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피쉬 뇌격기
상대를 잘 만나 전설이 된 뇌격기
  • 남도현
  • 입력 : 2022.04.26 08:37
    시범 비행 중인 소드피쉬. 성능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영국이 자부심을 가질 만큼 많은 전과를 올렸다. < 출처: Public Domain >
    시범 비행 중인 소드피쉬. 성능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영국이 자부심을 가질 만큼 많은 전과를 올렸다. < 출처: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화약이 등장한 후 군함의 주먹은 함포가 차지했다. 그런데 함포가 강해질수록 사격 시 발생하는 충격 또한 커지므로 이를 감당하기 위해 함정의 크기도 비례해서 커졌다. 결국 20세기 전반에 해군 사상을 지배한 거함거포주의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어뢰는 그러한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져온 대표적인 비대칭무기다. 제대로 맞추면 거함도 한 방에 격침 시킬 수 있지만 작은 함정에서도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물속에서 항해하므로 사거리가 짧고 속도가 느려서 조기에 탐지한다면 목표물이 충분히 회피할 수 있다. 기술 발달에 힘입어 오늘날 최신 어뢰는 그런 고질적인 단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제약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어뢰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등장했다. 한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뇌격기도 그러한 수단 중 하나다.

    제1차 대전 당시 영국 해군이 운용한 숍위드 쿠쿠(Sopwith Cuckoo) 뇌격기. < 출처: Public Domain >
    제1차 대전 당시 영국 해군이 운용한 숍위드 쿠쿠(Sopwith Cuckoo) 뇌격기. < 출처: Public Domain >

    비행기를 이용하면 어뢰의 사거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목표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공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전통의 영국 해군은 1913년에 사상 최초로 어뢰를 공중 투하하는 실험을 했고 제1차대전 중에는 적함 격침에도 성공하면서 뇌격기 분야를 선도했다. 이렇게 효과가 입증된 뇌격기는 전투기, 폭격기와 더불어 초창기 항공모함(이하 항모)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함재기가 되었다.

    그런데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영국 해군은 과거의 위상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국력이 쇠퇴하며 20세기 초처럼 경쟁국을 압도하기 위한 대규모 건함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결국 다자간 군축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굳건히 지켜온 세계 1위 해군국 자리를 미국에 내주었다. 당연히 전력의 약화는 피할 수 없었다. 그 결과 함재기 분야도 서서히 미국, 일본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뇌격기도 마찬가지였다.

    소드피쉬는 기반이 갖춰진 상태에다가 기체 자체가 고성능이 아니어서 개발이 쉽게 이루어졌다. < 출처: Public Domain >
    소드피쉬는 기반이 갖춰진 상태에다가 기체 자체가 고성능이 아니어서 개발이 쉽게 이루어졌다. < 출처: Public Domain >

    그러던 중 1930년대가 되면서 독일의 득세로 전운이 감돌자 상황이 바뀌었다. 상황이 시급했기에 일단 노후 전력의 대체를 시작으로 전력 증강에 나섰다. 1910년대에 개발된 기존 Mk. III 뇌격기도 조속히 교체해야 할 대상에 올랐다. 이때 페어리(Fairey)가 해군에게 그리스 수출용으로 자사가 개발 중이던 PV 정찰기 프로토타입을 기판으로 신예 뇌격기를 즉시 만들어 납품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해군은 페어리가 뇌격기를 만든 노하우가 있고 이미 기반이 될만한 기체가 거의 완성 단계였기에 개발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보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1933년 곧바로 사업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4월 17일 TSR.II 시제기가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실시된 각종 실험에 통과한 후 소드피쉬(Swordfish)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1936년부터 양산이 개시되어 일선에 공급이 이루어졌다.

