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03 중전차
실전에 배치되었던 미국의 유일한 중전차
  • 남도현
  • 입력 : 2022.07.14 08:49
    M103은 미국이 실전에 배치했던 유일한 중전차다. 하지만 성공작은 아니었다. < (cc) Curtisw7 at Wikimedia.org >
    M103은 미국이 실전에 배치했던 유일한 중전차다. 하지만 성공작은 아니었다. < (cc) Curtisw7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여타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과 비교하면 미국은 전차를 늦게 접한 편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현지에서 구매하는 것은 물론 면허 생산해서 사용했을 만큼 전차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봤다. 그런데 적극적인 일선의 의욕과 달리 종전이 되자 전차에 대한 정책 당국의 관심은 급격히 줄었다. 군비를 축소해야 하는 데다 지리적으로 경쟁국들과 대양으로 떨어져 있기에 해군이 우선시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에 등장해 티거 전차를 제압한 M26. 처음에는 중전차로 구분했으나 전후 중형전차로 재분류되었다. < (cc) Josh Hallett at Wikimedia.org >
    제2차 세계대전 말에 등장해 티거 전차를 제압한 M26. 처음에는 중전차로 구분했으나 전후 중형전차로 재분류되었다. < (cc) Josh Hallett at Wikimedia.org >

    육군이 기술 채택이나 전력화에 소극적이자 분노한 월터 크리스티(Walter Christie) 같은 엔지니어는 자신이 개발한 결과물과 기술을 적성국인 소련에 판매했을 정도였다. 그의 영향으로 탄생한 전차가 부지기수지만 특히 T-34(뒤에 언급되는 T34와 별개)는 유명하다. 이처럼 부족한 점이 많은 상태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자 부랴부랴 투자를 늘려서 개발한 M4 중형전차를 1942년부터 전선에 투입할 수 있었다.

    비록 M4는 승전의 공신이었으나 엄청난 물량 덕분이지 정작 일선에서는 불만이 많았다. 독일의 5호, 6호 전차에 절대 열세여서 피해가 많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가장 큰 이유는 화력과 방어력의 차이, 즉 체급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에 맞설 수 있는 중전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정작 전차의 개발과 공급을 주도하는 AGF(육군 지상군 사령부)가 이를 무시했다.

    M103의 기반이 되었던 T34 프로토타입. < Public Domain >
    M103의 기반이 되었던 T34 프로토타입. < Public Domain >

    생산, 보급 등의 이유로 최대한 보유 무기를 단순화시키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서 M4를 마치 오늘날 MBT(주력전차)처럼 취급한 것이었다. 결국 아이젠하워의 격렬한 항의까지 받고 난 후에야 묵혀 두었던 중전차 사업을 재개해 M26을 데뷔시킬 수 있었으나 독일이 항복하기 전까지 겨우 310대만 투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에야 중전차의 가치를 깨달았다.

    전후에 중형전차로 재구분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M26도 진정한 의미의 중전차는 아니었다. 1944년에 미국은 독일이 6호 전차 B형을 투입하자 M26으로는 역부족이라 판단하고 기존 T30 프로토타입 중전차에 120mm M1 대공포를 장착한 T34 프로토타입 중전차를 개발하던 중이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제2차 대전 종전 시점까지 실전에 투입된 미국의 중전차는 없었다.

    T43 프로토타입. T34와 비교할 때 포탑의 구조가 상당히 바뀌고 차체가 조금 단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개량한 T43E1이 M103으로 제식화되었다. < Public Domain >
    T43 프로토타입. T34와 비교할 때 포탑의 구조가 상당히 바뀌고 차체가 조금 단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개량한 T43E1이 M103으로 제식화되었다. < Public Domain >

    만일 제1차 대전 종전 후처럼 질서 재편이 되어 대대적인 군축이 단행되었다면 미국의 중전차 개발은 거기서 중단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련이 급부상하고 새로운 대립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자 상황이 바뀌었다. 1945년 9월 7일에 베를린에서 열린 연합국 합동 전승 기념 퍼레이드에서 소련이 122mm 주포를 장착한 IS-3을 선보이자 미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추후 밝혀진 성능은 예상을 밑돌았지만 처음 마주한 IS-3은 외형만으로도 기존에 존재하던 모든 전차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이에 미국은 종전으로 개발이 멈춘 T34를 바탕으로 1948년 2월에 58톤 규모의 T43 프로토타입 중전차 사업을 시작했다. 포탑의 방어력 향상에만 신경을 쓴 T34와 달리 T43은 경사장갑을 이용한 IS-3을 벤치마킹해서 포탑, 차제 모두를 대대적으로 개량할 계획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개발이 완료되기도 전인 11월에 80대가 선주문 되었고 이듬해 초에 300대로 늘어났다. 1951년 6월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어 2년간 각종 실험을 거쳐 문제점을 개선한 T43E1이 1953년 한국으로 보내졌다. 전투에 투입되지는 않았으나 휴전 후인 1954년까지 전력화 테스트를 거치고 나서 제식 부호 M103을 부여받고 1957년부터 실전 배치가 시작되었다.


