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R-T 보병전투차
단지 개발로만 끝난 러시아의 아크자리트
  • 남도현
  • 입력 : 2022.05.11 08:34
    BTR-T는 T-55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탄생한 보병전투차다. < (cc) Military-today.com >
    BTR-T는 T-55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탄생한 보병전투차다. < (cc) Military-today.com >


    개발의 역사

    전차, 자주포와 더불어 기갑부대를 구성하는 3대 필수 장비 중 하나인 장갑차의 기본 임무는 보병을 보호하며 전투 장소까지 신속히 이동시키는 것이다. 남을 때리는 것은 의지이지만 내가 맞지 않으려 하는 것은 본능이기에 장갑차에 대한 구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어쩌면 인간이 전쟁을 시작한 직후부터 원했던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기술이 필요했기에 20세기가 돼서야 그런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보병이 탑승하는 장갑차의 아버지는 제1차 대전 말인 1918년에 등장한 영국의 Mk IX다. 승무원 외에도 30명의 병력이 승차할 수 있었으나 배기가스가 내부로 흘러 들어와 병사들이 혼절하는 사고가 벌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나면서 소량 생산에 그쳤다. 그런데 가능성과 별개로 이후 장갑차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20년 후 벌어진 제2차 대전 중에 대규모 기동전이 일상이었으나 정작 보병을 운반하기 위한 장갑차가 없었다.

    Sd.Kfz. 250과 M3 하프트랙은 병력을 신속히 이동시킨다는 목적은 APC와 유사하지만 장갑차는 아니다. < Public Domain >
    Sd.Kfz. 250과 M3 하프트랙은 병력을 신속히 이동시킨다는 목적은 APC와 유사하지만 장갑차는 아니다. < Public Domain >

    일부 자료에서 독일의 Sd.Kfz. 250, 미국의 M3 같은 하프트랙을 장갑차로 보기도 하지만 이들은 단지 야지 기동력이 향상된 트럭일 뿐이다. 결국 초유의 엄청난 인명 피해를 보고 난 이후인 1950년대에 장갑차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960년대부터 실용화되었다. 지금은 당연시하는 APC(병력수송장갑차), IFV(보병전투차)의 구분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동시에 기계화보병의 개념도 정립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실용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움에 직면했다. 방어력이 소화기 정도의 공격을 막는 수준이다 보니 탑승한 병력을 완벽하게 보호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갈수록 강력한 대전차무기가 등장하면서 전차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이니 장갑차의 경우는 더욱 상황이 나빴다. 작전 지역에 도착하면 보병이 하차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원칙이나 이동 중에도 교전 상황은 수시로 벌어졌다.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격파된 이라크군의 BMP-1. 이처럼 장갑차의 빈약한 방어력은 고민거리였다. < Public Domain >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격파된 이라크군의 BMP-1. 이처럼 장갑차의 빈약한 방어력은 고민거리였다. < Public Domain >

    당연히 정책 담당자들은 고민이 많았다. 제2차 대전 후 기계화부대를 기본으로 지상군을 재편하며 장갑차 분야를 선도한 소련과 이를 승계한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BTR 시리즈, BMP 시리즈, BMD 시리즈 등을 연이어 배치하며 서방을 놀라게 만들었지만 방어력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이들 장갑차는 보병의 탑승 공간과 승하차 통로가 좁고 위치도 나빠서 피격 시 인명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

    10년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 해체 후 혼란기에 벌어진 체첸 전쟁 등을 치르며 러시아군은 마치 탱크 데산트(Tank Descant)처럼 사주 경계와 유사시 탈출 편의를 위해 보병을 외부에 태우고 이동했다. 장갑차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보병이 어처구니없게도 장갑차를 보호하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장갑차의 방어력을 향상시키거나 새로운 장갑차를 개발해야 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다.

    노획한 T-55 자체를 기반으로 개발된 이스라엘의 아크자리트 병력수송장갑차. < (cc) gkirok at Wikimedia.org >
    노획한 T-55 자체를 기반으로 개발된 이스라엘의 아크자리트 병력수송장갑차. < (cc) gkirok at Wikimedia.org >

    고민에 빠진 러시아 군부에게 힌트가 된 것은 이스라엘이 제3, 4차 중동전쟁 중 노획한 T-55 전차를 개조해서 1980년대 말에 전력화한 아크자리트(Achzarit) 장갑차였다. 기반이 전차인데다 복합장갑까지 추가해서 전면 방어력이 120mm 포탄까지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이른바 중(重)APC로 불린다. 이는 지구에서 가장 많은 전차를 보유 중인 러시아가 충분히 벤치마킹할 만한 옵션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크라이나의 독립으로 위상이 애매해진 T-80을 기반으로 1996년에 중장갑 보병전투차 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러시아에서 단종되었어도 T-80이 여전히 강력한 MBT였기에 장갑차로의 개조는 불합리했다. 결국 이스라엘의 운용 결과를 참조해 퇴역 후 폐기될 예정인 T-55 전차가 개조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그렇게 해서 2000년대 초반에 전통의 옴스크트란스마시가 개발한 보병전투차가 BTR-T다.

