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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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역사를 바꾼 거포

바실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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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옹성이던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무너뜨린 바실리카.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우르반포라고도 불리는데 총 69문이 동원되어 47일간 5,000여 발의 돌 포탄을 날려 보냈다.

1453년 4월 12일, 모든 준비를 완료한 오스만 제국(이하 오스만)의 술탄 메흐멧 2세는 공격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가 점령하고자 했던 목표는 비잔틴 제국(동로마, 이하 비잔틴)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었다. 서기 330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이 도시는 395년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리되고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천 년이 넘게 기독교 문화권의 중심지를 자부한 고도(古都)였다.


콘스탄티노플의 난공불락 성벽을 부숴라

비잔틴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통치하던 6세기 중반의 전성기도 있었지만 제국이라는 호칭과 달리 주변 세력의 득세에 밀려 주로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발칸 반도 남쪽 일대에서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대 로마의 전통과 영화를 승계하였고 모든 문화와 문명이 교차하는 집결지이다 보니 당대 세계 최대의 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한마디로 제국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당연히 보물과 다름없는 이곳을 노리는 외세도 많았다. 1204년에 있었던 제4차 십자군 전쟁에서 내우외환이 겹치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대에게 비참하게 함락당한 적도 있었지만, 콘스탄티노플은 기록만으로도 23차례나 외세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이처럼 꾸준히 이어진 수많은 도전을 거부시키고 천 년의 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5세기 초부터 도시 외곽에 쌓기 시작한 3중의 테오도시우스 성벽 때문이었다.

총 길이 6.5km에 이르는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가히 난공불락의 철벽이었다. 이번에 불과 7천의 비잔틴군이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20만의 오스만군에 맞서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53일의 처절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성벽은 돌파당하며 2,200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로마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오스만이 새로운 공성 수단을 대거 동원하였기 때문이었는데, 그중 거포 바실리카(Basilica)의 포성은 역사를 바꾼 신호탄이 되었다.

바실리카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는 메흐멧 2세를 묘사한 파우스토 조나로의 그림.


화약으로 인해 바뀐 전쟁

화약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기나 긴 세월 동안 전쟁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온 냉병기(冷兵器)는 서서히 무기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가야 했다. 엊그제 밭을 갈다 끌려 온 농민이라 하더라도 총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면 오랜 세월 동안 고도로 훈련을 받은 싸움의 프로페셔널인 기사나 용병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진 변화였다. 당연히 전쟁의 방법이 바뀔 수밖에 없었고 좀 더 강하고 강력한 총포를 보유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화약은 폭발력 그 자체로도 살상 능력이 대단하고 이를 이용한 무기들도 많지만 화기(火器) 시대를 이끈 초기의 총포는 화약을 주로 타격 매체를 움직이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대부분 인력에 의존하던 냉병기의 타격력을 인공적인 힘으로 대체한 것이라고도 할 수도 있었다. 즉, 칼이나 창으로 찌르거나 베는 행위를 총탄의 관통력이 대신하게 되었고 화살보다 포탄은 더 멀리 날아가고 더욱 강력하게 상대를 때릴 수 있었다.

원나라 시대에 제작된 수총(Hand Gun)은 현재까지 유물로 확인된 가장 오래된 총포다. 하지만 최초의 총포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출처: (cc) Ytrottier at Wikimedia.org>

최근에는 목표에 부딪힌 후 폭발하여 파괴력을 증가시키는 특수 목적의 총탄도 등장하였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총은 타격력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폭발하여 파편이 비산되는 작렬탄(炸裂彈)이 아니라 오로지 운동에너지를 이용하여 목표물에 충격을 가하는 방식이었던 초창기의 포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대인 살상보다는 주로 성이나 선박 같은 거대한 구조물을 공격하는 것처럼, 사용 용도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기의 대포들은 커다란 포탄을 쉽게 날릴 수 있도록 대구경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구포(臼砲)처럼 극단적으로 포신은 짧고 구경만 커다란 대포도 흔하였다. 어차피 물리적 타격이 목적이므로 제작비가 비싼 철환 대신 돌을 깎아서 포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단지 단어 상으로 이를 사석포(射石砲, Bombard)라고 별도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석포는 중세에 공성병기로 사용된 대구경의 전장식 거포를 의미 한다.

이른바 캐논 볼로 불리는 석환(石丸). 철의 제작비가 비싸서 돌을 가공하여 포탄으로 많이 사용했다. 어차피 운동에너지로 타격하는 방식이므로 크게 문제는 없었다. <출처: (cc) Kim Traynor at Wikimedia.org>


크게 제작된 이유

처음 총포가 등장하였을 당시에는 금속 가공 기술이 뒤졌던 관계로 상대적으로 정밀함이 요구되는 총에 비해 대포가 만들기 쉬웠다. 화약이 폭발하여 발생한 가스로 포탄을 밀어내기만 하면 되었으므로 포구를 제외한 포신의 나머지 부분을 막아버린 단순한 구조인데, 원론적으로 최신 대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19세기 중반 이전에 사용된 대부분의 포는 오늘날 박격포처럼 포탄을 포구 앞에서 밀어 넣는 단순한 전장식(前裝式) 구조였다.

