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은 제1차 대전을 거치며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위력을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얼마나 무섭고 뛰어난 무기인지 이때부터 여실히 입증되었고 보편화 되었다. 피아 구분 없이 마구 사용된 맥심(Maxim) 기관총이 제1차 대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관총이지만 사실 이외에도 많은 기관총들이 전선에 투입되었다. 세계대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을 만큼 거대한 전쟁이었기에 다양한 종류의 기관총이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맥심 기관총도 그랬지만 미국인이 개발하였음에도 정작 미군에서 사용되지 않고 외국군에 의해 먼저 유명세를 떨친 경우가 많았다. 미국이 중립을 유지하다가 전쟁 말기에 서둘러 참전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고 미군 당국에 의해 채택이 거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군이 대서양을 건너가 교전에 임하였을 때 정작 좋은 기관총이 없어 영국군이나 프랑스군에서 빌려야 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였다.

그런 어처구니없던 사례 중 가장 대표적이었던 것이 루이스 경기관총(Lewis Machinegun)이다. 적국에서 조차 획득하기를 원하였고 제2차 대전 당시에도 일선에서 사용되었을 만큼 루이스 경기관총은 당대 최고의 총기 중 하나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영국이 먼저 도입하여 사용하였고 개발 과정 중에 미 육군 병기국의 간접적인 관여가 있었음에도 미 육군은 끝까지 공식 채택하지 않았던 이해하기 힘든 역사를 지니고 있다.

새로운 방식

일반 병사들이라면 일선에서 직접 사용하면서 그 능력을 깨닫게 되지만 적어도 총기 전문가라면 맥심 기관총이 대단한 걸작이고 그 위력이 어떨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이 앞 다투어 라이선스를 받아 맥심 기관총을 생산하였고 더불어 각국의 조병창과 총기 엔지니어들은 이와 맞먹는 위력을 지닌 기관총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맥심 기관총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했다. 물론 전쟁 중이라면, 특히 적국의 무기라면 그런 상황을 무시하고 데드카피라도 하여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평시에는 불가능하였다. 핵심은 맥심 기관총이 채택하고 있는 반동식 사격 메커니즘 그리고 탄띠 급탄 방식과는 다른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기관총 개발에 착수한 인물 중에는 총기 발명가인 사무엘 맥클린(Samuel Maclean)도 있었다.

그가 택한 가스 작동식은 맥심 기관총이 사용하고 있는 반동식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을 뿐만 아니라 튼튼하고 유지 보수하기도 편리하여 야전에서 신뢰성이 좋았다. 또한 내부에 스프링 장치 없이 노리쇠와 연동된 캠을 돌려 탄을 이송하는 독특한 방식의 쟁반 모양의 탄창도 탄띠를 사용하는 맥심 기관총과 전혀 다른 급탄 방식이었다. 언듯 복잡해 보이지만 오히려 탄약의 보유와 장전 과정을 컴팩트하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하지만 맥클린의 기관총은 미군 당국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그런데 미 육군 병기국 소속이었던 아이작 루이스(Isaac Lewis) 중령은 맥클린이 제안한 경기관총의 작동 방식과 탄창 구조에 대단한 흥미를 느끼고 특허권을 인수하여 개량에 나섰다. 1911년, 이렇게 해서 새롭게 탄생한 신형 경기관총은 분당 500발을 발사할 수 있었고 총구에 양각대를 장착하여 정확도를 높였다. 또한 유효 사거리가 800m에 이르러 원거리의 적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맥심 기관총이나 M1917 기관총처럼 초창기 중기관총 대부분은 수랭식 냉각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기관총의 무게를 증가시킨 주범 중 하나였다. 맥클린의 기관총도 마찬가지였지만 루이스는 커버를 덮어 총구에서 발생하는 가스의 흐름에 의해 찬 공기가 내부에서 순환하는 공랭식으로 개량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냉각효율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전투기용 무기로 장착되면서 냉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커버가 제거되기도 하였다.

