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페어리 델타 2 항공기
전투기로는 사장됐지만 콩코드로 되살아난 삼각 날개
  • 윤상용
  • 입력 : 2021.11.29 08:49
    페어리 델타 2 <출처: Public Domain>
    페어리 델타 2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세계 주요 항공 선도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제트 엔진 개발을 시작했으나, 영국은 상대적으로 늦게 제트기 개발에 착수했다. 제트기 개발 후발 주자가 된 영국 정부는 선발 국가와의 격차를 좁힐 방법을 다각도로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영국 군수성(Ministry of Supply)은 초음속 항공기 개발에 사용할 데이터 수집용 초음속 연구용 항공기 요구도를 수립한 후 항공기를 개발할 업체를 물색했다. 이에 군수성의 정보요청서에 회신한 업체는 찰스 리처드 페어리 경(Sir Charles Richard Fairey, 1887~1956)이 설립한 페어리 항공(Fairey Aviation)으로, 당시까지 주로 수상기와 항모용 함재기를 제작해 온 업체였다.

    당시 페어리 항공은 삼각익(delta wing) 개념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군수성의 요구도가 발행되자마자 삼각익 기반의 초음속 항공기 개념을 작성한 후 군수성에 제안했다. 제안서를 받은 군수성도 초음속 삼각익 항공기 개념에 관심을 보여 시험 비행을 실시할 테스트용 모델 항공기 제작을 주문했으며, 이에 따라 모델 항공기가 1947년까지 완성되어 영국 군수성에 납품했다. 모델 기체는 영국 왕립항공연구소(RAE: the Royal Aircraft Establishment)가 인수한 후 수직이착륙(VTOL: Vertical Take-off and Landing) 응용 여부 등을 연구했으며, RAE의 평가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자 영국 항공성(Air Ministry)은 완전한 천음속 삼각익 항공기의 정식 요구도를 ‘E.10/47 요구도’로 발행했다.

    사실상의 실패작으로 끝난 페어리 델타 1. (출처: United Kingdom Government)
    사실상의 실패작으로 끝난 페어리 델타 1. (출처: United Kingdom Government)

    페어리 항공은 1951년 3월 12일까지 “R형 항공기(Type R)”라 명명된 삼각익 제트기를 개발했으며, 1950년 중반까지 지상 시험만 실시하다가 1951년 3월 12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훗날 후속으로 제작된 기체와 구분하기 위해 나중에 “페어리 델타(Fairey Delta) 1”으로 명명된 이 기체는 핸들링과 안전성 면에서 평가가 좋지 않았으므로 양산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다가 1951년 9월, 유일한 시제기가 착륙 도중에 추락해 파손됐다. 페어리 항공은 영국 왕립공군의 관심이 완전히 끊긴 가운데 이 기체를 회수해 수리했으며, 1956년까지 회사 사비로 계속 시험 비행을 실시하다가 다시 한번 착륙 사고로 기체가 파손되자 완전히 폐기해버렸다.

    비록 델타 1 개발은 실패로 끝났지만, 영국 왕립공군은 1950년대 중후반이 되면서 약 700대가량 운용 중이던 1세대 제트기들의 대체기 도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왕립공군은 1950년대 후반이 되면서 ‘영국은 초음속 항공기’ 분야에서 뒤처졌다는 것이 통념화 됨에 따라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고, 이 시기에 터진 6.25전쟁을 통해 향후 제트기가 전장에서 일반화될 것으로 예상되자 빠르게 새로운 도입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물론 영국도 호커 헌터(Hawker Hunter)나 글로스터 재블린(Gloster Javelin) 같은 전투기를 개발하긴 했지만, 영국은 ‘단 하나의 사업’으로 판도를 뒤집어 초음속 항공 기술의 기술 후발국에서 기술 선도국으로 입지를 바꾸기를 희망했다.

