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82 전투기
짧았던 생애를 산 한국전쟁 최초의 공중전 승자
  • 남도현
  • 입력 : 2022.07.11 08:40
    F-82는 항공 무기사의 전설인 P-51을 병렬로 연결한 장거리 호위전투기다. 이를 기반으로 한 야간전투기형도 존재한다. < Public Domain >
    F-82는 항공 무기사의 전설인 P-51을 병렬로 연결한 장거리 호위전투기다. 이를 기반으로 한 야간전투기형도 존재한다.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제2차 대전 당시에 하늘의 주인공이 전투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정작 전쟁을 이끈 일꾼은 폭격기였다. 사실 전투기가 제공권을 확보하는 이유도 폭격기가 원활히 작전을 펼치도록 하기 위함이다. 1939년 9월, 독일의 폭격기들이 폴란드에 폭탄을 투하하면서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고 1945년 8월, 미국의 폭격기가 연이어 두 방의 핵폭탄을 일본 열도에 떨어뜨리면서 인류사 최대의 비극이 끝났을 정도다.

    이 시기에 여러 나라에서 만든 다양한 종류의 폭격기들이 활약했는데, 미국의 중폭격기들은 가히 발군이었다. 그중 유럽에서 활약한 B-17, 일본 열도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B-29가 대표적이다. 전선 인근에서만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추축국의 폭격기들과 달리 미국의 중폭격기들은 많은 폭탄을 탑재하고 멀리 날아가 적 후방의 주요 시설을 맹타했다. 그렇게 타격을 입은 상대방은 전쟁 수행 의지가 급격히 꺾였다.

    P-51 전투기가 B-17 폭격기를 호위하는 재현 장면. 이처럼 폭격기는 무서운 무기지만 보호를 받아야 할 만큼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 (cc) Tim Felce (Airwolfhound) at Wikimedia.org >
    P-51 전투기가 B-17 폭격기를 호위하는 재현 장면. 이처럼 폭격기는 무서운 무기지만 보호를 받아야 할 만큼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 (cc) Tim Felce (Airwolfhound) at Wikimedia.org >

    그렇다고 미국의 폭격기가 천하무적은 아니었다. 덩치가 큰 만큼 기동력이 뒤져서 쉽게 전투기에게 요격당했고 대공포에도 안전하지 못했다. B-17의 경우 생산량 중 30퍼센트가 넘는 5,000여 기가 작전 중 추락이나 격추를 당했는데, 이는 제2차 대전 중에 미군의 모든 병과나 무기 운용 제대를 통틀어 가장 컸던 손실률이었다. 적에게는 무서운 존재지만 그만큼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당연히 폭격기를 보호하는 임무는 상당한 고민거리였다. P-47, P-51처럼 적의 요격기와 맞설 수 있는 뛰어난 전투기가 있었으나 이들이 폭격기를 호위하는 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폭격기보다 항속 거리가 짧아서 종종 동행이 어려운 경우가 생기고는 했던 것이다. 항속 거리가 길고 장시간 비행이 가능한 새로운 호위기가 필요했다. 폭격기의 작전 거리가 멀었던 태평양 전선에서 더욱 그러했다.

    1948년 네브래스카의 키니 기지에 F-82E와 함께 주기된 B-29. F-82의 탄생 목적과 임무를 알 수 있는 사진이다. < Public Domain >
    1948년 네브래스카의 키니 기지에 F-82E와 함께 주기된 B-29. F-82의 탄생 목적과 임무를 알 수 있는 사진이다. < Public Domain >

    F-82 트윈머스탱(Twin Mustang)은 그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한 장거리 전투기다. F-82는 1943년 10월, B-29의 배치를 앞둔 미 육군이 노스아메리칸사에 새로운 초장거리 호위기 제작을 의뢰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당국이 요구한 최소 2,000마일(3,200km)의 비행 능력은 미국이 최우선 점령 목표로 삼은 티니안, 괌 등에서 일본 본토까지의 거리였다. 기존에 사용 중인 전투기로 비행은 가능하나 임무 수행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공간이 넓고 복수의 조종사가 탑승하는 폭격기와 달리 좁은 콕핏에 1명의 조종사가 탑승하는 전투기로 6~8시간 가까이 비행하기는 어려웠다. 때문에 노스아메리칸은 복수의 조종사가 교대로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복좌형에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려면 필연적으로 기체의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실패작인 독일의 Bf 110, 일본의 Ki-45 사례에서 보듯이 기동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P-38은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쌍발기였지만 1인승이어서 장시간 비행이 어렵고 194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전투기로서의 성능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 (cc) Greg Goebel at Wikimedia.org >
    P-38은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쌍발기였지만 1인승이어서 장시간 비행이 어렵고 194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전투기로서의 성능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 (cc) Greg Goebel at Wikimedia.org >

