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F8F 전투기
늦게 등장해 최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전투기
  • 남도현
  • 입력 : 2021.12.07 09:02
    F8F는 미국이 제식화 한 마지막 레시프로 전투기다. < 출처 : (cc) Airwolfhound at Wikimedia.org >
    F8F는 미국이 제식화 한 마지막 레시프로 전투기다. < 출처 : (cc) Airwolfhound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기의 성능은 나중에 탄생한 것이 당연히 좋다. 상대보다 뛰어난 무기를 가져야 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세기 중반에 돌격소총이 등장하면서 100년이 넘게 주력으로 사용하던 볼트액션 소총은 주인공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물론 저격용 소총처럼 해당 기술이 여전히 사용되기는 하나 일반적인 교전 상황에서는 아무리 최신 볼트액션 소총이라도 돌격소총보다 좋은 전과를 낼 수 없다.

    F8F은 성능이 좋았으나 데뷔 시기가 어정쩡해서 흐지부지 도태되었다. < 출처 : (cc) Chowells at Wikimedia.org >
    F8F은 성능이 좋았으나 데뷔 시기가 어정쩡해서 흐지부지 도태되었다. < 출처 : (cc) Chowells at Wikimedia.org >

    이처럼 무기는 혁명적인 변화가 있으면 이전의 것을 신속히 무효화시키고는 한다. 따라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혹은 반대로 기술이 너무나 급속히 변화되어 좋은 성능에도 불구하고 도태되기도 하는데 전투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년만 빨리 탄생했어도 찬란한 역사를 썼을 만한 많은 전투기가 시대의 흐름 때문에 역사의 뒤편으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사례도 종종 있다. 미국의 함상전투기인 F8F가 대표적이다.

    F8F의 탄생은 유명한 F4U와 관련이 많다. 1942년부터 실전 배치된 보우트의 F4U는 일본의 A6M를 제압할 수 있는 필살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착함 기능에 문제가 있어서 곧바로 항공모함에 탑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단 지상 기지를 기반으로 운용이 시작되었다. 이때 발생한 공백을 훌륭히 메꾸어 준 것이 그루먼(Grumman)의 F6F였다. 비록 F4U보다 개발과 배치가 늦었으나 항공모함에 먼저 오른 덕분이었다.

    개발 기반이 되었던 F6F(아래)와 합동 시범 비행 중인 F8F. 전반적으로 크기가 작아지고 조종석 구조가 바뀌었다. < 출처 : (cc) airportjournals.com >
    개발 기반이 되었던 F6F(아래)와 합동 시범 비행 중인 F8F. 전반적으로 크기가 작아지고 조종석 구조가 바뀌었다. < 출처 : (cc) airportjournals.com >

    그럴 수 있었던 것은 F6F가 일단 외형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루먼의 전작인 F4F를 기반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검증된 기술을 많이 채택했기에 기계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F6F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일본을 제압하는 선봉장이 되었다. 하지만 1944년을 기점으로 성능 개선을 마친 F4U가 본격적으로 항공모함에서 운용되기 시작하자 서서히 2선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F4U와 F6F, 두 기종 모두가 심장으로 R-2800 엔진을 탑재했기에 비행 성능은 기체의 구조에서 갈렸다. 때문에 단순히 F4F의 크기를 키우는 형태로 개발된 F6F가 처음부터 엔진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기체가 설계된 F4U에 시간이 갈수록 밀린 것은 당연했다. 어차피 좋은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미 해군에게 이런 상황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그루먼에게 상당한 고민이었다.

    플랫휘트니의 R-2800 성형엔진은 무기사에 길이 빛날 기록들을 남긴 F6F, F4U, P-47의 심장이었다. F8F에도 채택되었으나 제트 시대가 시작되면서 명성을 잇지 못했다. < 출처 : (cc) Dsdugan at Wikimedia.org >
    플랫휘트니의 R-2800 성형엔진은 무기사에 길이 빛날 기록들을 남긴 F6F, F4U, P-47의 심장이었다. F8F에도 채택되었으나 제트 시대가 시작되면서 명성을 잇지 못했다. < 출처 : (cc) Dsdugan at Wikimedia.org >

    그래서 그루먼은 이미 1943년 중순부터 F4U는 물론 향후 출현이 예상되는 일본 전투기들을 압도할 수 있는 G-58의 개발에 착수했다. 전시였기에 미 해군도 그루먼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루먼은 당장 채택이 중요하기에 F6F의 개발 경험을 살려 전작을 개량하는 방식을 택했다. 당장 R-2800 엔진을 능가하는 대체 작이 없기에 기체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그루먼의 실수가 되었다.

