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대전은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전쟁이었다. 인류사에서 전쟁이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제1차 대전, 특히 서부전선의 모습은 분명히 이전의 전쟁들과 달랐다. 전쟁 발발 시 선공을 가한 쪽에서 일단 전선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일반적인 것처럼, 당시에도 전쟁 초반의 모습은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전쟁 개시 약 한 달 후에 벌어진 마른(Marne) 전투 에서 전선이 한번 정체된 이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양측 모두 참호를 깊게 파고 전선을 단단히 구축하자 예전의 방식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정체를 일시적인 것으로 보았지만, 실상은 향후 4년 동안 별다른 변화 없이 그곳에서 수백만이 죽거나 다쳐야 할 운명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전투 기법 같은 소프트웨어가 100년 전 나폴레옹 전쟁 당시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던 반면, 무기의 살상력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해졌기 때문이었다.

상대 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포격을 가한 후,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돌격하는 방식은 그대로였지만 방어하는 방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방어자가 쏘아대는 기관총 세례를 공격자가 피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양측 진지 사이의 공간은 돌격하다 죽어간 병사들의 무덤으로 변해갔다. 기관총이 아주 생소한 무기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강력한 저지 수단이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일일이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켜 사격하는 단발식 소총을 들고 기관총이 거치된 방어선으로 뛰어드는 것은 한마디로 자살 행위였다. 결국 전쟁 당사자들은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공격 수단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휴대가 편리하고 연사가 가능한 기관단총의 출현은 어찌 보면 필연이라 할 수 있었다. 흔히 기관단총의 아버지라 불리는 MP18은 바로 이런 복잡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최초'에 대한 논쟁

무기사에 있어서 '최초'는 항상 논쟁이 많은 주제다. 오래전에 등장한 대포 같은 경우야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최근에 나온 무기인 항공모함조차 최초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정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우선 그 무기가 출현했을 당시에 정의가 확실하게 내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관단총도 마찬가지다.

기관총, 기관단총, 자동소총은 각각 다른 종류의 총이지만 연사가 가능하다는 점만 보면 기본적으로 차이는 없다. 이후 성능과 사용 목적에 따라 구분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 기관단총은 권총탄을 사용해 화력과 사거리가 부족한 대신, 휴대하기 쉽고 연사력이 뛰어난 총을 의미하게 되었다. 경우에 따라 소총탄이나 별도의 전용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병사들의 휴대 가능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최초의 기관단총 후보로 언급되는 이탈리아의 빌라페로사(Villar-Perosa) M1915에 대해 이의가 많이 제기되는 이유도 휴대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9mm 구경 권총탄을 사용했지만 처음부터 전투기 거치를 목적으로 개발되었기에 실패로 끝난 ‘화력이 약한 기관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빌라페로사 M1915를 기반으로 보병용으로 제작된 베레타(Beretta) M1918을 최초의 기관단총으로 보기도 한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미국의 톰슨(Thompson)을 최초로 보는 이들도 많다. 처음으로 기관단총(Submachine Gu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성능이 뛰어나다는 점만으로도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제1차 대전 종전 후에 탄생했고 실전 투입도 늦었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MP18은 최초의 기관단총으로 가장 확실한 후보다. 무엇보다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었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시대가 요구했던 신무기

희생이 늘어가던 1915년, 독일은 참호전 타개를 위한 신무기 연구에 착수했다. 방어는 기존의 방식대로 기관총을 이용하면 충분했지만 공격에 나설 경우 소총은 단지 창이나 몽둥이의 용도로 밖에 쓸 수 없다는 점이 큰 문제였다. 화망을 뚫고 상대 진지에 난입해 뒤엉켜 싸우다 보면, 한 번 발사한 볼트액션식 소총은 탄환이 장전되어 있어도 다음 사격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던 것이다.

