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27/케스트렐 FGA.1 VTOL 시험기
VTOL 전투기의 대명사 '해리어', 그 전설의 시작
  • 윤상용
  • 입력 : 2022.02.17 08:46
    호커-시들리의 케스트렐 FGA.1 VTOL 시험기 <출처: Public Domain>
    호커-시들리의 케스트렐 FGA.1 VTOL 시험기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6.25전쟁 휴전 이후 미국과 유럽의 항공업체는 전쟁의 교훈을 통해 활주로 없이 이착륙을 실시할 수 있는 수직이착륙(VTOL: Vertical Take-Off and Landing) 항공기의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1950년부터는 제트 엔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민수용 항공기 분야에서도 활주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연구되기 시작했고, 이 기술 일부는 다시 실전용 항공기에 적응하는 방안 등이 고려됐다.

    호커 항공의 던스포드 비행장에서 엔진출력을 시험중인 P.1127 시제기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호커 항공의 던스포드 비행장에서 엔진출력을 시험중인 P.1127 시제기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영국에서는 1957년, 브리스톨 엔진 주식회사(Bristol Engine Co.)의 제트 엔진 엔지니어인 스탠리 후커(Stanley Hooker, 1907~1984)는 호커 항공(Hawker Aircraft Co.)의 항공역학 엔지니어인 시드니 캠(Sydney Camm, 1893~1966)과 논의 중 브리스톨 엔진 측이 오르페우스(Orpheus) 제트 엔진과 올림푸스(Olympus) 제트 엔진을 통합하여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엔진 개발을 추진 중임을 알렸다. 이 당시 호커 항공은 당시 1954년부터 실전 배치 중이던 호커 헌터(Hawker Hunter)를 대체할 대체 기종인 P.1121을 개발 중이었다. 두 업체는 별도로 추진 중인 이 두 사업을 합쳐 영국 정부에 제안하고자 했지만, 정작 영국 국방부는 차기 전투기보다는 미사일 개발을 원했으므로 1957년 국방백서를 발간하면서 계획을 빼버려 사실상 P.1121 계획을 취소했다. 하지만 P.1121 계획이 취소됨에 따라 여유 자원이 생긴 호커는 페가수스 엔진을 신형 전투기 사업에 투입하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이탈리아 피아트의 G.91을 대체하기 위해 성능과 탑재 중량에 중점을 두고 발간한 신형 경전술지원전투기 요구도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기로 했다. 호커가 이 사업에 관심을 둔 이유는 영국이 곧 발행할 공군참모부 요구도 345호(Air Staff Requirement 345)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 요구도가 V/STOL 지상공격기 제원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공 전문 저술가인 프랜시스 메이컨(Francis K. Macon)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호커가 영국 정부의 차기 사업과 관계없이 순전히 NATO 요구도만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는 입장이다.

    P.1127의 초도시제기인 XP831번기 <출처: Public Domain>
    P.1127의 초도시제기인 XP831번기 <출처: Public Domain>

    엔진 업체인 브리스톨(Bristol)과 긴밀히 협업해 온 호커 항공은 엔지니어 랄프 후퍼(Ralph Hooper, 1926~) 주도로 브리스톨이 개발해 온 ‘페가수스(Pegasus)’ 엔진을 장착한 항공기 설계에 들어갔으며, 프로젝트 명으로는 P.1127이 부여됐다. 이 설계에는 두 갈래 테일 파이프(tail pipe)와 회전식 노즐을 적용해 기체 이륙 시 아래 방향으로 열을 분사하여 항공기가 이륙할 수 있도록 했다. P.1127의 개발은 순전히 호커사가 단독으로 사비(社費)를 들여 충당했으며, 최대한 단순한 형태로 개발을 하고자 노력했다. 설계가 섬세해지면 복잡해지고, 결국 끝에 가서는 기술적으로 감당이 어려워지다가 비용이 올라가던가 사업이 취소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1958년이 됐을 무렵 13,000파운드 페가수스 엔진을 장착하여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항공기 설계가 나왔고, 이에 NATO 측도 관심을 보이면서 항공기의 빠른 개발을 독려했고, NATO 가맹국에는 P.1127을 위해 지원전투기(요격기)를 한 세대 건너뛰어 줄 것을 부탁했을 정도다.

