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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막을 내린 공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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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얀스크 전투는 독일 제2군단이 고립된 1942년 2월 8일부터 돌출부가 소멸된 이듬해 2월 28일까지, 약 1년간 벌어진 공방전을 의미한다. 그런데 많은 자료에서는 독일 제290사단 전투단이 개척한 통로를 절단하려는 소련군의 시도가 좌절되면서 공세에서 방어로 전환한 5월 20일, 일단 전투가 종결된 것으로 서술한다. 이후에도 계속 포탄이 날아다니긴 했지만 일단 그렇게 구분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때부터 전선이 급속도로 소강상태에 빠졌다. 처음 개통 당시 희미한 실선 같았던 독일군의 통로는 시간이 갈수록 폭이 10킬로미터 정도로 넓어졌고, 더불어 돌출부의 모든 전면을 경계하는 전력도 충실하게 보강되었다. 이를 밖에서 둘러싸고 있던 소련군의 전력도 여전히 강했고 지도상에 그어진 전선의 모습도 상당히 유리해 보였지만 사실상 데미얀스크의 점령은 불가능했다.

물론 그렇다고 소련이 데미얀스크를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수시로 통로를 끊고 독일군을 다시 포위망 안에 가두려 들었다. 하지만 매번 독일군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갈수록 피해만 늘어났다. 결국 STAVKA(소련군 최고사령부)는 독일이 공세를 재개하면 또다시 모스크바를 노릴 것이라 보고 상당수의 부대를 옮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포켓에 대한 압박이 줄어들었다. 반면 독일은 소련의 예측과 달리 1942년의 공세를 남쪽에서 시작하려 했다.

결국 서로 공격적인 행동을 자제하면서 데미얀스크의 기묘한 돌출부에서 양측은 참호를 깊게 파고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마침내 6월에 소련 남부의 코카서스 장악을 목표로 청색 작전(Fall Blau)으로 명명된 독일의 대공세가 시작되자 완전히 정중동의 상태가 되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데미얀스크 돌출부의 공방전은 5월 말에 일단 끝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까지를 특별히 데미얀스크 공성전(Siege of Demyansk)으로 별도 구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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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참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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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5월까지 벌어진 공성전은 독일의 승리였다. 엄밀히 말해 승자인 독일의 입장에서 보면 소련군을 격멸한 것이 아니라 간신히 방어에 성공한 싸움이었다. 더구나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전선의 변동도 거의 없다시피 했고 데미얀스크 북쪽과 남쪽에서 벌어진 거대한 전투들로 인해 주목을 끌지도 못했다. 그나마 같은 시기에 더 어려운 여건에서 홀름을 지켜낸 독일 수비대의 숨겨진 활약에 비하면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었다.

이처럼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실상을 파고 들어가면 최초 10만의 독일군과 40만의 소련군이 격돌한 전투답게 상당히 잔인하고 치열했다. 독일은 11,777명의 전사자를 포함해 55,000여 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반면 소련은 88,908명의 전사자를 포함한 245,000여 명의 피해를 당했다. 약 석 달 동안 양측이 입은 피해는 독소전쟁의 여타 전투와 비교할 때 어쩌면 평범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사적 의의는 상당했고 그 여파가 독소전쟁의 향방을 놓고 벌어질 거대한 전투의 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실 1930년대 말에 있었던 대숙청으로 붕괴되다시피 한 지휘 체계에 더해, 밭을 갈다가 갑자기 징집된 농민군 수준의 병사들이 대부분이던 1942년 여름 이전의 소련군은 독일군에게 손쉬운 상대였다. 그래서 독일군은 설령 3~4배의 소련군과 맞선다 해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방이 완전히 포위당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강해도 굶으면서 싸울 수 있는 군대는 없기 때문이다. 데미얀스크 포켓은 히틀러가 후퇴를 불허했기에 스스로 자초한 고립 상황이기는 했지만 독소전쟁에서 독일이 처음으로 겪는 위기였다. 이런 초유의 어려움을 타개한 것이 공군에 의한 사상 최초의 대규모 공수 작전이었고 이는 전쟁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런데 이 성공이 훗날 비극이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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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 작전의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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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1항공군이 벌인 공수 작전은 분명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이들은 포위망이 뚫릴 때까지 석 달 동안 14,500여 회에 이르는 공수를 실시해 65,000여 톤의 각종 물자와 30,000여 명의 증원 병력을 포켓에 고립된 제2군단에 쉴 새 없이 공급했다. 제2군단의 놀라운 항전은 공군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독일 공군은 데미얀스크 포위전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편하게 작전을 펼쳤던 것만은 아니었다. 제공권을 독일 공군이 장악하긴 했지만 수송 중에 요격 나온 소련 공군의 끈질긴 방해를 받았고, 방공포가 즐비한 위험 지대를 통과하다 격추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Ju 52 수송기 106기, 수송 작전 수행을 위해 차출된 He-111 폭격기 17기를 포함해 총 265기가 손실되었고 387명의 승무원들이 전사했다.