    페어리 델타 2의 모습. 1950년 항공기 홍보용으로 영국 정부에서 촬영한 것이다. (출처: United Kingdom Government)
    페어리 델타 2의 모습. 1950년 항공기 홍보용으로 영국 정부에서 촬영한 것이다. (출처: United Kingdom Government)

    영국 군수성은 델타 1 사업의 실패 후 천음속(遷音速: transonic) 항공기 개발을 위한 사업을 발주했으나, 이번에는 페어리 항공이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해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페어리 항공은 쌍발 엔진을 장착하고 후퇴각을 크게 적용한 후퇴익 항공기 제안서를 따로 제출했으나, 왕립공군은 이미 쌍발 엔진 초음속 항공기인 잉글리시 일렉트릭(English Electric)사의 라이트닝(English Electric Lightning)을 개발하고 있었으므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업체와 군은 차기 초음속 항공기 개발을 놓고 줄다리기를 반복하다가 페어리 항공 측이 물러서면서 단발 엔진 천음속 항공기 개발로 변경하기로 합의했다. 페어리 항공은 1949년 초에 해당 제안서를 새로 제출했으며, 왕립공군은 이를 바탕으로 공군성 요구도 ER.103을 발행해 두 대의 시제기 개발을 의뢰했다.

    공군성 요구도에 따라 고속 항공기 개발을 시작한 페어리 항공은 프로젝트명을 “페어리 델타 2(Fairey Delta 2, FD2)”로 명명했다. 페어리 항공은 항공기의 설계를 1949년까지 완료한 뒤 두 대의 시제기 제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실 페어리 항공은 주로 수상기와 단엽기 위주로만 개발해왔고, 고속 항공기는 단 한 번도 제작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요구도에 맞는 고속 항공기 개발은 어려움이 많았다. 이 때문에 페어리 항공은 1951년 10월에 급하게 호커 항공(Hawker Aircraft) 출신의 엔지니어인 로버트 릭클리(Sir Robert Lang Lickley, 1912~1998)를 채용해 수석 엔지니어로 삼았다. 하지만 소련의 잠수함 전력이 위협으로 대두되면서 군의 관심이 온통 그쪽으로 쏠리자 페어리 항공 역시 항모용 해상초계기인 가넷(Fairey Gannet) 제작을 더 우선순위 사업으로 올릴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델타 2 개발 일정은 지속적으로 밀리게 되었다.

    2016년 6월에 촬영된 페어리 델타 2 시제기 2번기(WG777). (출처: Tony Hisgett/Wikimedia Commons)
    2016년 6월에 촬영된 페어리 델타 2 시제기 2번기(WG777). (출처: Tony Hisgett/Wikimedia Commons)

    델타 2의 기술 설계는 1952년 9월에 완료됐으며, 곧이어 두 대의 시제기 조립이 시작됐다. 요구도는 마하 1만 넘길 것을 요구했으나 페어리 항공은 이 속도를 상회할 수 있도록 동체를 개발했으며, 전반적인 항공기 구조물이나 설계 역시 요구도보다 높게 잡아 훗날 이 기체가 전투기로 개발이 되더라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끔 했다. 페어리 항공은 기체 번호 WG774와 WG777 두 대의 시제기를 완성했으며, 2번기인 WG777은 1번기와 전반적으로 유사했으나 주익 하부 플랩이 제거되고 장비와 계기류가 약간 달랐다. 페어리 항공은 실제 비행시킬 두 대의 시제기 외에도 지상 시험용 기체를 한 대 더 제작했다.

    페어리 항공은 1954년 10월 6일, 시험 비행 조종사 피터 트위스(Lionel Peter Twiss, 1921~2011)가 조종하는 시제기 1번기인 WG774의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1번기가 시작부터 우수한 성능을 보여준 가운데 2번기도 곧 비행을 시작했으나, 14회차 비행인 1954년 11월 17일 비행 중 엔진 고장이 발생해 추락했다. 당시 WG777기는 엔진 내부 압력이 올라가다가 동체 내 연료 탱크를 파손시켰고, 이로 인해 엔진 연료 공급이 중단되자 이륙 후 고도 9,100m까지 약 50km가량 비행한 상태에서 피터 트위스가 무동력 활강으로 활주로에 착륙시켰다. 당시 기체는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수만 일부 파손되었고, 조종사는 부상 없이 돌아왔으므로 트위스는 영국 왕실로부터 왕실 항공 우수근무표창(Queen’s Commendation for Valuable Service in the Air)을 수여 받았다. 비상 착륙한 시제기는 무사히 회수되었으며, 수리 후 다시 시험 비행을 재개했다.

