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F8U-3 크루세이더 III 전투기
"팬텀”을 대체했을지도 모를 20세기의 십자군
  • 윤상용
  • 입력 : 2022.01.14 08:34
    비행중인 XF8U-3 크루세이더 III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비행중인 XF8U-3 크루세이더 III 전투기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1950년대 말, 6.25전쟁의 교훈을 반영하여 미 해군이 작성한 요구도에 부합하여 개발한 F-8 크루세이더(Crusader) 전투기는 여러 의미에서 기념비적인 항공기로 남았다. 6.25전쟁 중 사상 첫 제트기 간의 공중전을 치러본 미군은 고속으로 비행하는 전투기 간 교전을 치를 때 0.5인치(12.7mm) 기관총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최소 20mm 기관포는 장착해야 의미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해 개발된 함재기가 바로 F-8 크루세이더("십자군")였다.

    F-4 팬텀 II와 경쟁에 나섰던 XF8U-3 크루세이더 III의 아티스트 컨셉 <출처: aerospaceprojectsreview.com>
    F-4 팬텀 II와 경쟁에 나섰던 XF8U-3 크루세이더 III의 아티스트 컨셉 <출처: aerospaceprojectsreview.com>

    특히 크루세이더는 붙임각 가변익(Variable-incidence wing)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주익을 채택한 것이 특징이었는데, 항공기 이·착륙 간 받음각을 최대화하기 위해 날개 부분만 상향으로 약 7도 정도 들어 올려질 수 있게 제작한 독특한 설계를 자랑했다.

    한편 크루세이더의 제조사인 챈스 보우트(Chance Vought, 1954년 LTV에 합병)는 1950년대 말에 내놓은 크루세이더가 대 호평을 받자 개량을 가하기 시작했다. 보우트가 앞서 제작한 F-8은 이미 F8U-2(F-8C)가 등장하면서 “크루세이더 I”으로 불렀으며, 내장 기관포 두 정과 16,900파운드급 J57-P-16 엔진을 장착한 F8U-2는 “크루세이더 II”로 통했다. 크루세이더 개발팀은 앞서 납품한 F-8 크루세이더 I의 수명 주기가 도래하면 다시 시대에 맞는 고사양의 전투기를 제안할 생각으로 더 크기와 성능을 향상시킨 V-401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보우트 설계팀이 설계한 V-401은 전체적인 외양 면에서는 크루세이더 I, II와 유사했으나 동체가 커졌으며, 엔진 역시 출력이 29,500파운드급으로 커진 J75-P-5A 엔진으로 교체됐다. V-401은 이미 앞서 개발된 F-8과 F-8C가 각각 “크루세이더 I, II”로 불렸으므로 “크루세이더 III”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얼마 후에는 아예 정식 명칭으로 부여됐다. 보우트는 크루세이더 III의 기체 형식번호를 XF8U-3으로 붙였다.

    1958년 경 촬영된 크루세이더 III 시제기. (출처: US Navy)
    1958년 경 촬영된 크루세이더 III 시제기. (출처: US Navy)

    미 해군은 1955년 5월 26일, 요구도를 새롭게 다시 수립한 신규 전투기 도입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보요청서(RFI: Request for Information)를 보우트와 맥도넬(McDonnell)사에 발행했다. 두 업체는 모두 입찰에 응신하면서 2개 사가 YAH-1 시제기 도입 사업에 참가하게 됐다. 당시 미 해군은 이미 더글러스(Douglas)사의 A-4 스카이호크(Skyhawk)를 지상공격기로 활용하고 있었고, F-8 크루세이더를 도그파이트용 전투기로 운용하고 있었으므로 이번 사업을 통해 전천후 함대 방어용 요격기를 도입하고자 했다.