    하지만 P.1127이 개발되던 당시, 영국 국방부는 대규모 국방 예산 삭감을 진행 중이었으므로 호커는 개발 예산을 계속 조달하기 위해 민간 쪽에서 기금 마련을 시도했고, 엔진 개발을 위한 꽤 큰 기금이 미국에서 마련됐다. 그뿐만 아니라 미 정부를 통해 NASA와 연결이 되면서 NASA 랭리(Langley) 연구센터에 설치되어 있던 풍동 시험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P.1127의 축소 모델을 사용해 비행 특성 자료를 수집할 수 있게 됐다. 대신 호커는 NASA의 요청으로 시험 비행 조종사인 휴 메어웨더(Hugh Merewether, 1924~2006)을 NASA로 파견해 벨(Bell) X-14 VTOL 시험기의 시험 비행 절차에 참여시켰다. 1959년 3월에는 시들리(Siddeley)사를 합병한 호커-시들리(Hawker-Siddeley)가 이사회 의결을 통해 P.1127 시제기 개발에 회사 자체 예산을 조달하기로 하면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

    P.1127의 시제3호기인 XP972번기 <출처: Public Domain>
    P.1127의 시제3호기인 XP972번기 <출처: Public Domain>

    호커-시들리는 1959년 2월까지 모든 설계 작업을 완료했으며, 양산 설계 작업으로 넘어가 1959년 4월부로 영국 군수성(Ministry of Supply)과 P.1127 시제기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영국 공군 내에서는 P.1127 사업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류가 있었는데, 우선 속도가 아음속인 점을 가장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부터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던 사업이므로 P.1127은 1959년 7월 23일부로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기체 조립에 들어갔다. P.1127의 초도기 1번기는 1960년 7월 15일에 완성되었으며, 정적(靜的) 엔진 테스트를 위해 던스포드 기지로 이관된 뒤 기체 번호로 XP831번을 부여받았다. P.1127은 처음으로 페가수스 엔진을 장착하고 1960년 10월 13일에 엔진 추력 테스트를 실시했으며, 같은 해 10월 21일에는 안전 줄을 설치한 유선 방식으로 제한적인 수직이착륙 시험을 실시했다. 이후 조종사가 호버링 비행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몇 차례 유선 방식의 비행을 실시한 뒤 11월 4일에 자동 안전장치를 제거하고 첫 호버링을 실시했으며, 11월 중순에는 지상에서 택싱(taxing)만 하는 방식으로 시속 130km/h까지 도달했다.

    NASA 랭리 연구센터에서 시험 비행 중인 P.1127기의 모습. 1968년 11월에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NASA)
    NASA 랭리 연구센터에서 시험 비행 중인 P.1127기의 모습. 1968년 11월에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NASA)

    XP831기는 1960년 11월 19일, 처음으로 선을 제거한 후 호버링을 실시했으며, 1961년 2월 13일에는 통상적인 활주로 이륙을 통해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1961년 중순부터는 새로 조립된 2번기(XP836)가 추가되면서 통상 이륙과 호버링을 반복하면서 두 비행 방식 차이의 갭을 줄여 나갔으며, 단계적으로 수직 이륙 후 통상 비행으로 전환하는 연습을 하면서 VTOL 기술을 검증해 나갔다.

    시험 비행 단계 중 호커-시들리는 그동안 내내 기다려 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기본 군사 요구도 3(NATO Basic Military Requirement 3, NBMR-3)를 받았으나, 문제는 호커가 내내 희망해온 것과 달리 NBMR-3의 요구도 내용은 P.1127과 거리가 멀었다. 단순히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아예 P.1127 기술을 응용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으므로 호커-시들리는 그간 사비로 개발한 P.1127의 판로를 따로 찾아야 할 위기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ATO는 1961년 1월, P.1127 100대에 대한 잠재적 양산 견적서를 요청했으며, 호커는 호커대로 계속 P.1127 개발과 시험 비행을 성공시킨다면 VTOL 항공기에 관심을 가져온 주변 다른 국가들의 관심을 새로 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개발을 계속 진행했다.

