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미럴급 순양전함
영국의 자부심이었으나 허망하게 최후를 맞은 거인
  • 남도현
  • 입력 : 2022.01.10 08:50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중 유일하게 취역한 후드는 독일의 전함 비스마르크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군함이었다. < 출처 : (cc) Vorst17735 at Wikimedia.org >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중 유일하게 취역한 후드는 독일의 전함 비스마르크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군함이었다. < 출처 : (cc) Vorst17735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20세기 초반에 전함은 마치 오늘날의 핵무기 같은 존재였다. 물론 용도가 전혀 다르나 강대국, 특히 바다를 통해 제국주의 패권 경쟁에 나선 열강들에게는 강력한 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보유하고 운용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기도 했다. 이는 오대양 육대륙을 작전권으로 삼고 있는 영국에 심각한 고민이었다. 전력을 곳곳에 분산 배치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 것이었다.

    최초의 순양전함 인빈시블(1907). 공격력은 전함과 대등하나 고속 항해가 가능하도록 무게를 줄이다 보니 장갑이 얇았다. 어쩔 수 없이 그만큼 방어력이 떨어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최초의 순양전함 인빈시블(1907). 공격력은 전함과 대등하나 고속 항해가 가능하도록 무게를 줄이다 보니 장갑이 얇았다. 어쩔 수 없이 그만큼 방어력이 떨어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당시 영국 해군을 이끌던 제1해군경 피셔(John Fisher)는 전함의 느린 속도에 주목했다. 그는 화력은 전함 수준이지만 신속히 이동할 수 있는 전투함이 있으면 굳이 모든 곳에 귀중한 전함을 분산 배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또 하나의 거함이 바로 순양전함(Battlecruiser)이다. 이름 때문에 전함과 순양함의 중간에 위치한 전투함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전혀 별개다.

    순양전함의 공격력은 전함과 대등하므로 함의 크기나 배수량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크다. 가장 큰 차이라면 앞서 언급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쾌속으로 순항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당대의 기술력과 연료로는 출력을 향상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무게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장갑을 최소화했는데 이 때문에 방어력이 좋지 않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런 특징은 영국의 순양전함에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유틀란트 해전 당시에 엄청난 타격을 받은 독일의 순양전함 자이들리츠. 영국의 순양전함과 달리 방어력이 좋아서 격침되지 않고 생환할 수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유틀란트 해전 당시에 엄청난 타격을 받은 독일의 순양전함 자이들리츠. 영국의 순양전함과 달리 방어력이 좋아서 격침되지 않고 생환할 수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영국이 1907년부터 인빈시블급을 시작으로 순양전함을 속속 만들어 배치하자 당시 경쟁을 벌이던 독일은 대항마 제작에 착수했다. 다만 독일의 순양전함(Schlachtkreuzer)은 서류 상으로 함종만 같을 뿐이지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크다. 특히 방어력이 충실해서 크기가 약간 작고 속도가 빠른 전함이라 할 만했다. 결국 이런 차이는 제1차 대전 중인 1916년 5월 30일에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에서 극명한 차이를 불러왔다.

    선봉에 섰던 양측 순양전함들의 대결에서 독일이 우세한 전과를 올렸던 것이다. 이런 결과에 충격을 받은 영국 해군은 기존 함의 개량과 동시에 신조 함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착수했다. 그중에는 1916년 9월 1일부터 4척이 순차적으로 건조에 들어간 어드미럴급(Admiral class) 순양전함도 있었다. 어드미럴급의 탄생은 1912년에 독일이 획득 사업을 시작한 마켄젠급(Mackensen class) 순양전함과 관련이 있다.

