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1.0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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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엘레판트 구축전차

강했지만 아쉬웠던 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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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병기박물관에 전시 중인 엘레판트. 현존하는 2대 중 하나다. <출처: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Sd. Kfz. 184 엘레판트(Elefant)는 제2차 대전 중반기 이후 독일군이 사용한 중구축(重驅逐)전차다. 대단히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거대한 제2차 대전에서 의미 있는 활약상을 남기기에는 생산량이 너무 적었다. 하지만 운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만큼 기계적 안정성이 나빴던 점이 더 큰 문제였다. 한마디로 전투 외적인 부분 때문에 최고라고 평가를 받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었던 대표적 기갑 장비라 할 수 있다.

엘레판트의 탄생은 너무나 유명한 6호 전차 티거(Tiger) 중전차와 상당히 관련이 많다. 제1차 대전 패전 후 무기 개발에 제한을 받던 독일은 1935년 히틀러가 재무장을 선언한 후부터 본격적인 전차 개발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전차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1, 2호 전차의 개발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은 추후 기갑부대를 15톤 급의 3호 전차, 20톤 급의 4호 전차 그리고 30톤 급의 중전차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4호 전차는 독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전차였으나 중전차와의 교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중전차 개발이 시작되었다. <출처: (cc) Mark Pellegrini at Wikimedia.org >

이미 개발이 완료된 3호, 4호 전차는 제2차 대전 발발 직후에 나름대로 활약을 펼쳤으나 중전차와의 교전에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1941년 시작된 독소전쟁에서 열등하다고 얕잡아 보던 소련 전차와의 대결에서 곤혹을 치렀다. 이에 한창 개발 중이던 30톤 급 중전차가 전선을 주도하기에는 이미 시대에 뒤졌다고 보고 1941년 말부터 장갑과 화력이 보다 강화된 형태로 개발 방향을 변경했다.

이때 경쟁을 벌인 후보는 헨셀(Henschel)의 VK45.01(H)와 포르쉐(Porsche)의 VK45.01(P)였다. 1942년 4월 20일, 생일을 맞은 히틀러에게 공개된 후보작 모두는 56구경장 8.8cm KwK36 주포를 장착한 동일한 포탑을 썼으므로 차체의 성능에 의해 우열이 판가름 나게 되었다. 실험 결과 VK45.01(H)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어 티거라는 명칭으로 양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탈락한 VK45.01(P)는 차체를 추가로 90량이나 생산해 놓은 상태였다.

포르쉐가 제작한 VK45.01(H). 헨셀의 VK45.01(H)와 차기 중전차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으나 패했다. <출처: Public Domain >

왜 포르쉐가 최종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정도로 많은 차체를 생산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당국의 허락을 받았고 헨셀도 같은 시기에 100량의 차체를 제작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양산형이 선정된 후 하루라도 빨리 신형 전차를 일선에 공급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포르쉐는 알케트(Alkett)의 도움을 받아 잉여로 남게 된 VK45.01(P) 차체를 기반으로 하는 구축전차의 개발에 착수했다.

강력한 71구경장 8.8cm PaK43/2 대전차포를 장착하고 200mm의 전면 장갑을 둘러 방어력을 강화하면서 무게가 티거보다 10톤이나 무거운 65톤에 이르렀다. 새로운 구축전차는 개발을 주도한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이름을 따서 페르디난트(Ferdinand)라고 명명되었고 1943년 5월 제653, 제654 중구축전차대대에 배치된 후 그해 7월에 벌어진 쿠르스크 전투에 처음 투입되어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쿠르스크 전투 당시 격파된 페르디난트를 살펴보는 소련군. <출처: Public Domain >
비록 툭하면 고장이 발생해 애를 먹였지만 인상적인 전과를 올렸기에 전투 후 생존한 50대는 모두 개수가 결정되었다. 이로 인해 무게가 5톤이 늘어나 총중량이 70톤에 이르렀고 1944년 2월 27일 히틀러 제안에 따라 엘레판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엘레판트는 독일이 패망하는 순간까지 전선 곳곳에서 활약하며 소모되어 갔고 현재 복원을 거친 2대가 러시아 쿠빙카 박물관과 미 육군 병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엘레판트 구축전차의 소개영상 <출처: 유튜브>