    그때까지 벌어진 수많은 실전 경험이 개발에 반영되었다.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기동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특히 고공까지 신속히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뛰어난 상승력을 요구했다. 그루먼의 기술진은 기체의 크기를 최소한으로 축소하되 R-2800 엔진이 탑재될 수 있고 그 강력한 힘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오로지 공대공 전투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무장 능력도 줄였다.

    XF8F-1 프로토타입. 옆의 사람과 비교하면 기체는 작지만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 엔진과 프로펠러가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XF8F-1 프로토타입. 옆의 사람과 비교하면 기체는 작지만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 엔진과 프로펠러가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때 참조가 되었던 것이 영국이 우연히 노획한 독일의 Fw 190였다. 그루먼에서는 기술적으로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기술진들이 현지로 찾아가 조사를 실시했었다. 이처럼 콘셉트가 확실히 정해졌고 기술적 기반도 갖추어진 상태였기에 개발은 신속히 진행되었다. 1943년 11월 설계가 완료되었고 XF8F-1로 명명된 프로토타입이 1944년 8월 21일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각종 실험에서 F4U를 능가하는 속도와 기동력을 자랑했다.

    결과에 고무된 미 해군은 10월에 2,023기의 F8F 도입 계약을 체결했고 이와 별도로 하청 생산형인 F3M을 생산하는 GM과도 1,876기의 구매 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많은 기대 속에 1945년 5월 21일 납품이 개시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8월에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막을 내리면서 F8F는 실전에서 활약도 못해 보고 계약의 대부분이 취소되었다. 이후의 행로도 불운의 연속이었다.

    F8F는 전후 미 해군 시범비행단인 블루 에인절스에서 사용되었던 점을 제외하고 특이한 운용 사례는 없다. < 출처 : Public Domain >
    F8F는 전후 미 해군 시범비행단인 블루 에인절스에서 사용되었던 점을 제외하고 특이한 운용 사례는 없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제트전투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순식간 어중간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었다. F8F는 레스프로 전투기로는 최고라고 자부할만했으나 더 이상 성능을 향상시킬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해 제트전투기 시대가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루먼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경쟁에서 이기려다 보니 F8F는 과거의 시대로는 고성능이었지만 새로운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결과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F4U도 시대의 변화로 말미암아 주력 전투기에서 내려온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2차 대전사에 찬란할 정도로 많은 기록을 여한 없이 남겼고 제트전투기 시대가 도래한 후에는 준수한 폭장 능력과 저고도 비행 능력을 발판 삼아 공격기로 변신해서 활약했다. 반면 비행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체를 작게 만든 F8F는 그처럼 용도를 바꿀 수도 없었다. 결국 계륵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다가 순식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특징

    F8F은 기반이 되었던 F6F 보다 크기와 무게가 20퍼센트 정도 줄었으나 탑재된 엔진은 좀 더 강력한 R-2800-30W이다. 무게가 줄어들면서 익면 하중이 커졌으나 워낙 힘이 좋아 속도가 빨라졌고 여타 비행 성능도 향상되었다. 특히 신경을 많이 쓴 상승률은 30퍼센트 정도 늘어났는데, 1946년에 94초 동안 10,000피트를 상승한 기록은 제트전투기가 실용화된 이후인 1956년까지도 최고였다.

    1949년 CV-45 밸리 포지에 전개된 VF-111 소속 F8F. 커다란 프로펠러 때문에 랜딩기어가 기체의 크기에 비해 상당히 길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49년 CV-45 밸리 포지에 전개된 VF-111 소속 F8F. 커다란 프로펠러 때문에 랜딩기어가 기체의 크기에 비해 상당히 길다. < 출처 : Public Domain >

    크기가 작아서 사출기가 없는 호위 항공모함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 이 또한 태평양전쟁의 전훈이 반영된 결과지만 정작 배치 직후에 전쟁이 종결되고 함재기도 제트화되면서 그렇게 활약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엔진이 강력한 대신 크기가 커서 프로펠러가 무리 없이 작동하도록 랜딩기어가 길다. 때문에 F6F보다 기수가 많이 들려서 이착함 시에 조종사가 시야에 제약이 많이 가해졌다.

