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스터 재블린 전투기
기대가 컸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성능
  • 남도현
  • 입력 : 2022.06.02 08:25
    1955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시범 비행 중인 재블린 FWA 1. 야간 전투가 가능한 영국의 제2세대 전투기다. < (cc) RuthAS at Wikipedia.org >
    1955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시범 비행 중인 재블린 FWA 1. 야간 전투가 가능한 영국의 제2세대 전투기다. < (cc) RuthAS at Wikipedia.org >


    개발의 역사

    1960년대에 전투기의 독자 개발을 포기하다 보니 현재 해당 분야에서 영국의 위상이 크지 않다고 느끼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국제 협력을 통해 탄생한 SEPECAT 재규어, 파나비아 토네이도, 유로파이터 타이푼, F-35의 탄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만큼 영국은 여전히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다시 말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독자 개발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영국은 제2차 대전 때까지 당대 최고의 전투기를 만들어 사용해 왔다. 종전 후에도 그런 흐름은 여전해서 초창기 제트 시대를 선도했다. 영국이 개발한 고성능의 제트엔진은 미국, 소련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나치를 상대로 함께 싸운 우의를 기리기 위해 소련에게 제공한 롤스로이스 넨 엔진은 소련 전투기의 위상을 급격하게 끌어올려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재블린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정작 당시 등장한 여타 경쟁기보다 비행 성능이 뒤져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 (cc) David Merrett at Wikipedia.org >
    재블린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정작 당시 등장한 여타 경쟁기보다 비행 성능이 뒤져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 (cc) David Merrett at Wikipedia.org >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처럼 바로 그때부터 영국 전투기의 쇠락이 시작되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여서 여러모로 영국의 상황은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일시적인 상황이 아니라 앞으로 제국의 위엄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했다. 예전처럼 전력을 유지하고 싶어 했던 군부도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글로스터 재블린(Gloster Javelin, 이하 재블린)은 본의 아니게 그러한 시대상을 대변했던 전투기라고 할 수 있다.

    1947년 1월 24일, 영국 항공성은 F.44/46로 명명한 전천후 전투기 사업을 시작했다. 목표는 지난 제2차 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 본토를 공격하는 폭격기를 주야간, 날씨에 상관없이 최대한 멀리서부터 차단하는 요격기였다. 이를 위해 이륙 10분 이내에 14,000m 고도까지 상승할 수 있고 근접전을 대비해 4G 기동까지 가능해야 했다. 전천후 장거리 작전을 위해 레이더를 비롯한 첨단 항전 장비의 탑재도 요구되었다.

    P.272(재블린)과 끝까지 경쟁을 벌인 드 하빌랜드 DH.110. 우여곡절 끝에 역전패했지만 이후 시 빅슨(Sea Vixon) 함상전투기로 재탄생했다. < Public Domain >
    P.272(재블린)과 끝까지 경쟁을 벌인 드 하빌랜드 DH.110. 우여곡절 끝에 역전패했지만 이후 시 빅슨(Sea Vixon) 함상전투기로 재탄생했다. < Public Domain >

    당시 기술로는 조종사가 레이더와 무장까지 관제하기 어려워 2인승이어야 하고 장거리 작전을 위해 많은 연료를 탑재해야 하므로 일단 기체가 커야 했다. 영국 최초의 제트기인 파이오니어, 영국 최초로 실전 배치된 제트전투기인 미티어를 만든 글로스터는 시장을 계속 장악하기 위해 전부터 연구 중이던 델타익기를 기반으로 한 GA.5 설계안을 제출했다. 강력한 경쟁자는 드 하빌랜드가 제출한 DH 설계안이었다.

    곧바로 GA.5 프로토타입인 P.272와 DH 프로토타입인 DH.110이 제작되어 모두 1951년에 초도 비행에 성공한 후 곧바로 테스트에 들어갔다. 그 결과 비행 성능이 앞선 DH.110이 경쟁에서 이겼으나 이듬해 에어쇼에서 기체가 공중분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DH.110의 기체 강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사업이 전면 재검토되었고 P.272를 개선한 P.280이 후보로 재결정되었다.