    1956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비행 중인 델타 2 1번기(WG774)의 모습. (출처: RuthAS/Wikimedia Commons)
    1956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비행 중인 델타 2 1번기(WG774)의 모습. (출처: RuthAS/Wikimedia Commons)

    초창기 시험 비행은 영국 남부 지방에서 실시됐다. 하지만 민가 상공에서 초음속 비행을 실시하다가 소닉 붐(sonic boom: 음파 충격)으로 민가 유리창이 깨지는 등 피해가 발생하자 엄청난 항의가 들어왔고, 그 결과 군수성은 초음속 항공기 시험 비행을 영국 내에서 실시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페어리는 해외에서 초음속 시험 비행을 실시할 장소를 물색하다가 프랑스와 노르웨이 두 곳에서 나누어 테스트를 실시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시험 비행 전 민가 피해 보상을 위한 보험을 사전에 들도록 요구했는데, 앞서 영국에서 시험 비행을 할 때는 보험 업체들이 비현실적인 가격을 불러 보험 가입을 할 수 없던 반면, 프랑스 업체들은 40파운드 밖에 요구하지 않았다. 프랑스와 노르웨이에서 시험 비행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단 한 건도 민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2번 시제기인 WG777은 1956년 2월 15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며, 같은 해 4월 14일에는 수락 확인 비행을 실시한 후 영국 왕립공군 측이 공식적으로 수락했다. 두 기체는 1956년 9월, 영국 햄프셔(Hampshire)에서 열린 판보로(Farnborough) 에어쇼에 출품되었으며, 이 시기부터 항공역학 특성이나 핸들링, 안정성 등 다양한 테스트가 실시됐다. 페어리 항공은 테스트를 통해 델타 2의 설계가 고속 비행에 대한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무엇보다도 재열(再熱, reheat)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천음속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험 비행 조종사인 피터 트위스 또한 델타 2로 시속 1,000마일(1,609km/h, 혹은 마하 1.3) 이상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트위스는 델타 2로 마하 2까지 도달해 보자는 의견을 냈는데, 그는 델타 2의 성능을 입증하기 위해 기존 아메리칸 항공의 F-100 슈퍼 세이버(Super Sabre)가 1955년에 달성한 제트기 최고 속도 기록(1,390km/h, 마하 1.13)을 깨 보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군수성은 이 시도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미 이 시기부터는 유도 미사일이 곧 대세가 되어 유인전투기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이 주장의 골자는 항공 무기체계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됐으므로 앞으로의 공중전은 인간이 탑승하지 않은 초고속 미사일 간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1956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비행 중인 델타 2 1번기(WG774)의 모습. (출처: RuthAS/Wikimedia Commons)

    페어리는 최고 속도 기록 수립 시도 허가를 어렵사리 얻었지만, 트위스는 훗날 ‘최고 속도 기록을 수립하는 것은 국격을 높이는 일이므로 정부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줄 알았는데,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 의아했다’고 회고했다. 심지어 엔진 제조사인 롤스로이스도 이 시도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엔진 성능은 차치하더라도, 항공기 엔진 흡입구 설계가 마하 1.5 이상 속도로 비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게 설계됐다는 이유였다. 결국 군수성은 기록 수립 시도를 위해 한 푼도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았으므로 페어리사는 자비로 기록 경신 준비에 들어갔고, 만약을 위한 보험비까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여기서 물러나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판단한 페어리사는 계속 비행 기록 수립 작업을 강행했으며, 결국 1956년 3월 10일, 델타 2 시제기 1번기가 마하 1.48(1,811km/h)까지 도달하면서 기존 슈퍼 세이버가 수립한 기록을 경신했다.

