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북한은 수도권을 직접 위협하는 사거리가 40킬로미터가 넘는 장사정포를 포함한 13,000여 문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포를 보유하고 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워낙 북한이 많은 포를 보유하고 있지만, 사실 5,400여 문에 이르는 국군의 포병 전력도 서방세계 최대로 평가 받고 있을 만큼 대단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한반도는 단위 면적당 포의 밀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포가 밀집된 한반도

현재 국군은 K-9 자주포처럼 질로써 양적 격차를 메우고 있다. 그런데 남북한 포병간의 수적 차이는 창군 당시에도 있었다. 그러나 표면적인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국군 포병은 한국전쟁 당시에 상당히 선전하였다. 단 한대의 전차도 없어서 비교조차 할 수 없던 기갑전력에 비한다면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지만 포병전력의 차이도 사실 엄청났다.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개전 전에 남북 포병간의 전력비는 약 1 : 4 정도였다.

지금과 달리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차이가 컸다. 당시 북한군이 보유한 야포에 비해 국군의 대응 전력은 사거리나 화력 모두에서 절대 열세였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쟁 초기에도 국군 포병부대는 그야말로 놀라운 분투를 펼쳤고 오히려 북한군을 압도하기까지 하였다. 특히 창군 당시 국군이 보유한 최고의 중화기였던 105밀리미터 M3 곡사포(이하 M3)는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신화를 썼던 국군의 자부심이었다.

 

어쩔 수 없었던 격차

국군은 창설 당시에 필요한 장비의 대부분을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였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철수 이후에도 국군이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65,000명의 병력을 무장할 수 있는 장비를 지원하기로 한국 정부와 1949년 9월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남침을 위해 북한에게 충분한 물자를 제공한 소련과 달리 미국은 국군이 38선 경비와 국내 치안 유지에만 겨우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만 하였다.

M3 곡사포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국군이 보유한 최대 중화기였다. <사진:육군 한국전쟁사 싸이트>
흔히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북한군 전차가 튀어나와 아군이 당황한 것처럼 묘사된 글이 많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북한군의 전력 증강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전쟁 전에 수 차례에 걸쳐 충분히 맞설 수 있는 전차와 야포 그리고 전투기의 공급을 미국에 요청하였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남북간의 전력 격차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미국은 북한이 남침 능력을 오판하여 우리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이 때문에 포병 장비도 당시 미군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155밀리미터 M1(이후 M114) 곡사포는 고사하고 보병 지원용으로 대량 사용하던 105밀리미터 M2(이후 M101) 곡사포도 지원하지 않았다. 대신 국군에게 2.36인치 로켓포와 57밀리미터 대전차포 그리고 M3을 공급하여 주었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정비를 요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국군은 이를 해방된 내 나라를 지켜 주는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 귀하게 다루었다.

 

공수부대를 위해 탄생하다

창군 당시 국군이 보유한 최대 중화기였던 M3은 제2차대전 당시였던 1941년 유럽 침공을 염두에 두고 기존에 미 육군과 해병대가 사용하던 M2 곡사포를 공수부대용으로 축소 제작하면서 탄생하였다. 전반적인 모양은 75밀리미터 M1(이후 M116) 곡사포와 유사한데, 어떻게 생각 하다면 이를 확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M1(M116)의 포가(砲架)에 단축한 105밀리미터 포신을 결합한 형태였다.

M3은 항공기나 글라이더에 충분히 탑재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낙하산으로 투하할 수 있을 만큼 경량화하기 위해 포신도 짧았고 포 방패도 없었다. 따라서 지프로도 견인할 수 있었고 적은 인원으로 운용이 가능했지만 사거리가 M2(M101)의 60퍼센트 수준이었고 포구 속도도 느려서 화력이 약하였다. 1943년부터 양산에 들어가 총 2,580문이 제작되어 공수연대 예하 포병중대에 우선 보급되어 유럽 전선에 투입이 되었다.

