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외교 차관은 방한, 대변인은 한국 비판
러 “尹, 북한 관련 발언 편향”
외교부 “무례한 궤변” 항의
입력 : 2024.02.05 03:11

한국과 러시아 외교 당국이 며칠 간격으로 거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이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북한 비판 발언에 대해 “노골으로 편향됐다”는 논평을 냈고, 한국 외교부는 “수준 이하의 무례하고 혐오스러운 궤변”이라고 맞받았다. 우리 정상의 북한 비판을 제3국이, 그것도 외교부 대변인급이 공개 비판한 것은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 특히 이번 논란이 러시아 고위급 인사가 방한해 양국 관계 개선을 논의하는 와중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북러 군사 협력으로 경색된 한·러 관계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4일 외교부에 따르면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아시아·태평양 차관은 지난 2일 방한해 한·러 고위급 회의를 가졌다. 윤 대통령 취임 후 러시아 고위 당국자가 공식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루덴코 차관은 김홍균 1차관을 예방하고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정병원 차관보와 만나 양국 간 현안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에 대해 협의했다. 우리 측은 북러 군사 협력에 대한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고 러시아가 이를 즉각 중단하는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상 의무를 철저히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 내 우리 국민과 기업의 정당한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러시아 측의 협조도 당부했다.

루덴코 차관의 방한은 반년 가까운 조율 끝에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후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한국에 고위급을 보낸 것에 대해 여전히 소통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관계 관리 의지가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양국 간 파열음은 다시 커졌다. 러시아 외무부 마리야 자하로바 대변인은 지난 1일(현지 시각) 논평에서 “‘북한 정권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 집단’이라는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노골적으로 편향됐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본 등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뻔뻔한 정책으로 한반도 및 주변에 긴장과 갈등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은) 혐오스러워 보인다”고도 했다. 북한의 잇단 도발과 핵 위협에 눈감고 우리 측의 대응을 억지 논리로 비난한 것이다. 타국 국가 수반의 발언을 외교부 대변인 수준에서 비판한 것도 심각한 외교적 결례다.

이 같은 사실은 러시아 언론 보도로 루덴코 차관 방한 도중 알려졌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3일 입장을 내고 “수준 이하로 무례하고 무지하고 혐오스러운 궤변”이라며 “북한의 위협적인 수사와 지속적인 무력 도발이 한반도와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또 “러시아의 지도자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지칭하는 것이야말로 국제사회를 호도하려는 억지에 불과하다”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거론했다.

외교부는 같은 날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 발언에 대해 엄중히 항의했다. 정병원 차관보는 러시아 측에 “진실을 외면한 채 무조건으로 북한을 감싸면서 일국 정상의 발언을 심히 무례한 언어로 비난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한러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의도를 놓고는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을 막기 위해 고의적으로 과잉 대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외교부 차관을 보내 대화를 재개한 만큼 확전은 자제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외교부 당국자는 “직접 와서 우리와 소통하려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고 앞으로 한러 관계의 추이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2일 서해상에서 순항미사일의 ‘초대형 전투부’ 위력 시험과 신형 지대공미사일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고 3일 조선중앙통신이 밝혔다. 순항미사일이 높은 각도로 발사(왼쪽)된 뒤, 육지를 향해 낮게 날아가(오른쪽 위), 목표 건물을 타격해 폭발했다(오른쪽 아래).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한편 북한은 지난 2일 서해상에서 순항 미사일 초대형 전투부 위력 시험과 신형 반항공(反航空·지대공)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북 장거리 순항미사일이 강력한 재래식 탄두는 물론 핵탄두도 장착할 수 있음을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 신형 대공미사일 시험 발사는 2021년 9월 이후 2년여 만이다.

북한 미사일 총국은 대변인 발표를 통해 “해당 시험들은 신형 무기 체계들의 기능과 성능, 운용 등 여러 측면에서의 기술 고도화를 위한 총국과 관하 국방과학연구소들의 정상적인 활동의 일환”이라고 했다.

통신은 이날 북 순항미사일이 낮게 날아 육지에 있는 목표 건물을 타격해 폭발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 등을 공개했다. 북 장거리 순항미사일에는 최대 450㎏의 탄두를 장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돼 왔다. 북한은 발사된 순항미사일 종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화살-1·2 형 또는 신형 ‘불화살-3-31′형의 탄두 중량을 늘린 대신 사거리는 줄인 형태로 분석된다.

북한은 신형 지대공 미사일 명칭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신형 번개 5·6호를 개량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 번개 5·6호는 러시아의 S-300, S-400 미사일을 모방한 것으로, 최대 120㎞ 이상 떨어진 항공기를 격추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최근 북·러 협력 강화 움직임 속에서 북한이 신형 대공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번개 5·6호의 개량형을 시험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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