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활약에 비해 아쉬웠던 명성
  • 남도현
  • 입력 : 2022.02.18 08:45
    4척의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은 제2차 대전 당시에 영국의 주력 정규항모였다. 하지만 활약에 비해 명성을 얻지 못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4척의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은 제2차 대전 당시에 영국의 주력 정규항모였다. 하지만 활약에 비해 명성을 얻지 못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치세에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후 20세기 초까지 장장 400여 년 동안 바다의 패권을 잡았던 나라다. 그래서 복장부터 전략에 이르기까지 영국 해군에서 시작한 모든 것들이 세계 해군의 표준이 되다시피 했다. 당연히 무기사에도 엄청난 흔적을 남겼다. 20세기 이후로만 살펴봐도 거함거포 시대를 선도한 드레드노트급 전함, 순양전함을 최초로 만들고 운용했다.

    1941년 항해 중인 빅토리우스(83). 영국은 최초로 항모를 만든 나라지만 의외로 미국, 일본과 비교하면 운용 능력 등이 뒤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1년 항해 중인 빅토리우스(83). 영국은 최초로 항모를 만든 나라지만 의외로 미국, 일본과 비교하면 운용 능력 등이 뒤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했던 함정 중에는 현재 바다의 제왕으로 군림 중인 항공모함(이하 항모)도 있다. 배에서 비행기를 이착함시키는 기술은 미국이 먼저 터득했으나 항모를 최초로 만들고 배치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후 항모 분야에서의 명성은 경쟁국에 뒤졌다. 제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수적으로는 미국, 일본과 대등한 수준이었음에도 이들과 비교하면 항모의 역할이 인상적이지 못했다.

    일단 제1 주적인 독일 해군을 압도했기에 항모가 활약할 만한 일이 많지 않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영국 해군이 거함거포주의를 맹신했기 때문이었다. 태평양 전쟁을 기점으로 해전의 방법이 완전히 바뀌었으나 영국은 전쟁 말기에 이르러서야 항모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리어스급(Illustrious Class)은 그런 영국 해군의 행태 때문에 전과에 비해 유명세를 얻지 못한 대표적인 항모다.

    일러스트리어스급은 동시대 제작된 경쟁 항모보다 함재기 운용 능력이 떨어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일러스트리어스급은 동시대 제작된 경쟁 항모보다 함재기 운용 능력이 떨어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일러스트리어스급의 탄생은 1936년 체결된 제2차 런던 해군 조약과 관련이 많다. 해당 조약에서 영국은 배수량이 최대 23,000톤 규모의 항모를 5척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 받았다. 이에 따라 1940년대 이후에 사용할 신예 항모 건조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영국은 6척의 항모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대부분 실험적 성격이었고 현대식 항모는 1937년에 진수된 아크 로열(91) 한 척뿐이었다. 그래서 건조를 서둘렀다.

    그런데 일러스트리어스급으로 명명한 신예 항모는 장갑판을 설치하고 대공 화기를 많이 장착하느라 정작 함재기 운용 공간이 좁아졌다. 같은 시기에 역시 조약을 준수하며 건조된 미국의 요크타운급과 비교하면 함재기 운용 능력이 3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을 정도였다. 이 문제는 전후 개장을 통해 해결하지만 정작 제2차 대전 중에는 일러스트리어스급이 성능에 비해 평범한 항모로 취급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독일의 도발적 행동으로 전운이 급속히 고조되던 1937년에 초도함 일러스트리어스(87)를 시작으로 총 4척의 동급 항모가 거의 동시에 건조에 들어갔다. 신속히 전력화하기 위해서였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는 실수였다. 일단 주요 당사자인 일본이 제2차 런던 해군 조약에 참여하지 않았고 미국도 요크타운급을 능가하는 에식스급 건조 계획을 수립한 상태였기에 사실상 조약은 폐기된 것과 다름없었던 상황이었다.

    만일 영국이 이때 방어력보다 함재기 운용 능력을 중시했다면, 또는 획득을 늦추어 조약을 벗어난 크기로 넉넉하게 제작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전함을 주축으로 하는 함대의 지원 수단이라는 개념에 맞춰 일러스트리어스를 만들고 운용했기에 성능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 전쟁 초기에 독일, 이탈리아 해군과 대결하다 보니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함재기의 성능도 미국, 일본에 비하면 현격히 떨어졌다.

    포미더블(67)에 착함 중인 페어리 알바코어 뇌격기. 구시대적인 복엽기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제2차 대전 초기에 영국 함재기의 성능은 부족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포미더블(67)에 착함 중인 페어리 알바코어 뇌격기. 구시대적인 복엽기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제2차 대전 초기에 영국 함재기의 성능은 부족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일러스트리어스급은 제2차 대전이 발발하고 영국이 궁지에 몰린 1940년 5월부터 순차적으로 배치되었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때맞춰 등장한 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서양, 지중해, 인도양에서 쉬지 않고 활약했다. 1940년 11월에 있었던 타란토 공습처럼 역사적인 전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작 유명세는 얻지 못했다.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스트라이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한 미드필더 같은 모습이었다.


