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이르러 겨우 통일을 이룬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제국의 후예라 자칭하며 거대한 20세기의 전쟁들에 얼굴을 들이밀었지만 그다지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하였다. 분명히 제1,2차대전의 주요 참전국이었지만, 전쟁사에 남긴 그들의 기록을 보면 “패배, 패배 그리고 패배”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한심한 전과만 남겼다. 구석구석 살펴보면 용감히 싸워 승리한 기록도 일부 있지만 로마 제국의 후예로 자부하기에는 낯간지러울 정도다.

1차대전에서는 승전국의 위치에 섰지만 연합국 승리에 그다지 기여한 바가 없다며 전후 논공행상 과정에서 찬밥 신세가 되었다. 사실 이탈리아는 65만여명의 군인을 포함하여 총 120여만명이 전사하였는데, 이는 주요 참전국인 영국의 전사자가 약 100여만명이었던 점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피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 그다지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되었고, 결국 이런 홀대는 파시스트의 출현을 촉진시켰다.

2차대전에서는 그야말로 경이적인 패배의 연속이어서 함께 작전을 펼친 롬멜(Erwin Rommel) 같은 경우는 면전에서 대놓고 이탈리아군을 무시했을 정도다. 이처럼 당대 역사에 빠짐없이 얼굴을 들이미는 주요 국가였으면서도 이탈리아군이 한심한 기록만 남기게 된 데는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 무기들도 크게 한 몫 했다. 열강이라는 자부심이 있어 많은 무기들을 국산화하고 일부는 품질이 좋기도 했지만, 경쟁국과 비교한다면 대체적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포병, 기갑, 항공 장비는 물론 가장 기본 무기인 소총도 성능이 미흡하였다. 양차대전 당시에 이탈리아군은 볼트액션 방식의 이른바 ‘카르카노(Carcano)’ 소총을 기본 제식 화기로 사용했는데, 이 또한 한마디로 그저 그렇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상당히 성능이 부족하였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골동품 취급을 받던 1963년에 카르카노는 일약 역사를 바꾼 소총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바로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암살한 저격총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이다.

새로운 통일국가가 요구한 소총

역사적으로 20세기 전반은 볼트액션 소총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다. 물론 기관총, 기관단총, 반자동소총처럼 다양한 종류의 화기가 등장하여 나름대로 활약을 펼쳤지만, 2차대전 때까지 병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총은 볼트액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제식화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카르카노도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소총이었다.

1870년에서야 역사에 등장한 이탈리아 왕국은 로마 제국 붕괴 이후 1,400여 년 만에 이탈리아 반도에 등장한 통일국가였다. 당연히 새로운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군비 증강도 포함되어 있었다. 통일을 이룬 바로 그 해에 이탈리아는 스위스의 베테를리(Vetterli) M1869 소총을 기반으로 한 베테를리-비탈리(Vetterli-Vitali) M1870 소총을 제작하여 자국군을 무장시켰다.

그런데 M1870은 무게가 4.6킬로그램에 10.35×47mm 탄을 사용하여 휴대와 사용이 불편했다. 일선에서 새로운 소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되자 1890년 토리노 조병창 소속의 총기 엔지니어 살바토레 카르카노(Salvatore Carcano)는 새로운 볼트액션 식 소총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이 바로 카르카노 M91인데, 6.5×52mm탄을 사용하여 무게가 대폭 감소했다. 카르카노의 가장 큰 특징은 긴 전장에도 불구하고 무게가 가볍다는 점인데, 총탄을 적재하지 않으면 3킬로그램도 되지 않았다.

 

