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다코타급 전함
미국의 마지막 조약형 주력함
  • 남도현
  • 입력 : 2022.05.18 08:45
    4척의 사우스다코다급 전함은 미국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해서 제작한 마지막 주력함이다. < Public Domain >
    4척의 사우스다코다급 전함은 미국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해서 제작한 마지막 주력함이다.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1921년~1922년 사이에 체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이를 후속한 런던 해군 군축조약은 역사상 그 어떤 전쟁보다 주력함을 가장 많이 제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조약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경험하면서 평화를 갈망하기 위한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어떻게든 바다의 주도권을 계속해서 잡겠다는 열강들의 치열한 눈치 싸움이 있었다. 교집합을 찾다 보니 당연히 모두를 만족시킨 것은 아니었다.

    불만이 있어도 조약이 이루어진 이상 1936년까지 준수해야 했다. 그러면서 허락한 범위 내에서 최고 수준의 전력을 갖추고자 했다. 미국의 사우스다코다급(South Dakota-class)은 이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한 전함이다. 한마디로 조약을 준수한 상태에서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전함이었고 이후 궁극의 전함이라고 평가받는 아이오와급으로 가는 중간 다리가 되었다.

    사우스다코다급의 개발 기반이 되었던 BB-55 노스캐롤라이나. 이 또한 조약형 전함이었으나 방어력이 문제로 2척만 건조되었다. < Public Domain >
    사우스다코다급의 개발 기반이 되었던 BB-55 노스캐롤라이나. 이 또한 조약형 전함이었으나 방어력이 문제로 2척만 건조되었다. < Public Domain >

    1937년 의회가 예산을 배정하면서 사우스다코타급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원래는 노스캐롤라이나급을 추가로 2척 획득하기 위한 예산이었으나 해군이 향상된 성능의 신예 전함을 원하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핵심은 방어력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급은 14인치 함포의 공격까지만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경쟁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일단 자신들부터 16인치 함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조약에서 가장 중점을 주었던 것은 배수량이다. 국가별 총 배수량은 물론 함종별 배수량까지 규정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배수량이 전투함의 공격력, 방어력, 항주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당시 건조가 가능한 전함의 최대 배수량 35,000톤은 노스캐롤라이나급과 같았기에 성능을 향상시키려면 필연적으로 함의 구조와 각종 자재가 개량되어야 했다.

    현측 장갑 개량, 선체 길이 단축 및 구조 변경, 부포 축소, 상부 구조물 경량화를 통해 배수량 증가 없이 공격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 Public Domain >
    현측 장갑 개량, 선체 길이 단축 및 구조 변경, 부포 축소, 상부 구조물 경량화를 통해 배수량 증가 없이 공격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 Public Domain >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1934년에 일본이 향후 조약 갱신을 거부하고 탈퇴하기로 공표했다는 사실이다. 조약에 참여한 5개국 중에서 3위국의 이탈은 군축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지만 공동 1위국인 미국과 영국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조약을 준수했다. 제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의미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사우스다코타급은 이처럼 일본의 탈퇴로 사문서화된 조약을 준수하며 제작되었다.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장갑을 두껍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자 미국은 피탄 시 접촉면을 늘려 충격을 분산하도록 현측 장갑의 각도를 19도까지 기울였다. 더해서 일본이 제식화 한 이른바 수중탄을 방어하기 위해 현측 장갑을 함저부까지 연장했다. 대신 늘어나는 중량을 상쇄하기 위해 선체의 길이를 20m 정도 줄이고 각종 설비와 시설을 최대한 축소하고 재배치했다.

    1940년 4월 한창 건조 중인 BB-57 사우스다코다의 선체. < Public Domain >
    1940년 4월 한창 건조 중인 BB-57 사우스다코다의 선체. < Public Domain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겼다. 부포를 줄였어도 화력의 대부분을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승무원의 작전 및 거주 여건이 나빠졌다. 격실을 4개로 줄인 것처럼 일부 구조를 단순화해서 배수량을 절감했으나 대신 어뢰의 공격으로부터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설계를 마치고 1938년부터 4척이 순차적으로 발주가 이루어져 건조에 들어갔다.

    이들을 초도함 BB-57의 함명을 따서 사우스다코타급으로 명명했다. 그런데 해당 함명은 1920년에 건조에 들어갔으나 군축조약의 발효로 40퍼센트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폐기된 배수량 42,000톤의 BB-49의 함명을 승계한 것이다. 당시에도 BB-49가 6척으로 계획된 동급 함의 초도함이어서 이들도 사우스다코다급이라 한다. 많은 자료에서 (1920)과 (1939)를 별도로 명기해서 구분한다.


    특징

    사우스다코타급은 전작인 노스캐롤라이나급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3연장 16인치 45구경장 Mk.6 주포를 장착한 포탑이 선수에 2개, 선미에 1개 설치되어 공격력은 동일하다. 구경으로는 일본의 야마토급 주포처럼 더 큰 경우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위력은 아이오와급에 탑재된 16인치 50구경장 Mk.7 주포 다음 수준으로 평가된다. 방어력은 목표로 했던 16인치 함포의 공격까지 막아낼 수 있다.