    1958년 경 촬영된 크루세이더 III 시제기. (출처: US Navy)

    요구도는 해당 전투기를 복좌식으로 설계해 후방석에 레이더 운용장교를 탑승 시키되, 필요에 따라서는 조종사 혼자서 임무를 소화할 수 있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보우트는 이미 개발 중이던 크루세이더 III를 이 사업에 입찰 시키기로 했고, 맥도넬은 F4H-1, 혹은 훗날의 F-4 팬텀(Phantom) II를 제안했다. 보우트는 총 다섯 대의 크루세이더 III 시제기를 제작했으며, 1958년 6월 2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미 해군은 1958년 12월 17일에 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했으며, 조종사에게 가해지는 업무 부담 때문에 단좌식인 XF8U-3 대신 복좌식 팬텀 II를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크루세이더 III를 꺾고 미 해군으로부터 채택된 F4H-1(훗날의 F-4A-1) 시제기가 인디펜던스 항모 위에 주기된 모습. (출처: Public Domain)
    크루세이더 III를 꺾고 미 해군으로부터 채택된 F4H-1(훗날의 F-4A-1) 시제기가 인디펜던스 항모 위에 주기된 모습. (출처: Public Domain)

    물론 해군 측은 크루세이더 III 쪽의 기동성과 선회력이 더 뛰어나 ‘팬텀 주변으로 원형을 그리며 날 수 있을 정도’였고, 전투 추력 대비 중량 역시 팬텀은 0.87인데 반해 크루세이더는 0.97을에 달하는 등 성능 면에서 우수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부담”이 문제가 된 이유는 주무장인 스패로우(Sparrow) 미사일이 발사 순간부터 명중까지 계속 레이더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미사일인데, 단좌식인 크루세이더 III는 조종사가 비행과 무장 운용까지 동시에 해야 했으므로 전투 중 정신이 분산 될 가능성이 컸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게다가 “기총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 대세였던 만큼 폭장량이 훨씬 더 크고, 공대지와 공대공 임무 수행 능력이 우수한 팬텀 쪽이 분명 더 우세한 점이 있었다. 당시 보우트가 제작한 다섯 대의 크루세이더 III 시제기는 미 항공우주국(NASA)으로 이관됐으며, NASA는 파튜센트 리버(Patuxent River) 기지에서 이들 기체를 대기권 시험용으로 운용했다.


    특징

    F-8 크루세이더의 후속 기종으로 개발된 XF8U-3 크루세이더 III는 외부 모습은 F-8과 유사하나, 전체적으로 동체가 더 크고 F-8과 공통으로 사용한 부품은 많지 않은 편이다. XF8U-3는 프랫앤위트니(Pratt & Whitney)사의 29,500파운드급 J75-P-5A 엔진을 장착했으며, 최대 마하 2.39 속도까지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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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8U3-1 "크루세이더 III'의 커터웨이 도해 <출처: Public Domain>>

    크루세이더 III는 외양 면에서 기존 크루세이더와 차이가 있다. 우선 기수 아래에 설치된 엔진 흡입구가 비스듬하게 튀어나온 모양으로 설치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배면에 작은 날개 두 개가 설치된 점도 크루세이더와 다르다. 또한 고성능 화력통제 컴퓨터와 레이더가 장착됐으며, 동시에 다수의 표적을 포착한 후 최소한 두 개의 표적과 동시 교전이 가능했다. 크루세이더 시리즈는 제트기의 기관총이 의미 없다는 ‘기총 무용론’에 근거하여 개발됐으나 20mm 기관포가 4정 설치됐으며, 그 외에도 AIM-7 스패로우 미사일이나 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이 다수 장착되어 주요 무장으로 활용됐다. 크루세이더 III에는 총 3개의 하드포인트가 있었으며, 이륙 거리를 단축시켜야 할 때를 위해 로켓다인(Roketdyne)사의 로켓 모터가 장착되어 약 8,000파운드의 추력을 추가로 더할 수 있었다.

