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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무기 역사에 엄청난 흔적을 남긴 StG44 돌격소총의 탄생 비사에서 알 수 있듯이 히틀러는 소총의 선정이나 총탄의 규격까지도 관여하고 나섰을 만큼 무기의 개발과 배치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한마디로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관리해야 직성이 풀렸다. 결과론이지만 군의 역할을 심각하게 침해한 이러한 지나친 간섭은 독일이 제2차 대전에서 패하게 된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그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는 사실인데 히틀러를 능가하는 독재자인 스탈린도 비슷했다. 히틀러보다는 정도가 덜했지만 종종 직접 나서서 개발이나 획득을 진두지휘하고는 했다. BT 전차처럼 타도 대상으로 규정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는 러시아 혁명과 곧이어 벌어진 적백내전에 참전했던 경험 때문이었는지 좋은 무기에 대한 집착이 상당히 강했다.

특히 미국의 중(重)폭격기는 스탈린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1910년대에 세계 최초의 4발 폭격기인 일리야 무로메츠, 1920년대에는 세계 최초의 외팔보 4발 폭격기인 TB-3을 만들었을 만큼 소련도 해당 분야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선보인 여러 폭격기와 비교하면 성능 차이가 컸다. 많은 기대를 모았던 Pe-8은 수요가 넘치던 전쟁 중이었음에도 불과 93기만 제작되었을 뿐이었다.

여담으로 독소전쟁은 사상 최대의 전쟁이었지만 교전은 전선 일대에서만 벌어졌다. 양측 모두 후방에 자리 잡은 전략 시설을 타격할 능력, 즉 장거리 중폭격기를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스탈린에게 연일 독일과 일본의 중심부를 맹타하는 미국의 폭격기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B-29는 한마디로 차원이 다른 워너비였기에 미국에 랜드리스 형식으로 공급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미국은 소련을 잠시 한 배에 탄 상대로만 여겼기에 1944년부터 실전 배치한 귀중한 자산을 함부로 내줄 수 없었다. 결국 B-29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연이어 핵폭탄을 투하하며 전쟁의 방법이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렇게 종전 후 B-29는 핵폭탄과 더불어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당연히 공산주의 세계화를 꿈꾸며 서방에 대항하던 소련은 위기를 느꼈다.

그러나 소련은 냉전이라는 새로운 위기가 본격 시작되던 1949년에 핵실험에 성공하며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더불어 같은 해 새로운 폭격기를 선보이며 핵폭탄 운용 플랫폼도 갖추고 있음을 입증했다. 소련 전략폭격기의 역사를 개막한 Tu-4가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누가 보더라도 B-29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Tu-4가 B-29를 나사 하나까지 그대로 복제해서 개발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련이 B-29를 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1944년 일본 본토 폭격에 나선 B-29 중에서 고장이나 피격 등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소련의 연해주로 날아가 비상 착륙한 사례가 4차례 발생했다. 이때 소련은 미국의 반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 기를 제외한 B-29를 압류하고 조종사만 제3국을 통해 풀어 주었다. 굴러 들어온 호박을 차지하고자 1941년 체결된 일소중립조약을 핑계로 내세웠다.

스탈린은 이를 참고해 새로운 폭격기를 2년 안에 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소련에서 중폭격기 개발을 전담해오다시피 한 투폴레프 설계국은 즉각 노획기 분석에 착수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유한 기술력으로 B-29를 능가하는 신예기를 당장 개발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 정도로 B-29와 소련의 폭격기의 성능 차이는 컸다. 그렇다고 스탈린에게 불가능하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1937년 대숙청 당시에 누명을 씌고 형무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안드레이 투폴레프를 비롯한 설계국 핵심 관계자들에게 스탈린의 명령은 죽음과 맞먹는 공포였다. 이에 B-29를 그대로 베끼는 차선책을 택했다. 1945년 6월부터 B-29를 하나하나 분해하여 복제했다. 확보한 B-29 동체에 있는 흠집이 일부러 낸 것인지 운용 도중에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어 그대로 재현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할 정도다.

B-29와 비교했을 때 무게가 불과 1퍼센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적어도 이 정도면 외형 상 같은 기체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금속 재료나 엔진 같은 주요 부품 등은 단지 그대로 역설계 했다고 같은 성능이 나오지는 않는다.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으나 스탈린의 명령대로 정확히 2년이 지난 1947년 5월 19일, 시제기가 하늘을 나는 데 성공했다. 한마디로 목숨을 걸고 개발한 것이었다.

