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에 관하여..(19금)

샤프하우젠 | 2009-12-27 19: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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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제공

15세기말 강선이 발명된이후 18세기 나폴레옹시대에 라이플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만,

당시 기술로는 총강의 내경과 오차가 없을만큼 정밀한 총알을 제작하기도 힘들었고

대량생산은 꿈도 꾸지못했습니다. 이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총알에 가죽조각을 둘러서

총구에 꾹꾹 쑤셔넣었지요.                                                                           

머스킷에 비해 위력은 좋았으나 장전 시간이 오래걸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사용되는 총알의 형태와 비슷한 원뿔형 총알은 1823년 영국육군 John Norton대위가

구상하였으나 구형 총알을 300년동안 사용하고있던 영국군에게 거부당합니다.

1836년 영국의 총기기술자  William Greener는  Norton이 개발한 총알과 흡사한   

Greener bullet을 발명했습니다.

강선과 총알을 밀착시키기위해 나무재질의 플러그를 장착했는 이역시 구조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군대에서 거부합니다. 

이후 1848년 프랑스에서 미니에탄(minie ball)이 발명되면서 장전속도가 빨라지고 교전거리가 수십미터에서

수백미터로 비약적으로 늘어납니다.

이 덕분에 전쟁터에서 라이플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총기역사의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미니에탄은 후면부에 원추형 공간을 만들어 추진제의 연소가스가 납을 부풀려 총강에 밀착시키는 원리입니다.

초기 모델은 공간이 협소하여 납이 총강을 막아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이후 1855년 웨스트 버지니아의 Harpers Ferry등에 의해 원추형 공간을 넓히는등 리디자인되며

여러 종류가 됩니다.

미니에탄은 크림전쟁과 남북전쟁에서 악명을 떨치게되는데, 특히 크림전쟁에서는 라이플로 무장한 연합군이

머스킷으로 무장한 러시아군을 모든전선에서 몰아내게됩니다.    

참고로 미니에탄은 미니에가 발명했다는 설이많은데 미니에소총의 개발자 Claude Etienne Minié의 이름을  

붙인것이고 개발은 프랑스군 장교였던 Montgomery와 Henri-Gustave Delvigne이 했습니다.

1854년에서 1857년 사이에 영국의 기업가이자 엔지니어인 Joseph Whitworth는 총열이 긴 Whitworth라이플을

개발하면서 육각형의 강선에 맞게 디자인된 구경이작고 길쭉한 총알을 제작합니다.             

하지만 장전이 까다롭고 발사시 잔여물이 다음탄의 장전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Lee-Metford라이플이 

영국정부에 의해 채택됩니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이 250정을 구입하여 활약하기는 합니다만..)

리드탄은 말그대로 납덩어리입니다.

고속으로 총강내를 통과하면서 납의 잔여물로 오염시키고 심하면 총구를 막아버렸는데

이러한 탄약을 사용한것은 당시 제작기술의 한계 때문이었으나 인체에 치명상을 주기에는

부족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1925년 제네바협정에서 리드탄을 군용으로는 사용금지하게 됩니다. 

현재의 FMJ는 1883년 Thun에 위치한 스위스연구소의 책임자 Rubin소령에의해 발명되었습니다.

납코어에 구리로 코팅한것으로 1899년 헤이그협정에서 서명한 국가들에게 군사적인 사용이 허용되며, 탄약의

역사에서 휴머니즘을 엿볼수있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지요. 

이후 덤덤탄(Dum Dum Bullet)이 등장합니다.

덤덤탄(Dum Dum Bullet)은 1890년 후반 인도의 캘커타주(현재는 웨스트 벵갈주입니다~)에 위치한            

DumDum군수공장에서 영국군용 탄약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식민지 폭동을 진압하기위해 제작했다는것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이 탄약은 JSP나 JHP탄과 같은 팽창성 납탄개념으로 인체에 미치는 충격과 데미지를 극대화한것으로,

1899년 헤이그협정에서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전쟁시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JHP(Jacketed hollow points)탄은 총알의 힘을 증가시키기위해 비어있는 공간은 단단한 Steel로 만들고 위에는

총강내의 오염을 막기위해 구리로 코팅합니다.

 

이러한 탄종의 효과를 가늠해 볼수있는 사진입니다.

총알에 대해 간단히 알아봤는데 이 보잘것없는 총알 하나도 그냥 나온게 아니고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조금씩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참고로 Polygonal rifling(다각형 강선)에 관해 써보았습니다.