    델타 2의 신기록 수립은 페어리의 기대처럼 커다란 반향을 불러오긴 했으나, 정작 영국보다는 미국과 프랑스가 더 긴장했다. 미국은 페어리 델타 2의 동체 설계를 세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고, 프랑스는 전반적인 전투기 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여 삼각익 전투기 개발을 진지하게 고려해 훗날 다쏘(Dassault)의 미라주 III(Mirage III)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결국 델타 2가 수립한 최고 속도 신기록은 불과 21개월 후인 1957년 12월 12일, 미 공군의 JF-101A 부두(Voodoo)가 1,943.4km/h(마하 1.58)를 기록하면서 깨지고 말았다.

    비록 페어리 델타 2는 양산 단계로 못 넘어가고 사장됐지만, 영국이 시도한 삼각익 설계는 이후 냉전 시기에 등장한 삼각익 전투기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진은 프랑스 다쏘(Dassault)의 미라주 III(Mirage III) 전투기. (출처: TSGT. Curt Eddings/USAF)
    비록 페어리 델타 2는 양산 단계로 못 넘어가고 사장됐지만, 영국이 시도한 삼각익 설계는 이후 냉전 시기에 등장한 삼각익 전투기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진은 프랑스 다쏘(Dassault)의 미라주 III(Mirage III) 전투기. (출처: TSGT. Curt Eddings/USAF)

    델타 2는 기록 수립 후에도 계속해서 시험 비행을 재개했으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국 정부는 이미 초음속 순항 미사일이 미래 공중전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갖기 시작했기 때문에 델타 2의 양산에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결국 사실상 개발에 성공한 기체임에도 불구하고 페어리 델타 2는 양산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으며, 시제기 두 대는 모두 1958년 영국 왕립항공연구소(RAE)가 인수하여 1973년까지 다양한 용도의 데이터 수집 용도로 활용하다가 퇴역시켰다. 비록 군용 항공기 분야에서는 델타 2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델타 2의 능력을 눈여겨 본 곳은 60년대로 넘어가면서 폭발적으로 시장 규모가 증가한 민수 여객 항공 분야였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초음속 민항기 개발을 추진하면서 양국 기술진은 델타 2의 기술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했을 뿐 아니라, 시제기 1번기(WG774)를 “콩코드(Concorde)” 사업에 투입하여 활용했기 때문이다.


    특징

    델타 2는 중익(中翼)에 무미익 삼각익을 채택했으며, 수평 미익이 없는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델타 2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양항비이다. 델타 2는 동체 앞부분이 살짝 하방으로 기울어지게 설계해 훗날 등장할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조종석 또한 최소한의 크기로 설치했으며, 기수 자체도 얇은 원통형 설계로 잡아 최대한 기체 전면부의 면적을 줄였다. 이는 바늘이나 다트(dart)처럼 최대한 얇고 뾰족하게 설계하여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롤스-로이스(Rolls-Royce)사의 에이본(Avon) RA.14R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한 델타 2는 엔진 성능과 설계 상의 장점 때문에 엔진 재열(reheat)이 필요 없이 한 번에 천음속으로 도달할 수 있었다.

    델타 2는 뛰어난 양항비를 갖춘 무미익 삼각익 항공기이다. <출처: Public Domain>
    델타 2는 뛰어난 양항비를 갖춘 무미익 삼각익 항공기이다. <출처: Public Domain>

    델타 2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훗날 등장할 콩코드 여객기처럼 기수를 아래로 꺾을 수 있게 설계한 점이다. 통상 길고 뾰족한 형태의 기수가 채택된 항공기는 이착륙 및 지상 이동 간 조종사의 시야를 방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필요에 따라 적절한 각도로 기수를 꺾을 수 있게 하여 조종사의 시야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조종석이 위치한 기수는 항상 꺾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유압식으로 10도가량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이 설계는 훗날 콩코드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개조된 BAC221 기의 기수 부분 모습. 이착륙 간 각도를 꺾을 수 있게 설계된 뾰족한 기수가 특징적이다. BAC221은 엔진 흡입구를 주익 아래로 옮겼다. (출처: Roland Turner/Wikimedia Commons)
    개조된 BAC221 기의 기수 부분 모습. 이착륙 간 각도를 꺾을 수 있게 설계된 뾰족한 기수가 특징적이다. BAC221은 엔진 흡입구를 주익 아래로 옮겼다. (출처: Roland Turner/Wikimedia Commons)

