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7F 전투기
최초의 쌍발 함상 전투기
  • 남도현
  • 입력 : 2022.03.29 08:43
    F7F는 미 해군이 운용한 최초의 쌍발 함상 전투기다. < 출처 : 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F7F는 미 해군이 운용한 최초의 쌍발 함상 전투기다. < 출처 : 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개발의 역사

    전투기는 크기에 상당히 민감하다. 작전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연료와 무장을 많이 탑재해야 하고 엔진, 센서의 성능도 좋아야 한다. 때문에 기체가 클수록 좋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크게 만들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사상 최대의 전투기인 Tu-128은 오로지 미국의 폭격기를 막기 위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요격기라는 개념에 따라 개발되어서 여타 성능은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항공모함(이하 항모)에서 운용되는 함재기는 더욱 크기에 제약이 많다. 그래서 함상 전투기의 성능이 공군의 전투기보다 뒤지는 것을 오랫동안 당연하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당대 모든 경쟁자를 압도한 F-4 팬텀이 등장하면서 이런 패러다임이 깨지게 되는데, 정작 F-4도 상당히 큰 전투기다. 결론적으로 항모가 대형화되면서 함재기의 크기도 커졌고 그만큼 성능이 향상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항모 CV-41 미드웨이에 착함 후 주기장으로 이동 중인 F-4S. 항모가 대형화되면서 함재기도 커졌고 그만큼 성능이 향상될 수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항모 CV-41 미드웨이에 착함 후 주기장으로 이동 중인 F-4S. 항모가 대형화되면서 함재기도 커졌고 그만큼 성능이 향상될 수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미 해군이 운용했던 F7F 타이거캣(Tigercat)은 그러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한 최초의 쌍발 함상 전투기다. 비록 성능 외적인 이유로 소량 생산에 그치고 단명했지만, 항모의 대형화와 필연적으로 함께 시작된 함재기의 대형화를 선도했다는 점에서 보자면 상당히 의의가 큰 전투기였다. F7F의 탄생은 제2차 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1940년 7월 19일에 미 의회가 제정한 양대양 해군법과 관련된다.

    근거가 마련되자 즉시 전력 증강에 나선 미 해군은 이듬해 에식스급 항모의 건조에 착수한 것과 별개로 이를 후속할 차기 항모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제1차 대전 종전 후 체결된 다자간 해군 군축조약이 일본의 탈퇴로 와해되면서 제약이 사라졌기에 새로운 항모는 당대 최대인 60,000톤의 만재 배수량과 280m의 갑판을 갖출 예정이었다. 이후 그렇게 해서 탄생한 항모가 바로 미드웨이급이다.

    2014년 에어쇼에 출전한 F7F. < 출처 : (cc) D Ramey Logan at Wikimedia.org >
    2014년 에어쇼에 출전한 F7F. < 출처 : (cc) D Ramey Logan at Wikimedia.org >

    당시 미 해군은 기존에 주력으로 사용하던 F4F를 대체할 F4U의 개발을 한창 진행 중이기는 했으나 이와 별개로 크기가 커진 새로운 항모의 이점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함상 전투기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신예기는 기존 전투기보다 보다 많은 무장을 탑재하고 장거리 작전이 가능해야 했다. 기체가 커질 수밖에 없었고 충분한 힘을 발휘하려면 쌍발이 필연적이었다.

    다만 레스프로기를 쌍발로 만들면 주익 양편에 엔진을 장착해야 하므로 주기할 때 공간을 많이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신예기는 배치를 앞두고 있던 F4U를 보조하며 공대공 전투 외에도 대지, 대함 작전도 가능한 다목적기로 예정되었다. 미 해군은 개발 도중 폭발 사고로 채택이 불발된 쌍발 전투기인 XP-50(해군형 XF5F)을 만든 경험이 있던 그루먼에 개발을 의뢰하고 1941년 6월 30일 계약을 체결했다.

    F7F의 전면 모습. 엔진이 주익에 배치되면서 동체가 전면에서 보면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날렵하게 설계되었다. < 출처 : (cc) Dziban303 at Wikimedia.org >
    F7F의 전면 모습. 엔진이 주익에 배치되면서 동체가 전면에서 보면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날렵하게 설계되었다. < 출처 : (cc) Dziban303 at Wikimedia.org >

    비록 유럽에서 전쟁이 진행 중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단지 구상에 들어간 차기 항모 사업과 행보를 맞춰야 했으므로 그루먼 사내 코드 G-51로 명명된 신예기의 개발은 그다지 급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해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급습하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이제 막 개발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병대가 500기를 발주한 것이었다. 동시에 제식 부호 F7F이 부여되었다.

    이처럼 개발과 동시에 발주하는 프로세스는 미국이 총력전 체제로 전환하면서 F7F뿐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무기 사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뒤늦게 개발을 시작한 F6F가 예상치 못한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F4U보다 먼저 항모에 오를 수 있었다. F7F 사업도 탄력을 받아 XF7F 프로토타입이 1943년 11월 2일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진행된 테스트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F7F의 3면도. 상당히 평범한 형상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F7F의 3면도. 상당히 평범한 형상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일단 탄생과 동시에 가장 빠른 피스톤 엔진 전투기 중 하나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만큼 성능이 좋았다. 비행 거리나 상승력도 준수했고 기동력도 뛰어났다. 공격력도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정작 양산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기체가 무거워 에식스급에서 이착함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염두에 두고 있던 미드웨이급의 건조가 지연된 탓이 컸다. 결국 지상 기지를 기반으로 운용되어야 했다.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함상 전투기가 항모에서 운용되지 못한다면 사실 의의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F7F이 본격적으로 배치되던 1944년이 되었을 때는 미국이 일본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시기여서 지상 기지를 기반으로 운용되는 전투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최종 생산형이 간신히 항모에 올랐으나 곧바로 종전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제트시대가 도래하면서 불과 10년 만에 퇴출되었다.


