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3.3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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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하늘에서의 전쟁

영국 본토 항공전(The Battle of Britain)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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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링의 착각


9월 7일의 런던 공습에서 47기가 격추되는 손실을 입었지만 괴링은 몹시 흡족해했다. 밤새도록 이어진 폭격으로 많은 런던 시민들이 희생되고 도시 곳곳이 폐허로 변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방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독일이 잘해서라기보다 영국의 대응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의 격전으로 전력이 많이 소모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독일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잘못이 컸다.
화재로 인한 연기 속에 뒤덮인 세인트 폴 대성당. 독일의 런던 공습은 공식적으로 1941년 5월 21일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중 1940년 9월에 있었던 대대적인 공습은 영국이 사상 처음 겪은 초유의 위기였다.

첫날의 전과에 고무된 괴링은 런던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영국의 항복을 받아내리라 결심하고 밤낮으로 계속 강타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기지로 복귀한 폭격기들은 폭탄을 다시 장착하고 쉴 새 없이 반복 출격을 강행했다. 그 다음 날도 영국 공군의 대응이 미진하자 괴링은 공군을 완전히 궤멸시켰다는 착각에 빠졌다. 이제 독일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영불 해협을 건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괴링의 희망과 달리 왕궁까지 폭격을 당했음에도 영국인들의 항전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상 초유의 재난 앞에서 두려움에 떨기도 했지만 효과적인 대피와 공습 이후의 즉각적인 복구를 통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런던 대공습이 시작된 최초의 이틀 동안 영국 공군은 독일이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칼을 갈고 있었다.

폭격으로 발생한 화재를 진압 중인 런던의 소방대원들. 어려움 속에서도 영국 국민들은 항전 의지를 잃지 않았다.

런던을 맹폭하는 독일 공군을 막아내기 위해 상대적으로 전력이 뒤진 제12전투비행단이 고군분투하는 사이 제11전투비행단은 재건에 전력을 다했다. 마침내 이틀 후 대부분의 비행장들이 복구 완료되었고 그 사이에 전투기와 조종사의 보충도 이루어졌다. 불타는 런던 시내를 바라보며 묵묵히 전력 증강을 이끌던 다우딩은 이제 독일에게 받은 것을 돌려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회심의 반격


9월 9일, 런던을 향해 출격한 독일 폭격기들은 영불 해협에 들어서자마자 뭔가 다른 점을 느꼈다. 깨끗하게 청소한 줄 알았던 하늘 저 멀리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영국의 전투기들이 보였던 것이다. 독일이 런던에 매달리면서 얻게 된 천금 같은 시간 동안 전력을 회복한 제11전투비행단 소속의 전투기들이었다.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독일 전투기들이 산개했지만 폭격기들이 공격을 피하지는 못했다.
런던 도심에 적기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쳐 놓은 일종의 그물인 조색기구(阻塞氣球, Barrage Balloon). 영국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독일 공군을 저지했다.

대열은 순식간에 흐트러졌고 일부는 격추되어 바다로 추락했다. 간신히 제11전투비행단의 저지선을 돌파해 런던까지 다가간 폭격기들은 이번에는 상공에서 밀집대형으로 포진해 있던 제12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들의 대대적인 영접을 받았다. 호위 거리가 길어지면서 런던 상공에서 체공할 수 있는 시간이 10분 내외에 불과했던 Bf 109들이 기수를 돌려 돌아가자 폭격기들은 하이에나에 둘러싸인 날개 꺾인 독수리 신세였다.

영국 공군의 신나는 사냥이 시작되자 폭격기들은 뿔뿔이 흩어져 폭탄을 아무 곳에나 떨어뜨리고 황급히 도주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들의 퇴로를 제11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들이 막아내기 시작했다.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귀대한 것이 기적일 정도로 많은 폭격기들이 격추되었고, 살아 돌아왔어도 재출격이 어려울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불과 이틀 만에 완전히 뒤바뀐 상황에 독일 공군은 어리둥절해했다.

격추되어 동체 착륙한 He 111 폭격기를 살펴보는 영국 군경. 런던 폭격에 나선 독일 폭격기들은 요격을 피할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이런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조금만 더 타격을 가하면 승리할 것이라 확신한 괴링은 다시 후속 비행대의 출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폭격기 손실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OKL은 9월 11일부로 주간 폭격을 중지했다. 문제는 착오를 깨닫고 이전처럼 영국 전투기 전력의 제거를 다시 실시한 것이 아니라 런던 공습 시간만 야간으로 바꿨다는 것이었다. 이는 커다란 패착이 되었다.