덕분에 새로운 기관총은 전체 무게를 13㎏ 수준으로 경감할 수 있었다. 사실 이는 오늘날 다목적 기관총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경기관총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지만 30㎏ 가까이 나가던 맥심 기관총에 비한다면 휴대가 상당히 편리한 수준이었다. 더구나 제작 단가도 저렴하고 필요 인원도 적었다. 루이스는 새로운 기관총에 자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명명하였고 시제품을 그가 근무하던 미 병기국에 제출했지만 제식화되지 못하였다.

좌절 그리고 변신

표면적으로 미 육군이 정한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제1차 대전 당시 루이스 경기관총이 보여 주었던 활약상을 고려한다면 이는 합당한 이유로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당시 상관이던 미 육군 병기감 윌리엄 크로저(William Crozier) 장군과 루이스의 관계가 나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무슨 이유로 사이가 나빴는지는 알려지지 않지만 루이스는 그를 만나 여러 차례 설득하였음에도 끝내 채택이 거부 된 것으로 알려진다.

실망한 루이스는 군을 나와 벨기에로 건너가 총기 회사를 설립하고 자체 제작에 나섰다. 만일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크로저는 하나의 정책 부서를 이끌 만한 그릇이 못 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군이 사용할 무기를 선정함에 있어 사심이 개입되면 당연히 곤란하다. 제1차 대전 당시 미군들이 참전 초기에 당장 사용할 제대로 된 기관총이 없어 고생하였던 사례를 본다면 그의 잘못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반면 벨기에군과 영국군은 루이스 경기관총의 성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각각 라이선스 생산에 나섰다. 영국의 BSA(Birmingham Small Arms Company)사는 .303 브리티쉬(7.7㎜)탄에 맞추어 개량을 하였다. 비싼 맥심 기관총으로는 일선에서 요구하는 수요량을 맞추기 어려워 고민이 컸던 영국군에게 루이스 경기관총은 좋은 대안이 되었다. 덕분에 천직이었던 군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와 새로운 도전을 하였던 루이스는 상업적으로 대성공하였다.

타지에서 얻은 명성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하고 방어용 무기로써 기관총의 중요성은 커졌다. 더불어 보병과 함께 움직이며 공격에 나설 수 있는 경기관총의 필요성도 급속히 요구되었다. 루이스 경기관총은 이에 적합한 기관총이었고 1917년에 이르러 영국군 전방 보병대대는 46정을 보유할 정도였다. 당시 기관총이라면 당연히 따라다니던 무거운 삼각대 대신 양각대를 달고 전선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다 보니 최초의 분대지원 화기로도 명성을 날렸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아무래도 탄띠 급탄식 기관총이었던 맥심에 비해 연사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수랭식보다 총신의 과열을 잘 막아주지 못했다. 하지만 경쟁 기관총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간편한 휴대 능력과 신뢰성은 그러한 단점을 충분히 대신하였고 특히 고속으로 움직이는 항공기나 차량에 거치되었을 경우 공랭식도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영국군은 전투기나 전차, 장갑차의 표준 화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최초로 전투기에 장착된 기관총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하였다. 그런데 미 해병대에서 소량을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정작 고향 같은 미 육군은 끝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M1917 중기관총에 대한 신뢰가 컸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선에서 지원 화기가 부족하여 병사들이 고생하였던 점을 상기한다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루이스 경기관총을 보면 마치 집에서 냉대받고 쫓겨났지만 노력 끝에 성공한 서자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이처럼 미군에서 홀대 받았지만 독일군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획하기를 바랬을 만큼 선호하던 기관총이다 보니 영국, 벨기에 외에도 많은 교전국에서 알음알음 사용되었다. 그렇게 퍼져나간 루이스 경기관총 중 3정 정도가 적백내전 기간의 혼란을 틈타 본국으로 귀환하던 체코 군단을 통해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전해져 무장 독립 운동의 절정인 청산리 전투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와의 인연도 각별한 경기관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원
탄약 .303 브리티쉬 외 / 급탄 47, 97발 쟁반형 탄창 /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 전장 1,280㎜ / 중량 13㎏ / 발사속도 분당 500발 / 유효사거리 800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