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격소총이 보병의 기본 제식화기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일선 소부대는 SAW(Squad Automatic Weapon, 분대 지원 화기)로 통칭하는 기관총을 장비하고 있다. 자동화된 소총만으로는 기관총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기관총은 바로 옆에서 화력을 지원해주는 듬직한 존재지만 정작 이를 운용하는 담당 병사의 입장에서는 무거운 무기다.

총기 개발자들은 예외 없이 가벼운 총을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사격 시 발생하는 반동을 흡수하려면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무게가 있어야 한다. 특히 연사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총의 경우는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 맥심(Maxim) 같은 초기의 기관총들은 중량이 30kg에 이를 만큼 무거워 4명 이상이 팀 단위로 운용했고 주로 진지 방어용으로 사용했다.

제1차 대전 당시의 서부전선은 기관총이 최고의 살상 병기임을 입증한 전장이었다. 볼트액션 소총으로 무장한 공격군이 기관총을 난사하는 방어군 진지까지 다가가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런 공격군의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방안 중 하나가 대용량 탄창을 사용하는 경(輕)기관총이었다. 쇼샤(Chauchat), M1909 호치키스(Hotchkiss), M1918 BAR 등이 당시에 등장한 대표적 경기관총, 혹은 그런 역할을 담당한 자동소총이었다.

정확도나 연사력이 중(重)기관총에 비해 떨어지긴 했지만 병사 혼자 사용하는 경기관총이 이때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1880년대에 만들어진 맥심이 제1차 대전을 통해 명성을 떨쳤듯이 사실 경기관총도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무기였다. 그중 마드센(Madsen) 경기관총은 비록 후속 경쟁작들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무기사에 새로운 장을 연 진정한 개척자로 인정받고 있다.

약소국의 고민

총을 연사하는 기술은 19세기 말에 이미 확보되었다. 이 기술을 개인용 화기에 적용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게 때문이었다. 당시 군의 주력이 보병이나 기병이다 보니 휴대하기 힘든 무거운 총은 일단 채택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기에 기관총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은 진지나 요새처럼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렇다고 위력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888년 시에라리온에서 탄압에 항거하며 요새로 달려들던 원주민을 영국의 식민지 점령군이 맥심으로 무차별 학살한 사례에서 보듯, 기관총의 무서운 살상력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들고 다니며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경기관총을 구상한 이들도 당연히 존재했다. 덴마크의 국방장관이었던 마드센(Vilhelm Herman Oluf Madsen, 1844~1917)도 그러한 인물들 중 하나였다.

마드센은 초임 장교 시절이던 1864년, 덴마크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연합국과 벌인 이른바 제2차 슐레스비히(Schleswig) 전쟁에 참전했다. 덴마크는 이 전쟁에서 패하며 국토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게 되는데, 이 과정을 최전선에서 생생히 지켜본 그는 조국을 수호하려면 좋은 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게 되었다. 이후 덴마크군 총사령관에 오른 그는 1896년 자동화된 총기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주요 군사 강국들은 정확도와 사거리를 우선시했고, 탄 낭비 등의 이유로 자동화 총기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마드센은 연사가 가능한 총이 장차전(將次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 믿었다. 특히 덴마크 같은 약소국에게는 수적으로 압도적인 적과 능히 대적할 수 있는 이런 형태의 총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동화된 소총 한 정은 이론적으로 볼트액션 소총으로 무장한 1개 분대 이상의 화력을 구사할 수 있었다.

다양한 기술을 접목하다

기계공학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었던 그는 기존에 사용 중인 Forsøgsrekylgevær M1888 소총의 자동 급탄 시스템에 주목했다. 마드센은 이를 기반으로 완전 자동화된 총을 제작하라는 지시를 육군 조병창 엔지니어 라스무센(Julius A. Rasmussen)과 쇼뷰(Theodor Schoubue)에게 내렸다. 아직 기관총이나 자동소총의 정확한 정의나 구분이 없던 시기였지만 마드센이 제시한 총의 조건은 병사 한 명이 충분히 운용할 수 있는 크기와 무게였다.