결전을 결심하다


공군의 가장 큰 목적은 지상의 목표를 공격하는 것이고 따라서 폭격기의 역할이 중요하다. 폭격기가 자유롭게 활동하려면 안전하게 제공권이 확보되어야 한다. 독일은 하늘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생각했지만 불과 이틀 만에 착각이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다시 전략을 바꿨어야 하는데, 그동안 런던 폭격을 금지했던 괴링이 전면에 나서면서 런던에만 목을 매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런던 대공습을 상징하는 유명한 사진. 런던 폭격은 승기를 잡고 있던 독일의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독일이 런던에 매몰될수록 영국 공군의 재건은 탄력을 받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독일 공군이 영국 하늘에서 작전을 펼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현재 전해지는 영국 본토 항공전을 기록한 수많은 영상이나 사진들의 대부분은 런던 대공습 당시의 모습을 찍은 것들이다. 이것만 보면 영국의 위기가 심각해 보이지만, 사실 런던이 불타오르던 1940년 9월은 영국이 극적으로 되살아난 전환점이 된 시간이었다.

히틀러는 심복인 괴링이 프랑스까지 가서 작전을 진두지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월 21일로 예정된 바다사자 작전의 실행 여부마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자 불만이 고조되었다. 총통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괴링은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영국 정복의 선봉장은커녕 자칫 세계 최강의 독일 공군을 말아먹은 인물로 낙인찍힐까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괴링은 자타가 공인하는 나치의 2인자였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패하며 점차 히틀러의 신임을 잃게 되었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이에 괴링은 끈질기게 방해하는 영국 전투기 세력의 제거 없이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보고, 모 아니면 도의 심정으로 건곤일척의 작전을 펼칠 것을 지시했다. 명령을 받은 OKL은 영국 전투기들을 모두 불러낼 수 있을 정도의 대대적인 공습을 9월 15일 실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도 런던이 대상이었지만 실제 목표는 영국 전투기들이었고 이들을 잡기 위해 독일은 모든 전투기 전력을 일거에 동원하기로 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의 날


9월 15일 아침이 되자 영불 해협은 런던으로 향하는 독일 공군의 작전기들로 가득 찼다. 500여 대의 폭격기와 620여 대의 전투기로 구성된 독일의 비행대는 이륙하자마자 영국의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다우딩은 제11, 12전투비행단에게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전투기들을 즉각 출격시키도록 조치했다. 이에 따라 당시 영국이 보유한 630여 기의 전투기 중 즉시 가동이 가능한 500여 기가 속속 하늘로 날아올랐다.
He 111 폭격기의 요격 중 피격당해 추락하는 스피트파이어. 독일의 대공습 정보를 파악한 다우딩은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독일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영국의 이런 적극적인 대응은 독일이 진정으로 바라던 바였지만, 사실 영국은 감청을 통해 독일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다우딩은 독일이 모든 전력을 동원한 이때 심각한 타격을 입히면 오히려 영국 본토 항공전의 향방을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독일이 런던 폭격에 정신이 팔려 있는 틈을 타서 강화된 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자 했다.

이렇게 물러섬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간 양측의 비행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육안으로 상대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갔다. 곧바로 양측의 전투기들이 산개하면서 좋은 위치를 잡기 위해 급격히 기동했고 서로를 노리며 발사한 기관총탄의 소음이 상공을 가득 메웠다. 가장 앞장서서 뒤엉킨 것은 이제 서로를 경외할 정도의 라이벌이 된 스피트파이어와 Bf 109였다.

영국 본토 항공전의 날 당시 빅토리아 역 위로 추락하는 KG76 소속 Do 17 폭격기

이들이 난전을 벌이는 틈을 타서 독일의 폭격기들은 런던을 향해 비행을 계속했다. 하지만 허리케인을 비롯한 영국의 2선 급 전투기들이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실전을 거치며 터득한 이런 이원적인 전투기 운용은 어느덧 영국 공군의 확실한 필승 해법이 되었다. 곧바로 수많은 폭격기들이 연기를 뿜으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 본토 항공전의 날(Battle of Britain day)'이라 불리게 되는 격전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