승전국이 되어 망각한 단점

이후 등장하는 모든 카르카노 모델은 M91을 기반으로 한다. 1895년 제1차 에티오피아 전쟁을 시작으로 2차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이탈리아가 관여한 모든 전쟁에서 사용되었고 생산도 그때까지 이루어졌다. 기록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약 300여 만 정 정도가 생산되었지만 장기간에 걸쳐 만들어지고 개량되면서 큰 전쟁에서 꾸준히 사용된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 많은 수량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 어쩌면 1차대전에서 이탈리아가 승전국이 되는 바람에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던 카르카노가 장수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이탈리아는 전투에서 많은 패배를 맛보았지만 어부지리로 승전국의 지위를 획득하자 그 동안 총기로 인하여 겪었던 불편을 망각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새로운 소총의 개발을 게을리했다. 덕분에 카르카노 소총은 이탈리아군의 표준 제식화기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반면 이탈리아 외에는 카르카노를 제식화한 나라가 없었다. 이것은 이탈리아 제 무기의 한계를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지표라 하겠다. 일부 자료에는 2차대전 당시에 독일, 핀란드, 중국, 일본, 알바니아 등에서 사용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일부러 제식화하여 사용한 것이 아니었고 사용한 물량도 그다지 많지 않아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결론적으로 품질이 나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족한 기술력으로 인한 한계

카르카노 소총의 가장 큰 문제는 원성이 자자할 만큼 노리쇠가 뻑뻑하여 사격이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노리쇠의 후퇴전진이 쉽지 않아 긴급 상황에서 사격을 할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반드시 필요할 때 총알을 발사할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총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이는 절삭가공 능력을 비롯한 이탈리아의 전반적인 기계공업 수준이 낮아서 발생한 문제였다.

볼트액션 소총의 연사력은 사수의 능력에 크게 좌우되지만 총 자체, 특히 노리쇠가 사용하기 불편할 정도로 문제가 많다면 사수의 능력은 그 다음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고질적인 노리쇠 문제는 1938년 M38이 등장하면서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총이 단순한 무기 같아도 생각보다 좋은 총을 만들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퍼진 소총으로 유명한 AK-47도 어디서 제작하였는지에 따라 성능의 차이가 많이 날 정도다.

이와 더불어 화력 부족도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6.5mm 구경 탄을 사용하여 총의 무게를 감소시킬 수 있었지만 살상 능력은 상당히 부족했다. 더불어 탄두의 끝 모양이 둥글고 무뎌서 위력도 약했다. 동일한 시기에 대부분 국가들의 소총은 마우저(Mauser) 탄이나 스프링필드(Springfield) 탄처럼 파괴력이 강한 구경 7mm 이상의 탄을 사용했다.

M38 중 일부는 탄두가 뾰족한 7.35mm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되었지만 화력이 부족한 것은 매한가지였는데, 장약의 연소 압력이 기존 6.5mm 탄과 같았기 때문이다. 발사 압력은 동일한데 탄두가 커지다 보니 당연히 발사속도가 낮아지고 사거리도 단축된 것이다. 결국 이탈리아는 탄두의 앞쪽 끝 부분을 알루미늄으로 제작하여 탄환의 중량을 6.5mm 탄과 동일하게 개량하는 것으로 이 간신히 문제를 해결했다.

미스터리로 남은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형 M38의 생산량은 적었고 2차대전 내내 기존 M91 모델이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카르카노는 여타 주력 소총에 비해 가벼워서 휴대가 용이하고 조준이 편리한 장점도 있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보다 많은 여러 단점으로 말미암아 평판이 좋지 않았다. 특히 M38에 와서 고질적인 노리쇠의 문제점을 해결했음에도 여타 소총에 비한다면 여전히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케네디 저격사건에서 가장 미스터리 한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저격범 오스왈드(Lee H. Oswald)는 6.5mm 구경의 M38을 사용했는데, 2초 동안 3발을 발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비록 M38이 노리쇠를 개선한 개량형이지만, 움직이는 표적물을 조준하여 그 시간에 연속으로 정확히 타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제2의 저격범, 음모론 같은 주장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패전의 대명사로 꼽히던 이탈리아군이 사용한 그저 그런 2류 소총이던 카르카노는 일약 유명세를 얻었다. 사실 좋은 성능의 조준경(Scope Sight)을 장착한 왠만한 볼트액션 소총은 저격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유효사거리 내에서 뛰어난 사수가 사용하면 살상에 아무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르카노는 성능이 아무리 나쁜 총이라도 살상의 도구로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은연 중 망각하고 있던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우쳐 준 증거일지도 모른다.

제원(M38 기준)
탄약 6.5×52mm외 / 급탄 6발 클립 / 작동방식 볼트액션 / 전장 1,015mm / 중량 3.4kg 발사속도 분당 10발 / 유효사거리 600m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