    NASA 랭리 연구센터에서 시험 비행 중인 P.1127기의 모습. 1968년 11월에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NASA)

    1960년 11월 2일, 영국 군수성은 추가로 시제기 4대를 주문했으며, 주익과 엔진을 비롯하여 몇 군데 개선을 요청하면서 이 ‘시제기’를 좀 더 ‘실전기’에 가깝게 다듬어 줄 것을 요청했다. 호커-시들리는 이 주문을 받은 후 15,000파운드 급 페가수스 3 엔진을 개발한 후 장착했다. 호커-시들리는 1963년 왕립해군 항모인 아크로열(HMS Ark Royal, R09)함 함상에서 P.1127 시제기의 VTOL 이착함 테스트를 실시했으며, 다섯 번째로 제작된 기체는 수직미익을 더 크게 만들고 하방으로 처진 미익을 장착해 이후 해리어(Harrier) 전투기 개발 때 그대로 다시 사용하게 됐다. P.1127 최종 기체인 XP984에는 15,000파운드 출력의 페가수스 5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후퇴익을 적용하면서 이후 “케스트렐(Kestrel: 황조롱이)”이라는 이름이 부여됐다.

    항모 착함 테스트 중인 미 공군의 XV-6A 케스트렐. (출처: National Museum of the US Air Force)
    항모 착함 테스트 중인 미 공군의 XV-6A 케스트렐. (출처: National Museum of the US Air Force)

    하지만 호커-시들리는 1961년 말이 됐을 무렵 왕립공군(RAF: Royal Air Force)으로부터는 예산이 거의 끊긴 상태였고, 영국 정부로부터만 약간의 지원이 살아있는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영국 항공성(Ministry of Aviation)이 1962년부터 케스트렐 개발을 지원하면서 9대의 양산 표준기를 주문했고, 해당 기체는 모두 웨스트 레인험(West Raynham)에 위치한 중앙 전투기 본부에서 시험 평가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영국 정부는 또한 미국과 서독 정부에도 양산기 생산비를 나누어 부담하면서 케스트렐을 도입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했고, 미-서독 모두 참여 의사를 보이면서 1962년 5월 22일부터 9대 양산 표준기 조립이 시작됐다.

    케스트렐 FGA.1은 9대가 만들어졌지만, 영국과 미국이 기체를 나누어 인수하여 시험비행용 기체로 운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케스트렐 FGA.1은 9대가 만들어졌지만, 영국과 미국이 기체를 나누어 인수하여 시험비행용 기체로 운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9대의 기체는 모두 케스트렐 FGA (First Generation Aircraft).1으로 명명됐으며, 1964년 3월 7일 자로 케스트렐 초도기가 시험 비행에 성공하면서 사실상 개발이 완료됐다. 하지만 참여 국가 중 이 ‘시험적인’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대량으로 양산까지 하여 인수할 국가는 없었으므로 사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으며, 완성된 케스트렐은 영국과 미국이 나누어 인수해 주로 시험비행용 기체로 운용됐다. 하지만 호커-시들리가 사비까지 들여 도전했던 이 모험으로 얻은 데이터는 곧이어 등장할 해리어(Harrier) 점프 제트(jump jet) 수직이착륙기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징

    P.1127, 혹은 “케스트렐”은 수직/단거리이착륙(S/VTOL: Short/Vertical Take-off and Landing) 시험기로, 사실상 이후 VTOL 전투기의 대명사가 된 “해리어” 전투기의 원조이다. 냉전 직후부터 전 세계 각국이 VTOL 방식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했으며, 이 케스트렐은 영국이 독창적인 방법으로 접근한 최초의 결과물이었다. 특히 케스트렐의 개발 과정에서 등장한 “페가수스” 터보팬 엔진은 추진구를 틸트 시키는 방법으로 수평 추진과 수직 추진을 동시에 할 수 있게 한 획기적인 산물이었다.

    P.1127 시제기는 전 세계에 전투기도 VTOL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VTOL 전투기의 대명사였다. <출처: Imperial War Museum>
    P.1127 시제기는 전 세계에 전투기도 VTOL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VTOL 전투기의 대명사였다. <출처: Imperial War Museum>

    냉전 시기부터 전 세계 항공 선진국들이 관심을 갖게 된 수직이착륙 기술은 전투기가 활주로를 이용하여 특정 거리를 활주할 필요가 없이 제자리에서 항공기를 이착륙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항상 이륙을 위해 특정 거리 이상의 활주로가 확보되어 있어야 하는 항공기의 제약 하나를 없애 버리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며, 적 공격 시 복수의 전투기를 즉시적으로 이륙시켜 대응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호커-시들리가 P.1127 개발에 착수했을 당시, VTOL 추진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문제를 극복해야 했다.