    크루세이더 III의 원형이 된 F-8A 크루세이더의 정찰용 형상인 RF-8A의 모습. (출처: US Navy)
    크루세이더 III의 원형이 된 F-8A 크루세이더의 정찰용 형상인 RF-8A의 모습. (출처: US Navy)

    실제로 크루세이더 III의 성능은 팬텀을 상회했는데, 팬텀의 최고 속도는 마하 2.23 정도이고, 순항 속도나 페리(ferry) 비행 범위, 전투 반경 면에서 모두 크루세이더 보다 뒤처졌다. 전투 능력에서도 크루세이더 쪽은 기총과 미사일을 모두 복합적으로 장착하고 있었으므로 함대 방어용으로 국한 한다면 크루세이더 쪽이 더 우수했을 것이라는 데 대해 전문가들도 거의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비행 중인 크루세이더 III의 모습. (출처: US Navy)
    비행 중인 크루세이더 III의 모습. (출처: US Navy)



    운용 현황

    크루세이더 II는 약 187대가 양산됐으며, 크루세이더 I, II를 도합 하면 1,219대가 제작됐을 정도로 크루세이더 시리즈는 성공적인 항공기로 기록됐다. XF8U-3이 등장했을 때는 앞서 “크루세이더 I, II”로 명명된 기체들이 있었으므로 “크루세이더 III”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이후에는 아예 정식으로 명칭을 부여 받았다.

    1959년 9월 10일, 월롭(Wallop) 시험 비행장에서 이륙 준비 중인 XF8U-3. 기체 번호 6340으로, 총 5대가 제작된 크루세이더 III 중 한 대이다. (출처: NASA)
    1959년 9월 10일, 월롭(Wallop) 시험 비행장에서 이륙 준비 중인 XF8U-3. 기체 번호 6340으로, 총 5대가 제작된 크루세이더 III 중 한 대이다. (출처: NASA)

    크루세이더 III는 1958년 6월 2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한 후 곧장 미 해군 경쟁 입찰에 뛰어들었으며, 훗날 맥도넬-더글러스(現 보잉)의 F-4 팬텀 II 시제기와 경합했다. 앞서 언급했듯 성능 자체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크루세이더 쪽의 평가가 더 좋았으며, 특히 마하 2.39에 달하는 최고 속도, 그리고 스펙 상으로는 최대 6만 5천 피트(19,812m)까지 도달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실제 비행에서는 7만 6천 피트(23,165m)까지 도달하는 등 팬텀보다 우위의 성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탑재 중량이 팬텀보다 작고, 무엇보다 고성능 레이더를 장착했지만 1인승 항공기로 설계해 조종사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지나치다는 점 때문에 효율성 면에서 감점을 받았고, 해군은 그대로 팬텀 II를 차기 전투기로 선정했다.

    크루세이더 III는 비행성능 여러 면에서 팬텀 II보다 뛰어났지만, 1인승으로 조종사에 대한 부담이 높아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출처: US Navy>
    크루세이더 III는 비행성능 여러 면에서 팬텀 II보다 뛰어났지만, 1인승으로 조종사에 대한 부담이 높아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출처: US Navy>

    비록 최종 입찰에서는 패배했지만, 미 해군 조종사였던 스티브 베이저(Steve Bazer, 1975~1986년까지 미 해군 복무)는 XF8U-3가 역사상 가장 잘 만들어진 초음속 전투기라 평가했다. 그는 ”F-14, F-15, F-16, F/A-18을 조종해 본 훌륭한 분들과 말싸움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나에게 사상 최고의 전투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XF8U-3 크루세이더 III를 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우트 사의 시험 비행 조종사인 조 안젤론(Joe Angelone, 1922~2013)은 크루세이더 III를 평가하면서 “F8U-3는 훗날 ‘팬텀 II’로 명명된 라이벌 기종인 F4H-1 팬텀이 등장하고 불과 5일 뒤에 첫 비행을 했다. 당시 보우트의 임직원은 두 경쟁작 중 크루세이더 III가 ‘화끈한 제트기’임을 모두가 인정했다"라고 말했다. 비록 크루세이더 III는 전반적인 성능이 모두 우수했으므로 초도 비행 당시 스로틀 잼(jam) 현상이 발생해 비행이 38분 만에 중단된 사실조차도 큰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크루세이더 III 시제기들은 모두 NASA로 옮겨져 시험연구용으로 활용되었다. <출처: US DoD>
    크루세이더 III 시제기들은 모두 NASA로 옮겨져 시험연구용으로 활용되었다. <출처: US DoD>

