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과 싸운 ‘기적의 구출 작전’… 승조원 모두 주인공”
아덴만 여명 작전 11주년 맞아
최영함 지휘했던 조영주 前 함장, 당시 전투 경험 책으로 펴내
“해적 전투력 생각보다 강해… 교란 펼치다 새벽 기습 공격”
입력 : 2022.01.22 03:37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청해부대 최영함 함장이었던 조영주 예비역 해군준장이 작전 11주년을 맞아 책을 냈다. 그는 “실전을 궁금해하는 후배들에게 경험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평시와 실전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실전 같은 훈련을 반복해야 합니다. 군인은 항상 전쟁,전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11년 전인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인질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청해부대 최영함 함장으로 작전을 지휘했던 조영주(58·해사40기) 예비역 해군준장은 21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18년 전역해 충남대 국가안보융합학부 초빙교수로 있는 그는 최근 아덴만 여명작전 11주년(21일)을 앞두고 작전 비화와 교훈 등을 담은 책 ‘아덴만 여명작전 현장 전투 실화’를 냈다.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최정예 특수부대 UDT/SEAL 등 청해부대원들은 삼호주얼리호를 나포한 소말리아 해적들을 기습해 13명 중 8명을 사살하고 5명은 생포했다. 당시 한국인 8명을 포함해 21명의 선원은 중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제외하곤 모두 무사히 구출돼 세계 인질구출작전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의 하나로 주목받았다.

당시 작전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우여곡절과 위기의 순간이 많았다. 우선 해적들은 오합지졸이 아니라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정예 전투병들이었다. 해적들은 RPG-7 대전차 로켓과 PKM 기관총, AK-47 소총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위성전화, GPS 장비, 단파 무선 통신기 등을 갖추고 해적 본부와 긴밀한 통신 체계도 구축하고 있었다. 조 전 함장은 “1차 구출작전 때 해상작전 헬리콥터(링스)에서 해적들이 탄 보트를 향해 사격을 했는데 기가 막히게 요리조리 피해가며 대응사격을 하는 등 해적들의 전투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인질 구출 작전을 주도한 4500t 구축함 최영함에는 작전 개시 전 ‘불운’이 찾아오기도 했다. 최영함이 다른 나라 선박 구출 작전 지원을 위해 이동하다가 스페인 군수지원함으로부터 유류 보급을 받던 중 접촉사고가 발생해 오른쪽 함수(艦首)가 찌그러지는 사고가 생겼던 것이다.

링스 헬기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청해부대는 원래 링스 헬기에 저격수를 배치해 하늘에서 구출작전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방탄이 돼 있지 않았다. 조 전 함장은 “링스는 해적들의 사격에 취약하고 너무 위험해 본격적인 지원을 하기 어려웠다. 선진국들의 특수작전 헬기가 부럽고 아쉬웠다”고 말했다. 구출 작전 사흘 전 ‘괴선박’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장병들의 사격술이 크게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자 괴선박을 대상으로 K-6, M-60 기관총 등으로 실전적인 사격훈련을 겸한 제압작전을 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청해부대의 치밀하고 주도면밀했던 작전 세부 내용도 공개했다. 작전 중 우발적인 인질 피해를 막기 위해 작전 개시 전 삼호주얼리호 부위별로 총탄에 어느 정도 관통되는지 등에 대해 치밀하게 사전정보를 파악했다. 이례적으로 최영함을 ‘21세기 거북선’으로 직접 작전에 투입하고, 실제 작전을 벌일 듯이 여러 차례 특수부대와 헬기를 출동시켜 해적들이 지치게 만든 뒤 1월 21일 새벽 전격적으로 작전을 감행, 성공했다.

그의 책에는 실전 상황에 맞닥뜨린 지휘관의 고민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작전 개시 직전 세 차례나 화장실에 가서 기도를 했다”라며 “신앙심에 의존했다”고 말했다. 작전이 끝난 뒤 ‘기적적인 구출작전’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려 한동안 외부에 나서는 걸 꺼렸다고 한다. 조 전 함장은 “아덴만 여명작전 성공은 청해부대 승조원 300명 전원이 그 주인공이었다”며 “실전 경험이 없는 후배들에게 제 체험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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