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정상회담 후 ‘핵우산 문서’ 발표
백악관 “한일 관계 개선은 전세계에 선한 영향력… 바이든도 환영”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각)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 외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핵우산)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별도의 문건을 발표한다고 양국 당국자들이 25일 밝혔다. 그동안 양국 정부가 논의해온 이른바 ‘한국식 핵 공유’ 구상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 신고식에 참석해 기업 6곳으로부터 19억달러(약 2조5300억원) 투자 유치를 약속받았다. 윤 대통령은 미국 방문 첫날인 24일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로부터 25억달러(약 3조3300억원) 투자 방침을 전달받은 것을 비롯해 방미 이틀 만에 44억달러(약 5조8600억원) 투자 유치 성과를 얻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알링턴 국립묘지에 헌화 -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인근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무명용사탑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혜 홍보수석은 현지 브리핑에서 “보다 진전된 확장 억제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용산 대통령실 담당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확신하는 것은 한미 동맹의 굳건한 약속을 실현하고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확장 억제와 관련해 양국 정상 간 다양한 토론이 있을 것이고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시 미군 핵전력을 동원해 응징·보복한다는 기조를 문서에 명시해 핵우산 실행력과 대북 억지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미 양국이 한반도 핵 위협 상황과 억제 방안에 대한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미군 핵전력 운용과 관련한 기획·실행·연습도 공동으로 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양 정상은 작년 5월 서울 정상회담 때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핵 공격 위협 시 핵을 포함한 모든 역량을 한국 방어에 투입하는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을 재확인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본토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 방어를 위해 핵전력을 사용하겠느냐는 일각의 우려가 계속되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별도 문건을 채택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정상의 이런 구상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도발을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는 양국의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그동안 정상회담을 하면 한미 동맹 전반에 대한 합의 사항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해 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이 이전과는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고도화한 상황에서 실효적 핵우산 강화 방안을 담은 별도 문건을 채택함으로써 내용과 형식 면에서 한국민에겐 믿음을, 북한 정권엔 공포감을 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정보 공유, 위기 시 협의, 공동 기획, 공동 연습·실행 등 4가지 확장 억제 정책 범주에 대한 공조 방안을 진전시켜 왔다. 확장 억제는 한국이 북한 등의 핵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 핵으로 보복하는 핵우산을 비롯하여 미사일 방어(MD), 재래식 정밀 타격 무기 등 3개 요소로 구성돼 있다.

이번 확장 억제 강화 문건에는 나토 핵기획그룹(NPG)과 비슷한 상설 협의체를 만들어 유사시 핵전력 운용 전략 및 정책 등을 논의하는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다. 지난해 9월 양국 간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가 재개되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6년 신설된 EDSCG는 한미 외교·국방 차관보급 협의체인 데다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미국 측이 핵전력 운용 세부 계획을 거의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핵전력 운용 관련 공동 기획 차원에선 증대되는 북핵 위협에 맞춘 맞춤형 확장 억제를 보다 정교화하고 다양한 시나리오와 대응 방안에 대해 한미가 협의하는 형태를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동 실행과 관련해서는 “북한 핵 공격을 상정한 한미 연합훈련, 상시 배치에 준하는 미 전략 자산 수시 전개가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 정부 들어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됐지만 북한의 대남 핵 공격을 상정한 상황에 대해선 아직 연합 훈련이 이뤄진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 시 미국이 핵 보복에 나설 것임을 명문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재래식 전력과의 복합 대응 필요성을 감안해 표현 수위가 조절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이 자국의 핵전력 운용과 관련해 다른 나라와 문건 형태로 별도의 합의를 내놓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미국이 나토 회원국에 자국 전술핵을 배치해 놓고 유사시 공동 운용하는 이른바 나토식 핵 공유를 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한국 안보 당국자들은 “북한의 대남(對南) 핵 위협은 나토 회원국에 대한 러시아의 핵 위협과 비교해 훨씬 심각하다”면서 “한국과 나토 회원국이 직면한 핵 위협의 차이에 걸맞은 별도의 확장 억제 문건을 한미가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도 방미 직전 외신 인터뷰에서 “나토 이상의 강력한 대응”을 언급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조야 일각에서 한국의 독자 핵무장 주장이 점점 커지는 상황도 별도 문건 채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핵 공유’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는 오히려 자체 핵무장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양국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커비 조정관은 이날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한일 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윤 대통령의 지도력에 감사한다는 뜻을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은) 한일 양국 관계뿐 아니라 역내에서도 개선·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다”면서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일 3자 관계를 강화해나가길 바라는 열망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커비 조정관은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 국가로 (미국은) 매우 존중하고 귀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면서 “(그런 두 나라가) 관계를 개선하는 건 역내에도 좋은 일이고 전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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