    호위기의 상대가 적 전투기이므로 비행 거리가 늘어나더라도 여타 비행 성능이 떨어지면 곤란했다. 이에 노스아메리칸은 커다란 쌍발기 대신에 성능이 검증된 2기의 P-51을 병렬로 연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예상만큼 개발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사내 코드 NA-120으로 명명된 신예기는 연결 부위 주익 구조가 대폭 변경되고 연료 탑재량 증가를 위해 전장이 늘어나면서 대대적으로 재설계를 해야 했다.

    NA-120을 검토한 육군은 1944년 1월 7월, P-82 제식 부호를 부여하고 3기의 XP-82 시제기 제작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듬해 3월 500기의 양산형 P-82B가 발주되었다. 지금도 미국의 자부심인 P-51에 대해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기에 그만큼 P-82에 기대가 컸던 것이었다. 1945년 6월 15일 초도 비행에 성공하고 각종 실험을 통과했다. 그러나 두 달 후 종전이 되면서 발주량이 100기로 대폭 줄었다.

    1947년 2월 27일, 뉴욕을 향해 하와이 히캄 기지를 이륙하는 P-82B-NA. 피스톤 엔진기로는 재현하기 어려운 엄청난 장거리 비행 기록을 남겼다. < Public Domain >
    1947년 2월 27일, 뉴욕을 향해 하와이 히캄 기지를 이륙하는 P-82B-NA. 피스톤 엔진기로는 재현하기 어려운 엄청난 장거리 비행 기록을 남겼다. < Public Domain >

    더해서 엔진 조달에 문제가 생기면서 양산이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1947년 2월 27일, 하와이에서 뉴욕까지 8,129km를 14시간 32분 동안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현재까지 레시프로기로는 가장 길고 가장 빠른 기록이다. 이후 소련과 대립이 격화되자 본격 생산이 개시되었고 1948년부터 일선 배치가 이루어졌다. 때마침 육군 항공대에서 독립한 공군의 새로운 제식 부호 체계에 따라 F-82로 재명명되었다.


    특징

    F-82는 경량형 전투기로 연구 중이던 XP-51F을 수평으로 연결한 형태다. 주익 연결 부위에 6문의 M3 기관총을 집중해서 장착했다. 수평 미익은 안쪽 연결 부위에만 설치되고 수직 미익은 동체와 날개 접합부에서 발생하는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필렛과 통합했다. 동체를 연장해 내부 연료 탑재량이 늘어났고 폭탄이나 로켓을 장착할 수 있는 외부 하드포인트에도 최대 4개의 외부 연료탱크를 달 수 있다.

    P-51D와 합동 비행 중인 F-82. 동체가 연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 Public Domain >
    P-51D와 합동 비행 중인 F-82. 동체가 연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 Public Domain >

    쌍동체여서 좌우에 각각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엔진과 프로펠러를 장착해서 토크를 상쇄시켰다. 때문에 이착륙과 비행 중 자세 제어가 비교적 쉬었다. 개발 당시에는 P-51처럼 패커드에서 면허 생산한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을 장착했으나 전후 영국이 로열티를 인상하자 양산형은 미국산 앨리슨 엔진을 탑재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출력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로 인해 실험용 XP-82가 양산형보다 속도가 빨랐다.

    처음부터 장거리 비행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어서 교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종은 좌우 양쪽 모두에서 할 수 있다. 조종하지 않는 쪽에서 오작동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선임이 좌측에 탑승해서 조종뿐 아니라 비행에 관한 전반적인 상황을 관리한다. 그래서 레이더를 장착한 야간전투기형은 좌측에서만 조종하고 우측은 레이더 오퍼레이터가 탑승한다.