특징
엘레판트 구축전차의 특징 <출처: 유튜브 / The Tank Museum>
티거 2와 야크트판터 등에도 장착된 71구경장 8.8cm 주포는 당대 최강이었다. 텅스텐 탄두를 사용할 경우 사거리 2,000m에서 153mm 장갑을 관통할 수 있을 정도인데, 한마디로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모든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고정 포탑이어서 작동 범위가 제한을 받고 차체를 돌려 조준을 하므로 근접전에서는 불리한 점이 많았다. 따라서 원거리에서 적 전차를 요격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
엘레판트에 장착된 71구경장 8.8cm PaK43 주포는 당대 최강의 대전차포였다. <출처: (cc) Mark Pellegrini at Wikimedia.org >

최초 무게가 65톤에 이를 정도의 중장갑 덕분에 방어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해서 같은 주포를 장착한 나스호른(Nashorn)과 달리 페르디난트에는 보조 화기를 장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전에서 예상치 못한 적 보병 부대의 교전 등을 경험한 후 엘레판트에 와서는 전방에 볼 마운트를 만들고 MG34 기관총을 장착했다. 이처럼 엘레판트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당대 최고의 수준이었다. 문제는 구동 계통이었다.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인해 독일의 중전차들은 엔진과 변속기에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 엄청난 무게 때문에 265마력 엔진을 2기나 장착했지만 동력을 감당하기에 변속기의 성능이 너무 미약했다. 이에 포르쉐는 가감속이 원활하도록 엔진으로 발전기를 돌려 얻는 전기로 구동하는 모터로 작동하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했다. 이론상으로는 훌륭했지만 당시 기술로 이를 완벽하게 구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엘레판트의 궤도 모습. 구동 계통의 고질적인 문제점 때문에 비전투 손실이 더 많을 정도로 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출처: (cc) Сайга20К at Wikimedia.org >
동력 계통이 차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그만큼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툭하면 고장이 발생했다. 도로에서 최고 속도가 시속 30km에 불과한 데다 연비도 최악이었고 거친 야지에서 모터가 타버리기 일쑤였다. 부품의 소모도 심하고 정비도 불편해서 쿠르스크 전투 당시 가동률이 50퍼센트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처럼 엘레판트는 비전투 손실이 월등해서 그 뛰어난 공격력을 충분히 살리는데 부족한 점이 많았다.
엘레판트의 정면 모습. <출처: (cc) Scott Dunham at Wikimedia.org >


운용 현황

최초 실전인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된 89대 중 39대가 손실되었다. 소련군의 포격에 직격 당해 격파된 것을 포함해 19대가 전투로 손실을 입었던 반면 4대가 모터 화재로 손실되거나 가동이 불가능해서 노획을 막기 위해 자폭한 사례도 흔할 만큼  비전투 손실이 많았다. 전투 후 보존된 것 중 가동할 수 있는 것은 25대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전투 중에도 계속 수리를 받아야 했다. 가히 실망스러운 수준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이렇게 저조한 가동률에도 불구하고 전과는 상당했다. 전투, 비전투 손실 합쳐 39대를 잃었지만 무려 소련군 전차 502대, 대전차포 20문. 야포 100문을 격파했다. 이후 잔량 모두가 엘레판트로 개수된 후 1개 중대가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동부전선에서 활약했다. 1945년 4월 하순에 베를린 근교의 초센에서 있었던 전투에 4대가 투입된 것이 마지막 교전 사례로 기록되었다.

1944년 이탈리아 전선에서 격파된 엘레판트 <출처: German Federal Archives >


변형 및 파생형

베르게판처 티거(Bergepanzer Tiger) : 구난 회수차

람판처 티거(Rammpanzer Tiger) : 장애물 돌파용 시험 차량



제원

러시아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엘레판트 <출처: (cc) Сайга20К at Wikimedia.org >


- 생산업체: Porsche GmbH
- 도입 연도: 1943년 
- 중량: 65톤(페르디난트), 70톤(엘레판트)
- 전장: 8.14m
- 전폭: 3.38m
- 전고: 2.97m 
- 장갑: 200mm(전면)
- 무장: Q8.8cm Pak 43/2 L/71 대전차포×1
        7.92mm MG34 기관총×1(엘레판트) 
- 엔진: 마이바흐 HL 120 petrol 600PS×2, 592마력(442kW)
- 추력 대비 중량: 9.2마력/톤
- 서스펜션: 토숀바
- 항속거리: 150km(도로), 90km(야지) 
- 최고 속도: 30km/h
- 양산 대수: 실험 작 2대 포함 91대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