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5대 상임 이사국인 프랑스는 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고 있는 군사강국이다. 전투기처럼 개발에 비용이 많이 드는 무기를 예로 든다면 라이벌인 영국은 해외 도입이나 국제 협력 사업을 통해 획득하는데 비하여 프랑스는 고집스러울 만큼 자국산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그만큼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가 상당히 높은 나라지만 의외로 프랑스의 군사적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많다.

프랑스에도 무기 역사를 선도한 걸작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나폴레옹 이후에 있었던 전쟁에서 제대로 이겨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불전쟁에서 패하였고 제1차 대전 때는 연합국의 도움을 받아 독일을 간신히 격퇴할 수 있었다. 정점은 제2차 대전 당시에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불과 7주 만에 항복한 것이었다. 이처럼 일련의 전쟁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말미암아 약체 이미지가 커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프랑스가 약해서라기보다 연이어 굴욕을 안겨준 독일이 더 셌기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사실 20세기 전반기에 두 차례나 세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고 갔던 독일도 항상 대결을 껄끄러워 했던 상대가 프랑스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패배로 말미암아 무기사에서 프랑스 제는 그다지 이슈가 되지 못한다. 승자의 무기가 각광받고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프랑스 무기의 성능이 터무니없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무기의 역사를 선도한 걸작들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 등장하였을 때의 성능만 믿고 여기에 너무 안주하다가 후속 작 개발을 등한시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무기 개발 당시의 참신함은 처음에만 빛을 발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갔고 그것은 결국 실전에서 고전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일선 병사의 기본 화기인 소총도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최초의 무연(無煙)화약 소총으로, 이후 수많은 볼트액션 소총들의 선구자가 되었던 레벨 소총(Lebel modèle 1886)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볼트액션 소총 시대의 개막

멀리 있는 적을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게 만든 화약은 전쟁의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꾼 결정적인 수단이었다. 하지만 화승총에서 알 수 있듯이 화약은 사용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고 당연히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 왔다. 이런 와중에 1824년에 프로이센에서 탄생한 드라이제(Dreyse) 소총은 총기의 역사를 바꾸었다. 흔히 바늘 총(Needle Gun)으로도 많이 알려진 이 소총은 바로 최초의 볼트액션 소총이었다.

지금은 볼트액션 소총을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기지만, 20세기 중반까지 약 100여 년간 전장의 주역이었고 지금도 저격 총 등으로 일부 사용 중이다. 드라이제 소총 등장이전에 사용하던 소총은 사격 후 사수가 일어나 총신에 화약과 탄환을 집어넣고 꼬질대로 쑤신 후 사격하는 전장식이었다. 따라서 이를 들고 싸우는 군대와 엄폐물 뒤에 엎드려서 장전한 후 곧바로 발사하는 소총을 보유한 군대의 대결 결과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1867년 더욱 강력한 프랑스의 샤스포(Chassepot) 소총이 등장하면서 드라이제 소총의 독점적 위상도 사라졌다. 1870년 보불전쟁에서 독일이 이기기는 했지만 보병 부대간 개별 전투들의 내용을 놓고 본다면 양측이 거의 대등하였다. 즉, 먼저 보고 먼저 쏘는 측이 유리하였고 거기에 더해 나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으면 더욱 좋았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을 때 프랑스는 총기의 역사를 바꾼 새로운 재료를 만들어 내었다.

1884년 프랑스의 화학자인 비에유(Paul Vieille)는 노벨이 만든 니트로-셀룰로스를 기반으로 무연화약을 개발했다. 이는 이전에 사용하던 흑색화약 보다 약 3배의 위력을 낼 수 있어 더 멀리 더 강하게 탄환을 날릴 수 있었다. 재와 그을음이 생기지 않았고 연기가 적게 발생하여 다음 사격 시에 조준이 원활하고 상대에게 위치를 노출시키지도 않았다. 프랑스는 이 새로운 화약을 이용한 획기적인 소총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빠른 개발과 경쟁국의 도전

당시 개발 위원회의 책임자로 육군 사격학교(Ecole Normale de Tir)장이었던 레벨(Nicolas Lebel) 중령이 임명되었다. 그는 초임 장교 당시 보불전쟁에 참전하였다가 포로가 되었던 굴욕을 잊지 못해 앞으로 독일을 월등히 압도할 새로운 총기가 필요함을 수시로 역설하고 다녔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는 무연화약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면 당연히 이에 걸 맞는 새로운 탄이 먼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레벨은 병기국의 드살레(Desaleux) 대위가 개발하였던 탄피를 이용하여 최초의 무연화약 탄인 8mm 레벨 탄을 개발하였다. 이후 등장한 여러 종류의 탄에 비하면 구식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병목 형태에 림드(Rimmed) 구조였지만, 레벨 탄은 제2차 대전 당시까지도 프랑스군의 제식 탄환으로 사용되었다. 동시에 레벨은 샤텔레로(Chatellerault) 조병창에 지시하여 흑색화약을 사용하던 기존 소총을 레벨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1886년 최초로 무연화약을 사용하는 레벨 소총이 탄생하였다. 각종 시험 결과 흑색화약 탄을 사용하는 독일과 영국의 기존 소총들에 비해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였고 이에 만족한 프랑스군 당국은 대대적으로 보급에 나섰다. 한마디로 레벨 탄과 레벨 소총은 프랑스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기존 무기를 개량한 방식은 개발 기간을 앞당겼지만 예전 소총들이 가졌던 일부 문제점들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이는 레벨 소총이 후속하여 탄생한 경쟁 소총들에 의해 곧바로 열세를 보이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드라이제 소총에 대항하여 더욱 강력한 샤스포 소총을 개발하였던 과거의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대처는 안이하였다고 볼 수 있다. 무연화약을 이용하겠다는 발상은 훌륭했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한 혁신이 아니라 단지 개선을 통하다 보니 과거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치명적 단점

