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3.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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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하늘에서의 전쟁

영국 본토 항공전(The Battle of Britain)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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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과 우려


1(제1교도비행단) 소속의 Bf 110 장거리 전투기. 이들은 독수리의 날 당시에 수월하게 작전을 펼쳤으나 대부분의 독일군 비행대는 영국 공군의 집요한 요격을 받았다. <출처: (cc)Bundesarchiv at Wikimedia.org>

영국의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독일은 승리를 확신하면서도 내심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LG1처럼 유유자적하게 작전을 펼친 부대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비행대들이 요격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영국의 대응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고 분석한 사전 정보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의 독일 항공군 관할도. OKL은 제2, 3항공군이 영국 남부를 노리는 동안 노르웨이에 주둔한 제5항공군이 측면을 강타할 계획을 세웠다.

물론 이런 결과는 체인 홈(Chain Home)이라 불린 영국의 조기 경보 체계와 효과적인 관제 시스템, 그리고 연이은 수차례의 출격도 마다하지 않은 조종사들의 노고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몰랐던 독일 공군의 일선 조종사나 승무원들은 예상보다 거센 영국 공군의 대응에 당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국 제11전투비행단에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혔다고 자평했다.

자신들이 폭탄을 던져 파괴한 것을 직접 눈으로 목도한 데다 영국의 복구 능력을 몰랐기에 그렇게 자신한 것이었다. OKL은 다음 날 제2, 3항공군에게 남부 잉글랜드에 대한 폭격을 계속하도록 지시해 잔여 전력을 궤멸시키도록 했다. 동시에 후방에 위치한 영국 제12, 13전투비행단의 이동 전개를 막기 위해 노르웨이에 전진 배치된 독일 제5항공군에게 후방의 급습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노르웨이에서 영국 동북부까지는 600여 킬로미터가 넘으므로 폭격기 호위에 Bf 109가 나설 수 없고 대신 그동안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한 Bf 110이 투입되어야 했지만 이 일대에 대한 영국의 방비도 소홀할 것으로 예상했기에 그다지 문제 삼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영국의 전력으로는 작전 당일 영국 남부에 재차 출격할 제2, 3항공군의 공격을 막기에도 부족할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었다.



검은 목요일


날씨가 나빠 하루가 더 지난 8월 15일에 독일의 대공습이 재개되었다. 1,500여 기로 구성된 제2, 3항공군 소속의 작전기들이 지난 독수리의 날처럼 대대적인 폭격을 개시했다. 그런데 궤멸시킨 것으로 파악하고 있던 영국 제11전투비행단 소속의 전투기들이 나타나 또다시 끈질지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독일은 놀라기는 했지만 최후의 발악을 하는 마지막 전력이라 생각했다.

영국 전투비행단의 두뇌라 할 수 있는 관제실. 이들의 정확한 분석에 힘입어 영국은 독일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상공은 쫓고 쫓기는 전투기들의 굉음과 기총 소리로 가득 찼고 이곳저곳에서 피격된 피아의 전투기, 폭격기들이 불을 뿜으며 추락했다. 이틀 전의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투의 격렬함은 오히려 독수리의 날을 능가할 정도였다. 이처럼 영국 남부에서 혼전이 벌어지는 사이에 예정대로 노르웨이의 각 비행장에서 이륙한 제5항공군 소속 작전기들은 두 개의 제파로 나뉘어 북해를 가로질러 영국 동부 해안가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34기의 Bf 110과 65기의 He 111 폭격기로 구성된 첫 번째 제파를 후속하여 전투기의 호위를 받지 않는 50여 기의 Ju 88 폭격기로 구성된 후속 비행대가 뒤를 쫓았다. 독일은 모든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지만 영국의 레이더 감시망에 의해 움직임이 고스란히 포착된 상태였다. 결국 영국 동부 해안가에 이르기도 전에 고공에서 대기 중인 40여 기의 전투기로 구성된 영국 공군의 뜨거운 영접을 받았다.

제5항공군이 보유한 72기의 He 111 폭격기 중 65기가 영국 동부의 폭격을 위해 출격했다. 하지만 회복하기 어려운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이를 흔히 검은 목요일이라 부른다.

결과는 참담했다. 둔중한 폭격기들은 꼬리에 불붙은 개처럼 대열을 이탈해 도망가기에 급급했고 이들을 보호해야 할 Bf 110들도 제 살 길을 찾기에 바빴다. 16기의 폭격기와 7기의 전투기가 격추되었고 간신히 도주한 작전기들의 30퍼센트 이상이 재출격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이후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로 불리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괴링은 경악했고 제5항공군은 더 이상 영국 본토 항공전에 얼굴을 내밀 수 없었다.



