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시 빅슨 전투기
멋있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드 하빌랜드의 마지막 유산
  • 남도현
  • 입력 : 2021.12.31 08:48
    시범 비행 중인 시 빅슨 전투기. 지금도 영국에서 가장 멋있는 전투기로 거론될 만큼 특징적인 외형을 가졌다. < 출처 : (cc) wallycacsabre at Wikimedia.org >
    시범 비행 중인 시 빅슨 전투기. 지금도 영국에서 가장 멋있는 전투기로 거론될 만큼 특징적인 외형을 가졌다. < 출처 : (cc) wallycacsabre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제2차 대전을 경험하며 영국은 뛰어난 야간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러려면 고성능 레이더와 항법 장치의 탑재가 필수적이므로 전투기의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더해서 보다 좋은 비행 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했다. 1947년 1월, 이러한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신예 전투기 사업을 시작했다. 공군과 해군 모두에게 공급될 예정이어서 영국의 대부분 업체가 참여했다.

    DH.110 프로토타입. 1940년대에 고안된 디자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대를 앞선 모습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DH.110 프로토타입. 1940년대에 고안된 디자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대를 앞선 모습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마침 드 하빌랜드(de Havilland)는 해군의 협조를 받아 1946년부터 비슷한 스펙을 갖춘 신예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이에 추가된 장비와 무장을 원활하게 작동시킬 수 있도록 별도의 무장관제사가 탑승하는 2인승 쌍발 후퇴익기인 DH. 110을 당국에 제안했다. DH. 110은 당시 배치가 시작된 뱀파이어(Vampire)처럼 드 하빌랜드 특유의 쌍동체 구조이고 지금도 최고라고 찬사를 받을 만큼 멋진 외형을 갖추었다.

    같은 회사에서 만들고 개발 및 배치 순서가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다 보니 뱀파이어, 베놈(Venom), DH. 110이 전작의 개량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베놈이 뱀파이어의 개량형인 것은 맞지만 DH. 110은 쌍동체 구조라는 정도를 제외하면 별개의 기종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발도 같은 시기에 별도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사용 용도나 목적이 달랐다는 의미다.

    시 빅슨의 쌍동체 구조는 드 하빌랜드에서 개발한 제트전투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 출처 : (cc) Kaboldy at Wikimedia.org >
    시 빅슨의 쌍동체 구조는 드 하빌랜드에서 개발한 제트전투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 출처 : (cc) Kaboldy at Wikimedia.org >

    1949년, 드 하빌랜드는 공군형, 해군형, 공격기형처럼 세부 형식이 다른 13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동시에 제출했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해군은 획득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시 베놈(Sea Venom)을 선택했다. 이 역시 드 하빌랜드가 개발한 전투기였으므로 비즈니스적으로 보자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DH. 110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그래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가장 중요한 공군형이 남아 있었다. 사실 뱀파이어, 베놈의 경우도 해군형은 일종의 파생형인데다 수량도 적었다. 하다못해 시 뱀파이어는 최초로 이착함에 성공한 제트기라는 명예를 얻었으면서도 배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신예기 사업의 진정한 경쟁은 공군형을 놓고 벌어질 수밖에 없다. 드 하빌랜드는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세련된 외형의 DH. 110에게 빅슨(Vixen)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1957년 3월 2일 시험비행을 실시중인 DH110 시 빅슨 FAW.1 프로토타입 1호기. < 출처 : BAE Systems >
    1957년 3월 2일 시험비행을 실시중인 DH110 시 빅슨 FAW.1 프로토타입 1호기. < 출처 : BAE Systems >

    1951년 9월 26일, 빅슨 프로토타입의 초도 비행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모든 지표가 기대치를 초과했고 이후 실험에서는 음속도 가뿐히 돌파했다. 하지만 이듬해 개최된 에어쇼에서 기체가 분해되어 추락하면서 2명의 테스트 파일럿과 수십 명의 관객이 죽고 다치는 비극적인 사고가 벌어졌다. 드 하빌랜드는 곧바로 원인 분석에 나서 개량을 실시했으나 공군은 경쟁작인 글로스터 재블린(Gloster Javelin)을 승자로 선택했다.

    그렇게 사라질 것 같던 순간에 해군이 빅슨에 관심을 보였다. 야간에 작전할 수 있는 전투기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최대 이륙 중량이 시 베놈의 2.5배에 달할 만큼 크고 힘이 좋아 확장이 용이하다는 점이 눈에 뜨인 것이었다. 1950년대가 되면서 탑재 무장, 항전 장비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이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려면 기체의 대형화는 필수적이었다. 당장 이를 충족할 만한 함재기 후보가 빅슨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어레스팅 후크를 내리고 착함 중인 시 빅슨. < 출처 : (cc) RuthAS at Wikimedia.org >
    어레스팅 후크를 내리고 착함 중인 시 빅슨. < 출처 : (cc) RuthAS at Wikimedia.org >

    즉시 해군형으로 개량이 시작되었고 1955년에 시 빅슨(Sea Vixen)으로 명명된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이후 실시된 각종 실험에서 시 빅슨이 요구 조건을 달성하자 해군은 1차분으로 110기를 발주했고 1959년부터 순차적으로 실전 배치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영국은 미국과 같은 시기에 2세대 전투기를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용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60년대에 팬텀 FG.1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역할 때까지 시 빅슨은 생산된 145기 중 무려 55기를 사고로 상실했다. 손실률도 엄청났지만 절반이 넘는 30건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적용한 신기술들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기체의 구조가 복잡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실망을 안겨준 시 빅슨은 1963년에 제작사가 호커 시들리에 인수되면서 드 하빌랜드가 만든 마지막 전투기로 기록되었다.

