하는 단순한 작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세바스토폴 전투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전술은 강력한 저항에 마주치면 상당히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독일은 B집단군이 무난하게 임무를 달성할 것으로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 이번 공세에서는 코카서스를 점령할 A집단군의 비중이 더 컸기 때문인지 몰라도 독일에게 이 도시는 목표가 아니라 잠시 거쳐가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점령한 수많은 도시들처럼 스탈린그라드도 그렇게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볼고그라드(스탈린그라드)의 최근 모습. 청색 작전에서 이곳은 독일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단지 중간 기착지일 뿐이었다. <출처: (cc) www.volganet.ru at Wikimedia.org>

흑해와 카스피 해 사이에 놓여 있는 거대한 협곡 모양의 코카서스는 안으로 진격할수록 전선이 3배 이상 늘어나므로 A집단군 단독으로 점령과 배후 단속을 하기엔 힘이 부쳤다. OKH는 이렇게 늘어날 전선 측면의 보호를 B집단군이 해야 하므로 처음부터 스탈린그라드 점령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한 의도대로 보로네시에서 잠시 숨을 고른 독일 B집단군은 다시 속도를 내서 진격에 박차를 가했다.


피의 잔치가 시작되다

간간이 소련의 저항이 있었지만 유전지대를 비롯한 소련의 알토란 같은 거점이 하나하나 독일군에게 점령되기 시작했다.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할 임무를 부여받은 B집단군 예하 제6군도 발맞추어 앞으로 나아갔다. 돈 강 동쪽부터 촘촘히 배치되어 있던 소련군은 제6군에 밀려 볼가 강 서쪽으로 점점 밀려들어갔다. 8월 중순이 되었을 때 제6군은 스탈린그라드 외곽에 도달했고, 이제 이 도시의 점령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8월 초 스탈린그라드 외곽에 도착해 불타는 도심을 바라보는 독일 병사들. 점령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별다른 고지가 없는 평원 위에 노출된 스탈린그라드는 손쉬운 먹잇감처럼 보였다. 보로네시를 거쳐 300여 킬로미터를 질풍처럼 내달려온 제6군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그냥 앞으로 진격할 생각이었다. 8월 23일 새벽 4시 30분, 폭격기들의 대대적인 공습을 신호탄으로 드디어 피의 잔치가 시작되었다. 공군의 폭격 직후 제6군의 선봉대인 제16전차사단이 스탈린그라드 외곽의 볼가 강 북쪽을 향해 돌격했다.

예정대로 이들이 볼가 강 북쪽 서안을 점령하자 후속 부대들이 신속히 투입되어 돌파구 확대에 나섰다. 시내 입성을 다음 날로 정한 파울루스(Friedrich Paulus) 제6군 사령관은 폭격으로 불타는 시내를 바라보면서 상황을 낙관했다. 그렇게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첫날은 평안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제16전차사단이 서서히 불길이 꺼져가고 있던 스탈린그라드 북쪽에서 시내를 향해 돌입했다.

하지만 이 희미한 불길이 꺼지지 않고 여섯 달 동안 계속 타오르고 스탈린그라드의 도심이 파멸의 수렁으로 변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제16전차사단은 시내 초입에서부터 예상치 못한 소련군의 완강한 저항에 막혔고 오후에는 오히려 2km나 후퇴했다. 암울한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독일은 통상적인 어려움 정도로 이 사태를 치부하고 있었다.


예상외의 저항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 북쪽과 서쪽으로의 진입에 난항을 겪자 바익스 B집단군 사령관은 남측에서 함께 진격하던 독일 제4기갑군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이들 또한 제6군처럼 하루 종일 공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돌파에 실패했다. 스탈린그라드를 방어하는 소련군이 상상외로 강하게 저항하고 나선 것이었다. 소련은 독일의 공격 목표가 코카서스임이 확실해진 7월 초부터 방어선 구축에 들어가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독일의 의도를 파악한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일대에 첩첩이 방어선을 구축한 상태였다.

STAVKA는 신편 제21, 62, 63, 64군과 제1, 4전차군을 배속시켜 보로네시 전투에서 궤멸되다시피 한 남서전선군을 즉시 재건한 후, 스탈린그라드 외곽부터 도심으로 겹겹이 이어지는 방어선에 배치해 놓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그동안의 격전으로 전력이 약해진 제28, 38, 57군도 재편이 끝나는 대로 후속 투입할 예정이었다. 이렇게 스탈린그라드 방어에 나선 소련군은 무려 50여만에 이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소련의 방어선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은 파울루스는 다른 방법으로 도심에 진입하고자 했다. 남쪽의 제64군과 북쪽의 제62군의 연결 고리를 끊어 각개격파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방어선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곳으로 파악된 제64군의 우측을 집중 타격하자 그의 예상대로 일대의 소련군 전력 대부분이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바로 주력을 북으로 돌려 방심하고 있던 제62군을 향해 돌진했다.

독일은 소련군의 허를 찌른 우회 돌파를 시도해 초전을 멋지게 장식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식으로 예상외의 공격을 당한 제62군은 완벽하리 만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그와 동시에 측면이 약화된 제64군도 어려움을 겪었다. 전황이 급속도로 불리하게 돌아가자 신임 남서전선군 사령관 예료멘코(Andrey Yeryomenko)는 전선을 좀 더 안쪽으로 축소하기로 하고 점진적으로 부대를 후퇴시켰다. 간신히 몸을 추스른 제64군이 엄호에 나서자 만신창이가 된 제62군은 도심으로 후퇴하여 겨우 부대를 살릴 수 있었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