레벨 소총의 등장은 경쟁국들에게 위기로 다가왔고 앞 다투어 무연화약 소총을 개발하도록 촉진시켰다. 당연히 나중에 개발에 나선 경쟁국들은 레벨 탄과 레벨 소총보다 좋은 성능을 발휘하는 신제품을 만드는데 역점을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과 영국도 무연화약 탄을 개발하였는데, 오히려 위력이 레벨 탄을 훨씬 능가하였다. 특히 독일이 제작한 7.92mm 마우저(Mauser) 탄은 지금까지도 가장 강력한 소총 탄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개발 된 신형 탄환을 사용하는 독일의 Gew98같은 경쟁 소총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레벨 소총은 어느덧 그저 그런 소총으로 취급 받게 되었다. 마치 Me 262가 제트전투기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로 여겨지지만 순식간 과거의 유물로 밀려난 것처럼 레벨 소총도 총기 역사에 커다란 한 획을 그었지만 최강이라는 명성을 유지한 기간은 극히 짧았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급탄 방식도 문제가 많았다. 레벨 소총은 총열아래에 부착 된 튜브(Tube)에 탄환을 일렬로 장전하는 튜브 식 탄창을 사용하였다. 총의 높이를 낮출 수 있었지만 이는 그다지 장점이 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사격 시나 외부의 충격이 가해 질 경우 종종 탄두의 뾰족한 부분이 앞 총알의 뇌관을 가격하여 폭발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 방지하려 끝이 뭉툭한 탄환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 만큼 탄두의 위력이 감소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재장전이었다. 레벨 소총도 한 번에 8발의 탄환을 장전할 수 있었지만 튜브에 탄환을 일일이 일렬로 밀어서 넣어 주어야 했다. 레벨 소총 이후 등장한 대부분의 볼트액션 소총들은 클립으로 삽탄하는 간편한 방식을 택하였으므로 이러한 차이는 교전 중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이는 제1차 대전 당시 소부대간 교전에서 프랑스군의 피해가 컸던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망각한 교훈

결국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가자 프랑스는 레벨 소총의 재장전 방식이 상당히 심각한 문제 임을 깨닫고 1916년에 클립 식으로 삽탄할 수 있는 베르티에(Berthier) Mle1916 소총을 개발하여 전선에 보급하였다. 이것은 1907년에 레벨 소총을 기반으로 식민지 주둔군용으로 개발되었던 베르티에(Berthier) Mle1907 소총을 다시 개량한 형태였다. 그만큼 너무나 많은 피를 소모한 후에야 프랑스는 제대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책을 고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임시방편 적인 성격이 강했다. 레벨 탄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기본 구조가 흑색화약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제1차 대전 당시에는 경쟁국의 소총 탄에 비해 화력도 약하였고 자동화기에 사용하기도 불편하였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하여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전쟁을 치르기에만 급급했다. 그런데 문제는 고전 끝에 승리하면서 프랑스는 이때 얻은 교훈을 다시 망각하였다는 점이다.

샤스포 소총이나 레벨 소총을 처음 만들었을 당시의 참신했던 사고 방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결국 제2차 대전이 벌어졌을 때 프랑스는 레벨 소총, 베르티에 Mle1907 소총처럼 여전히 레벨 탄을 사용하는 예전의 소총으로 더욱 강력해진 독일을 다시 상대해야 했다. 독일은 Gew98을 개량한 Kar98k으로 전력을 강화하였지만 프랑스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어쩌면 패배는 당연하였다.

앞에서 알아 본 것처럼 레벨 소총은 무기사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은 기념비적 소총이었지만 단지 그것으로만 기억 될 뿐이다. 정작 가장 필요로 했을 때 기대에 걸 맞는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그에 비한다면 19세기말부터 가장 큰 경쟁 상대였던 독일은 가장 필요했던 무기를 적시에 만들어 사용하였다. 어쩌면 군사강국이면서도 프랑스군이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하였던 것은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제원

탄약 8×50mmR (레벨 탄) / 작동방식 볼트액션 / 전장 1,300mm / 중량 4.41kg / 발사속도 분당 10발 / 유효사거리 400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