    소드피쉬는 1930년대에 탄생한 뇌격기지만 복엽기에 조종석이 노출된 구식 구조였다. < 출처 : (cc) LA(PHOT) Abbie Herron at Wikimedia.org >
    소드피쉬는 1930년대에 탄생한 뇌격기지만 복엽기에 조종석이 노출된 구식 구조였다. < 출처 : (cc) LA(PHOT) Abbie Herron at Wikimedia.org >

    소드피쉬는 동체의 상당 부분이 강관과 천으로 제작된 구시대 구조의 복엽기다. 이착함이 쉽고 선회력은 좋지만 같은 시기에 개발된 미국, 일본의 경쟁 기종과 비교하면 성능 차이가 컸다. 그러나 상황이 급한 데다 뇌격기에게 요구되는 비행 성능이 그다지 높지 않았으므로 개발과 배치가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 때문에 영국 해군은 물론 페어리도 소드피쉬를 시급히 공백을 메워 줄 임시 대타 정도로 생각했다.

    때문에 거의 동시에 소드피쉬를 후속할 뇌격기 개발이 함께 진행되었다. 그렇게 해서 소드피쉬가 배치를 시작한 지 불과 1년 후인 1937년부터 공급된 후계기가 알바코어(Albacore)다. 하지만 그다지 성능 차이가 없는 데다 엔진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가격도 비싸서 소드피쉬가 계속 주력의 지위를 차지했다. 다행이라면 당장 마주해야 할 독일, 이탈리아 해군에게는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소드피쉬는 수상기 형태로 수상 전투함을 기반으로 운용될 수도 있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소드피쉬는 수상기 형태로 수상 전투함을 기반으로 운용될 수도 있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그래서 전쟁사에 상당히 인상적인 전과를 많이 남기면서 제2차 대전 말기인 1944년까지 꾸준히 생산되어 쉬지 않고 활약했다. 반면 유럽 전역에서의 엄청난 성공과 정반대로 태평양 전역에서는 제대로 활약해 보지도 못하고 물러났다. 결과적으로 소드피쉬의 명성은 상대를 잘 만난 덕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소드피쉬가 이룬 전과는 결코 폄훼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무기사에 영원히 기록될 전설을 쓴 뇌격기임에는 틀림없다.


    특징

    소드피쉬는 조종석이 오픈된 전형적인 1920년대 이전 방식의 복엽기여서 당연히 승무원들의 근무 여건이 좋지 않다. 엔진이 탑재된 기수 부위와 골격만 금속이고 외피는 천으로 제작된 상당히 단순한 구조다. 덕분에 기체나 날개가 피탄 되어도 크게 문제가 없었고 수리도 쉬웠다. 항모 주기 시에 공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주익을 완전히 측면으로 접을 수 있다. 이를 제외한다면 외형 상 특이점은 없다.

    주익을 완전히 접을 수 있어 주기 시 차지하는 공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주익을 완전히 접을 수 있어 주기 시 차지하는 공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구닥다리 방식 복엽기임에도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1,500파운드의 폭장이 가능할 만큼 힘이 좋았다. 뇌격기이므로 당연히 어뢰 운용이 기본이고 기동력도 좋아서 폭탄을 달고 70도 각도로 급강하 폭격이 가능했다. 최고 속도가 시속 230km에 불과할 정도로 느려서 오히려 전투기의 요격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반면 대공화기로부터는 취약했다. 전반적으로 생존력이 좋지는 않았다.

    어뢰는 목표로부터 1,500m의 거리 안에서 고도 5.5m까지 내려가 수평 비행을 하며 투하해야 했다. 속도까지 느린 데다 공격 모드에 들어가면 방향을 바꿀 수 없어서 상당히 위험했는데 이는 소드피쉬만의 문제점이 아니라 동시대에 활약한 모든 뇌격기라면 예외 없이 겪었던 고충이었다. 한마디로 맞추면 대단히 좋은 전과를 올릴 수 있지만 그만큼 작전의 난도는 상당히 높았다.

