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AJ '새비지' 공격기
위기감을 느낀 해군이 내놓은 대안
  • 남도현
  • 입력 : 2022.01.06 08:38
    AJ(A-2) 새비지(Savage)는 부호로는 공격기이나 미 해군에게 최초로 핵폭탄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안겨준 전략폭격기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AJ(A-2) 새비지(Savage)는 부호로는 공격기이나 미 해군에게 최초로 핵폭탄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안겨준 전략폭격기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2발이 연이어 떨어졌다. 1억 옥쇄를 외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발악하던 일본이 군말 없이 항복했을 정도로 신무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제2차 대전 이후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도모하던 이들에게 핵폭탄은 가히 만병통치약처럼 보였다. 앞으로 전쟁이 발발하면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밀고 당길 필요 없이 적의 심장부에 핵폭탄만 투하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1948년 촬영된 B-29와 이를 후속할 XB-36. 제2차 대전 종전 후 미국은 핵폭탄과 이를 운반할 수 있는 폭격기를 중시하게 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8년 촬영된 B-29와 이를 후속할 XB-36. 제2차 대전 종전 후 미국은 핵폭탄과 이를 운반할 수 있는 폭격기를 중시하게 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9년까지 유일하게 이를 보유했던 미국이 핵폭탄에 가진 맹신은 대단했다. 모든 군사 전략이 새로운 필살기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었고, 핵폭탄을 목표까지 운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공군의 위상은 급속도로 부각되었다. 반면 지금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던 육군과 해군의 지위는 줄어들었다. 특히 제2차 대전 종전 후부터 급격한 군축을 진행 중인 해군에게는 위기 상황이었다.

    대규모 전쟁이 끝난 이상 군비 축소는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미 해군은 대전쟁을 치르며 무지막지할 정도로 팽창한 상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해군의 주력 함들은 획득 및 유지에 상당한 비용이 들기에, 필연적으로 감축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앞으로는 전략폭격으로 전쟁을 매조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지면서 해군의 역할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났다.

    착공 5일 만에 건조가 취소된 CV-58 유나이트 스테이츠 모습. 이 사건은 핵폭탄의 등장으로 의기소침했던 해군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 출처 : Public Domain >
    착공 5일 만에 건조가 취소된 CV-58 유나이트 스테이츠 모습. 이 사건은 핵폭탄의 등장으로 의기소침했던 해군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제2차 대전을 통해 바다의 제왕으로 떠오른 항공모함(이하 항모)도 순식간 퇴출 대상으로 거론되었을 정도였다. 최초의 슈퍼캐리어가 됐을 수 있었던 만재 배수량 83,000톤의 CV-58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가 1949년 4월, 용골을 놓은 지 불과 5일 만에 전격적으로 건조가 취소되기도 했다. 해군성 장관을 비롯해 많은 지휘관들이 격노해서 군복을 벗은, 이른바 ‘제독의 반란(Revolt of the Admirals)’이 벌어졌을 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이런 전환기에 해군이 살아남으려면 뭔가 보여주어야 했다. 결론은 핵폭탄이었다. 현재는 해군의 SSBN이 귀중한 전략 자산으로 취급받지만, 미사일이 실용화되기 이전에는 공군의 폭격기가 유일한 핵폭탄 투발 수단이었다. 따라서 함재기로 핵폭탄을 운용할 수 있다면 해군도 새로운 시대에 공군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오히려 핵폭탄 운용 플랫폼의 다양화를 이룬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었다.

    AJ는 오로지 핵폭탄 투발에만 초점을 맞춰 개발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AJ는 오로지 핵폭탄 투발에만 초점을 맞춰 개발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사실 해군은 최초의 핵폭탄인 리틀보이와 팻맨을 의식해 제2차 대전 종전 직전에 10,000파운드 폭탄을 운용할 수 있는 함재기 도입 사업을 시작한 상태였다. 공군에서 핵폭탄을 운반했던 것이 B-29였다는 점을 상기하자면 새로운 함재기의 크기가 상당해야 할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는 항모에서 운용할 수 있으려면 무턱대고 크게 만들 수도 없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승리한 노스아메리칸(North American)의 AJ는 다른 기능은 배제하고 오로지 배치를 앞둔 Mk.4 핵폭탄 탑재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진 공격기였다. AJ는 레시프로 엔진을 쌍발로 장착하고 목표 지점에 이르러 고속 비행이 가능하도록 동체에 제트엔진을 장착한 특이한 형태였다. 그럼에도 등장 당시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의 함재기라는 기록을 세웠을 만큼 크기가 대단했다.

    1952년 8월 29일 항모 CV-34 오리스카니에 주기된 AJ. 데뷔 당시에 가장 컸던 함재기였다. 그만큼 운용하기가 어려웠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52년 8월 29일 항모 CV-34 오리스카니에 주기된 AJ. 데뷔 당시에 가장 컸던 함재기였다. 그만큼 운용하기가 어려웠다. < 출처 : Public Domain >

