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5월, 동서 양측에서 엄청난 물량을 앞세운 연합군과 소련군의 파상공세에 독일이 항복하면서 유럽에서의 제2차 대전은 막을 내렸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국력만 놓고 보더라도 독일의 승리는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웠다.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와 거의 동시에 전쟁을 치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핸디캡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이들을 상대로 경이적인 싸움을 벌였다. 불과 7주 만에 프랑스를 굴복시켜 4년을 지배했고 영국을 섬 안으로 몰아놓고 연일 위협을 가했다. 괴물 같았던 소련을 사경에 이르기 직전까지 밀어붙였으며, 1944년 6월 이후에는 양면 전쟁이 되어버렸음에도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독일군이 이런 상상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품질 좋은 무기였다. 모든 독일제 무기가 예외 없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성능이 좋았다. 패전은 했어도 기술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10년 만에 독일(서독)이 재무장을 하게 되자 좋은 무기를 신속히 제작해 보유할 수 있었는데, 가장 기초적인 무기인 소총도 마찬가지였다.

제2차 대전 말에 돌격소총(Assault Rifle)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개인화기를 만들어낸 독일은 재무장과 동시에 곧바로 뛰어난 소총을 역사에 등장시켰다. 흔히 AK-47, M16과 더불어 3대 소총으로 꼽히는 헤클러 앤 코흐(Heckler & Koch) G3이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3대 소총의 하나

G3은 흔히 전투소총(Battle Rifle)이라 하는데, 이는 돌격소총처럼 제2차 대전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사실 돌격소총이나 전투소총 모두 자동소총이므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사용하는 총탄의 차이를 들 수 있다. 돌격소총은 StG44의 7.92x33mm 쿠르즈(Kurz)탄, M16을 비롯한 많은 서방 총들이 사용하는 5.56x45mm NATO탄, AK-47의 7.62x39mm탄처럼 기존의 소총탄을 축소시킨 단소탄을 이용한다.

이에 비해 전투소총은 7.62x51mm NATO탄처럼 예전의 볼트액션 소총에서 쓰던 탄을 그대로 사용한다. 따라서 화력이나 사거리는 전투소총이 뛰어나다. 사실 총을 자동화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다만 반동으로 인해 정확도가 떨어지게 되는데, 대개 무게를 충분히 늘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초기 기관총은 혼자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무거웠고, 대표적인 자동소총인 M1918 BAR도 9kg 가까이 될 정도였다.

따라서 단소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휴대하고 작전을 펼칠 수 있을 만큼 무게를 줄인 전투소총은 그만큼 상당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차 대전 후 소련은 과감히 제식 탄을 바꿔 돌격소총 시대로 진입한 반면,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기존 소총탄의 장점인 화력을 쉽게 포기할 수 없어 전투소총 시대를 열었다. G3, FN FAL, M14 등이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전투소총들이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을 거치며 1970년대 이후, 서방의 표준 제식 소총탄이 5.56×45mm NATO탄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대부분의 전투소총들은 서서히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언급한 것처럼 G3은 돌격소총의 양대 산맥인 AK-47, M16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뛰어난 3대 소총으로 언급될 만큼 성능이 좋아 지금도 일부 모델이 여전히 생산되고 있고 개발국인 독일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대량 사용 중이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 소총

제2차 대전 이후 선보인 수많은 총을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하는 제작사가 헤클러 앤 코흐다. 1949년이라는 설립연도에서 알 수 있듯이 여타 유수의 총기사에 비해 역사는 그다지 깊지 않다. 그런데 창립 멤버들 대부분이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전범 기업으로 낙인찍혀 사업 영역이 대폭 축소된 마우저(Mauser) 출신들이어서 기술력은 상당히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 헤클러 앤 코흐는 벨기에의 FN사가 제작한 FAL을 수입해 G1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연방군에 납품했다. 공급량이 늘어나자 라이선스 생산을 하려 했으나 FN이 제안을 거절하자 새로운 소총의 자체 개발에 나섰다. 이때 스페인의 CETME 소총을 기반으로 쿠르즈탄을 사용할 수 있는 LV-50 소총을 먼저 개발했다. 이는 CETME 모델2로 이름이 바뀌어 국경 경비대용 제식 소총 후보로 제출되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CETME 소총은 원래 나치 시대의 독일이 개발했지만 종전으로 인해 양산까지는 이르지 못한 StG45가 원형이다.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경우라 할 수 있다. 바로 그때 독일이 NATO에 가입하면서 독일군 당국은 앞으로 7.62x51mm NATO탄을 사용하는 총기만 이용할 것임을 공표했고 이에 맞춰 CETME 모델2도 NATO탄과 규격이 동일한 CETME M53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이 이루어졌다.