    1960년 센토어(Centaur) 항모에 착함 중인 시 빅슨 FAW.1 < 출처 : BAE Systems >
    1960년 센토어(Centaur) 항모에 착함 중인 시 빅슨 FAW.1 < 출처 : BAE Systems >



    특징

    시 빅슨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고정 무장인 기관포가 없는 영국 최초의 전투기로, 레이더와 연동된 공대공 미사일로 공중전을 벌인다. F-4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것은 아니었고 원래 4문의 30mm 기관포를 탑재하려 했으나 때마침 불어온 미사일 만능주의의 영향을 받아 개발 중 과감히 제거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말미암아 만족할 만한 전투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웠다.

    시 빅슨은 미사일 만능주의의 영향으로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고 미사일과 로켓으로만 무장을 구성하여 전투력의 한계를 표출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시 빅슨은 미사일 만능주의의 영향으로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고 미사일과 로켓으로만 무장을 구성하여 전투력의 한계를 표출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함대 방공용 전천후 제공전투기임에도 공대지 공격용 무장 장착도 가능하며 자유낙하 전술 핵탄두도 운용할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크기가 크고 힘이 좋아 다양한 임무의 수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테일 플레인, 에일러론, 방향타 등이 엔진이나 전력 장치에 고장이 발생해도 작동할 수 있으나 구조가 상당히 복잡해서 정비가 어려운 편이었다. 결국 이는 시 빅슨의 손실이 높은 원인으로 작용했다.

    외형적으로는 드 하빌랜드 특유의 쌍동체 구조다. 베놈과 비교할 경우 강력한 쌍발 엔진을 탑재하느라 전장이 길다. 고속 비행을 위해 주익의 후퇴각이 크지만 결함을 손보느라 기체 구조를 변경하면서 음속 돌파는 불가능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좌측 조종사 콕핏과 달리 우측 무장관제사의 탑승 구역은 매립된 구조로 평평해 특이한 구조다. 그래서 기수의 좌측만 돌출된 모습으로 보인다.

    시 빅슨 정면 모습. 기수 좌측 조종석 부분이 도출되고 우측 무장관제사 좌석은 매립된 특이한 형태다. < 출처 : Public Domain >
    시 빅슨 정면 모습. 기수 좌측 조종석 부분이 도출되고 우측 무장관제사 좌석은 매립된 특이한 형태다. <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프로토타입 2기를 포함해 총 145기만 제작되어 전량 영국 해군이 사용했다. 아직은 영국이 제국의 위엄이 살아있던 시절이었고 뱀파이어나 베놈과 비교한다면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제892, 890, 893, 899 전투비행대 순으로 배치되었고 항공모함 아크 로열(R09), 이글(R05), 허미스(R12)에 전개되어 작전을 벌였다. 이외 교육을 위해 별도 편성된 제766 훈련비행대에도 공급되었다.

    1964년 미 해군 제55 공격비행대 소속 A-4와 합동 훈련 중인 제893 전투비행대 소속 시 빅슨. < 출처 : Public Domain >
    1964년 미 해군 제55 공격비행대 소속 A-4와 합동 훈련 중인 제893 전투비행대 소속 시 빅슨. < 출처 : Public Domain >

    전면전에서 활약한 적은 없고 여러 지역 분쟁에 영국이 개입했을 때 투입되었다. 1961년 벌어진 이라크-쿠웨이트 분쟁, 1964년 탕가니카(현 탄자니아) 독립 당시 벌어진 내전, 로디지아(현 짐바브웨) 독립 저지 작전 등이 대표적이다. 초기형인 FAW.1은 1966년에 개량형인 FAW.2에게 순차적으로 자리를 넘겨주었고 FAW.2도 팬텀 FG.1에 대체되어 1972년에 완전히 퇴역했다. 따라서 활동 기간이 10년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1967년 HMS 이글 항모에서 이륙하여 훈련 중인 시 빅센 < 출처 : Public Domain >
    1967년 HMS 이글 항모에서 이륙하여 훈련 중인 시 빅센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빅슨: 육상 기지 기반 공군형. 취소.
     
    시 빅슨 FAW.1: 초기 양산형.

    버디 급유를 시연 중인 시 빅슨 FAW.1 < 출처 : (cc) Arpingstone at Wikimedia.org >
    버디 급유를 시연 중인 시 빅슨 FAW.1 < 출처 : (cc) Arpingstone at Wikimedia.org >

    시 빅슨 FAW.2: 8.9G까지 견딜 수 있도록 기골을 보강한 개량형.

    시 빅슨 FAW.2 < 출처 : (cc) Nigel Ish at Wikimedia.org >
    시 빅슨 FAW.2 < 출처 : (cc) Nigel Ish at Wikimedia.org >

    시 빅슨 D3: 무인 표적기형.


    제원(FAW.2)

    전폭: 15.54m
    전장: 16.94m
    전고: 3.28m
    주익 면적: 60.2㎡
    최대 이륙 중량: 21,205kg
    엔진: 롤스로이스 Avon 208 터보제트(11,000파운드) X 2
    최고 속도: 1,100km/h(마하 0.91)
    실용 상승 한도: 15,000m
    전투 행동반경: 1,270km
    무장: 4 X 로켓 포드
            4 X 레드탑 또는 파이어 스트릭 AAM
            2 X 불펍 AGM
            1 X 레드 베어드 핵폭탄
            4 X 500파운드 폭탄
            2 X 1,000파운드 폭탄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시 빅슨 전투기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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