    앞서 언급했듯이 델타 2의 조종석은 상대적으로 좁은 편인데, 처음부터 음속 돌파를 고려해 기수를 얇고 뾰족하게 설계한 데다 항전장비류가 기수에 장착된 것이 많다 보니 조종석 공간이 넓게 남지 못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조종석 공간이 작아졌다. 델타 2의 비행통제체계는 모두 유압 방식으로 작동하며, 기계적인 백업(backup)은 되어 있지 않다. 페어리 항공은 델타 2 개발 직전에 신형 고압 유압체계를 개발한 적이 있는데, 이 체계가 모두 그대로 델타 2 개발에 적용됐다. 유일한 문제는 유압체계로 작동하다 보면 조종사에게 작동 반응, 즉 ‘조작의 느낌’이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느낌이 인공적으로 조종간으로 전달되게끔 설계했다.

    개조된 BAC221 기의 기수 부분 모습. 이착륙 간 각도를 꺾을 수 있게 설계된 뾰족한 기수가 특징적이다. BAC221은 엔진 흡입구를 주익 아래로 옮겼다. (출처: Roland Turner/Wikimedia Commons)

    델타 2의 주익은 리딩에지(leading edge)부터 삼각형을 이루며, 후퇴각은 60도가 적용됐다. 날개 두께도 매우 얇게 제작되어 당대 항공기 중에서는 가장 얇은 날개를 가진 항공기 중 하나였다. 기체 내부 공간에는 4개의 연료 탱크가 탑재됐지만 델타 2의 항속 거리 자체는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다. 이 문제는 훗날 콩코드 사업용으로 시제기 2번기가 개조되면서 크게 개선됐다.


    운용 현황

    페어리 델타 2는 1956년 영국 판보로(Farnborough)에서 열린 판보로 에어쇼에서 처음 공개됐다. 델타 2는 앞서 언급한 세계 최고 속도 비행 기록을 경신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미 초음속 전투기 개발에서 눈을 돌린 영국 정부가 양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사업은 그대로 종료됐다. 설상가상으로 1960년에는 영국 정부가 20개가 넘는 국내 항공 관련 기업의 강제 합병을 명령하면서 페어리 항공 또한 웨스트랜드 항공(Westland Aircraft, 1961년 강제 합병으로 웨스트랜드 헬리콥터가 됐다가 2000년 어거스타에 합병되어 어거스타-웨스트랜드가 됨. 2016년 이탈리아 레오나르도가 흡수하면서 그룹 산하로 흡수)에 합병됐다. 당시 영국은 고정익 항공기 제작 업체는 모두 브리티시 항공(British Aircraft Co., BAC: 1977년 호커-시들리 및 스코티쉬 항공과 합병하여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로 개명)과 호커-시들리(Hawker-Siddley) 두 업체로 나뉘어 강제 병합됐고, 헬리콥터 업체는 모두 웨스트랜드로 합병시켜 국내 항공 기업을 정리했다.

