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에 의한 범죄 사고가 너무 흔하게 발생하여 미국 내에서 점차 규제에 관한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총기협회(NRA)의 위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총기가 하나의 문화로 깊게 정착되어 버린 나라다. 따라서 취미로 수집하는 이들도 있고 호신용으로는 과하다고 생각되는 고성능의 총기도 약간의 절차만 밟으면 쉽게 구입할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군경을 제외하고도 수요가 많다 보니 미국은 세계 최대의 총기 시장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미국의 총기 제작 업자들은 좋은 품질의 총을 계속 만들어 내었다. 미국제 총이 경쟁 국가들의 총에 비해서 압도적일 정도로 뛰어나다고 정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20세기에 벌어진 전쟁에서 미국에서 만든 많은 총기들은 나름대로 좋은 활약을 보여 왔다.

그 중 M1903 스프링필드(M1903 Springfield 이하 M1903) 소총는 20세기 초에 연이어 있었던 거대한 전쟁에서 맹활약한 미군의 제식 소총이다. 제1차 대전에서는 전선의 주역이었고, 새로운 소총이 도입된 이후인 1957년까지 2선급 제식 소총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군함에 탑재되어 기뢰 제거용이나 의장대 소총 등으로 활약하고 있을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미국의 팽창과 함께 등장하다

미국의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는 1823년 의회 연설에서 유럽 열강이 미주 대륙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면 미국도 유럽에서 벌어진 다툼에 뛰어들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겠다는 외교 원칙을 표명하였다. 워싱턴이래 유지해온 고립주의를 더욱 강화한 것 같지만, 사실 미국의 패권 야욕을 드러낸 선언이기도 했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앞마당인 미주 대륙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였던 것이었다.

1898년, 미국은 한때 중남미의 지배자였지만 완전히 물러나지 않고 카리브해 일대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다. 이른바 미서전쟁인데 여기서 미국은 승리를 거두고 쿠바,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며 제국주의 침탈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비록 전쟁은 일방적이라 할 만큼 쉽게 이겼지만 미군은 당시 스페인군이 사용하던 소총에 상당한 곤혹을 치렀다.

스페인군은 흔히 스페인식 마우저(Spanish Mauser)라 불린 마우저 93모델 소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무연화약의 7x57mm탄을 사용한 독일제 볼트액션 소총은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M1892 스프링필드 소총이나 크레그 요르겐센(Krag-Jorgensen) 소총을 완벽히 압도하였다. 아직까지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미국은 그들이 대외 팽창을 지속하려면 이 정도 성능의 소총으로는 부족함이 많다는 점을 여실히 깨달았다.

1903년 미국의 스프링필드 조병창(Springfield Armory)은 당시 가장 뛰어나다는 평판이 자자한 독일의 최신예 소총인 Gew98을 참조하여 새로운 30구경 소총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당시 미국은 독일 마우저사에 300만 달러의 로열티를 지급하였을 만큼 기술 습득에 열심이었다. 이런 개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소총이 바로 M1903인데, 이를 흔히 스프링필드 소총으로 불렀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프링필드 소총은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만든 모든 종류의 소총을 의미한다. 1795년 제작된 부싯돌 점화방식의 머스킷이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만든 최초의 소총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종류의 다양한 소총이 제작되었는데, 그 중 M1903이 최고로 명성을 얻으면서 이후 스프링필드 소총이라고 하면 대개 이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만큼 미국의 총기역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장식한 소총이었다.

단순한 것이 장점

이 무렵 미군의 제식소총탄도 그 동안 사용하던 30-03탄에서 흔히 스프링필드 탄이라 불리는 30-06탄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M1903도 새로운 규격에 맞추어 개발되었고 더불어서 Gew98처럼 5발을 신속히 삽탄할 수 있는 클립형 탄창을 사용하여 효용성을 대폭 높였다. 한마디로 새로운 총탄과 이에 걸맞는 총과 부가장치가 함께 개발된 것이었다. 이렇게 개발이 완료된 M1903은 1907년 본격 양산에 들어가 8만 정이 일선에 공급되었다.

그다지 많은 수량이라 할 수 없지만 제1차 대전 참전 전까지 미 육군의 병력이 불과 22만에 불과하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일선 전투 병력은 모두 M1903을 지급받았다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기존에 육군이 사용하던 크레그 요르겐센 소총은 물론이거니와 해군이나 해병대가 사용하던 1895모델 리(Lee)소총과 1885모델 레밍턴-리(Remington-Lee) 소총도 M1903으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1917년, 그동안의 중립 원칙을 깨고 미국이 제1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종전 때까지 연인원 400여 만의 대군이 동원되었다. 한창 때는 동시에 100만의 미군이 전선에서 독일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을 정도였다. 이때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이 바로 M1903이었다. 영국의 리엔필드나 독일의 Gew98에 비하여 성능이 결코 손색이 없었다.

M1903은 노련한 사수라면 분당 15발 정도를 발사할 수 있지만 노리쇠가 뻑뻑한 편이어서 연사력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확도가 높고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이것은 볼트액션 소총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독일군 저격수들에 대응하기 위해 스코프를 장착하여 저격용으로도 사용하였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후 M1903은 저격용 소총으로 장수하게 되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M1903은 미국 최초의 대규모 해외 원정에서 그 명성을 유감없이 떨쳤지만 참전 1년 만에 전쟁이 끝나자 생산은 곧바로 중단되었다. 이때 80만 정이 전선에 공급되다 보니 재고 물량이 많았고 성능도 좋아 앞으로도 장기간 미군의 주력 소총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컸다. 제2차 대전 발발 당시에 독일, 영국, 소련, 프랑스의 주력 소총이 제1차 당시부터 사용되었던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전망이었다.

그러나 더 좋은 무기에 대한 군부의 열망은 M1903에서 만족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볼트액션 방식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은 느린 발사 속도는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었다. 1930년대 제식화 된 사상 최초의 반자동 소총인 M1 개런드(Garand 이하 M1)는 이러한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 주었다. 크기는 M1903과 비슷하였지만 분당 3배나 많은 총탄을 적에게 퍼부을 수 있는 소총이 등장한 것이었다.

당연히 M1은 미군의 새로운 제식 소총이 되었고 M1903은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에 발발한 제2차 대전은 M1903이 2선으로 퇴장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미군이 유럽과 태평양의 전쟁에 동시에 뛰어들자, M1의 물량이 절대 부족하였기 때문이었다. 생산 공장이 풀가동하며 생산에 들어갔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 부족분을 M1903이 대신하였고 오히려 추가 생산도 이루어졌다.

오히려 예전부터 저격용으로 좋다는 평판을 들었기에 M1903A4처럼 별도의 저격용 모델이 제작되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후 6.25전쟁 이후까지 생산이 이루어지고 베트남전쟁 때까지도 일선에서 사용되었다. 한마디로 20세기 미군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고르게 사용된 대표적 무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미군 의장대용처럼 일부 분야에서 사용 중인 것을 보면 M1903은 가히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표본 같다.

제원

탄약 7.62×63mm 30-06 스프링필드 탄 / 작동방식 노리쇠 후퇴식 / 전장 1,115mm / 중량 3.9kg / 발사속도 분당 15발 / 유효사거리 600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