    취역 직후의 후드. 동급 함의 건조가 취소되었으나 공식적으로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으로 구분된다. < 출처 : Public Domain >
    취역 직후의 후드. 동급 함의 건조가 취소되었으나 공식적으로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으로 구분된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마켄젠급은 당시 영국이 보유한 모든 순양전함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35cm SK L/45 주포를 장착할 예정이었다. 영국은 이에 대항해서 1915년에 15인치(38.1cm) 주포를 탑재한 신예 순양전함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계획된 4척은 영국 해군사의 유명한 제독들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그래서 초도함 후드(HMS Hood)의 이름을 따서 후드급이라 하지 않고 어드미럴급으로 분류된다.

    비록 유틀란트 해전 이후에 건조가 시작되었으나 설계는 훨씬 오래전에 완료되었던 상황이었다. 전훈이 반영되지는 않았기에 곧바로 건조가 중단되었다. 이후 장기간의 검토 끝에 단순 개량이 아닌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고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쟁이 끝나자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막켄젠급이 미완으로 끝난 데다 영국도 군비를 감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군비감축의 필요에 따라 나머지 3척의 건조가 취소되면서 후드는 영국해군의 마지막 순항전함이 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군비감축의 필요에 따라 나머지 3척의 건조가 취소되면서 후드는 영국해군의 마지막 순항전함이 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결국 초도함 후드(HMS Hood)를 제외한 나머지 세 척은 획득이 취소되었다. 후드는 함교와 측면에 장갑을 보강했으나 덩치와 공격력에 걸맞게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나중에 벌어진 비극을 생각하면 후드도 건조를 취소하는 것이 옳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쟁 중 소모된 전력을 보충하고 순양전함 전대의 기함으로 삼기 위해 건조가 강행되었고 1920년 취역했다. 결과적으로 후드는 영국 해군의 마지막 순양전함이 되었다.


    특징

    어드미럴급은 고속 항해가 가능하도록 폭에 비해 함체가 길다. 이는 전함의 마지막 단계인 고속전함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순양전함이지만 일부에서는 방어력이 취약한 고속전함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조파 저항을 감소시키기 위해 영국 해군 군함 중 최초로 구상선수(Bulbous bow)를 장착했다. 덕분에 취역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최고 30노트의 속도로 항해가 가능했다.

    8문의 15인치 주포를 탑재하고 고속으로 항해하기 위해 선체가 길어지면서 어드미럴급은 현재까지 존재한 영국의 전투함 중에서 가장 크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8문의 15인치 주포를 탑재하고 고속으로 항해하기 위해 선체가 길어지면서 어드미럴급은 현재까지 존재한 영국의 전투함 중에서 가장 크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5인치 주포를 8문 탑재했다. 영국에서 이보다 강한 공격력을 보유한 군함은 16인치 함포 9문을 장착한 2척의 넬슨급 전함밖에 없다. 주포의 크기로만 보면 1917년 취역한 퓨리어스 순양전함이 18인치 함포를 달고 있지만 2문에 불과하고 성능도 부족해서 작전 능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커다란 선체에 강력한 주포를 탑재하면서 만재 배수량이 46,000톤이 넘었다. 덕분에 어드미럴급은 비스마르크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거함이었다.

    문제는 앞에서도 언급한 방어력이었다. 현측, 주포탑, 사령탑은 최대 300mm가 넘을 정도로 준수했지만 전함과 비교해서 보자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특히 갑판 방어력이 상당히 빈약했다. 영국 해군도 이런 문제점을 심각하게 보고 동력부를 교환하고 방어력을 늘리는 대대적인 개장을 예정했다. 하지만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계획이 연기되었고 이는 안타까운 최후를 맞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후드의 갑판 모습. 이전 순양전함들보다 방어력이 늘어났으나 갑판은 취약했다. 영국 해군도 문제점을 알았으나 제2차 대전 발발로 개장이 연기되었고 이는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후드의 갑판 모습. 이전 순양전함들보다 방어력이 늘어났으나 갑판은 취약했다. 영국 해군도 문제점을 알았으나 제2차 대전 발발로 개장이 연기되었고 이는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계획된 4척 중 3척이 취소되고 초도함인 후드만 1920년 취역했다. 만일 건조가 조금 더 늦어졌다면 후드도 탄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듬해 타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서 배수량이 35,000톤을 넘는 신조 함의 건조가 향후 10년간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보유할 수 있는 총 배수량도 제한을 받아서 건조 중이던 많은 함정이 폐기되었다. 다만 국가별로 조금씩 예외를 인정받았는데 후드가 여기에 포함되었다.