이후 각종 실험을 거쳐 Tu-4로 명명된 후 양산에 들어가 1949년부터 일선 배치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미국은 경악했다. 사실 B-29를 능가하는 B-36, B-47 같은 차세대 폭격기의 개발이 완료된 단계여서 여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만 같은 모양의 폭격기가 미국 본토 공격에 나서면 어떻게 구분하여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련도 핵폭탄을 운반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의 시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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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Tu-4는 필연적으로 B-29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허 중량 차이가 1퍼센트 차이밖에 나지 않을 만큼 외형상으로 똑같다. 만일 도색이나 마킹이 없다면 눈으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공개된 자료만 보면 성능 차이도 없다. 오히려 탑재한 ASh-73TK 엔진이 B-29의 R-3350 엔진보다 출력이 많이 나와 폭장량, 항속 거리, 작전 고도 등이 Tu-4가 조금 더 좋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소련은 B-29의 성능을 정확히 알고 있지만, Tu-4는 소량이 중국에 제공된 것을 빼고 전량 소련군이 운용했기에 성능에 대해서는 소련이 공표한 자료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통상 복제품이 원판에 뒤지고 소련이 국산 무기의 성능을 부풀려서 홍보하는 경향이 흔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Tu-4의 성능이 B-29의 80퍼센트 정도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Tu-4가 소련에서 핵폭탄을 처음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 플랫폼이라는 사실이다. 북극 가까운 곳에서 출격하면 미국 본토 한가운데에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기에 미국은 그동안 누려왔던 전략적 우위를 상실했다. 또한 베낀 것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터득한 기술은 이후 Tu-16, Tu-95를 비롯한 후속 폭격기의 탄생을 이끌었다. 한마디로 소련 폭격기의 역사를 새롭게 쓴 기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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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Tu-4는 1949년부터 양산에 들어가 1952년까지 총 847기가 제작되었다. 양산 전인 1947년 8월 3일, 모스크바 인근 투시노에서 열린 에어쇼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세 기의 Tu-4가 공항 상공을 통과했을 때 서방 관계자들은 이들이 소련이 획득한 B-29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뒤를 이어 한 기가 더 등장하자 소련이 B-29 베끼기에 성공했음을 알고 경악했다. 소련이 체제 선전을 위해 그런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다.

배치와 동시에 소련의 전략폭격기 임무를 담당하다가 1960년대 중반에 Tu-16, Tu-95에게 임무를 물려주고 퇴역했다. 비록 주력으로 활약한 기간은 짧았지만 기술적으로 Tu-4는 그 이전과 이후를 극명하게 나눌 만큼 소련 항공기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만큼 의의가 상당했기에 여러 실험기의 기반으로도 사용되었고 많은 변형과 파생형도 등장했다. 1950년대에 12기가 중국에 공여 되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1980년대까지 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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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및 파생형

Tu-4: 양산기.

Tu-4A: RDS-1, RDS-3, RDS-5 핵폭탄 운용기.

Tu-4D: 공수부대 수송기.
 
Tu-4K: KS-1 순항미사일 운용기.
 
Tu-4LL: 엔진 테스트용 실험기.
 
Tu-4NM: La-17 무인기 운용기.
 
Tu-4R: 장거리 정찰기.
 
Tu-4T: 수송기.
 
Tu-4UShS: 훈련기.
 
Tu-70: 여객기 실험기.

Tu-75: 화물기 실험기.

Tu-80: 장거리 폭격기 실험기.
 
Tu-85: Tu-80 개량형 실험기.

KJ-1: Tu-4 기반 중국 AWACS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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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형식: 4발 중폭격기
전폭: 43.05m
전장: 30.18m
전고: 8.46m
주익 면적: 161.7㎡
최대 이륙 중량: 63,600kg
엔진: 슈베초프 ASh-73TK 18기통 공랭식 성형엔진(2,400마력)×4
최고 속도: 558km/h
실용 상승 한도: 11,200m
전투 행동반경: 5,400km
무장: 6,000kg 폭장
        23mm NS-23 기관포×10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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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