하지만 실전에서 운용한 결과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평가되어 1945년 205문을 마지막으로 제작이 중단되었다. 종전 후 많은 수가 폐기되거나 여러 나라에 공여되었는데 국군도 이때 총 91문의 M3을 인계 받았다. 이는 94문을 수령한 프랑스 다음이었지만 주력으로 사용한 우리와 달리 보조 전력이었다. 단지 숫자로만 놓고 본다면 91문은 겨우 1개 포병연대 분량이었는데 3문은 처음부터 고장 난 상태로 인수 받아 교육용으로만 사용하였다.

 

부족한 수량 하지만 놀라운 투혼

한국전쟁 발발 당시에 국군은 총 8개 사단과 2개 독립연대로 편제되어 있었는데 포의 절대 수량이 부족하여 38선을 지키던 제1, 6, 7, 8사단과 옹진반도에 배치 된 독립 제17연대에만 포병대대가 배치되었다. 반면 북한은 각 사단 별로 122밀리미터 M1938 곡사포와 76밀리미터 M1927 곡사포가 혼성 편재된 포병연대를 구축하고 있었고 별도로 Su-76 자주포도 운용하는 등 총 400여 문의 야포를 장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군 포병은 신화를 써내려 갔다. 고립 된 옹진반도를 지킨 제17연대는 부대가 분리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틀간 적의 남진을 막고 연대 전력의 90퍼센트가 해상으로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다. 이때 최후까지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예하 제7포병대대의 활약 덕분이었다. 특히 포병대대장 박정호(朴廷鎬) 소령은 마지막 포탄까지 완전 소모시킨 후 적의 노획을 우려해 야포를 파괴한 후 맨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문산 축선을 방어하던 제1사단은 전쟁 내내 편제를 유지했던 유일한 국군 사단이었다. 한마디로 적들이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강철철벽과도 같은 부대였고 이런 전통은 전쟁 개전 직후 전략적으로 아군이 가장 불리하였던 1950년 6월에도 그러했다. 고랑포 인근 357고지 전투와 봉일천 전투처럼 개활지로 나온 적 주력의 남진을 피로 막은 예하 제6포병대대의 활약으로 제1사단은 방어전을 펼칠 수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의 고마운 존재

의정부 축선은 잘못된 방어 전략으로 아군의 몰락을 가져온 실패의 반면교사가 되었지만 그러한 패배 속에는 포병학교 제2교도대대장으로 긴급 투입된 김풍익(金豊益) 중령처럼 제로 거리에서 직사사격으로 적의 전차 부대를 저지한 살신성인의 노고도 숨겨져 있었다. 비록 꽃처럼 산화하면서 유명을 달리하였지만 이들의 투혼은 득의 만만하게 남진하던 북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동부전선에서 국군 포병은 전쟁 초반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결정타를 날렸다. 춘천 지구를 방어한 제6사단 예하 16포병대대와 강릉 지구의 제8사단 예하 18포병대대는 한마디로 국군 포병사의 신화가 되었다.제16포병대대의 놀라운 선전을 발판으로 제6사단은 북한군 2군단을 궁지에 몰아붙였고 제18포병대대는 백병전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진지를 고수하여 아군 주력이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도록 퇴로를 확보해 주었다.

위에서 언급한 선전의 주역이 바로 M3이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난 능력은 보잘것없었지만 평소 훈련을 거듭하여왔던 포병부대원들의 노고 덕분에 전선을 가리지 않고 북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수적 열세가 단지 전력의 우열을 가르지 않음을 입증해 준 사례였다. 이후 미군이 M2(M101) 곡사포를 공급하여 주면서 8월 이후 전선에서 사라졌지만 이처럼 M3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제 역할 이상을 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제원
무게 1,130kg / 길이 3.94m / 포신 1.68m / 폭 1.70m / 높이 1.27m / 구경 105mm / 사거리 7,600m / 포구속도 311m/s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