    - 첫째. 추진체는 항공기 중량보다 더 큰 추력을 발생할 수 있어야 한다.
    - 둘째. 추진체는 수직 이륙을 위해 아래로 추력을, 통상 비행을 위해 뒤로 추력을 낼 수 있어야 한다.
    - 셋째. 추진체계는 엔진이 원래 궤적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힘(gyroscopic force)을 상쇄할 수 있어야 한다. 통상적인 항공기는 공기력(aerodynamic force)으로 이 힘을 완화하나, VTOL 항공기의 경우는 호버링(hovering)을 할 경우 이를 상쇄할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 넷째. 엔진은 일반 엔진보다 연료 효율성이 높아야 한다.
    - 다섯째. 비행 통제는 고고도, 저고도 및 호버링 비행 중 항공기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롤스-로이스(Rolls-Royce)사에 전시 중인 페가수스 엔진. 엔진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절단되어 있다. (출처: Jaypee/Wikimedia Commons)
    롤스-로이스(Rolls-Royce)사에 전시 중인 페가수스 엔진. 엔진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절단되어 있다. (출처: Jaypee/Wikimedia Commons)

    이 다섯 가지 문제는 강력한 페가수스 터보팬 엔진을 개발하면서 대부분 해결됐다. 호커-시들리는 최초 개발 단계에서 V/STOL 방식을 놓고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다. 틸트로터(tilt-rotor)나 프로펠러 추진 방식은 항공기 속도가 느려지므로 우선 제외되었으며 기본적으로 제트 엔진을 장착하게 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됐듯이 항공기 순항 비행에 필요한 추력보다 수직 이륙을 위한 추력이 훨씬 더 크게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었고, 그렇다고 수직 이륙을 위해 엔진을 두 개나 설치한다면 순항 비행 중 사용하지도 않을 엔진을 항상 안고 있어야 하므로 데드 웨이트(dead weight)가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엔진의 추진구(노즐: nozzle)만 회전시켜 제트 엔진의 추력을 편향(偏向) 시키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의 등장으로 비행과 이륙을 위한 엔진을 따로 장착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탑재 중량도 여유 공간이 발생했다.

    페가수스 엔진의 노즐 위치를 표시한 그림. 측면으로 뚫린 네 개의 추진구는 하방으로 틸트하도록 설계해 VTOL용으로 사용되며, 후방의 추진구는 수평 비행에 쓰인다. (출처: Public Domain)
    페가수스 엔진의 노즐 위치를 표시한 그림. 측면으로 뚫린 네 개의 추진구는 하방으로 틸트하도록 설계해 VTOL용으로 사용되며, 후방의 추진구는 수평 비행에 쓰인다. (출처: Public Domain)

    페가수스 엔진은 총 여섯 개의 추진구를 장착하고 있었으며, 수직 이륙 시 아래로 분사하게 되는 “콜드(cold)” 추진구는 동체 양옆으로 각각 두 개씩 배치되었다. 그리고 수평 비행을 위한 “핫(hot)” 추진구는 동체 후방에 설치되어 뒤를 향해 열을 뿜도록 고안했다. 전방의 노즐은 강철로 제작됐으며, 후방 추진구는 650도의 분사 열을 견딜 수 있도록 50% 동, 20% 크롬과 티타늄, 알루미늄을 섞어 만든 금속인 니모닉(Nimonic) 재질을 사용했다. 동체 양옆의 수직 이착륙용 노즐은 최대 98.5도까지 방향 회전이 가능하다. 엔진은 케스트렐 동체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엔진 위치 때문에 엔진을 분리하여 정비해야 할 경우 양쪽 날개를 반드시 분리해야 해 8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P.1127의
    P.1127의 "페가수스" 엔진 노즐의 모습. 동체 측면의 수직 이착륙용 노즐로, 수직이착륙 시 아래로 항해 분사하도록 설계됐다. (출처: Alan Wilson/Wikimedia Commons)

    케스트렐은 주익의 모양도 다소 특이한데, 전체적으로 앞쪽은 크게 후퇴한 데다 널찍한 형상이라 삼각익을 연상시킨다. 미익 역시 기체 균형을 위해 훗날 F-4 팬텀처럼 아래로 크게 처진 미익을 채택했다.