    기수에 피토관이 장착된 것으로 보아 실험용 프로토타입으로 추정되는 재블린. < Public Domain >
    기수에 피토관이 장착된 것으로 보아 실험용 프로토타입으로 추정되는 재블린. < Public Domain >

    그러나 개발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어서 1953년 시험 비행에서 실험기가 추락하며 테스트 파일럿이 순직하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주익의 구조가 공기의 흐름을 차단해서 마치 에어브레이크처럼 작동한 데다 수평 미익의 승강타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실속이 발생한 것이었다. 다행히 원인 규명이 쉽게 이루어지고 해결책도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에 문제 개선과 별개로 양산 명령이 떨어졌다.

    1954년 7월 4일 시험에서 초음속으로 비행하기도 했으나 실속 방지를 위해 주익 앞의 두께와 후퇴각이 조정되면서 최종적으로 아음속 전투기로 완성되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공대공 전투보다는 상대적으로 속도도 늦고 기동력도 뒤진 폭격기 요격이 주 임무였기에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사업을 개시한 지 9년 만인 1956년부터 재블린이라는 이름으로 일선 배치가 시작되었다.


    특징

    재블린은 고속 비행을 위한 델타형 주익과 기체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수직 미익 상단에 T자형으로 부착한 수평 미익이 외형적 특징이다. 또한 날렵한 기수에 레이더를 탑재하고 동체 측면에 공기흡입구를 설치해서 1950년대 개발된 전투기임에도 최근에 제작된 최신예기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상당히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뒤에 개발된 BAC 라이트닝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후기형과 개량형 재블린에 탑재된 암스트롱 시들리 사파이어 터보제트엔진. 애프터버너 비작동 시에는 F-4에 장착된 J79 엔진과 맞먹는 힘을 내는 강력한 엔진이다. 그러나 기체 구조로 말미암아 양산형 재블린은 아음속에 머물렀다. < Public Domain >
    후기형과 개량형 재블린에 탑재된 암스트롱 시들리 사파이어 터보제트엔진. 애프터버너 비작동 시에는 F-4에 장착된 J79 엔진과 맞먹는 힘을 내는 강력한 엔진이다. 그러나 기체 구조로 말미암아 양산형 재블린은 아음속에 머물렀다. < Public Domain >

    재블린은 인상적인 주익과 미익 덕분에 고속 기동이 가능했고 저속 착륙 시 안정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이유와 흡기구 외곽이 두꺼워서 구조적으로 공기 저항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강력한 쌍발 터보제트엔진을 탑재했음에도 아음속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배치 시기나 기체의 형상 그리고 탑재한 항전 장비 때문에 제2세대 전투기로 구분된다.

    흥미롭게도 재블린의 주익 면적은 서방에서 제작한 전투기로는 현재까지 최대다. 1960년대에 개발된 소련의 Tu-128 전투기가 이보다 넓으나 대륙 간 횡단이 가능한 중폭격기를 개조한 것이어서 순수하게 전투기로 개발된 항공기 중 재블린이 가장 익면적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재블린은 영국에서 보기 드물게 장거리 전천후 요격이라는 단일 목적으로 개발되고 운용된 최초의 전투기였다.

    재블린의 3면도. 현재까지 서방에서 개발된 전투기 중에서 익면적이 가장 넓다. < (cc) Kaboldy at Wikipedia.org >
    재블린의 3면도. 현재까지 서방에서 개발된 전투기 중에서 익면적이 가장 넓다. < (cc) Kaboldy at Wikipedia.org >