당연히 당시까지 존재하던 총기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기술들이 검토되고 개발에 적용되었다. 덕분에 마드센 경기관총에는 경쟁 총기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가 채택되었다. 대용량 탄창을 사용하지만 위에서 삽탄하는 구조라 엎드려쏴 사격 시 제약이 덜했고, 스프링 압력과 중력을 함께 이용하다 보니 잼이 걸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었다. 이런 구조는 ZB vz. 26, 브렌을 비롯해 이후에 등장한 많은 경기관총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빠른 연사가 가능하도록 특이하게도 구식이라 할 수 있는 레버액션 방식의 볼트를 채택했다. 또한 총열과 노리쇠가 함께 왕복하며 연사를 하는 롱 리코일 방식이지만 노리쇠는 12.7mm 후퇴 후 위로 짧게 움직이도록 제작해 쇼트 리코일 방식처럼 총신을 짧게 단축시킬 수 있었다. 즉 롱 리코일과 쇼트 리코일의 장점을 모두 갖춘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총기다 보니 단점도 있었다.

마드센 외에는 이런 구조를 가진 총기가 없을 정도로 구조가 복잡해 고장이 자주 발생하고 수리도 힘들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공랭식을 택했지만 장시간 연사는 어려웠고 총열을 교환하는 방식도 복잡한 편이었다. 소총보다 가격도 당연히 비쌌다. 이처럼 소소한 문제점들로 인해 일선에서의 만족도는 예상보다 그리 높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개척자의 역할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마드센 경기관총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총의 반열에 올랐다. 1902년 덴마크군의 도입을 시작으로 1955년까지 꾸준히 제작되어 총 35개국에서 사용되었다. 애당초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주국방이 명분이어도 덴마크의 내수가 워낙 적다 보니 자체적으로 총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일 수 있었다.

그래서 덴마크의 8×58mm 표준 제식탄뿐 아니라 수입국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독일의 7×57mm, 7.92×57mm탄, 스웨덴의 6.5×55mm탄, 러시아의 7.62×54mm탄, NATO의 7.62×51mm탄 등 다양한 종류의 탄을 사용하는 세부 변형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이런 노력만으로 마드센 경기관총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이후 등장한 여러 경기관총들과 비교해 성능이 그다지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드센 경기관총이 주변 군사강국에도 판매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제일 먼저 개척했기 때문이다. 제1차 대전 발발 이전까지는 마드센 외에 쓸 만한 경기관총이 없었다. 엄밀히 말해 기존에 존재하던 기관총의 능력조차 충분히 깨닫지 못했을 때여서 경기관총의 필요성을 몰랐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드센 경기관총의 명성은 러시아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쟁사에서 제정 러시아군은 무능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의외로 기관총의 위력에 일찍 눈을 떴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에 러시아군은 맥심 기관총 외에도 1,200여 정의 마드센 경기관총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전쟁은 이겼지만 지상전에서 곤욕을 치른 일본군은 이후 마드센을 연구용으로 도입해 경기관총 개발을 시작했을 정도다.

100년을 넘긴 활약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이미 실전에서 사용되던 마드센 경기관총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참호전이 격화되면서 일선에서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기관총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지만 그제야 각국이 개발에 나섰을 만큼 실전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경기관총은 없었다. 당연히 마드센 경기관총의 주가가 올라갔다. 특히 독일군은 주로 소화기로만 교전을 벌인 산악전에서 마치 SAW처럼 유용하게 썼다.

제1차 대전 후반 이후 여러 경기관총이 등장하고, 특히 군사 강국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경기관총을 사용하면서 마드센의 명성은 급속히 추락했다. 제2차 대전 초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군이 사용했으나 어느덧 2선급 무기로 취급받았다. 그리고 MG34, MG42처럼 중기관총과 경기관총의 역할을 모두 해내는 다목적 기관총의 등장은 경기관총의 입지를 더욱 축소시켰다.

새로운 무기 분야를 개척한 마드센 경기관총도 결국 1955년에 생산이 종료되면서 급속히 일선에서 사라져 갔다. 자료에는 지난 2008년에 브라질 경찰이 사용하던 일부 물량이 완전히 도태되면서 군경용으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분에 마드센 경기관총은 1세기 이상 공식 활약한 경기관총이라는 보기 드문 기록도 가지고 있다.

사실 총은 관리 여부에 따라 장기간 동일한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다. 하지만 최신 무기가 속속 등장하면 구형 무기는 사용 가능 여부와 무관하게 도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마드센 경기관총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빼면 성능이 압도적으로 좋은 것도 아니었고 전성기도 짧았지만 오랫동안 일선에서 활약하는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자주국방을 향한 약소국의 혼이 담겨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원

탄약 8×58mm탄 외 다수 / 작동방식 롱 리코일 / 전장 1,143mm / 중량 9.07kg / 발사속도 분당 450발 / 유효사거리 550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