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S 크라프 자주포
브레이브하트의 머리와 K-9의 몸을 결합한 폴란드의 자주포
  • 남도현
  • 입력 : 2022.06.10 08:39
    AHS 크라프는 52구경장 155mm 주포를 장착한 폴란드군의 주력 자주포다. < (cc) Sejm RP at Wikipedia.org >
    AHS 크라프는 52구경장 155mm 주포를 장착한 폴란드군의 주력 자주포다. < (cc) Sejm RP at Wikipedia.org >


    개발의 역사

    1997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가 NATO 가입협정에 서명했다. 기존 회원국들의 의회 비준이 필요해서 정식으로 자격을 얻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이는 단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그렇게 NATO는 1990년 서독에 흡수된 동독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옛 동구권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이들 국가가 독일을 대신해 NATO의 새로운 최전선이 되었다.

    냉전 시기에 폴란드군이 400여 문 가까이 보유했던 소련제 122mm 2S1 자주포. 현재도 200문 정도 사용 중이나 주포가 NATO 규격이 아닌 데다 노후되어 순차적으로 교체되는 중이다. < Public Domain >
    냉전 시기에 폴란드군이 400여 문 가까이 보유했던 소련제 122mm 2S1 자주포. 현재도 200문 정도 사용 중이나 주포가 NATO 규격이 아닌 데다 노후되어 순차적으로 교체되는 중이다. < Public Domain >

    회원국 자격을 얻으면서 바뀌게 되는 것이 많지만 일단 NATO 표준을 따라야 했다. 그렇다고 기존에 보유한 소련제 무기를 일거에 바꾸기는 불가능하므로 도태되는 무기나 장비부터 순차적으로 교체하는 방식을 택했다. 폴란드는 가입협정에 서명한 바로 그해에 노후된 소련제 122mm 2S1 자주포 대체 사업을 시작했다. 연구 결과 21세기 중반까지 주력으로 활약하려면 52구경장 155mm 포신을 갖춘 자주포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폴란드는 그때까지 NATO 표준인 155mm 포를 제작하거나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이에 주포와 포탑을 도입 혹은 면허 생산해서 폴란드가 국산 전차, 자주포, 장갑차 등에 공통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국내 방산업체인 OBRUM이 개발한 UPG-NG 차체와 결합하기로 결정했다. 배치를 앞당기고 동시에 기술 습득 및 국산화를 동시에 진행하려 한 것이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상당히 합리적인 결정처럼 보였다.

    폴란드산 UPG-NG 차체를 사용한 초기형 AHS 크라프. 총 8대가 제작되었는데 이 또한 K-9 차체로 교체할 예정이다. < (cc) Ministerstwo Obrony Narodowej at Wikipedia.org >
    폴란드산 UPG-NG 차체를 사용한 초기형 AHS 크라프. 총 8대가 제작되었는데 이 또한 K-9 차체로 교체할 예정이다. < (cc) Ministerstwo Obrony Narodowej at Wikipedia.org >

    가장 중요한 포탑을 놓고 영국의 BAE 시스템스와 독일의 크라우스마파이/라인메탈이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BAE 시스템스가 제출한 AS-90 개량형인 브레이브하트(Breveheart) 포탑이 PzH 2000 포탑을 누르고 승자가 되었다. 브레이브하트는 성능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영국이 냉전 종식 후 양산을 포기한 상태였다. 덕분에 비록 완제품은 아니나 포탑이라도 폴란드에서 생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그렇게 해서 1999년 AHS 크라프(Krab)로 명명된 새로운 자주포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BAE 시스템스의 지도를 받아 스타로바-보라제철소(Stalowa Wola)에서 생산된 포탑을 자주포용으로 개량한 UPG-NG 차체에 탑재하는 것이므로 기술적으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2008년 실전 배치를 목표했으나 예상치 못한 여러 이유로 말미암아 2012년 이후로 미루어졌다.

    K-9 차체를 사용해서 고질적인 반동 문제를 해결한 양산형 AHS 크라프. < (cc) Gerrit Burow at Wikipedia.org >
    K-9 차체를 사용해서 고질적인 반동 문제를 해결한 양산형 AHS 크라프. < (cc) Gerrit Burow at Wikipedia.org >

    경제 상황의 악화 등이 있었지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UPG-NG 차체가 사격 시 발생하는 반동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연사가 어려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차체에 균열까지 발생하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었다. 폴란드 국방부가 채택 불가 판정을 내렸고 OBRUM은 BAE 시스템스의 협조를 받아 조치에 나섰다. 그런데도 6년이 지난 2008년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BAE 시스템스는 브레이브하트 차체 사용을 권고했다. 사실 국산화를 고집하지 않고 처음부터 그렇게 일괄 도입 혹은 면허 생산했다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폴란드 국방부가 선택한 것은 한국의 K-9 자주포 차체였다. 가격과 품질도 좋았지만 폴란드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에 적극적이었던 점이 고려된 결과였다. 2014년에 24대는 한국에서 직도입하고 96대는 폴란드 현지에서 제작하기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BAE 시스템스가 반발했지만 K-9 차체를 선정한 결정은 대성공이었다. 문제가 해결되면서 2015년부터 양산이 시작되어 2025년 완료를 목표로 순차적으로 생산과 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AHS 크라프에 대한 폴란드군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체제가 바뀌는 격변기를 배경으로 우여곡절을 겪고 탄생한 준수한 성능의 흥미로운 자주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징