변경된 전투 방식


이와 상관없이 주 전장인 영국 남부 일대에서의 혈전은 더욱 거세어졌다. 한 번에 100여 기씩 무리를 지어 공습에 나선 독일 폭격기들을 막기 위해 영국 전투기들이 요격에 나서면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독일 전투기들이 달려드는 패턴의 전투 방식이 연일 반복되었다. 사실 이런 대규모 공습은 제2차 대전 후반기에 연합국이 실시한 전략 폭격에 비하면 약소한 수준이었으나 당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공포였다.

거친 파도가 치는 영불 해협을 건너 영국 본토로 진입하는 He 111 폭격기 비행대. 8월 13일 이후 쉬지 않고 독일의 대공습이 이어졌다. <출처: (cc)Bundesarchiv at Wikimedia.org>

그런데 8월 19일까지의 전황을 분석한 OKL은 예상보다 독일 공군의 손실이 크자 당황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은 자국 상공에서 오로지 요격만 하는 영국에 비해, 멀리 원정을 가서 지상 폭격과 요격기 차단을 동시에 해야 하는 독일 공군이 처음부터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손실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나 피해가 예상보다 컸던 것이다.

관영 매체에서는 연일 영국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고 선전했지만 이 기간 동안 독일은 자체 집계한 전과로만 따져도 영국의 2배가 넘는 200여 기의 손실을 보았다. 그만큼 영국의 대응은 독일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결국 피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Ju 87과 Bf 110은 투입이 완전히 제외되었다. 이제 독일은 영국 본토 공습에 들어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싸움의 방식을 바꿔야만 했다.

격추되어 불타고 있는 독일 폭격기. 최초 일주일 동안 200여 기에 이르는 손실을 보았는데 이는 예상을 벗어난 수치였다. <출처: 영국 공군 박물관>

지금까지 Bf 109는 폭격기보다 조금 먼저 달려가 영국 공군 전투기와 공중전을 펼치곤 했는데 이때부터 근접에서 폭격기를 호위하는 방식으로 임무가 변경되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이런 조치가 자신들의 능력을 제한하는 행위라며 못마땅해했지만 OKL 입장에서는 폭격기들이 폭탄을 하나라도 더 목표물에 안전하게 던지고 귀환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사실 이런 정책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잘못된 정보 탓이기도 했다.



내우외환의 영국 공군


재출격 전에 잠시 쉬고 있는 영국 공군 조종사 래인(Brian Lane). 연이은 출격으로 몹시 피곤한 모습이다.

독일은 영국이 보유한 전투기가 200여 기 미만으로 줄어들었다고 판단했으나 실제로는 전투기 생산에 총력을 기울인 덕분에 8월 19일 당시 700여 기를 가동하고 있었다. 때문에 독일이 제대로 정보를 파악했다면 공대공 전투에 좀 더 집중하여 영국 전투기의 제거에 몰입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국의 전투기 전력이 약화된다면 폭격기의 공습이 수월해질 것은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상황은 영국이 불리했다. 가장 큰 문제는 급격히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전투기와 달리 조종사의 양성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쟁 발발 후 많은 베테랑 조종사들을 잃은 데다가 연일 수차례의 출격을 마다하지 않다 보니 남아 있는 조종사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할 정도였다. 영연방 국가와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곳에서 망명한 조종사들의 지원이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도 영국 전투기들은 필사적인 저지에 나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는 피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영국은 파괴된 시설의 신속한 복구에 들어갔지만 공습이 쉬지 않고 이어지자 결국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이 전략을 바꿔 비행장을 최우선 목표로 정하면서 제11전투비행단 소속 기지들의 피해가 심각해지자 작전을 마치고 착륙한 전투기에 대한 재보급이 어려운 경우까지도 벌어졌다.

폭격에 의해 활주로가 파괴되고 시설이 불타고 있는 탱미어(Tangmere) 비행장.

여기에 더해 영국의 자중지란도 있었다. 제11전투비행단이 독일의 공습을 막는 동안 백업을 해야 할 후방의 제12전투비행단이 비협조적으로 나왔던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전공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리맬러리(Trafford Leigh-Mallory) 제12전투비행단장의 공명심도 크게 한몫했다. 하지만 그런 분열상과 상관없이 8월 25일이 되었을 때 영국은 독일의 공격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