    특징

    일러스트리어스급은 미국의 요크타운급과 더불어 전간기 시대 상을 고스란히 반영한 항모다. 조약에서 23,000톤까지 규정했다는 것은 그 정도 크기로 항모의 성능을 충분히 발휘하기는 어렵다는 의미와도 같다. 영국은 함재기 운용 능력을 극대화한 미국과 달리 생존성을 중시했다. 대표적인 것이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한 장갑판이다. 갑판뿐 아니라 폭발이나 화재 발생 시 피해를 차단하기 위한 격벽 등에도 설치했다.

    1945년 5월 4일 가미카제의 공격을 받고 불타는 포미더블(67). 비록 함재기 운용 능력이 떨어졌지만 방어력을 충실히 구축한 덕분에 피해를 극복할 수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5년 5월 4일 가미카제의 공격을 받고 불타는 포미더블(67). 비록 함재기 운용 능력이 떨어졌지만 방어력을 충실히 구축한 덕분에 피해를 극복할 수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또 하나의 특징은 방어용 자체 무장과 조기 경보용 레이더를 충실히 갖추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항모 보호를 호위함들이 담당하는 방식이었으나 영국은 항모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 소련에서 만든 항모들이 그런 방식을 택했는데 호위 전력이 충분했던 영국 해군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오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허용된 무게를 준수하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선체의 크기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비교 대상인 요크타운급보다 배수량이 3,000톤 정도 더 나가지만 전장이나 전폭이 오히려 작았다. 당연히 그만큼 함재기 운용 능력이 떨어졌고 이는 필연적으로 일러스트리어스급이 함대 간 대결에서 미국, 일본의 항모보다 역할이 감소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전쟁 중 여러 차례 위기를 겪고도 생존할 수는 있었으나 결국 종전 후 대대적인 개장을 실시해서 성능을 향상시켜야 했다.

    1944년 5월 인도양에서 항해 중인 일러스트리어스(87). 비슷한 시기에 조약을 준수해서 건조된 미국의 요크타운급과 비교하면 배수량은 더 나가지만 길이나 폭은 작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4년 5월 인도양에서 항해 중인 일러스트리어스(87). 비슷한 시기에 조약을 준수해서 건조된 미국의 요크타운급과 비교하면 배수량은 더 나가지만 길이나 폭은 작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일러스트리어스급은 수적으로, 성능으로 명실공히 제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주력 항모였다. 공교롭게도 일본이 진주만 급습을 계획할 당시 교과서로 삼았던 초도함 일러스트리어스의 타란토 공습은 그야말로 해전사의 신기원이었다.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독일군의 발목을 잡은 몰타 항공전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4번 함 인도미터블(92)은 함명처럼 독일 공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당하고도 살아남았다.

    1942년 8월 12일 말타 인근에서 작전 중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고 불타는 인도미터블(92). < 출처 : Public Domain >
    1942년 8월 12일 말타 인근에서 작전 중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고 불타는 인도미터블(92). < 출처 : Public Domain >

    유럽 전역, 특히 지중해에서 여러 차례 전설을 썼지만 태평양과 인도양에서는 활약상이 아쉬웠다. 1942년의 실론 해전에서 영국이 패하며 태평양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이후 4척 모두 연합군이 주도권을 잡은 1944년에 새롭게 편성된 영국 태평양 함대에 속해서 활약했다. 종전 후 현대화 개장을 실시했고 2번 함 빅토리우스(67)는 1960년대 말까지 활약했다.

    현대화 개장 이후의 빅토리우스(38). 동급 함 중 가장 마지막인 1968년까지 활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현대화 개장 이후의 빅토리우스(38). 동급 함 중 가장 마지막인 1968년까지 활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Illustrious(87)
    발주 1937년 4월 13일
    건조 1937년 4월 27일
    진수 1939년 4월 5일
    취역 1940년 5월 25일
    퇴역 1955년 2월

    일러스트리어스 항모 < 출처 : Public Domain >
    일러스트리어스 항모 < 출처 : Public Domain >

    Formidable(67)
    발주 1937년 3월 19일
    건조 1937년 6월 17일
    진수 1939년 8월 17일
    취역 1940년 11월 24일
    퇴역 1947년 8월 12일

    포미더블 항모 < 출처 : Public Domain >
    포미더블 항모 < 출처 : Public Domain >

    Victorious(38)
    발주 1937년 1월 13일
    건조 1937년 5월 4일
    진수 1939년 9월 14일
    취역 1941년 5월 14일
    퇴역 1968년 3월 13일

    빅토리어스 항모 < 출처 : (cc) Brian Harrington Spier at Wikimedia.org >
    빅토리어스 항모 < 출처 : (cc) Brian Harrington Spier at Wikimedia.org >

    Indomitable(92)
    발주 1937년 7월 6일
    건조 1937년 11월 10일
    진수 1940년 3월 26일
    취역 1941년 10월 10일
    퇴역 1953년 10월

    인도미터블 항모 < 출처 : Public Domain >
    인도미터블 항모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경하 배수량: 23,207톤
    만재 배수량: 28,919톤
    전장: 225.6m
    선폭: 29.2m
    흘수: 8.8m
    추진기관: 6×어드미러리티 보일러(111,000kW)
    속력: 30.5노트
    무장: 8×2연장 QF 4.5인치 다목적 함포
             6×8연장 QF 2파운더 대공포
             55~76×20mm 오리컨 대공포
    함재기: 36~57기 탑재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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