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국력을 신장시켜 19세기 말부터 적극적인 대외 침략에 나섰다. 그들은 1895년 대만을 식민지로 만든 것을 시작으로 조선과 만주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1937년에는 총부리를 중국으로 향했다. 일본은 서구 열강으로부터 앞선 군사 기술을 도입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능력이 되면 각종 무기를 국산화하는 데도 열성적이었다.

덕분에 제2차대전 발발 직전에 대부분의 무기를 국산화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당시 일본산 무기의 전반적인 성능이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에는 충분하였다. 일본군은 곳곳을 유린하며 중국군을 격파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일선에서 고전을 겪는 일이 잦아졌다.

중국군이 외국에서 도입한 소총이 은폐한 일본군을 공격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였던 반면 일본군의 소총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기존에 보유한 소총의 파괴력이 부족함을 절감한 일본은 새로운 제식 소총 개발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일본군 주력 소총이 바로 99식(九九式) 소총이다. 99식 소총은 제2차대전 종전까지 아시아 태평양 곳곳에서 사용되었다.

대전 초기, 부족했던 화력

중일전쟁 발발 당시까지 일본군의 주력 소총은 1905년 제작된 볼트액션 방식의 38식 보병총이었다. 전반적으로 당시 활약한 여타 소총에 비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6.5×50mm탄을 사용하여 파괴력이 부족하였다. 제1차 대전 전에 등장한 주요 소총 중 이탈리아의 카르카노 정도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7mm가 넘는 탄환을 사용하였다. 숫자상으로 불과 1mm 내외의 차이지만 이 또한 파괴력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였다.

38식 보병총도 유효 사거리 내에서는 대인살상용으로 충분하였지만 전투는 반드시 노출된 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고는 했다. 반면 중국은 7.92mm 구경의 마우저탄을 사용하는 Gew98, Kar98k를 도입하여 소부대간 전투에서 화력의 우위를 보인 경우가 있었다. 중국군은 은폐물 뒤에 숨은 일본군을 사살할 수 있었지만 일본군은 그러하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이처럼 독일제와 일본제 총의 대결에서 38식은 절대 열세였다. 중국은 유럽의 여러 나라로부터 무기를 도입하거나 카피 생산하여 사용하였는데 특히 독일이 주요 무기 공급국이었다. 이후 독일과 일본이 동맹국이 되면서 지원이 중단되었지만 한때는 무기뿐만 아니라 바이마르공화국의 군부수장이었던 폰 젝트(Hans von Seeckt)같은 인물을 파견하여 도와주었을 정도로 긴밀한 관계였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99식 소총

이처럼 38식 보병총의 단점이 노출되어 새로운 후속 소총의 개발에 착수했지만 중국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중이었으므로 그다지 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1939년 소련 극동군과 일본 관동군 사이에서 벌어진 노몽한 전투(Battles of Khalkhin Gol)는 일본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기갑장비도 아니고 단지 차량에 탑승하여 돌격해온 소련군을 38식 보병총으로는 저지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노몽한 전투의 참패 이후, 최소한 차량 정도는 격파할 수 있는 소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일본은 개발을 서두르게 된다. 가늠쇠, 가늠자를 개량하여 명중률을 높이고 휴대하기 편리하도록 크기를 줄여야 한다는 등의 부수적인 대책이 나왔지만, 핵심은 새로운 7.7×58mm 탄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92식 중기관총과 함께 개발된 7.7mm 탄이 파괴력은 좋지만 소총에서 사용하면 격발 시 반동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총의 크기를 크게 만들어야 했는데 사실 기존 38식 보병총도 일본인 체형에는 큰 편이어서 이는 상당한 난제였다. 고심 끝에 크기는 동일하지만 화약의 양을 줄여 폭발력을 감소시킨 별도의 소총용 탄환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일사천리로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경험과 우여곡절 끝에 1939년에 99식 소총이 탄생하였다. 프레스로 대량생산할 수 있었지만 프레스기가 부족하여 많은 수가 절삭 가공방식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최초에는 38식과 크기가 같았는데 1941년부터 대량 제작에 들어간 모델은 길이를 단축하고 그에 따라 무게도 줄이게 됐다. 이를 전자와 구별하여 단소총(短小銃)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99식 소총은 이것을 의미한다. 전쟁 말기에 물자 부족으로 품질이 저하되어서 그렇지 제대로 만들어진 99식은 성능상 제2차 대전 당시에 맹활약한 볼트액션 소총인 M1903, 리엔필드, 모신나강, Kar98k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호평과 악평 사이