    사우스다코타급의 주먹인 16인치 45구경장 Mk.6 함포. 당시에 존재하던 모든 경쟁국의 주력함을 격침시킬 수 있는 화력을 자랑했다. < (cc) Someone35 at Wikimedia.org >
    사우스다코타급의 주먹인 16인치 45구경장 Mk.6 함포. 당시에 존재하던 모든 경쟁국의 주력함을 격침시킬 수 있는 화력을 자랑했다. < (cc) Someone35 at Wikimedia.org >

    그러면서도 배수량을 줄이기 위해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앞서 언급처럼 선체 구조가 대대적으로 바뀐 것뿐 아니라 갑판 위 상부 구조물도 경량화, 소형화되었다. 그래서 외형이 깔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전장이 줄어든 만큼 내파성(耐波性)이 떨어져서 상대적으로 황천에 균형을 잡기 어렵다. 최고 속도도 조금 줄었지만 27.5노트까지 낼 수 있어 고속 전함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손색이 없다.

    조약에 규정된 배수량을 맞추다 보니 전작보다 전장이 짧아 내파성이 떨어졌고 최고 속도도 감소했다. < Public Domain >
    조약에 규정된 배수량을 맞추다 보니 전작보다 전장이 짧아 내파성이 떨어졌고 최고 속도도 감소했다.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사우스다코타급은 한창 제작 중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진주만에서 태평양 일대 미국의 전함 전력이 와해되다시피 했기에 건조에 박차가 가해져 1942년 3월부터 8월 사이에 4척이 모두 취역했다. 한마디로 미국이 가장 필요할 때 등장하면서 곧바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주도권을 잡은 이후에 취역한 아이오와급과 달리 상당히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미국의 전함으로서는 가장 인상적인 전과들을 올렸다.

    일본 본토 기리시마를 향해 초격을 날리는 BB-58 인디애나, < Public Domain >
    일본 본토 기리시마를 향해 초격을 날리는 BB-58 인디애나, < Public Domain >

    1942년 10월 26일, BB-57 사우스다코타가 산타크루즈 해전에 참전하면서 처음으로 실전을 경험했다. 무려 26기의 적기를 격추시켰지만, 무수한 폭탄 세례를 받았는데 한 발이 1번 포탑을 정면으로 타격하기도 했다. 곧이어 11월 14일에 전함 2척, 구축함 4척으로 구성된 함대를 이끌고 과달카날 해전에 투입되어 전함 키리시마가 이끄는 16척으로 구성된 일본 함대와 정면충돌했다.

    태평양 전쟁 초기에 드물었던 전함 주도 함대 간 대결에서 일본군을 퇴각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전투 능력을 상실할 정도로 피해를 입고 여러 척의 구축함을 상실하는 전술적 패배를 당했다. 다만 연이어 벌인 두 차례의 해전을 통해 제작 의도대로 방어력의 준수함이 입증되었다. 일단 대대적인 수리를 위해 본토로 빠져야 했고 그러는 동안 2~4번 함이 순차적으로 취역해 활약했다.

    선상 박물관으로 전시 중인 BB-60 앨라배마. < (cc) Ben Jacobson at Wikimedia.org >
    선상 박물관으로 전시 중인 BB-60 앨라배마. < (cc) Ben Jacobson at Wikimedia.org >

    1943년부터 전쟁 말기까지 일본이 함대 간 정면충돌을 삼갔기에 4척의 사우스다코타급은 주로 함대 방공, 상륙작전 시 화력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3번 함 BB-59 매사추세츠가 배치 직후인 1943년에 영국 해군을 도와 대서양, 지중해 일대에서 잠시 활약한 것을 제외하면 사우스다코타급은 태평양 전역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며 임무를 수행했다.

    사우스다코다와 인디애나는 1945년 7월 14일에 미국 전함 최초로 일본 본토를 포격하는 기록을 남겼고 항복 조인식에도 참석했다. 종전 직후에 미 해군이 치장 물자로 돌려진 아이오와급을 제외하고 모든 전함의 퇴역을 결정하자 미국의 마지막 조약형 주력함인 사우스다코타급도 배치된 지 불과 5년밖에 안 된 1947년에 모두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재취역하지 못하고 해체되거나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변형 및 파생형

    BB-57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
    기공 1939년 7월 5일
    진수 1941년 6월 7일
    취역 1942년 3월 20일
    퇴역 1947년 1월 31일

    BB-57 사우스다코타 < Public Domain >
    BB-57 사우스다코타 < Public Domain >

    BB-58 인디아나(Indiana)
    기공 1939년 9월 20일
    진수 1941년 11월 21일
    취역 1942년 4월 30일
    침몰 1947년 9월 11일

    BB-58 인디아나 < Public Domain >
    BB-58 인디아나 < Public Domain >

    BB-59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기공 1939년 7월 20일
    진수 1941년 9월 23일
    취역 1942년 5월 12일
    퇴역 1947년 3월 27일

    BB-59 매사추세츠 < Public Domain >
    BB-59 매사추세츠 < Public Domain >

    BB-60 앨라배마(Alabama)
    기공 1940년 2월 1일
    진수 1942년 2월 16일
    취역 1942년 8월 16일
    침몰 1947년 1월 9일

    BB-60 앨라배마 < Public Domain >
    BB-60 앨라배마 < Public Domain >



    제원

    경하 배수량: 35,000톤
    만재 배수량: 44,519톤
    전장: 203m
    선폭: 33m
    흘수: 11m
    추진기관: 8×수관식 보일러(총 130,000shp)
                  4×기어드 스팀 터빈, 4축 추진
    속력: 27.5노트
    항속 거리: 15,000해리(15노트)
    무장: 3×3연장 16인치 45구경장 Mk.6 주포
            16~20×5연장 5인치 38구경장 Mk.12 부포
            76×40mm 대공포
            67×20mm 대공포
    함재기: 2×OS2U 수상기
    레이더: SC, SK, SR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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