    알래스카 데이비스 기지에 배치된 F-82E. < Public Domain >
    알래스카 데이비스 기지에 배치된 F-82E.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F-82는 총 273기가 생산되었고 전량 미군이 사용했다. 탄생 목적이 폭격기 호위여서 전략공군사령부, 방공사령부에서 운용했다. 폭격기가 이륙한 직후부터 호위할 필요는 없으니 일부는 알래스카, 일본 등에 전진 배치되었다. 최초 실전은 한국전쟁에서 치렀다. 개전 다음 날인 6월 26일, 일본 이타즈케 기지(현 후쿠오카 공항)에 배치된 미 공군 제68전투비행대대 소속 F-82G 4기가 주한 외국인 철수 작전에 투입되어 공중 엄호를 담당했다.

    이타즈케를 출발해 한반도 상공으로 향하는 제339전투비행대 소속 F-82G 편대. 한국전쟁 최초로 공중전을 벌여 승리했다. < Public Domain >
    이타즈케를 출발해 한반도 상공으로 향하는 제339전투비행대 소속 F-82G 편대. 한국전쟁 최초로 공중전을 벌여 승리했다. < Public Domain >

    북한 전투기가 다가왔으나 교전 허가를 받지 못해 그날은 회피했다. 하지만 김포공항에 착륙한 C-54 수송기가 공격을 받고 파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다음날 오전 11시 50분에 제339전투비행대 소속 F-82G 4기와 YAK-9S, YAK-11S, La-7s 등 5기의 전투기로 구성된 북한 공군 편대 간에 공중전이 벌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전쟁 최초의 공중전에서 F-82 편대는 3기의 적기를 격추시키며 승리했다.

    이후 1951년까지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으나 공산군이 MiG-15를 투입한 이후 일선에서 물러났다. 레시프로 전투기로는 속도가 빠른 편이었어도 어느덧 제트전투기와 대결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결과였다.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적진에서 공중전을 벌이기에는 버겁게 상황이 바뀌다 보니 배치된 지 불과 5년 만인 1953년에 미 공군에서 완전히 퇴역했다.

    노스아메리칸 공장에서 생산 중인 F-82. 바로 옆에서 함상 제트전투기인 FJ-1이 함께 만들어지고 있다. 제트 시대의 도래로 일찍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 Public Domain >
    노스아메리칸 공장에서 생산 중인 F-82. 바로 옆에서 함상 제트전투기인 FJ-1이 함께 만들어지고 있다. 제트 시대의 도래로 일찍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XP-82: 멀린 엔진 장착 프로토타입. 2기.

    XP-82 < Public Domain >
    XP-82 < Public Domain >

    XP-82A: 앨리슨 엔진 장착 프로토타입. 1기.
     
    YP-84A: 실험용 시제기. 15기.
     
    P-82B: 초기 양산형. 20기.

    P-82B < Public Domain >
    P-82B < Public Domain >

    P-82C: SCR-720 레이더 장착 야간전투기형. 1기 개조.

    P-82C < Public Domain >
    P-82C < Public Domain >

    P-82D: APS-4 레이더 장착 야간전투기형. 1기 개조.
     
    F-82E: V-1710-143 / V-1710-145 엔진 장착 양산형. 100기.

    F-82E < Public Domain >
    F-82E < Public Domain >

    F-82F: AN/APG-28 레이더 장착 야간전투기형. 100기.

    F-82F < Public Domain >
    F-82F < Public Domain >

    F-82G: SCR-720C18 레이더 장착 야간전투기형. 50기. 9기 개조.

    F-82G < Public Domain >
    F-82G < Public Domain >

    F-82H: F-82F, F-82G 기반 한랭지 작전용. 15기 개조.

    F-82H < Public Domain >
    F-82H < Public Domain >



    제원(F-82G)

    전폭: 15.62m
    전장: 12.93m
    전고: 4.22m
    주익 면적: 37.9㎡
    최대 이륙 중량: 11,608kg
    엔진: 우/앨리슨 V-1710-143(1,680kW)×1
            좌/앨리슨 V-1710-145(1,680kW)×1
    최고 속도: 742km/h
    실용 상승 한도: 11,900m
    전투 행동반경: 3.600km
    무장: 12.7mm M3 브라우닝 기관총×6
            130mm 로켓×25
            1,050 폭탄×4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F-82 전투기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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