Barrel Rifling이란 개념은 15세기말 비엔나의 Jaspard Zoller가 최초로 발명했습니다.
이후 1520년 독일 뉘른베르크의 총기기술자 August Kotter에 의해 개량되면서
19세기까지 진정한 강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머스킷 소총은 Smoothbore로 정밀도가 낮아서 총알의 진행방향을 예측하기가 어려웠고
정밀도를 높히자니 당시 제작 기술로는 비용이 증가되는 심각한 결점이 있었습니다.
다각형 강선은 강선이 출현한 초기부터 등장했으나 아쉽게도 최초 발명자를 찾을수 없군요..
장점으로는 Land와 Groove로 구분하는 Rifled강선에 비해 총알의 변형이 적고, 총강내의 마찰이 감소되어 탄속과 사거리,정확성의 증가등이 있습니다.
해머단조공정을 거쳐 생산되었는데 단단하고 총열의 수명이 길지만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았고 제작비용이 비싸 Rifled rifling으로 대체되게 됩니다.
참고로 다각형 강선의 마지막 모델은 영국의 Lee-Metford 라이플입니다.
1869년 부터 1900년경까지 영국군에 의해 사용되었고 Lee-Enfield소총의 모태가되었던 소총이죠.
재미있는것은 강선의 모양을 mandrel식 제작방식을 사용하는 Rifled강선과는 다르게 돌출된 면을 Hill,플랫한 면을 valley라고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H&K社가 현대적인Polygonal rifling을 첫번째로 개발하고 이후 여러총기 제조회사의 하이엔드 라이플과 핸드건에 사용됩니다.
Polygonal rifling을 채택한 대표적으로 총기회사로는 Glock社, CZ社(CZ-82s),
Magnum Research社, Ceska zbrojovka社, Kahr Arms社, Heckler & Koch社(SR9/PSG-1/P7/USP9은 최근모델)등등이있으며, 멕시코 육군의 제식소총인 FX-05역시 다각형 강선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라진점은 금속가공 기술의 향상도있겠습니다만, 리드탄(lead bullets)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Kahr Arms社는 총강을 오염시키는 원인이되니 사용후 총기수입에 각별히 주의하라는
입장이고, Glock社는 리드탄과 호환이 않된다는 입장입니다.
H&K社는 리드탄 사용에 대해 경고하지는 않고있으나 이회사 제품의 총기사고와 리드탄이 관련되어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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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malfunction님~근거도 미약하시면서 자꾸 태클거시네요..
    자사방에 답변을 올리겠습니다.(현재는 서버가 에러나서 글이 않올라갑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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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년 제네바 협정에서 덤덤탄이나 납탄에 관한 목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문은 여기에 있으니 읽어보시기를.
    http://www.icrc.org/IHL.NSF/FULL/280?OpenDocument

    이미 1899년에 체결한 협정이라서 특별히 예기를 다시할 필요는 없었겠죠. 납이 몸에 있으면 좋은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몸에 맞았다고해서 납중독 걸릴정도의 납이 많이 나오는것은 아니죠. 만약 1925년 협정에서 재확인 했다면 그 협정에서 언급을 했겠죠.

    내가 말한 FMJ탄의 장점은 부수적인 이유가 아니고 실제로 만들어진 이유이라는 생각은 못하는것인지?

    총상사진은 권총이 아니라 엽총임. 발 바로 위에 두고 당겨서 생긴 상처임. 버드샷이 총구에서 나오자 마자 너덜나게 할정도록 하지는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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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덤덤탄을 설명하면서 JSP나 JHP탄과 같은 팽창성 납탄개념이라고 한것입니다.
    1899년 헤이그협정에서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전쟁시 사용을 금지한거 맞습니다.
    1925년 제네바협정에서 화학무기에 관한 논의만 했을까요? 1차세계대전후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지 않았겠습니까? 전쟁에서 사용해보니 리드탄은 인체에 치명적이라 부상병을 치료하던 의사들이 비인도적이라는 이슈를 만들었죠. 헤이그협정에 이어 납탄(리드탄) 사용금지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봐야됩니다.
    FMJ는 인체를 관통할 소지가 많습니다. 납탄은 인체에 맞으면 형태가 변형되면서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고 납의 독성이 피부를 썪게 만들지요. malfunction님께서 말씀하신 FMJ탄의 장점은 부수적인것이고 전쟁시 인체에 끼치는 해악이 적다는데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밑의 총상사진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핸드건을 수입할려다가 약실에 실탄이있는줄 모르고 방아쇠를 당긴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얼핏 생각해도 클레이 사격에 사용하는 버드샷이면 발가락이 너덜너덜해지지 않나요?^^
    뭐 그부분은 저도 진위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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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년 제네바 협정은 화학무기에 관한 협정이었습니다. JHP탄이나 기타 팽창하는 탄을 제약한 것은 1899년의 헤이그 조약입니다. 헤이그 조약에서도 FMJ탄을 인정한것이 아니라 팽창하는 탄을 금지하는 것이었습니다.