    특징

    F7F는 미 해군이 제식화한 최초의 쌍발 전투기다. 개발 시기는 조금 차이가 나지만 같은 시기에 미 육군항공대(현 공군)가 사용한 쌍발 전투기인 P-38보다 객관적으로 성능이 좋다. 크기도 더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간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언급한 것처럼 함상 전투기임에도 항모에 오르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엄밀히 말해 항모에 정식 배치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마지막에 생산된 12기의 F7F-4N뿐이었다.

    함재기답게 주기 공간을 줄이기 위해 주익을 접을 수 있다. 그럼에도 동시대에 먼저 활약한 미 육군 항공대의 P-38보다 크고 무거웠다. 때문에 항모에 오르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 출처 : (cc) Nomadmedic at Wikimedia.org >
    함재기답게 주기 공간을 줄이기 위해 주익을 접을 수 있다. 그럼에도 동시대에 먼저 활약한 미 육군 항공대의 P-38보다 크고 무거웠다. 때문에 항모에 오르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 출처 : (cc) Nomadmedic at Wikimedia.org >

    F6F, F4U, P-47의 심장으로도 사용된 R-2800 성형엔진 2기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힘으로 탄생과 동시에 가장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었다. 4문의 20mm 기관포와 4정의 12.7mm 기관총을 탑재해 무시무시한 화력을 자랑했고 주익 및 동체 하부에 다양한 종류의 폭탄, 로켓, 어뢰 등을 장착할 수 있었다. 후기형은 기수에 표적 추적용 AN/APS-19를 장착해서 야간 전투가 가능했다.

    Mk. 13 어뢰를 장착한 모습. 뇌격기로도 사용할 수 있게 개발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Mk. 13 어뢰를 장착한 모습. 뇌격기로도 사용할 수 있게 개발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앞서 언급처럼 항모 운용이 늦어진 데다 정책적으로 F4U, F6F의 공급이 우선시되면서 F7F의 양산은 차일피일 밀렸다. 비슷한 이유로 지상 기지에 먼저 배치되어 대대적인 활약을 펼친 F4U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본격 양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2차 대전이 종전되면서 총 생산량은 총 364기에 그쳤다. 때문에 태평양 전쟁에서는 활약은 없다시피 했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2월에 촬영된 미 해병대 소속 F7F-3N. < 출처 : Public Domain >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2월에 촬영된 미 해병대 소속 F7F-3N. < 출처 : Public Domain >

    그래도 커다란 동체를 기반으로 파생형이나 개량형을 쉽게 제작할 수 있어서 오로지 공대공전투용으로 개발된 F8F보다는 사정이 좋았다. 덕분에 한국전쟁에서 야간전투기, 정찰기 등으로 활약했지만 잠시 생을 연장한 것에 불과했다. 본격적으로 제트기 시대가 도래하자 1954년 군에서 퇴역했다. 일부가 소방용 등으로 민간에 불하되었는데 1980년대 후반까지 활약한 기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퇴역 후 소방기로 개조된 F7F-3. < 출처 : Public Domain >
    퇴역 후 소방기로 개조된 F7F-3.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XF7F-1: 프로토타입. 2기.

    XF7F-1 < 출처 : Public Domain >
    XF7F-1 < 출처 : Public Domain >

    F7F-1: R-2800-22W 엔진 장착 초기 양산형. 34기.
     
    F7F-1N: APS-6 레이더 장착 야간전투기형.
     
    XF7F-2N: 야간전투기 프로토타입.
     
    F7F-2N: 복좌 야간전투기. 65기.

    F7F-2N < 출처 : Public Domain >
    F7F-2N < 출처 : Public Domain >

    F7F-2D: F7F-2N 개조 무인기.

    F7F-2D < 출처 : Public Domain >
    F7F-2D < 출처 : Public Domain >

    F7F-3: R-2800-34W 엔진 장착. 189기.
     
    F7F-3N: 복좌 야간전투기. 60기.

    F7F-3N < 출처 : Public Domain >
    F7F-3N < 출처 : Public Domain >

    F7F-3E: F7F-3 기반 전자전기.
     
    F7F-3P: F7F-3 기반 정찰기.
     
    F7F-4N: AN/APS-19 레이더 장착 복좌 야간전투기. 12기.


    제원(F7F-4N)

    전폭: 15.70m
    전장: 13.82m
    전고: 5.05m
    주익 면적: 42.3㎡
    최대 이륙 중량: 11,666kg
    엔진: 플랫 휘트니 R-2800-34W 성형엔진, 2,100hp(1,600kW)×2
    최고 속도: 740km/h
    실용 상승 한도: 12,300m
    전투 행동반경: 1,900km
    무장: 20mm AN/M3 기관포×4
            12.7mm M2 기관총×4
            454kg 폭탄×2
            127mm 로켓×8
            네이팜탄 또는 어뢰×1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F7F 전투기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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