    1947년 비행 중인 VF-5 소속 F8F. 최고의 프로펠러 전투기 중 하나이나 실전에서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 출처 : (cc) SDASM Archives at Wikimedia.org >
    1947년 비행 중인 VF-5 소속 F8F. 최고의 프로펠러 전투기 중 하나이나 실전에서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 출처 : (cc) SDASM Archives at Wikimedia.org >

    기체가 작아서 20mm 기관포가 F6F보다 2문이 적은 4문이 장착되었다. 일본 전투기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으나 그만큼 화력이 감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오로지 공대공 전투만을 목적으로 개발되었기에 여타 용도로 전환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결국 이런 결정적인 제약은 이후 개량을 실시했어도 F8F가 공격기처럼 다른 용도나 2선급 작전용으로 쓰이지 못하고 단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운용 현황

    F8F는 1944년부터 1949년까지 총 1,265기가 생산되었다. 최초 계획 물량이 4,000여 기 정도였던 점과 비교한다면 대폭 감소한 숫자다. 하지만 일선 배치는 이루어졌어도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이 또한 과할 정도로 많은 수량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처럼 성능이 프로펠러 전투기로는 좋지만 제트전투기에는 현격히 떨어지고 다른 용도로 전환이 어렵기 때문에 굳이 이 정도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결국 미군에서는 1955년에 퇴역했다.

    F8F는 종전을 앞두고 배치되어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으며, 종전 후 도래한 제트전투기 시대에 뒤쳐짐으로써 1955년 퇴역할 수 밖에 없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F8F는 종전을 앞두고 배치되어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으며, 종전 후 도래한 제트전투기 시대에 뒤쳐짐으로써 1955년 퇴역할 수 밖에 없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F8F의 몰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제2차 대전이 끝난 지 불과 5년 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다. MiG-15에 그루먼이 개발한 제트전투기인 F9F도 밀릴 정도였으니 F8F가 공대공전투를 벌일 수 없었다. 최초의 실전은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당시 프랑스군에 공여된 기체들이 치렀다. 1951년 총 200기가 공급되었고 그중 28기가 철군 후 남베트남군에게 이전되었다. 또한 태국에도 129기가 공여되었다. 이들 모두는 1960년대 초에 퇴역했다.

    태국에 총 129기가 공여되어 1960년까지 운용되었다. < 출처 : (cc) Mztourist at Wikimedia.org >
    태국에 총 129기가 공여되어 1960년까지 운용되었다. < 출처 : (cc) Mztourist at Wikimedia.org >



    변형 및 파생형

    XF8F-1: 프로토타입. 2기.

    XF8F-1 시제기 < 출처 : Public Domain >
    XF8F-1 시제기 < 출처 : Public Domain >

    F8F-1: 접이식 날개, 테일 휠, 자체 밀봉 연료 탱크, R-2800-34W 엔진. 12.7mm 기관총 4문. 658기.

    F8F-1 < 출처 : (cc) Kogo at Wikimedia.org >
    F8F-1 < 출처 : (cc) Kogo at Wikimedia.org >

    F8F-1B: AN/M3 20mm 기관포 4문. 100기.

    F8F-1B < 출처 : Public Domain >
    F8F-1B < 출처 : Public Domain >

    F8F-1C: 도입 후 F8F-1B로 재지정. 126기.
     
    F8F-1D: 무인 드론기 개조형.
     
    F8F-1(D)B: 프랑스, 태국 수출형.

    F8F-1(D)B < 출처 : (cc) D.1122 at Wikimedia.org >
    F8F-1(D)B < 출처 : (cc) D.1122 at Wikimedia.org >

    F8F-1E: APS-4 레이더 탑재 야간 전투기 프로토타입.
     
    XF8F-1N: F8F-1 기반 야간 전투기 프로토타입.
     
    F8F-1N: APS-19 레이더 탑재 야간 전투기. 12기.

    F8F 전투기

    F8F-1P: F8F-1 기반 정찰기.
     
    F3M-1: GM 생산 예정형.
     
    F4W-1: 캐나다 Car and Foundry 생산 예정형.
     
    XF8F-2: 엔진, 카울링, 수직 미익 개량형 프로토타입.
     
    F8F-2: R-2800-30W 엔진. 20mm 기관포 4문 장착형.

    F8F-2 < 출처 : Public Domain >
    F8F-2 < 출처 : Public Domain >

    F8F-2D: F8F-2 무인 드론기 개조형.
     
    F8F-2N: APS-19 레이더 탑재 야간 전투기. 12기.

    F8F-2N < 출처 : Public Domain >
    F8F-2N < 출처 : Public Domain >

    F8F-2P: 정찰기형.

    F8F-2P < 출처 : Public Domain >
    F8F-2P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F8F-2)

    전폭: 10.92m
    전장: 8.61m
    전고: 4.22m
    주익 면적: 22.7㎡
    최대 이륙 중량: 3,470kg
    엔진: 플랫 휘트니 R-2800-30W 성형엔진, 2,250hp(1,680kW)×1
    최고 속도 : 732km/h
    실용 상승 한도: 12,400m
    전투 행동반경: 1,778km
    무장: 20mm AN/M3 기관포×4
            5인치 로켓×4
            454kg 폭장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F8F 전투기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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