    P.1127이나 케스트렐은 모두 통상 비행을 할 경우 일반적인 비행 통제 체계로 비행하지만, 수직 이착륙을 위해 저속으로 감속할 경우 스톨(stall) 현상에 빠지지 않도록 압축기가 엔진 산소 흡입구 방향으로 산소 공급량을 증가시킨다. 또한 케스트렐에는 자동 균형제어장치가 장착되어 있어 수직 이륙 후 수평 이륙으로 전환할 때 기체가 자동으로 균형을 제어한다.

    P.1127/케스트렐은 무장을 내장하지 않으나 하드포인트로 외부에 장착이 가능했다. <출처: Public Domain>
    P.1127/케스트렐은 무장을 내장하지 않으나 하드포인트로 외부에 장착이 가능했다. <출처: Public Domain>

    P.1127은 시험기 목적으로 제작됐으므로 기관포를 내장 시키지 않았으나, 하드포인트는 설치가 되어 있으므로 필요에 따라 간단한 로켓포나 영국제 30mm 아덴(ADEN) 기관포 포드, 450kg 폭탄이나 네이팜 탄, 증가 탱크 등을 장착할 수 있다. P.1127의 수직미익 뒤에는 소형 풍력 발전기가 장착되어 있어 엔진이 고장 났을 경우 어느 정도의 긴급 동력을 제공한다.


    운용 현황

    호커-시들리가 P.1127을 비롯한 VTOL 항공기 개발에 사비까지 들여 사활을 걸었던 이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항공 시장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커-시들리는 항공 방위 산업이 빠르게 축소하는 와중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신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P.1127/케스트렐의 후신이 된 AV-8B 해리어(Harrier) II. 미 제13 해병원정부대(MEU) 소속 기체로, '내재적 결의(Inherent Resolve)' 작전 중 미 해군 강습상륙함 '박서(USS Boxer, LHD-4)'함 위에서 촬영된 것이다. (출처: US Naval Forces Central Command)
    P.1127/케스트렐의 후신이 된 AV-8B 해리어(Harrier) II. 미 제13 해병원정부대(MEU) 소속 기체로, '내재적 결의(Inherent Resolve)' 작전 중 미 해군 강습상륙함 '박서(USS Boxer, LHD-4)'함 위에서 촬영된 것이다. (출처: US Naval Forces Central Command)

    P.1127의 업그레이드 형상인 케스트렐 FGA.1은 영국-미국-서독이 함께 도입하기로 하면서 1964년 10월 15일 자로 삼국평가비행대대(TES: Tri-partite Evaluation Squadron)가 창설되어 웨스트 레인험 기지를 모(母) 기지로 삼았다. 시험 평가를 위해 영국, 미국, 서독 출신의 시험 비행 조종사가 모였으며, 이들은 모두 케스트렐 탑승 전 한 주 동안 브리스톨(Bristol)사에 설치된 지상 훈련 시설에서 교육을 받고, 다시 던스포드에서 지상 교육을 받은 후 3시간 동안 기종 전환 교육을 이수했다. 비행대대는 V/STOL 전투기의 실전성을 검증하고, 수직이착륙 방식의 장단점 파악과 VTOL 항공기의 비행 운용 절차 개발, 계기비행 능력 평가, 야간 작전능력 평가, 케스트렐의 비행영역선도 파악 등을 임무로 삼았다. 대대는 1965년 11월까지 케스트렐을 이용하여 다양한 V/STOL 능력 검증, 그리고 V/STOL 항공기 운용을 위한 기준을 마련한 후 해산했다.

    P.1127/케스트렐의 후신이 된 AV-8B 해리어(Harrier) II. 미 제13 해병원정부대(MEU) 소속 기체로, '내재적 결의(Inherent Resolve)' 작전 중 미 해군 강습상륙함 '박서(USS Boxer, LHD-4)'함 위에서 촬영된 것이다. (출처: US Naval Forces Central Command)

    시험이 끝날 때까지 한 대가 사고로 소실되어 총 8대가 남았으며, 이미 3대는 미군이 운용하고 있었으므로 독일이 운용하고 있던 3대까지 더해 총 6대가 미군에 인도됐다. 미군은 이 기체를 XV-6 케스트렐로 명칭을 변경한 후 각각 미 육군, 공군, 해군이 시험 운용했으며, 각 군별로 시험 운용이 끝난 뒤 미 공군이 전량을 수거한 후 2대만 NASA로 이관하고 나머지 4대는 미 공군이 시험비행용 기체로 운용했다. 한편 영국 왕립공군이 운용하던 두 대 중 한 대 계기착륙 시험부대(BLEU: Blind Landing Experimental Unit)에 배속되었으며, 다른 한 대는 페가수스 6 엔진으로 교체한 후 시험 비행용으로 계속 운용했다. 이 기체는 이후 P.1127을 바탕으로 탄생한 또 다른 VTOL 전투기인 해리어의 사전 양산기 시제기로 개조되었다.

