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엄청난 규모의 지상군을 유럽에 파견했지만 당시 열강이던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과 비교한다면 실력이 한 수 아래였다. 미국은 거대한 바다에 의해 다른 대륙과 떨어져 있고 주변에 강력한 적대 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거대한 육군을 보유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유한 장비의 질적 수준도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미국 최초의 대규모 대외 원정인 것처럼 오랫동안 주창한 고립주의 때문에 육군에 대한 투자가 적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 처럼 미국도 대외 팽창에 열성적인 나라였다. 사실 외교 기조로 내세운 고립주의는 자신들의 영역으로 간주하던 미주 대륙의 일에 유럽이 관여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따라서 장비의 질적 수준이 낮았던 부분은 당장 눈앞의 현실에만 안주하던 군부의 게으름 때문이었다.

미군이 본격 참전한 1918년은 전쟁 말기여서 적국인 독일군이나 연합군은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군은 모든 것이 생소했고 당연히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열심히 조언을 해주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경험을 쉽게 만회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전선의 대세가 되어버린 기관총에 대해 미군이 느낀 충격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직접 겪은 기관총은 한마디로 공포였다.

그런데 정작 총을 제외하고 역사를 논할 수 없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고 더구나 피아 구분 없이 전선의 중핵이 되어버린 맥심 기관총(이하 맥심)을 만든 이도 미국인이었다. 하지만 정작 기관총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미군은 영국이나 프랑스가 지원해준 기관총에 의지해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관총 개발에 나선 미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난 기관총을 데뷔시킬 수 있었다. 바로 브라우닝 M1919 기관총(이하 M1919)이다.

늦은 출발

물론 미국이 기관총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기관총이 유럽 전쟁에서 맹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참전과 별개로 도입을 신중히 고려하던 중이었다. 다행히 무사태평한 군 당국의 요구가 있기 훨씬 이전에 총기 개발자나 제작사들은 기관총 개발에 착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이들 중에는 맥심 기관총을 만든 하이럼 맥심과 전설적인 총기 엔지니어인 존 M. 브라우닝(John M. Browning. 1855~1926)도 있었다.

브라우닝은 이미 1900년에 리코일 방식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고 이듬해에는 이를 이용한 수랭식 자동화기를 시험 삼아 제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군부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제1차 대전이 발발하고 기관총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하자 군부는 부랴부랴 1917년에 브라우닝이 제안한 모델을 채택했다. 이것이 브라우닝 M1917 기관총(이하 M1917)이다.

M1917은 맥심을 카피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겉모양이 유사하지만 작동 방식은 차이가 있었다. M1917은 맥심보다 구조가 단순하여 가벼우면서 정확도도 높고 내구성도 좋아 가히 당대 최고의 중기관총이라 할 만 했다. 하지만 양산이 늦어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두 달 전에야 소수 물량이 전선에 공급되어 커다란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고 그때까지 미군은 다른 나라의 기관총을 사용하는 굴욕을 겪었다.

무게를 줄여라

비록 데뷔전에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지만 M1917은 미 육군의 주력 중기관총으로 급속히 자리 잡아 이후 제2차 대전, 한국전쟁은 물론 베트남전쟁 때까지도 꾸준하게 애용되었다. 하지만 M1917도 당시 중기관총 공통의 문제였던 무거운 무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나마 맥심에 비해서는 가벼운 편이었지만 냉각수, 총열, 받침대, 탄약을 포함하여 무게가 47킬로그램에 달했다.

초기의 중기관총은 엄청난 화력의 중요성을 뚜렷이 각인시켰지만 무게로 말미암아 주로 고정된 진지에 거치하고 사용하는 극히 제한적 무기이기도 했다. 결국 기관총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무게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였는데 그러한 방법의 일환으로 공랭식 기관총이 나타났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간파한 브라우닝은 군 당국의 요구가 있기 전에 독자적으로 공랭식 기관총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새로운 기관총을 개발하는 대신 이미 기계적인 성능이 입증된 M1917을 공랭식으로 개량하기로 했다. 마침 M1917의 수랭식 냉각장치를 제거하여 무게를 줄인 경량화 모델이 있었는데 이는 전투기에 탑재되어 공기에 의해 냉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이를 좀 더 손을 봐서 1919년에 우선 차량에 탑재하는 공랭식 기관총을 선보였다. 실험 결과에 대단히 만족한 미군 당국은 M1919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제식화했다.

미국을 대표한 기관총

쇼트리코일 방식으로 작동하는 M1919는 250발 금속 탄띠에 장착한 7.62×63mm 스프링필드탄을 사용하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나토탄을 사용하는 개량형도 등장했다. 양산에 들어간 M1919는 1920년대부터 군에 보급되었는데 일선의 요구를 즉시 반영하여 성능을 개선하여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본격 양산에 들어간 모델이 완성형이라 불리는 M1919A4다.

M1919A4는 분당 60발씩 30분 동안 사격하여도 총신이 과열되지 않았을 만큼 상당히 안정적인 기관총이었다. 그래서 ‘죽어도 고장 나지 않는 기관총’이라는 과분한 말까지 들었을 정도인데 이것이 M1919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M1919는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의 여러 총기 생산업체가 참여하여 1945년까지 60만 정 넘게 양산되어 미군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하며 화력 지원을 담당했다.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도 사용되면서 M60 다목적기관총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군의 주력 기관총으로 맹활약했다. 우리나라도 1949년 주한미군 철수 시에 약간 수량의 M1919를 인수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상당량을 지원받아 육군의 주력 기관총으로 활용했다. 정확한 수량은 확인되지 않지만 1990년대까지 예비군용으로 보관하고 있었을 만큼 우리나라는 M1919를 애용한 나라로 흔히 ‘캘리버 30’이라고 불린다.

우직한 전선의 마당쇠

M1919는 부속 장비를 포함해도 20킬로그램이 되지 않는다. 성능은 오히려 더 좋아졌는데도 무게가 M1917의 절반도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일선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다목적기관총인 독일의 MG 34나 MG 42에 비해서는 상당히 무거운 편이어서 주로 차량이나 기갑장비에 탑재하여 사용했다. 사실 M1919에 만족해하던 미군은 독일군이 사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기관총을 보고 경악했다.

독일의 기관총은 보병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하며 작전을 펼쳤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사수 혼자 고성능 기관총을 들고 다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독일군을 흉내 내기에는 M1919도 무거운 편이어서 미군은 BAR가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다. 전쟁 말기에 양각대 방식으로 교체하고 성능을 개선하여 무게를 줄인 M1919A6이 등장했지만 이 역시 보병과 함께 이동하며 작전을 펼치기는 역부족이었다.

M1919는 투박한 외형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발사 속도도 느린 편에 속했지만 튼튼하고 고장이 없어 장시간 사격할 수 있었다. 사실 치열한 교전 상황에서 무기에게 이것보다 우선시되는 조건은 없으므로 M1919는 가장 기본에 충실한 무기라 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얍삽하지 않지만 자기 본분에 충실한 마당쇠와 같은 무기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실제로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다.
 

제원

탄약 7.62×63mm (.30-06스프링필드탄), 7.62×51mm NATO / 급탄 250발 급탄벨트 / 작동방식 쇼트리코일 / 전장 964mm / 중량 14kg / 발사속도 분당 500발 / 유효사거리 1,000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