    FMJ탄의 경우 납탄보다는 좀더 외부영향(날씨, 충격)을 잘 견디고 총강에 납을 남기지 않아서 사용합니다.

    밑에서 두번째 사진은 9mm탄이 아니라 엽총때문에 생긴 상처입니다. 클레이 사격하는 사람들중 어떤 사람들은 총구를 발위에 올려놓는 버릇이 있는데, 당시 위 발의 주인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가 방아쇠를 당겨서 생긴 상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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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제가 둔해진건지(?) 잔인해 진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든 동물이든 실제로 폭발이나 무기로 박살(?)난 장면도 왠만한건 그냥 무덤덤(?)하게 봐지는 제 자신이 느껴집니다...가끔 저의 형님이 뒤에서 그런 사진 같이 볼때가 있는데 너 저런 사진 보고도 괜찮냐고 물어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제가 이상해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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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저도 정신과 치료좀 받아봐야 겠습니다...

    왜 저 사진을 보고 안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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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나저나 사진의 저분은 뼈가 날아간듯하니 보조삽입물을 넣어야 겠군요...별거 아닌 부상으로 보이지만 운이 나쁘면 평생 절뚝거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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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건 극초음속전봇대님이 이곳을 들르면서 '면역'이 된거죠^^;;; 군대에서도 '사고사례'교육을 하면서 안전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첨 봤을때는 '헉'했지만 이걸 우짜다보니 편집하고 교육강사역활을 하시는 지휘관분의 보조 역활을 하면서 자료를 지겹게 봤더니....당시 사람이 폭발에 의해서 상반신이 날아간 사진도...'음' 하면서 넘어간 기억이 납니다. 지금다시보면 헉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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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의사가 이토를 저격할 때 사용한 탄이 덤덤탄입니다. 그래서 법정에서는 제네바 협정에 위배되는 이 탄을 사용한 것을 빌미로 안의사를 테러범으로몰게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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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꾸난 사진은 예전에 할로우포인트 자료찾다가 저장한 사진인데 9mm권총으로 오발했다는것만 기억납니다. PPK였는지는 확인해드리기 힘들군요..
    Spencer 레버액션식 라이플이 나온게 1860년이고 Richard Jordan Gatling이 개틀링건을 완성한게 남북전쟁 초기인 1862년입니다.
    당시 금속가공 기술은 이미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력 보다는 전술개념이나 고위층의 보수적인 마인드에 무게를 두고싶습니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앞선 개념의 탄약을 개발해도 군대에서 퇴짜를 맞고는했지요.. 서양사람들이 새로운것을 좋아할것 같아도 은근히 새로운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때문에 손에 익숙한것 사용하던것에 애착을 갖습니다. 당시에 레버액션식 라이플은 주로 기병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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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전쟁사를 보면서 가장 기술적으로 의문이 들었던 것이 소총에 관한것인데
    전쟁전에도 이미 권총에서 회전식 리볼버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장식 소총을 지속적으로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더군요.
    정말 단순하게 비용상의 문제와 군수상의 문제로 군에서 거부한 것인지
    당시 총기기술자의 상상력이 부족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연발식 리볼버 구조 그대로 소총에 이식해도
    최소한 근접전용 연발 소총은 쉽게 만들수 있었을 텐데
    왜 전장식 소총을 고집해서 전쟁을 했는지...
    남북전쟁 중반엔 연발식 소총이 등장해서 꽤나 높은 성과와
    소총의 열악한 고장율로 유명한것은 알겠는데
    초기에는 왜 이런 응용이 불가능했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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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이상한건가요... 전혀 19같진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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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가락에 빵꾸난사람이요 예전에 PPK 주머니에넣다가 발쏜사람같은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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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19금인가 했더니;;; 아 식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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