    3기의 프로토타입 중 2기가 추락하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1949년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이듬해 미드웨이급 항모 3번 함 CV-3 코랄씨에서 이착함 실험에 성공한 후 본격적으로 실전 배치가 시작되었다. AJ는 제식 부호로는 공격기이나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전략폭격기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해군도 염원하던 핵폭탄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배치 초기에 AJ를 운용할 수 있는 항모는 미드웨이급뿐이었다. 때문에 에식스급의 현대화 개장을 촉진시켰고 덕분에 상당수가 퇴역을 미루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AJ는 해군의 위상을 올려주었기에 상당히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일선에서는 인기가 없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이착함 때마다 갑판을 완전히 비워야 하는 점들이 항모 요원들을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성능 부족으로 1956년 이후 임무를 정찰, 급유기 등으로 바꾸었으나 1960년에 전량 퇴역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성능 부족으로 1956년 이후 임무를 정찰, 급유기 등으로 바꾸었으나 1960년에 전량 퇴역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무엇보다 정작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승조원들도 무사 귀환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을 정도였다. 구상부터 배치가 불과 5년 만에 이루어졌을 만큼 해군이 너무 서두른 결과였다. 결국 배치된 지 6년 만인 1956년부터 임무를 후계기에 넘겨주어야 했다. 한마디로 AJ는 환경이 바뀌면서 해군이 존립에 위기를 느끼던 시절에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는 정도의 의의만 남긴 채 순식간 사라져갔던 공격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징

    AJ의 내부구조. 2천 파운드 폭탄을 투하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Mk4 핵폭탄 투하용으로 만들어졌다. <출처: Tailhook Topic>
    AJ의 내부구조. 2천 파운드 폭탄을 투하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Mk4 핵폭탄 투하용으로 만들어졌다. <출처: Tailhook Topic>

    AJ은 프로펠러 시대에서 제트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항공기라는 특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일단 피스톤 엔진과 제트 엔진을 모두 장착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당시 제트 엔진의 성능이 미흡해서 택한 어쩔 수 없는 방식이었지만 두 가지 엔진을 장착한 만큼 복잡했다. 공간이 좁은 곳에서 운용하는 함재기는 최대한 정비 요소가 적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결코 좋은 구조는 아니었다.

    AJ는 주익에 프로펠러 엔진 2개를, 동체에 제트엔진 1개를 장착한 특이한 구조다. < 출처 : Public Domain >
    AJ는 주익에 프로펠러 엔진 2개를, 동체에 제트엔진 1개를 장착한 특이한 구조다. < 출처 : Public Domain >

    주익과 미익을 접을 수 있어도 많은 주기 공간을 차지했다. 프로펠러를 작동하는 데 문제없도록 고주익에 세발자전거식 랜딩기어를 택했다. 추가로 장착한 제트 엔진 덕분에 최대 시속 758km라는 준수한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주익이 평평한 보통익이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후퇴익의 장점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거대했던 AJ에 적용하기에는 기술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운용 현황

    AJ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기의 프로토타입을 포함해 총 143기가 생산되었다. 여타 전술 작전용 함재기와 달리 용도가 극히 한정된 특수 목적의 공격기여서 구조적으로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후계작인 A-3, A-5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수량이 적었지만 유독 AJ는 데뷔와 동시에 구닥다리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 구조인 데다 기체의 안정성도 좋지 않아 활동 기간이 유독 짧았다.

    AJ는 많은 기대 속에 실전 배치되었으나 급하게 개발된 만큼 문제가 많아서 활약 기간은 상당히 짧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AJ는 많은 기대 속에 실전 배치되었으나 급하게 개발된 만큼 문제가 많아서 활약 기간은 상당히 짧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배치된 지 불과 6년 만인 1956년부터 후계기인 A-3에 임무를 넘겨주었다. 장거리 비행 능력과 커다란 덩치를 살려 정찰기, 급유기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1960년에 모두 항모에서 하선하면서 퇴역했다. 이후 일부가 훈련용, 연구용, 방재용 등으로 사용되다 순차적으로 도태, 폐기되었다. 그래서 1962년에 새로운 미군의 군용기 제식 부호가 제정되었을 때 A-2로 재지정 되었어도 정작 해당 이름으로 활약한 적이 없었다.

    제7중공격비행대대(Heavy Attack Squadron) 소속의 AJ-2 새비지가 FJ-3M 퓨리 전투기에 급유를 하고 있다. <출처: US Navy>
    제7중공격비행대대(Heavy Attack Squadron) 소속의 AJ-2 새비지가 FJ-3M 퓨리 전투기에 급유를 하고 있다. <출처: US Navy>



    변형 및 파생형

    XAJ-1: 프로토타입. 3기.

    XAJ-1 시제기 < 출처 : Public Domain >
    XAJ-1 시제기 < 출처 : Public Domain >

    AJ-1(A-2A): 초기 양산형. 55기.

    AJ-1 초도양산기체 < 출처 : Public Domain >
    AJ-1 초도양산기체 < 출처 : Public Domain >

    AJ-2(A-2B): 엔진, 동체, 수직 미익 등이 개량된 후기 양산형. 55기.

    AJ-2 공격기 < 출처 : (cc) Tomás Del Coro at Wikimedia.org >
    AJ-2 공격기 < 출처 : (cc) Tomás Del Coro at Wikimedia.org >

    AJ-2P: AJ-2 기반 정찰기. 30기.

    AJ-2P 정찰기 < 출처 : Public Domain >
    AJ-2P 정찰기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AJ-1)

    전폭: 21.76m
    전장: 19.22m
    전고: 6.25m
    주익 면적: 77.62㎡
    최대 이륙 중량: 23,112kg
    엔진: 플랫 휘트니 R-2800-44W 더블와스프 18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2,400hp(1,800kW)×2
             앨리슨 J33-A-10 터보제트 4,600파운드×1
    최고 속도: 758km/h
    실용 상승 한도: 12,400m
    전투 행동반경: 2,786km
    무장: Mk.4 핵폭탄×1 또는 5,400kg 폭장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AJ '새비지' 공격기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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