    개발 과정에서 알아본 것처럼 AHS 크라프의 가장 큰 특징은 K-9 차체와 결합한 브레이브하트 포탑이다. 기존 전차 차체가 기반인 영국의 AS-90, 프랑스의 AU-F1, 러시아의 2S19도 존재하기에 최초 폴란드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52구경장 155mm 포의 강력한 위력을 감당하기에 상대적으로 작은 소련제 전차를 기반으로 개발된 UPG-NG 차체가 충분하지 않았다.

    NATO 표준인 52구경장 155mm 주포를 장착해 강력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다. < (cc) VoidWanderer at Wikipedia.org >
    NATO 표준인 52구경장 155mm 주포를 장착해 강력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다. < (cc) VoidWanderer at Wikipedia.org >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자주포들은 모든 설비가 포탑에 집중되어 승무원 활동 공간이 좁은 단점이 있다. 반면 AHS 크라프는 자주포 전용으로 개발된 K-9 차체를 이용하면서 조금 더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한마디로 AHS 크라프는 자주포에게 있어 차체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준 사례다. 폴란드가 이를 이용해 자주대전차미사일, 자주대공포, IFV를 개발 혹은 구상 중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상당히 만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폴란드가 동유럽 평원에 위치한 관계로 장거리 포격전을 대비해 사업 구상 당시에 많이 사용하던 39구경장 대신 52구경장 포신을 택했다. 때문에 경쟁 155mm 자주포와 비교할 때 공격력은 그다지 차이가 없다. 프로토타입에는 영국제 포신을 사용했으나 양산형은 프랑스의 넥스터에서 공급받는다. TOPAS 사격통제 시스템, 81mm 연막탄 발사기, DD-9620 터미널, MVRS-700 SCD 탄도 레이다 등 장비는 국산을 사용한다.

    많은 폴란드산 장비가 탑재된 AHS 크라프 전투실. 개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폴란드는 국산화 비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 (cc) Pibwl at Wikipedia.org >
    많은 폴란드산 장비가 탑재된 AHS 크라프 전투실. 개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폴란드는 국산화 비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 (cc) Pibwl at Wikipedia.org >



    운용 현황

    AHS 크라프는 전량 폴란드가 사용 중이다. 아직 실전 경험은 없다. 부품이나 기술 도입 시에 권리관계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많은 나라의 제작사들이 관여한 관계로 제3국 수출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2025년까지 총 120대를 목표로 양산과 배치가 순차적으로 진행 중인데, 최근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인해 배치 시기는 물론 도입량도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AHS 크라프는 전량 폴란드가 사용 중이며 2025년 사업 종료를 목표로 현재도 생산과 배치가 진행 중이다. < (cc) Jarosław Kruk (Jrkruk) at Wikipedia.org >
    AHS 크라프는 전량 폴란드가 사용 중이며 2025년 사업 종료를 목표로 현재도 생산과 배치가 진행 중이다. < (cc) Jarosław Kruk (Jrkruk) at Wikipedia.org >



    변형 및 파생형

    AHS 크라프: 넥스터 포신을 장착한 AS-90 브레이브하트 포탑을 K-9 자주포 차체와 결합한 폴란드산 자주포

    AHS 크라프 < (cc) ppłk Szczepan Głuszczak at Wikipedia.org >
    AHS 크라프 < (cc) ppłk Szczepan Głuszczak at Wikipedia.org >

    AS-90 브레이브하트: 52구경장 155mm 주포, BMS 사통장치를 장착한 영국산 AS-90 자주포 개량형. 국방 예산 감축에 따라 양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AS-90 브레이브하트 < (cc) Luís Tavares at Pinterest.co.kr >
    AS-90 브레이브하트 < (cc) Luís Tavares at Pinterest.co.kr >

    K-9: 52구경장 155mm 주포를 탑재한 대한민국산 자주포.

    K-9에 기반한 터키의 T-155 프르트나 자주포 < (cc) MKFI at Wikipedia.org >
    K-9에 기반한 터키의 T-155 프르트나 자주포 < (cc) MKFI at Wikipedia.org >



    제원

    전장: 12.05m
    전고: 3.0m
    전폭: 3.6m
    중량: 48톤
    주무장: 155mm L/521 주포 1문
    최대 사거리: 40km
    발사 속도: 분당 6발(최대 발사)
    승무원: 5명
    부무장: 12.72mm WKM-B 1정
    엔진: STX-MTU MT881 Ka-500 수랭식 V8 터보 디젤엔진(1.000마력)
    톤당 마력: 20.8마력/톤
    장갑: 최대 17mm
    현가장치: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
    주행 거리: 400km(도로 주행)
    최고 속도: 67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AHS 크라프 자주포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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