최신 기술을 접목해 명중률을 높이다

여기에 더해 헤클러 앤 코흐는 롤러 지연 블로우백 방식(Roller-delayed blowback)이라는 독특한 기술을 접목했다. 기존 블로우백 방식보다 느리게 노리쇠를 개폐할 수 있도록, 가스의 압력과 분출을 노리쇠에 장착한 롤러를 이용해 조절함으로써 초탄 발사 이후의 명중률을 상당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7.62mm탄의 장점인 명중률과 파괴력은 살리면서도 반동을 상당히 감소시킨 CETME 모델A가 탄생되었다.

CETME 모델A는 1959년 독일연방군용 차기 소총 사업에 참여해 SIG SG510, 아말라이트(Armalite) AR-10 등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승자가 되었으며 당국으로부터 G3이라는 제식명을 부여받았다. 이후 정부의 주선으로 CETME 모델A에 대한 모든 권리를 완전히 이양 받은 헤클러 앤 코흐는 CETME M53탄의 화력이 약하다는 일선의 지적이 계속되자 NATO탄 규격에 맞게 다시 재설계한 G3 모델B를 만들어냈다.

독일제라는 명성에 걸맞게 탄생과 동시에 신뢰성 면에서 좋은 평판을 얻은 G3은 NATO탄을 사용하는 소총 중에서도 가격이 저렴한 편에 속했다. 따라서 많은 나라에서 주력 소총으로 채택하고 라이선스 생산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총기 제작사로 명성을 날린 헤클러 앤 코흐의 신화도 바로 G3과 함께 시작된 것이었다. 이처럼 기술적 기반을 제2차 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 살펴봐야 하는 G3은 한마디로 독일의 혼이 담긴 소총이라 할 수 있다.

전투소총의 자존심을 지키다

개발 시작부터 개량을 거듭하며 성능을 향상시킨 소총답게 G3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변신이 이루어졌다. 나무로 제작된 개머리판을 강화 폴리머로 바꾸는 등 플라스틱 재질을 많이 사용하면서 무게를 줄일 수 있었고, 뛰어난 명중률을 이용한 저격 전용 모델 등 필요할 때마다 목적에 적합한 변형 기종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G3은 파생형이 많은 소총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저격용으로 특화된 G3/SG1 같은 경우는 이후 최고의 저격총이라는 명성을 얻은 PSG-1과 MSG90의 원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정규군 소총으로서 G3이 가진 가장 뛰어난 점은 화력이었다. 5.56x45mm NATO탄을 사용하는 서방의 돌격소총은 AK-47보다 화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소부대 지원용 다목적 기관총과 같은 규격의 탄을 사용하는 G3은 AK-47보다 화력이 훨씬 강력했다.

게다가 분당 600발이라는 연사력도 결코 돌격소총에 뒤지지 않았다. 무게가 상대적으로 더 나갔지만 앞서 언급한 장점들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흠잡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돌격소총 시대의 개막으로 말미암아 구시대 소총으로 취급될 수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소총 역사의 격변기에 살아남아 세계 3대 소총의 명성을 얻은 G3은 전투소총의 자존심이라 할 만하다.

▌제원

탄약 7.62x51mm NATO탄 / 작동방식 롤러 지연 블로우백 / 전장 1,025mm / 중량 4.4kg / 발사속도 분당 600발 / 유효사거리 500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