    특별 전대를 이끌고 세계 일주 도중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후드. 전간기 동안 영국 해군의 리딩쉽 역할을 담당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특별 전대를 이끌고 세계 일주 도중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후드. 전간기 동안 영국 해군의 리딩쉽 역할을 담당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후드는 준수한 외형과 크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무적의 후드(The Mighty Hood)로 불렸을 만큼 대중적 인기가 많았다. 취역 이후 본토를 근거지로 일상적인 임무를 담당하다가 개장이 차일피일 연기되면서 성능이 향상되지 못한 상태로 제2차 대전을 맞이했다. 아이슬란드 인근에서 독일 해군의 북해 진출을 견제하고 1940년 7월 3일에 메르스 엘 케비르에서 프랑스 함대를 제거하는 작전에 동원되었다.

    뱅쿠버에 입항중인 후드 순양전함. 1923년 세계 순항 중의 사진으로 보인다. < 출처 : Public Domain >
    뱅쿠버에 입항중인 후드 순양전함. 1923년 세계 순항 중의 사진으로 보인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1년 5월 18일, 독일의 전함 비스마르크가 항구를 떠났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이를 잡기 위해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함께 출격했다. 5월 24일, 아이슬란드 서쪽 인근에서 조우했고 곧바로 전투가 벌어졌는데 불과 6분 후에 비스마르크가 발사한 5번째 포탄이 가장 취약한 후드의 갑판을 뚫고 탄약고에 명중해 대폭발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선체가 두 동강 난 후 3분 만에 침몰했고 1,419명의 승조원 중 단 3명만 살아남았다.

    후드의 최후를 묘사한 그림.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체가 두 동강 나서 3분 만에 물속으로 사라졌고 불과 3명만 생존할 수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후드의 최후를 묘사한 그림.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체가 두 동강 나서 3분 만에 물속으로 사라졌고 불과 3명만 생존할 수 있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영국의 자부심으로 불리던 거함이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중에 원인을 분석하고 제때 개량을 실시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지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영국은 대서양에 있던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 5월 27일, 비스마르크를 잡아 복수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유럽에 있던 가장 거대했던 거함들이 이 대결로 사라져 버린 셈이었다. 거함거포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신호탄이었다.


    변형 및 파생형

    후드(Hood)

    기공 1916년 9월 1일
    진수 1918년 8월 22일
    취역 1920년 5월 15일
    침몰 1941년 5월 24일

    HMS 후드 < 출처 : Public Domain >
    HMS 후드 < 출처 : Public Domain >

    앤슨(Anson)

    기공 1916년 11월 9일
    중단 1917년 3월 9일
    취소 1919년 2월 27일

    하위(Howe)

    기공 1916년 10월 16일
    중단 1917년 3월 9일
    취소 1919년 2월 27일

    로드니(Rodney)

    기공 1916년 10월 9일
    중단 1917년 3월 9일
    취소 1919년 2월 27일


    제원(개수 후)

    경하 배수량: 42,750톤
    만재 배수량: 46,680톤
    전장: 262.3m
    선폭: 31.8m
    흘수: 9.8m
    추진기관: 24×Yarrow 보일러(총 144,000shp)
                  4× 기어드 터빈, 4축 추진
    속력: 30노트
    항속 거리: 5,331해리(20노트)
    무장: 4×2연장 15인치 주포
            7×2연장 4인치 대공포
            3×8연장 2파운드 대공포
            4×4연장 0.5인치 기관총
            4×21인치 어뢰발사관
    장갑: 현측 152~305mm
            갑판 19~76mm
            주포탑 279~381mm
            사령탑 229~279mm
            격벽 102~127mm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