    보우트는 시험 비행 및 정적 테스트를 위해 총 다섯 대의 크루세이더 III를 제작했으나, 입찰에서 패한 후 미 해군이 맥도넬-더글러스와 계약하자 기체를 모두 NASA로 이관했다. 당시 NASA는 크루세이더 III가 지구 대기권의 95% 위로 비행이 가능했으므로 다양한 연구 시험용으로 사용했으며, 무엇보다 23,000m에 달하는 실용 상승 한도, 분당 9,906m에 달하는 상승률을 높이 평가해 여러 연구용 플랫폼 기체로 운용했다. NASA는 크루세이더 III와 팬텀 II를 모의 근접전으로 붙여 놓기도 했으나 미 해군 쪽에서 계약 위반으로 항의하자 결국 모든 시험 비행을 중지시키고 기체를 전부 폐기 처리했다.


    파생형

    XF8U-3 크루세이더 III: 보우트사가 앞서 납품한 F-8 크루세이더(Cusader) 전투기 후속으로 개발한 기체. 함재기용으로 개발하여 미 해군에 제안했으나 맥도넬-더글러스사가 제안한 F-4 팬텀(Phantom) II에게 패했다. 크루세이더 III 외에 “슈퍼 크루세이더”라는 별명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Edwards) 공군기지에서 이륙 준비 중인 크루세이더 III, 기체 번호 146341번기. (출처: US Navy)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Edwards) 공군기지에서 이륙 준비 중인 크루세이더 III, 기체 번호 146341번기. (출처: US Navy)

    LTV-100: F-8 초기 형상을 이용하여 저가형 항공기로 개발하려던 기체로, 1970년대 F-4E 팬텀 II, 록히드의 CL-1200 랜서(Lancer), F-5-21과 미 군사지원사업(MAPS: US Military Assistance Program) 입찰을 위해 기획되었다. 하지만 설계 자체가 실패작이었기 때문에 설계도만 작성하다가 계획이 전면 폐기되었다.

    LTV-100의 모형 <출처: NAVER 무기백과사전>
    LTV-100의 모형 <출처: NAVER 무기백과사전>



    제원

    용도: 전투기(시제기)
    제조사: 챈스 보우트(Chance-Vought; 링-템코-보우트에 매각됐다가 노스롭-그루먼에 흡수)
    승무원: 1명
    전장: 17.88m
    전고: 4.98 m
    날개 길이: 12.16m
    날개 면적: 41.8㎡
    자체 중량: 9,915kg
    총중량: 14,660kg
    최대 이륙 중량: 17,590kg
    최대 연료량: 7,700리터
    추진체계: 16,500파운드 프랫앤위트니(P&W) J75-P-5A 애프터버너 터보제트 엔진 x 1
    최고 속도: 마하 2.39(고도 15,000m)
    순항 속도: 925km/h
    전투 범위: 1,040km
    페리 범위: 3,290km(외장 연료 장착 시)
    실용 상승 한도: 19,800m(스펙 상 제원)
    상승률: 165m/s
    날개 하중: 350kg/㎡
    추력 대비 중량: 0.74(이륙 시) / 0.97(전투중량)
    기본 무장: 콜트(Colt) Mk.12 20mm 기관포(장착 계획/실제 장착된 적은 없음)
    장착 무장:
                  ㄴAIM-7 스패로우(Sparrow) 레이더 유도식 공대공미사일 x 3
                  ㄴ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공대공미사일 x 4
    항전체계:
                  ㄴ레이시온(Raytheon) 에어로 1B 무장통제체계
                  ㄴ오토테크니카스(Autotechnicas) AN/AWG-7 미사일 통제체계
                  ㄴAN/APQ-50 레이더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XF8U-3 크루세이더 III 전투기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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