사실 이미 기관총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소총을 자동화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반동 제어를 위해 늘어나는 무게와 저하되는 명중률이 문제였다. 베르그만(Bergmann)사의 총기 엔지니어인 슈마이서(Hugo Schmeisser)는 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대충 겨누고 사격해도 충분할 만큼 가까운 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초창기의 기관총에서 보듯이 총의 무게를 늘리면 반동을 잡을 수는 있지만 휴대가 어려워진다. 슈마이서는 권총탄을 사용하면 휴대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기관총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신 사거리, 화력, 정확도는 포기해야 하지만 근접전에서는 충분한 효용이 있다고 보았다. MP18 개발 당시에 이미 P08 같은 권총으로 병사들이 참호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총인가, 기관총인가?

오히려 기존의 P08로 전투를 벌이면서 만들어진 부가장비를 이용해 개발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처음에는 별도의 탄창을 고려했지만, 설계를 변경해 P08에 부착하던 달팽이 모양의 트롬멜(Trommel) 탄창을 사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균형이 맞지 않는 단점이 생겼지만 성능에 크게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전쟁 말기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무기 공급에 애를 먹던 독일의 입장에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독일어 Maschinenpistole의 약자인 MP는 현재 기관단총의 의미로 쓰이지만 단어상으로는 ‘기관권총’이라는 뜻이다. 1980년대에 탄생한 마이크로 우지(Micro Uzi) 같은 기관단총은 오히려 커다란 권총에 가까울 정도다. 어쩌면 슈마이서의 구상은 작은 기관총보다는 자동화된 권총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권총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그만큼 MP18이 낯선 길을 개척한 새로운 무기라는 뜻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베레타 M1918이나 톰슨도 같은 방식이었다. 마치 교류가 없었어도 국물 음식을 먹기 위해 전 지구적으로 숟가락이 등장했던 것처럼, 지옥의 참호전은 같은 방식을 이용한 같은 목적의 무기를 비슷한 시기에 탄생시켰던 것이다. 근접 참호전을 목적으로 오로지 연사만 가능한 MP18은 1918년 탄생하여 각종 실험 끝에 공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무기의 역사를 이끌다

전쟁 중이었으므로 MP18은 탄생과 동시에 실전에 투입되었다. 1918년 3월, 이른바 ‘카이저의 전투(Kaiserschlacht)’로 불린 춘계 대공세에 약 5,000정이 충격보병(Stoßtruppe)에 공급되었다. 전쟁 말기에 오로지 참호전을 목적으로 편성된 충격보병대는 주로 권총과 수류탄을 이용해 근접전을 벌였다. 이들에게 공급된 MP18은 그야말로 천군만마 같은 존재였다.

사격 불발 같은 문제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일일이 방아쇠를 당겨 사격하던 권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가 좋았다. 고무된 독일은 공급량을 늘리려 애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차 대전이 막을 내리면서 의미 있는 전과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종전 후에는 연합국이 경찰용 수백 정을 제외한 전량을 폐기 조치하고 유사한 자동화 총기의 제작도 금지시켰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MP18은 전후에 세계 각국으로 유출되거나 라이선스 생산되어 30여 개국에서 사용했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도 몇 정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초로 실전 투입된 기관단총답게 이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토록 개발을 막았지만 독일 내에서도 민수용이란 명분으로 MP28 같은 개량형이 등장했고, 나치 집권 후 재무장이 시작되면서 개발된 MP40 같은 이름난 기관단총의 기술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또한 소련의 PPD34와 이후 등장한 일련의 후속작들, 핀란드의 수오미(Suomi) KP31, 영국의 란체스터(Lanchester) 같은 수많은 아류작들의 기술적 기반이 되었다. 한마디로 톰슨 정도를 제외한다면 제2차 대전 당시에 추축국과 연합국이 사용한 대부분의 기관단총들이 모두 MP18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최초’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MP18은 기관단총의 아버지로 불리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제원

탄약 9×19mm 파라블럼 외 / 급탄 32발 드럼형 탄창 외 / 작동방식 오픈볼트, 블로우백 / 전장 832mm / 중량 4.18kg / 발사속도 분당 500발 / 유효사거리 200m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