    페어리 델타 2 항공기

    다행스럽게도 페어리 델타 2의 기술은 그대로 사장되지 않고 민간 분야에서 활용됐다. 시제기 1번기인 WG774기는 퇴역 후 초음속 민항기 시대를 열었던 콩코드 여객기 사업이 추진되면서 비행 데이터 수집용 항공기로 다시 선택받았다. 콩코드는 당시로서 일찍이 시도된 적이 없는 아치형 삼각익(ogival delta wing: 삼각익이지만 주익 아래쪽 변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들어간 날개)을 적용하게 되면서 실제 비행 데이터 수집이 필요해졌다. 이에 초음속 비행이 가능하고, 이미 삼각익이 적용된 데다 기수가 아래로 꺾여 콩코드와 유사한 설계가 적용되어 있던 페어리 델타 2의 주익을 아치형 삼각익으로 교체했으며, 교체 후 항공기 명칭도 BAC221로 변경했다. 기체 명칭이 BAC 221이 된 이유는 콩코드 사업이 시작되기 전 페어리 항공의 항공 부문이 모두 BAC에 인수된 뒤였기 때문에 기체 명칭도 업체명에 따라 BAC221이 된 것이다. BAC221은 아치형 삼각익의 고속 비행 특성 연구 및 풍동 실험 용도로 사용됐으며,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1965년 2월부터 콩코드 여객기 1번 시제기가 제작될 때 귀중하게 반영되었다.

    콩코드 개발을 진행한 콩코드 컨소시엄 측은 아치형 삼각익을 활용한 저속 비행 특성에 관한 데이터는 핸들리-페이지(Handley-Page, 1970년 기업 청산 후 폐업)에서 제작한 HP.115 항공기를 사용했으며, 고속 비행 중의 비행 특성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BAC 221기를 활용했다. 최초 BAC 측은 WG774 기체를 최소한 개조하는 방안과 최대한 개조하는 방안 두 가지를 놓고 고민했다. 전자는 간단히 주익만 교체하고 다른 부분은 손대지 않는 방안이었고, 후자는 동체 길이를 늘리고, 콩코드에 실제 장착할 강화 랜딩기어도 설치하는 방안이었다. 두 방안 모두 엘리엇 브라더스(Elliott Brothers, Ltd.; 1967년 잉글리시 일렉트릭에 합병)사가 제작한 안정판을 달고 엔진 흡입구를 주익 아래로 옮기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왕립공군 코스포드 기지에 전시 중인 시제기 2번기(WG777)의 모습. (출처: Mick Lobb/Wikimedia Commons)
    왕립공군 코스포드 기지에 전시 중인 시제기 2번기(WG777)의 모습. (출처: Mick Lobb/Wikimedia Commons)

    BAC는 우선 전자의 방안을 선호했는데, 무엇보다 데이터 수집기 때문에 개발 일정에 영향이 발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0년 9월, 다시 “최대한” 개조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변경했으며, 1961년 7월 7일 자로 BAC221의 개조가 끝났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연료량이 증가한 것이 BAC221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델타 2는 탑재 연료량이 애매해 비행 중 가속을 하다가 연료가 부족해 최고 속도까지 도달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개조 때문에 핸들링 특성 등이 델타 2보다 떨어지게 됐으나, 최고 속도만큼은 오히려 향상되어 마하 1.6까지 도달했다. BAC 221은 1964년 5월 1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콩코드 사업에서 계속 활용된 뒤 콩코드 여객기 양산이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퇴역했다.

    콩코드 여객기와 함께 전시 중인 BAC 221. (출처: Public Domain)
    콩코드 여객기와 함께 전시 중인 BAC 221. (출처: Public Domain)

    콩코드 사업 종료 후 BAC221기(구 WG774)는 영국 요빌튼(Yeovilton)의 왕립해군 해군항공대 박물관 (Fleet Air Arm Museum)에 콩코드 여객기와 함께 전시되었으며, 2번기인 WG777기는 영국 슈롭셔(Shropshire)에 위치한 코스포드(Cosford) 왕립공군기지에 전시되었다.


    파생형

    BAC 221: 콩코드 여객기 개발 중 콩코드에 적용된 아치형 삼각익의 풍동 시험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페어리 델타 2 시제기 두 대 중 WG774를 개조한 기체. 1964년 5월 1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콩코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비행 데이터 수집 용도로 활용됐다.