    버지니아주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XV-6A 케스트렐 64-18263번기. NASA가 인수한 두 대 중 하나로, 나머지 한 대는 퇴역 후 영국에 반환됐다. (출처: Radio Fan/Wikimedia Commons)
    버지니아주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XV-6A 케스트렐 64-18263번기. NASA가 인수한 두 대 중 하나로, 나머지 한 대는 퇴역 후 영국에 반환됐다. (출처: Radio Fan/Wikimedia Commons)

    퇴역한 케스트렐은 6대가 전시 중이며, P.1127 역시 5개소에서 전시 중이다. NASA에서 운용했던 520번기는 영국으로 반환되어 현재 영국 서섹스주 윙스 박물관(Wings Museum)에서 복원 중이며, X695기는 왕립공군 코스포드(Cosford)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그 밖에 미국에서 운용하던 64-18262번기는 오하이오주 미 공군 국립박물관에, 54-18263번기는 버지니아주 햄튼(Hampton)의 버지니아 항공우주센터에, 64-18264번기는 애리조나주 투싼(Tucson)의 피마(Pima) 항공우주 박물관에, 그리고 64-18266번기는 버지니아주 햄튼의 항공전력공원(Air Power Park)에 전시 중이다.


    파생형

    P.1127: V/STOL 지상공격기 겸 정찰기로 개발됐으며, 총 6대가 사전 양산 평가용 항공기로 주문됐다. 이후 왕립공군에서 해리어(Harrier) GR.1으로 재명명했으며, 1966년 8월 31일 던스포드(Dunsford)에서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던스포드의 시험장에 수직으로 착륙한 P.1127. <출처: Dunsfold Airfield History Society>
    던스포드의 시험장에 수직으로 착륙한 P.1127. <출처: Dunsfold Airfield History Society>

    케스트렐(Kestrel) FGA.1: 삼국평가비행대대용 항공기로, 9대가 제작되었다가 6대는 미국으로 양도되어 XV-6A로 명명됐다.

    케스트렐 FGA.1 <출처: Public Domain>
    케스트렐 FGA.1 <출처: Public Domain>

    XV-6A: 미군이 케스트렐 FGA.1에 부여한 제식 번호.

    미 공군이 인수하여 운용한 XV-6A 케스트렐(Kestrel)의 모습. 1970년 미 공군에서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기지 내 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전시 중이다. (출처: National Museum of the US Air Force)
    미 공군이 인수하여 운용한 XV-6A 케스트렐(Kestrel)의 모습. 1970년 미 공군에서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기지 내 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전시 중이다. (출처: National Museum of the US Air Force)

    VZ-12: 미 육군이 주문한 두 대의 P.1127에 부여한 제식 번호이나, 실제 인도되지는 않았다.


    제원

    용도: V/STOL 시험기
    제조사: 호커-시들리 항공(1977년 항공 부문만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에 흡수; 1992년 폐업)
    승무원: 1명
    전장: 12.95m
    전고: 3.28m
    날개 길이: 6.99m
    날개 면적: 17.28㎡
    자체 중량: 4,445kg
    총중량: 6,350kg(수직 이륙 시)
    최대 이륙 중량: 7,711kg(단거리 이륙 시)
    추진체계: 15,000파운드급 브리스톨-시들리 페가수스 5 추력 편향 하이-바이패스 터보팬 엔진 x 1
    최고 속도: 1,143km/h(해수면 고도)/마하 0.92
    실용 상승 한도: 17,000m
    상승률: 150m/s
    출력 대비 중량: 1.04
    무장: 하드포인트 2개(주익 하부 파일런)
            ㄴ 19발 들이 SNEB 발사기 x 2
            ㄴ 32발 들이 51mm 마이크로셀(Microcell) 로켓발사기 x 2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P.1127/케스트렐 FGA.1 VTOL 시험기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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