화력이 강화되었음에도 길이가 15cm 정도 줄고 반동 제어도 어느 정도 성공하자 내친 김에 개발자들은 미국의 M1이나 소련의 SVT-40처럼 반자동 사격이 가능한 소총을 연구하였다. 그런데 경직된 사고 방식을 보여준 일본 군부답게 이런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접하고는 ‘반자동화를 요구하는 자는 근성이 부족하며, 이로 인하여 탄환 소비가 많아지면 보급에 문제가 많다’며 개발을 막았다.

하지만 이것도 일왕의 하사품이라며 총신에 일일이 왕실의 상징인 국화를 수작업으로 새겨 넣어 생산성을 떨어뜨렸던 행위에 비하면 약과라 할 수 있다. 1941년 말에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며 전쟁의 크기를 확대시켰다. 무기에 대한 수요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이를 제때 공급하기에도 벅차게 되었다. 결국 일본군이 밀리고 밀린 후에야 국화 문양 음각 같은 한심한 행위를 중단할 수 있었다.

99식 소총은 사격 중 불순물이 가득 찬 총열 때문에 폭발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여 흔히 품질이 조악하다고 인식하지만 사실 그것은 편견이다. 전쟁 말기에 들어서면서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철강재의 품질도 떨어졌고 비전문 인력이 생산에 투입되어 불량품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미국에서 민간용으로 판매되는 99식 소총은 맹수 사냥에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처럼 제대로 만든 99식 소총은 나름대로 호평을 받고 있다.

99식 소총은 약 350만 정 정도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패전으로 말미암아 정확한 생산량은 파악되지 않는다. 추정치로는 38식 보병총에 이어 2위 생산량인데, 짧은 생산 기간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양이다. 제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참전한 곳이면 예외 없이 사용되었고 중국처럼 노획한 99식을 애용하였던 사례도 많았다.

한국과의 악연

99식 소총은 일본 군부가 직접 운용한 9개의 조병창에서 생산되었는데 그 중 한 곳이 인천의 부평에 있었다. 지금도 미군 부대가 주둔 중이기도 한 옛 부평조병창은 태평양 전쟁 말기에 99식 소총을 비롯한 각종 총포를 만들기 위해 공출이란 명목으로 한반도는 물론 저 멀리 중국 내륙에서 약탈한 각종 철강재가 몰려들던 곳이었다. 철로, 교각, 사찰의 범종은 물론 각종 그릇이나 수저를 포함한 가재도구까지 약탈되어 이곳에서 무기가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조달된 재료로 만든 무기가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기란 애당초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허황된 신념에 매몰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의미 없는 전쟁을 중단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우리는 더욱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일제의 침략 도구였던 99식 소총에는 이처럼 우리의 피와 눈물도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아픈 기억인 99식 소총은 해방 후 우리 군경이 최초로 보유한 화기이기도 했다.

미국은 일본 점령 후 노획한 일부 99식 소총을 미군이 사용하는 .30-06 스프링필드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여 건국 전후의 국군과 경찰에게 보급했다. 이후 1948년 국군이 창설되고 M1과 M1 카빈이 공급되면서 상당수가 퇴역하였는데 전쟁이 발발하여 무기가 부족해지자 다시 사용되었다. 그런데 침략에 나선 북한군도 상황이 비슷했다. 해방 후 건너 온 팔로군 출신의 북한군 상당수가 노획한 99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억압하였던 일제의 총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겨누는 아이러니를 연출하였다. 전쟁 중 같은 무기로 교전을 벌이는 행위가 그리 낯선 것은 아니지만 만들어지고 사용된 전후 사정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아픔일 수밖에 없다. 쓰라린 기억이지만 이처럼 99식 소총은 우리 현대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총이다.

제원 (단소총 기준)

탄약:7.7×58mm 아리사카탄 / 작동방식:볼트액션 / 전장:1,120mm / 중량:3.7kg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