    BTR-T는 전력 재활용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었으나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다. < (cc) terminator201866 at Flicker >
    BTR-T는 전력 재활용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었으나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다. < (cc) terminator201866 at Flicker >

    하지만 양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러시아의 기술력을 고려했을 때 특별히 성능 상 문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관련 자료가 빈약해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쿠르가네츠-25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 러시아의 기대가 큰 차세대 IFV인 쿠르가네츠-25는 2000년대 들어 러시아의 경제 여건이 호전되면서 개발을 시작했기에 자연스럽게 BTR-T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2015년에 공개까지 한 쿠르가네츠-25가 아직도 양산과 배치 여부가 불분명한 상태다. 그리고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기갑부대는 상당히 고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기존 장갑차는 손쉬운 표적으로 전락한 상태인데도 여전히 자랑으로 내세웠던 쿠르가네츠-25는 오리무중이다. 이제야 BTR-T에 대한 미련이 들지 모르겠으나 전력화는 오래전에 물 건너간 상태라 할 수 있다.


    특징

    BTR-T는 탄생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방어력이 핵심이다. T-55뿐만 아니라 소련(러시아) 전차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가 피탄을 줄이기 위한 낮은 전고다. 그래서 BTR-T도 높이가 낮다. 사실 최신 대전차미사일을 고려한다면 그다지 의미가 없지만 무유도무기의 방어를 상정한다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아무리 전차가 기반이라 해도 T-55의 압연강판은 방어력이 좋지 않아서 추가로 반응장갑을 장착했다.

    BTR-T는 T-55를 기반으로 했지만 반응장갑을 추가해 방어력은 더욱 향상되었다. 무장은 모듈식이어서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바꿀 수 있다. < (cc) www. dogswar.ru at tanks-encyclopedia.com >
    BTR-T는 T-55를 기반으로 했지만 반응장갑을 추가해 방어력은 더욱 향상되었다. 무장은 모듈식이어서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바꿀 수 있다. < (cc) www. dogswar.ru at tanks-encyclopedia.com >

    특히 NBC 시스템의 성능이 좋다. 이는 BTR-T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규모 전면전 시 전술핵으로 공격한 후 대규모 기갑부대가 진격해서 적의 종심을 신속히 점령하는 교리를 따르는 소련제 기갑 장비라면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다. 통합된 FCS에 의해 작동되는 30mm 기관포와 AT-5 대전차미사일이 기본이나 모듈화된 다양한 무장 시스템을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장착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점도 많다. 일단 내부 공간이 협소해서 2명의 승무원과 5명의 보병만 태울 수 있다. 출입구도 대단히 좁아 승하차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같은 차체를 이용한 아크자리트와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하다. 아크자리트는 엔진을 환장하고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내부 공간을 확장해 3명의 승무원과 7명의 중무장 보병이 탑승할 수 있다. 또한 차체 후면에 별도 출입구를 내어 신속 승하차가 가능하다.

    BTR-T의 내부 구조도. 공간이 협소해 2명의 승무원 외 5명의 보병만 탑승이 가능하다. < (cc) Wikimedia commons at tanks-encyclopedia.com >
    BTR-T의 내부 구조도. 공간이 협소해 2명의 승무원 외 5명의 보병만 탑승이 가능하다. < (cc) Wikimedia commons at tanks-encyclopedia.com >

    구형 전차를 기반으로 했기에 엔진과 현가장치의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다. 당연히 기동력이 나쁘므로 3세대 전차와 합동 작전을 펼치는데 애로 사항이 많다. 해당 부분까지 개량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러시아 입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쿠르가네츠-25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무게가 많이 나가 수상 주행은 불가능하다. 스노클을 장착하면 잠수 도하가 가능하나 그만큼 효용성이 떨어진다.


    운용 현황

    BTR-T는 단지 개발만 되고 양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운용 사례도 없다. 러시아는 이스라엘과 비교했을 때 유휴 장비에 대한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다. 대대적인 감군이 단행되었으므로 굳이 폐기될 구형 장비를 개조하는 것보다 성능이 좋은 새로운 장비의 도입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최신 경쟁 IFV와 비교했을 때 특별한 장점도 없어 해외 판매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BTR-T는 양산에 실패하면서 운용 사례도 없다. < (cc) Vitaly V. Kuzmin at tanks-encyclopedia.com >
    BTR-T는 양산에 실패하면서 운용 사례도 없다. < (cc) Vitaly V. Kuzmin at tanks-encyclopedia.com >



    변형 및 파생형

    BTR-T: 보병전투차

    BTR-T 보병전투차 < Public Domain >
    BTR-T 보병전투차 < Public Domain >

    T-55: BTR-T의 기반이 된 전차

    BTR-T의 차대를 제공한 T-55 전차 < (cc) Andrew Bossi at tanks-encyclopedia.com >
    BTR-T의 차대를 제공한 T-55 전차 < (cc) Andrew Bossi at tanks-encyclopedia.com >



    제원

    중량: 38.5 톤
    전장: 6.45m
    전폭: 3.27m
    전고: 2.4m
    무장: 30mm 2A42 기관포 + 9M113 대전차미사일 발사기
             30mm 2A42 기관포 + 30mm AGS-31 유탄발사기
             30mm 2A38M 쌍열기관포
             12.7mm NSV 기관총 + 9M113 대전차미사일 발사기
             12.7mm NSV 기관총 + 30mm AGS-17 유탄발사기
    엔진: V-55 수랭식 12기통 디젤(580hp)
    추력 대비 중량: 18.7마력/톤
    서스펜션: 토션 바
    항속 거리: 약 500km
    최고 속도: 50km/h(도로), 25km/h(야지)
    탑승 인원: 승무원 2명 + 보병 5명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BTR-T 보병전투차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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