    운용 현황

    재블린은 프로토타입을 포함해 총 436기가 제작되었는데 이중 개발자인 글로스터가 303기를 생산했다. 나머지는 1963년에 글로스터를 인수 합병한 호커 시들리(Hawker Siddeley)의 계열사인 암스트롱 휘트워스(Armstrong-Whitworth)에서 만들어졌다. 순차적으로 드 하빌랜드 베놈(Venom)을 대체해 가며 배치되었다. 냉전 시기에 영국 본토 방어가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1959년 촬영된 제64비행대 소속 재블린 FAW 7의 비행 모습. < Public Domain >
    1959년 촬영된 제64비행대 소속 재블린 FAW 7의 비행 모습. < Public Domain >

    1968년까지 전량 영국만 운용했는데, 오늘날 F-22처럼 해외에 판매를 금지할 정도로 성능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본토 방어용 요격기다 보니 용도가 너무 한정된 탓이었다. 또한 제2세대 전투기임에도 항속 거리, 상승력처럼 속도를 제외한 여타 비행 성능이 서방 제1세대 전투기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F-86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을 만큼 부족한 점도 문제였다.

    이런 이유로 비록 해외 판매는 좌절되었지만 영국군이 주둔한 여러 해외 기지에서 운용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 인도네시아-말레이지아 충돌 당시에 싱가포르에 전개된 재블린이 실전에 투입되었고 문화혁명 당시에 홍콩, 로디지아 독립 당시에 잠비아 등에도 배치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재블린은 영국의 쇠퇴가 시작된 시기에 영국만을 위해 활약했던 전투기였다.

    퇴역 후 박물관에 전시 중인 재블린 XH767 < (cc) Tony Hisgett at Wikipedia.org >
    퇴역 후 박물관에 전시 중인 재블린 XH767 < (cc) Tony Hisgett at Wikipedia.org >



    변형 및 파생형

    P.272: GA.5. 설계안 기반 프로토타입. 2기.
     
    P.280: P.272 양산형 프로토타입. 5기.
     
    재블린 FAW 1: Al.17 레이더 장착형. 70기.

    재블린 FAW 1 < (cc) Hugh Llewelyn at Wikipedia.org >
    재블린 FAW 1 < (cc) Hugh Llewelyn at Wikipedia.org >

    재블린 FAW 2: Al.22 레이더 장착형. 30기.
     
    재블린 T 3: 레이더 및 고정 무장이 탑재되지 않은 연습기. 프로토타입 포함 23기.

    재블린 T 3 < (cc) RuthAS at Wikipedia.org >
    재블린 T 3 < (cc) RuthAS at Wikipedia.org >

    재블린 FAW 4: 주익 개량형. 50기.
     
    재블린 FAW 5: FAW 4 기반 연료 탑재량 증가 개량형. 64기.
     
    재블린 FAW 6: AN/APQ-43 레이더 장착형. 33기.
     
    재블린 FAW 7: 파이어스트리크 공대공미사일 운용 등 개량형. 142기.

    재블린 FAW 7 < Public Domain >
    재블린 FAW 7 < Public Domain >

    재블린 FAW 8: 사파이어 7R 엔진 탑재 최종 양산형. 47기.
     
    재블린 FAW 9: 사파이어 7R 엔진으로 환장한 FAW 7. 76기 개조.

    재블린 FAW 9 < Public Domain >
    재블린 FAW 9 < Public Domain >

    재블린 FAW 9R: FAW.9에 공중 급유 장치 장착형. 40기 개조.

    재블린 FAW 9R < (cc) Ashley Dace at Wikipedia.org >
    재블린 FAW 9R < (cc) Ashley Dace at Wikipedia.org >



    제원(재블린 FAW 9)

    형식: 쌍발 터보제트 전투기
    전폭: 16m
    전장: 17.3m
    전고: 4.9m
    주익 면적: 86.1㎡
    최대 이륙 중량: 19,579kg
    엔진: 암스트롱 시들리 사파이어 7R 터보제트(11,000파운드)×2
    최고 속도: 1,140km/h
    실용 상승 한도: 16,100m
    최대 항속 거리: 1,535km
    무장: 30mm ADEN 기관포×4
            파이어스트릭 공대공미사일×4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글로스터 재블린 전투기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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