    어뢰를 투사하려면 저고도로 내려가 방향을 바꾸지 말아야 하므로 상당히 위험했다. < 출처: (cc) Tony Hisgett at Wikimedia.org >
    어뢰를 투사하려면 저고도로 내려가 방향을 바꾸지 말아야 하므로 상당히 위험했다. < 출처: (cc) Tony Hisgett at Wikimedia.org >



    운용 현황

    소드피쉬는 1936년부터 1944년까지 총 2,391기가 생산되었다. 특이하게도 개발자인 페어리가 692기만 만든 반면, 생산을 의뢰받은 블랙번(Blackburn)이 1,699기를 제작했다. 처음에는 영국 공군 예하에 배치되어 본토 인근 해역의 정찰, 초계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1939년 9월 1일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관할이 해군으로 이관된 후 함대나 수송선단 보호 임무를 담당했다.

    1939년 항모 아크로열에서 출격한 소드피쉬 편대. < 출처: Public Domain >
    1939년 항모 아크로열에서 출격한 소드피쉬 편대. < 출처: Public Domain >

    1940년 4월 11일, 항모 퓨리어스에 소속된 6기가 트론헤임에 정박한 독일군 함정을 공격하면서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후 지중해 일대에서 프랑스 함대의 노획을 방지하기 위해 7월 3일 실시된 메르스 엘 케비르 해전을 비롯한 많은 작전에서 훌륭한 전과를 올렸다. 특히 11월 11일에 이탈리아 함대를 궤멸시킨 타란토 공습은 일본이 진주만 공습의 모티브로 삼았을 만큼 전쟁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1941년 5월에 있었던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다. 쉴 새 없이 출격한 소드피쉬에서 발사한 어뢰 중 한 발이 비스마르크의 조타기를 손상시켜 조종 불능 상태가 되자 영국 함대가 추월하여 격침시키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독일, 이탈리아 해군에게는 끊임없이 괴로움을 안겨준 악마 같은 존재였다. 반면 태평양 전역에서는 쫓겨만 다니다 조기 퇴출되었다.

    제2차 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뛰어난 전과를 올렸으나 종전과 더불어 급속히 퇴출되었다. < 출처: (cc) Japan Maritime Self-Defense Force >
    제2차 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뛰어난 전과를 올렸으나 종전과 더불어 급속히 퇴출되었다. < 출처: (cc) Japan Maritime Self-Defense Force >



    변형 및 파생형

    TSR.1: 프로토타입.

    TSR.1 시제기 < 출처: Public Domain >
    TSR.1 시제기 < 출처: Public Domain >

    TSR.2: TSR.1 개량형 프로토타입.

    TSR.2 시제기 < 출처: Public Domain >
    TSR.2 시제기 < 출처: Public Domain >

    Mk.I: 양산형.

    소드피쉬 Mk.I < 출처: Public Domain >
    소드피쉬 Mk.I < 출처: Public Domain >

    Mk.II: 금속 장갑판 부착, 3인치 로켓탄 탑재 개량형.

    소드피쉬 Mk.II < 출처: Public Domain >
    소드피쉬 Mk.II < 출처: Public Domain >

    Mk.III: 레이더 탑재 개량형.

    소드피쉬 Mk.III < 출처: Public Domain >
    소드피쉬 Mk.III < 출처: Public Domain >

    Mk.IV: 조종석 밀폐형.

    제원(Mk II)

    전폭: 13.87m
    전장: 10.87m
    전고: 3.76m
    주익 면적: 56.4㎡
    최대 이륙 중량: 3,438kg
    엔진: 브리스톨 페가서스 IIIM.3 9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690hp(510kW)×1
    최고 속도: 230km/h
    실용 상승 한도: 5,000m
    전투 행동반경: 840km
    무장: 7.7mm 빅커스 기관총×1(기수)
            7.7mm 루이스 기관총×1(후방)
            60파운드 RP-3 로켓×8
            1,670파운드 어뢰×1
            1,500파운드 기뢰×1
            1,500파운드 폭장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소드피쉬 뇌격기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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