    특징

    M103의 외형은 같은 시기에 개발되어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거나 현재도 일선에서 활약 중인 M48과 상당히 유사하다. 특히 완만하게 둥근 타원형 포탑, 정면이 60도 경사를 갖춘 차체 그리고 독립 토션 바로 지지되는 로드 휠 구조 등이 같다. 전반적으로 M48의 크기가 확대된 형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T43의 제작에 M48의 프로토타입인 T48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M103은 전반적으로 M48을 확대한 형태다. < (cc) Max Smith at Wikimedia.org >
    M103은 전반적으로 M48을 확대한 형태다. < (cc) Max Smith at Wikimedia.org >

    압연 장갑 외에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주조 장갑을 많이 채택해서 중량을 줄였다. 때문에 T34보다 무게가 5톤 가까이 덜 나갔다. 장갑은 차체 정면이 127mm, 포탑 정면이 254mm인데, 이는 IS 전차의 122mm D-25 주포, T-55의 100mm D-10 주포의 철갑탄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측면, 후면, 상부의 장갑은 빈약해서 무게에 비해 방어력이 전반적으로 강력한 수준이라 하기는 곤란하다.

    120mm M1 대공포를 개수한 68.5구경장 주포의 공격력은 IS-3, T-55의 정면을 쉽게 관통할 수 있다. 물론 구경이 같다고 위력이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나 서방 전차의 경우 제3세대 전차부터 120mm 포를 탑재했다는 점을 상기하자면 가히 당대를 벗어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M103은 정면 대결 시 모든 소련 전차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면 상대는 격파할 수 있는 공격력을 보유했다.

    M103의 구조도. 5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데 장전수가 2명이다. < (cc) Alexpl at Wikimedia.org >
    M103의 구조도. 5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데 장전수가 2명이다. < (cc) Alexpl at Wikimedia.org >

    강력한 공격력과 두터운 방어력 때문에 M103은 덩치가 클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무게도 많이 나간다. 사실 오늘날 대부분 MBT들이 60톤 내외이므로 이와 비교하면 무겁다고 할 수 없는데 당시는 엔진의 성능이 뒤져서 최고 시속이 37km밖에 나오지 않았다. 디젤엔진이 탑재된 후기형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연비도 몹시 나빠 주행 거리가 130km에 미치지 못했다. 한마디로 강하지만 느린 전형적인 중전차였다.


    운용 현황

    M103은 총 300대가 생산되었다. 같은 시기에 개발된 M48, M60이 1만 대가 넘고 임시 대타 역할을 담당했던 M47도 9천 대 정도 제작되었다는 점과 비교한다면 양산에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신뢰도가 떨어졌다. 배치된 직후부터 100건 가까운 문제점이 발견되어 운용하면서 동시에 계속해서 개량해야 했다. 중량이 엔진과 변속기에 무리를 주어 일선에서 정비 요소가 많았던 점도 감점 요인이었다.

    M103은 여러 이유로 300대만 제작되고 생산이 종료되었다. < (cc) Bachcell at Wikimedia.org >
    M103은 여러 이유로 300대만 제작되고 생산이 종료되었다. < (cc) Bachcell at Wikimedia.org >

    한국에서 운용해 본 후 실시된 의회 감사에서 핵전쟁까지 상정한 장차전에 부적합하다는 결론까지 나온 데다 미국 최초의 MBT인 M60이 본격 도입되면서 제한적인 용도로 사용할 것을 전제로 개발된 M103의 입지가 좁아졌던 것도 커다란 이유였다. 때문에 본격적으로 양산이 시작된 직후부터 육군의 관심이 멀어졌고 마지못해 80대를 인수했다. 이를 기반으로 1개 중전차대대를 창설해 유럽에 배치했다.

    반면 해병대가 220대를 수령한 후 각 전차대대 예하에 1개 중전차중대를 편성해서 운용했다. 거리측정기 개량, 디젤엔진으로 환장한 M103A2처럼 해병대는 꾸준히 성능 개선을 실시해서 1973년까지 요긴하게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M103은 육군의 요구로 탄생해 미국이 실전에 배치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중전차였지만 정작 육군에게는 버림받고 해병대가 애용한 전차로 삶을 살다가 사라졌다.

    상륙 훈련에 투입된 미 해병대의 M103. 육군의 소요 제기로 개발되었으나 정작 해병대가 애용했다. < (cc) Anefo at Wikimedia.org >
    상륙 훈련에 투입된 미 해병대의 M103. 육군의 소요 제기로 개발되었으나 정작 해병대가 애용했다. < (cc) Anefo at Wikimedia.org >



    변형 및 파생형

    T43E1: 최초 양산형. 프로토타입 6대 포함 300대.
     
    M103: T43E1 성능 개량 실전 배치형. 74대 개량.

    M103 < (cc) Big Juju at Wikimedia.org >
    M103 < (cc) Big Juju at Wikimedia.org >

    M103A1: T52 스테레오 조준기와 T33 탄도 컴퓨터 등을 탑재한 개량형. 219대 개량.
     
    M103A2: 주행 성능 향상을 위해 AVDS-1790-2 공랭식 디젤엔진과 CD860-6A 트랜스미션을 장착한 개량형. 208대 개량.

    M103A2 < (cc) Simon Q at Wikimedia.org >
    M103A2 < (cc) Simon Q at Wikimedia.org >


    제원(M103A2)

    생산 업체: 크라이슬러
    도입 연도: 1957년
    중량: 58톤
    전장: 11.33m
    전폭: 3.71m
    전고: 3.20m
    장갑: 압연장갑
    무장: M58 120mm 강선포×1
            12.7mm M2 중기관총×1
    엔진: 콘티넨탈 AVDS-1790-2 V12 트윈터보 공랭식 디젤엔진 750마력(560kW)
    변속기: GMC사 CD860-6A 트랜스미션
    추력 대비 중량: 12.7마력/톤
    서스펜션: 토션 바
    항속 거리: 480km
    최고 속도: 37km/h
    양산 대수: 300대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M103 중전차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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