    페어리 델타 2 시제기 1번기를 개조한 BAC221의 모습. 현재 영국 해군항공대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페어리 델타 2 시제기 1번기를 개조한 BAC221의 모습. 현재 영국 해군항공대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페어리 델타 3(Fairy Delta 3) 전투기: 영국 군수성에서 발행한 요구도 F.155(F.155 Specifications)에 맞춰 제안한 전천후 요격기 개발안. 소련의 고고도 핵무장 초음속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영국 군수성에서 요구도를 발행했으며, 1) 표적 접촉 후 20분 내 요격 능력, 2) 표적 속도 마하 1 이상, 3) 실용 상승 한도 18,000m, 4) 적외선 유도미사일 및 레이더 유도미사일 통합, 5) 조종사/항법사 2인승을 요구했다. 총 3개 업체가 제안서를 제출했으며, ‘페어리 델타 3’를 제안한 페어리 항공 외에도 P.187을 제출한 손더스-로(Saunders-Roe: 1964년 웨스트랜드에 합병), P.1103을 제안한 호커(Hawker), AW.169를 제안한 암스트롱-휘트워스(Armstrong-Whitworth; 1927년 비커스가 인수), 타입 559(Type 559)를 제안한 비커스(Vickers), DH.117을 제안한 드 하빌랜드(De Havilland), P.8을 제안한 잉글리시 일렉트릭(English Electric) 등 총 7개 업체가 입찰에 참가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1957년 국방백서를 발행하면서 해당 사업의 취소를 선언해 실제 제작되지는 못했다.

    페어리 델타 3의 예상도 <출처: Public Domain>
    페어리 델타 3의 예상도 <출처: Public Domain>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 프랑스 아에로스파시알(Aerospatiale)과 영국 BAC가 공동 제작한 세계 최초의 터보제트 추진 방식의 초음속 여객기. 엔진을 재열할 필요 없이 마하 2.04까지 도달할 수 있었으며, 좌석은 배열에 따라 92석에서 128석까지 배치가 가능했다. 1960년대 중반에 개발을 시작해 1969년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1986년부터 영국 브리티시 에어웨이즈(British Airways)와 프랑스의 에어프랑스(Air France), 미국의 브래니프 인터내셔널 에어웨이즈(Braniff International Airways) 등이 일부 제한적인 노선에 투입해서 운용했다. 초음속으로 비행하여 평균 8시간 걸리던 뉴욕-파리, 뉴욕-런던 구간을 불과 3시간 반 만에 주파할 수 있었으며, 뉴욕-파리, 뉴욕-런던,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댈러스 포트워스 국제공항 노선 등이 존재했다. 하지만 운용 비용이 워낙 높은 데다가 비싼 항공 운임(뉴욕-런던 간 이코노미 좌석이 평균 13,000달러 이상)에도 불구하고 채산성이 맞지 않았고, 유럽계 업체가 초음속 민항기 시장을 잠식할 것을 우려한 미국이 국내 진입 여객기의 초음속 비행을 금지시키는 등 견제 조치를 내리자 영국과 프랑스의 국적 항공사가 상징적으로만 운용했을 뿐, 더 이상 구매 항공사가 나오지 않았다. 2000년 7월 25일, 100명이 사망한 에어프랑스 4590편 추락 사건이 결정타가 되어 전 항공기가 모두 조기 퇴역했다.

    BAC221을 통해 아치형 삼각익 데이터를 수집하여 개발한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 브리티시 에어웨이즈가 운용하던 G-BOAC 기체이다. (출처: Eduard Marmet Collection/Wikipedia.org)
    BAC221을 통해 아치형 삼각익 데이터를 수집하여 개발한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 브리티시 에어웨이즈가 운용하던 G-BOAC 기체이다. (출처: Eduard Marmet Collection/Wikipedia.org)



    제원

    용도: 고속 연구시험기
    제조사: 페어리 항공(Fairey Aviation Co., 항공 부분은 1960년 웨스트랜드 항공에 매각)
    승무원: 1명
    전장: 15.74m
    전고: 3.35m
    날개 면적: 8.18㎡
    자체 중량: 4,990kg
    총중량: 6,298kg
    추진체계: 10,000파운드 급 롤스-로이스(Rolls-Royce) 에이본 200 엔진 x 1
    최고 속도: 2,092km/h
    항속 거리: 1,336km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페어리 델타 2 항공기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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