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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열린 생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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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독일 제2군단이 데미얀스크에서 포위당했을 때, 히틀러도 후퇴냐 사수냐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포위 섬멸전으로 가장 많은 재미를 본 독일이었기에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수없이 격어야 할 운명이었지만 제2차 대전에서 10만여 명 정도의 거대한 독일군이 포위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만큼 고민이 컸다.

방어선이 충분히 구축되어 있었고 소련이 후속 공격을 하기에는 날씨가 나빠 당장은 위기라고 볼 수 없었지만, 포위 중인 소련군이 40여만이 넘었기에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문제는 제2군단이 버틸 수 있도록 물자와 병력을 계속 공급해 주는 것이었는데, 육군 참모총장 할더(Franz Halder)는 히틀러에게 총참모본부의 계산 결과 하루에 270톤의 보급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히틀러는 공군 총사령관 괴링과 공군 참모총장 예쇼네크(Hans Jeschonnek)를 즉각 소환했다. 물자의 공수가 가능한지를 묻는 총통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예쇼네크는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한 번도 실시해 본 적이 없는 대규모 공수 작전의 성공을 그가 자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포위망 안에 위치한 2개의 공항을 사용할 수 있었고 소련 공군의 방해 가능성도 물리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은 히틀러는 공군에게 즉시 작전을 시행할 것을 지시했고, 현지에서 농성전(籠城戰)을 지휘할 브로크도르프-알레펠트(Walter von Brockdorff-Ahlefeldt) 제2군단장에게 충분히 지원하겠으니 반드시 현지를 사수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리고 2월 10일부터 공수 작전에 돌입한 제1항공군(Luftflotte 1) 소속의 수송기들이 속속 데미얀스크 포켓 안에 착륙해 보급품과 병력을 내려놓은 후 부상병을 싣고 귀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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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멸에 실패한 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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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소련도 독일처럼 르제프 일대의 격전에 집중해야 했기에 데미얀스크는 차후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제2차 대전에서 소련이 공격자가 된 최초의 공성전(攻城戰)은 쿠로츠킨의 능력만으로 해결해야 했다. 독일보다 4배나 많은 전력으로 포위를 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추가적인 지원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위에만 성공했을 뿐 더 이상 파고들어가지는 못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소련군은 강력한 포병으로 대대적인 제압 포격을 실시한 후 기갑부대로 거세게 몰아붙여 섬멸하는 전술을 구사하게 되지만 당시 쿠로츠킨은 포위망 안에 갇힌 상대를 어떻게 격멸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직 포병 전력이 부족해 화력을 집중시키기 어려웠고 소련 공군도 독일 공군에게 제압당해 공습을 벌일 수 없었다. 결국 사방으로 돌파를 시도해 보았지만 한마디로 빈틈이 없었다.

오히려 전선이 축소되다 보니 독일군은 좀 더 촘촘히 병력을 배치할 수 있었고 중앙에 배치한 강력한 예비대를 위급 상황이 발생한 곳으로 신속히 전개하면서 위기를 막아내곤 했다. 이러한 독일군의 뛰어난 기동 방어 덕분에 소련은 외형상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했음에도 우위를 누리지 못했다. 사실 이곳뿐 아니라 동부전선 전체로 볼 때 소련군의 전투 능력은 아직 많이 부족했다.

히틀러의 장담대로 필요한 물자가 항공편으로 적시에 공급되고 후방으로 이송되는 부상병 수만큼 새로운 병력이 속속 충원되어 제2군단의 전투력은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했다. 덕분에 일선의 병사들은 어느덧 자신들이 포위당했다는 사실을 잊었고 반대로 갈수록 무모한 돌격만 반복하는 소련군의 희생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결국 그렇게 겨울이 끝나고 3월 말이 되었을 때 누가 누구를 제압하고 있는지 모를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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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뒤바뀐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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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STAVKA(소련군 최고사령부)도 지지부진한 데미얀스크의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무려 20여 개의 사단을 동원하고도 6개 사단의 독일군을 제압하지 못한 채 두 달 가까이 시간이 흐르자 쿠로츠킨의 조급함은 극에 달했다. 그는 무차별적인 공격을 멈추고 취약하다고 판단된 곳으로 전력을 집중시켜 돌파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어느덧 깊게 파놓은 독일의 방어선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반면 독일의 제1항공군 사령관 켈러(Alfred Keller)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송기만으로는 여력이 부족하자 He 111 같은 폭격기까지 공수 작전에 투입했다. 사실 이전까지 제1항공군의 주 활동 무대는 독일 북부집단군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는 레닌그라드 일대였다. 1942년 2월을 고비로 레닌그라드 전선이 급속히 정체되었던 여러 이유 중에는 이처럼 제1항공군의 폭격기 전력이 다른 곳으로 전용되었던 점도 있었다.

독일 공군은 전사에 길이 남을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공수 보급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로바트(Lovat) 강 서쪽으로 밀려난 제16군 본진과 제2군단이 육상으로 연결되어야 문제가 풀릴 수 있었다. 제16군 사령관 부쉬는 통로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해야 했고 실제로 시도는 계속해 왔으나 OKH(독일 육군 최고사령부)의 지원이 부족해 전세를 반전시키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사이에 상황이 바뀌었다.

르제프 전투에서 독일의 대반격으로 남서쪽 깊숙이 남하했던 칼리닌 전선군이 위기에 몰렸고 이 여파는 바로 북서전선군에 전달되었다. 자칫 눈앞에 있는 데미얀스크 포켓보다 등 뒤에서 언제 나타날지 모를 독일군이 우려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련군이 흔들리고 있음을 간파한 제2군단장 브로크도르프-알레펠트는 제16군 사령관 부쉬에게 포위망을 뚫겠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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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망이 뚫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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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밖에 있는 본진인 제16군이 안에 있는 제2군단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이 맞지만 지난 겨울에 타격을 많이 입어 공세로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동안 데미얀스크에 고립된 제2군단을 살리기 위해 진력하다 보니 정작 본진인 제16군의 전력 확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포위당한 제2군단이 밖으로 나가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히틀러가 사수 의지를 바꾼 것이 아니므로 탈출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본대와의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브로크도르프-알레펠트는 제290사단을 주축으로 전투단을 구성해 제16군과 가장 가까운 로바트 강 서안에 연한 라무셰포(Ramushevo) 가도를 따라 서북쪽으로 치고 나가는 작전을 수립했다. 보고를 받은 부쉬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제10군단에게 스타라야루사에서 안으로 협공을 가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마침내 3월 21일, 자이들리츠-쿠르츠바흐(Walther von Seydlitz-Kurzbach)가 이끄는 전투단이 진격을 개시했다. 예상치 못한 독일의 반격에 소련군은 당황했으나 곧바로 저지에 나섰고 곳곳에서 혈전이 벌어졌다. 제16군 본진과의 직선 거리가 20여 킬로미터에 불과했지만 기갑전력이 부족했던 제2군단이 4배나 많은 소련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앞으로 조금만 나아가면 소련군이 좌우에서 득달같이 달려 나와 저지에 나서는 통에 작전 개시 3주가 지난 4월 14일까지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자 밖에서 공조에 나선 독일 제10군단이 힘을 내 동쪽으로 한발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라무셰포 가도 부근에 몰려 있던 소련군이 협공을 당하는 모양새가 되었고 포위를 피하기 위해 밖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4월 22일, 마침내 통로가 연결되면서 74일 만에 포위망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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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