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K는, SKS 반자동소총의 지원 화기로 사용되던 RPD를 대체한 경기관총이다. 제2차대전 종전 직전부터 본격 보급된 RPD는 사실 상당히 좋은 기관총이었다. 소련군은 1946년부터 새롭게 제식화한 SKS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RPD를 지원 화기로 채택하였는데 이렇게 무장한 소부대는 가히 천하무적이라 할 만했다. 독일을 격멸한 후 소련의 주적으로 떠오른 미국은 당시까지 M1 개런드와 BAR를 사용 중이었는데 그중 BAR는 RPD에 비하면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신감을 더욱 기분 좋게 깨버린 엄청난 걸작이 등장했다. 현재도 최고의 소총 중 하나로 거론되는 AK-47이 개발된 것이다. 소련군이 상당히 뛰어난 반자동소총인 SKS를 불과 2년 만에 털끝만큼의 미련도 갖지 않고 제식무기 명단에서 제외시켰을 만큼 AK-47은 보병이 휴대하는 소총의 개념을 일시에 바꾸어버렸다.

급격한 제식무기의 교체 이후, RPD는 AK-47과 함께 작전을 펼치기에 어정쩡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AK-47이 워낙 강력하다보니 옆에서 화력지원을 해주는 경기관총으로서 RPD는 뭔가 부족했다. 더불어 복잡한 구조와 탄띠 수납용 컨테이너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소련군 무기 사상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AK-47과 어울리는 새로운 경기관총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런 요구에 따라 등장한 것이 바로 RPK, 즉 칼라시니코프 경기관총(Ruchnoy Pulemyot Kalashnikova)이다.

새로운 소총에 걸맞은 새로운 기관총

SKS를 즉각 퇴출시켰던 소련 당국의 의사 결정은 이번에도 대단히 신속했다. 곧바로 RPD의 조기 퇴역을 전제하고 새로운 경기관총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총기 제작자들은 상당히 골치가 아팠다. RPD의 성능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 이보다 좋은 경기관총을 당장 만들어 내라니. 명령만 내린다고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M1911 권총이나 M2 중기관총, AK 시리즈에서 알 수 있듯이 총이라는 물건은 처음에 잘 만들면 의외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이다. 이 말은 곧, 획기적인 성능의 총을 새로 만드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 AK-47이 얼마나 뛰어난 소총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AK-47로 인해 SKS와 RPD는 이름을 알릴 사이도 없이 무기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그 뛰어난 AK-47을 만든 당사자인 칼라시니코프도 당국의 명령을 받은 엔지니어 중 하나였다. 그는 여러 종류의 시제 경기관총을 만들었는데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생각을 달리하였다. 아예 AK-47을 경기관총으로 개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AK-47의 성능 이상이 보장될 테니 시작점으로 나쁘지 않았다.

탄생과 동시에 채택

칼라시니코프는 먼저 총열을 굵고 길게 만들어 파괴력과 사거리를 늘렸다. 이로써 AK-47의 사거리 밖에 있는 목표물에 대한 효과적인 제압이 가능해졌는데, 이는 소부대 지원 화기가 갖추어야 할 기본 성능이다. 더불어 사격의 정확성과 편의성을 높이려 양각대를 도입하고 조준기와 개머리판도 개량했다.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새로운 기관총의 모습은 영락없는 AK-47이었고 사용법도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이에 더해, 전용 탄띠 수납 컨테이너를 사용하던 RPD와 달리 40발 전용 탄창이나 드럼 탄창을 사용하도록 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AK-47용 탄창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가장 획기적인 점은 무게를 5킬로그램 내외로 대폭 줄인 점이었는데, 이는 AK-47보다 약간 무거운 수준으로 RPD의 7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가벼움은 유사 이래 모든 무기가 꿈꾸는 궁극의 목표다.

완성된 기관총에 만족한 소련 당국은 1961년에 RPK를 즉시 제식화하고 예정대로 RPD는 해외에 대량 공여하거나 수출해 버렸다. 소련군의 이러한 빠른 행보는 서방측을 긴장시켰다. 특히 미군은 베트남 전쟁을 기점으로 소총과 기관총의 제식 탄환이 이리저리 나뉘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새로운 분대 지원 화기가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AK의 동반자

이에 반하여 RPK는 분대나 소대 정도의 소부대 운영 측면에서 본다면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별도 교육이 필요 없을 만큼 AK와 사용법마저 동일한 경기관총은 탄의 보급뿐만 아니라 총기의 유지보수에서도 상당한 이점을 제공했다. 이에 비하여 서방측은 설령 같은 총탄을 사용하더라도 소총과 지원 화기가 상이했기 때문에 유지보수 및 교육과 관련해서 별도의 체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렇게 야심만만하게 도입한 RPK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에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이후 서방의 5.56mm 탄에 대응하여 소련이 1970년대에 5.45×39mm 탄을 이용하는 AK-74를 제작하자 이에 발맞추어 RPK-74도 함께 만들었을 만큼 AK 소총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지원 화기가 되었다. 냉전시대를 대표한 또 하나의 상징이었다.

이후 RPK는 수많은 실전에서 맹활약하였다. 소련제 무기가 대량 공여된 월남전을 시작으로 최근의 국지전까지 RPK가 등장하였는데, 'AK가 있는 곳에 RPK도 있다'고 말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 AK의 명성이 워낙 크다 보니 RPK 역시 AK 시리즈 중 하나로 여겨지면서 AK의 그림자에 묻힌 경향이 있지만 전장에서 RPK의 존재감은 꽤 큰 것이었다.

RPK는 소련에서 1978년까지 생산되었고 RPK-74는 현재까지도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AK와 마찬가지로 얼마나 많이 만들어졌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적어도 AK를 생산했던 나라라면 충분히 이를 복제할 수 있었고 RPD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다는 이점이 있어 적지 않은 양이 제작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장점 속에 담긴 문제점

하지만 분명히 단점도 존재했는데 사실 장점이 곧 단점이었다. AK와 완벽한 호환이 가능했지만 좋은 소총을 개량한 정도 이상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련은 RPK에 너무 만족한 나머지 이 부분을 간과했고 결국 후속 지원 화기 개발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FN 미니미를 비롯한 서방의 동급 경기관총과 비교하면 전력 차이가 벌어진 걸 극명하게 알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다목적 기관총 역할까지 담당할 수 있는 서방의 분대 지원 화기에 비한다면 RPK는 역량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분해하지 않고는 총열을 교환할 수 없는 구조는 지속 사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호환성이라는 편리함이 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도록 만든 벽이었다.

그러나 단점 없는 무기란 없는 법이어서, 이런 사항들은 굳이 찾다보니 나온 단점인지도 모른다. 마치 바늘과 실처럼 AK와 오랫동안 함께한 RPK는 총기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기관총임에 틀림없다.

제원 (초기 형 기준)

탄약 7.62×39mm M43 / 급탄 20/30/40발 탄창, 75발 드럼 탄창 /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회전노리쇠, 클로즈드 볼트 / 전장 820mm / 중량 5.1kg / 발사속도 분당 600발 / 유효사거리 1,000m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