포탄을 쉽게 장전할 수 있는 후장식(後裝式)의 장점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발사 시 발생하는 가스가 새지 않고 충격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정밀한 폐쇄기를 만들 기술이 부족하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포구를 제외하고 모든 부분이 꽉 막힌 모양으로 최대한 포신을 두껍게 제작하여야 했고 그만큼 무거웠다. 공성을 위한 거대한 탄환을 날려야 하는 사석포가 유난히 클 수밖에 없던 이유도 이와 관련이 많다.

백년전쟁 중 사용된 사석포와 석환. 상당히 단순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기원전 20세기경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곽 흔적이 황하 유역에서 발견되었을 정도로 성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공성법의 역사 또한 오래되었다는 의미와 같다. 사다리, 소차(巢車), 망루차(望樓車), 충차(衝車), 투석기 등이 이런 목적에 따라 탄생하였고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었다. 대포의 등장은 이제 투석기보다 무거운 탄환을 보다 쉽게 그리고 멀리 날릴 수 있는 공성 방법이 탄생하였음을 의미하였다.

화약을 사용하게 되면서 이처럼 전통적 공성 방법에 극적인 변화가 생겼지만 메흐멧 2세는 당시까지 등장한 대포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어렵다고 보았다. 그만큼 지난 천 여 년간 고도를 든든히 지켜 온 지켜 온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강력하였다. 공략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던 그에게 헝가리 출신의 기술자인 우르반이 성벽을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거포의 제작이 가능함을 고하였다. 이를 신중히 검토한 술탄은 고심 끝에 제안을 전격 수용하였다.

투석기는 상당히 오래된 공성용 병기다. 화약을 이용한 포가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출처: (cc) Luc Viatour / www.Lucnix.be>

 

역사를 바꾸다

1452년, 명령을 받은 우르반은 500kg 중량의 돌 포탄을 날릴 수 있는 사상 최대의 사석포 제작에 착수하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구경 760mm, 길이가 8.2m, 포신의 두께가 200mm에 이르는 초대형 거포가 우르반포, 다르다넬스포로도 불린 바실리카다. 파괴력과 성능에서 당연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독소전쟁 당시인 1941년 세바스토폴 요새를 공략한 구스타프(Schwerer Gustav)의 구경이 800mm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바실리카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유추할 수 있다.

이듬해 1월 메흐멧 2세가 직접 참석한 가운데 실시된 사격 시험에서 바실리카가 발사한 돌 포탄이 1.6km를 날아가 무른 땅을 2m나 파고 들어가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결과에 고무된 메흐멧 2세는 바실리카를 비롯하여 다양한 구경의 사석포 양산을 명하였고 완성된 순서대로 200km 떨어진 콘스탄티노플 부근에 속속 배치되었다. 무게가 16.8톤에 이르던 바실리카는 무려 200명의 인부와 60마리의 황소에 의해 하루 5km의 속도로 천천히 옮겨졌다.

포구 앞의 음각 문양 등을 고려할 때 바실리카 제작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 기대대로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격파하였다.

그리고 4월 12일, 최전선에 배치된 69문의 사석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으면서 역사적인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이 개시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외적을 물리친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거대한 돌덩이의 세례를 받고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당시 철강재의 내구성 문제로 바실리카는 하루에 불과 7발만 발사할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을 타 비잔틴은 무너진 성벽을 응급 복구하며 필사의 저항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50여일 넘게 5,000여 발의 포탄을 두들겨 맞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에 9개의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마침내 5월 29일, 메흐멧 2세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도시에 입성하였다. 대포에 의해 성벽이 무너진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렇게 이슬람 세력은 본격적으로 동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였고 16세기에 이르러서는 헝가리 부근까지 영향력을 넓혔다. 그리고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뀐 콘스탄티노플은 터키의 보물로 바뀌어 여전히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 전투 이전에도 다양한 종류의 포가 제작되었지만 정확도와 위력이 떨어져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어떤 목적에, 어떻게 사용하여야 좋은지 정확히 몰랐던 것이었다. 이제 포를 이용한 전혀 새로운 전쟁의 길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마지막 고대 제국이자 중세시대의 마지막까지 존재하였던 비잔틴의 멸망은 무기사적으로 이제 더 이상 포를 제외하고 전쟁을 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1586년 러시아에서 제작된 사석포인 차르 캐넌. 철환을 사용하는 전장식 대포인데 정작 한 번도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고 단지 차르의 권위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출처: (cc) GrahamColm at Wikimedia.org>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