데미얀스크 전투 당시 공군이 보여준 전과가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틀림없고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업적이었으나, 문제는 이 전과가 이후 잘못된 판단을 유발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6개월 후 스탈린그라드에서 격전을 벌인 독일 제6군이 소련의 역공을 받고 포위당했을 때, 히틀러는 데미얀스크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성공의 달콤한 기억 때문에 공수 작전을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데미얀스크의 제2군단과 스탈린그라드 일대에 포위된 제6군은 규모부터 차이가 컸다. 한마디로 독일 공군의 능력을 벗어날 만큼, 같은 방식으로 풀기 곤란한 난제였지만 히틀러는 데미얀스크의 성공에 너무 도취되어 있었다. 또 상대를 포위하고도 섬멸에 실패했던 소련군에게는 데미얀스크 전투의 치욕이 오히려 보약 노릇을 했다. 이를 계기로 와신상담한 끝에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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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반격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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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결과와 전훈은 데미얀스크 포위전이 종결된 5월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다. 어쨌든 이후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대표되는 1942년 하계 공세가 이제 막 시작된 덕분에 데미얀스크 전투는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전선이 이어진 상태에서 별다른 격전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이는 비단 데미얀스크 돌출부만이 아닌 동부전선 전체에 걸쳐 나타난 모습이었다.

9월이 되면서부터 동부전선은 독일과 소련 모두 스탈린그라드라는 도시에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형국이었다. 그렇게 격전이 절정으로 치닫는 사이에 독일군을 잡아 놓는 미끼로 스탈린그라드를 이용하던 소련은 월등한 동원 능력을 앞세워 거대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장은 스탈린그라드에 집결된 전선 남부의 독일군을 소탕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동시에 전선 중앙에서도 반격을 가해 독소전쟁의 전세를 완전히 뒤집고자 했다.

1942년 내내 피와 철이 끊임없이 소모되어 사라져 갔던 르제프 돌출부를 우선 제거 대상으로 잡았고 동시에 그 북쪽에 있던 데미얀스크 포켓도 함께 정리하고자 했다. 이 두 구덩이가 동시에 메워져야 벨리키예 루키(Velikiye Luki) 일대를 정점으로 전선을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뿐 아니라 북쪽 레닌그라드의 해방과 중앙 모스크바의 안전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야심찬 시도였다.

사실 소련의 입장에서 본다면 압도적인 전력으로 포위해 놓고도 섬멸은커녕 오히려 탈출로까지 허용하며 막을 내린 지난 데미얀스크 공성전의 결과는 참패나 다름없었다. 군사적인 차원뿐 아니라 자존심과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그동안 연이은 패배로 인해 후방으로 좌천되었지만 아직 소련 군부의 거물 행세를 하던 티모셴코(Semyon Timoshenko)가 10월 5일, 신임 북서전선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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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