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1.2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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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ISU-122 자주포

얼떨결에 탄생했으나 생각보다 좋았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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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U-122는 IS-2 전차 차체에 122mm 구경 포를 탑재한 자주포로 소련군이 1960년대 초까지 치장 물자로 보유했을 만큼 호평을 받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전쟁사를 살펴보면 불가피한 이유로 잠시만 사용하려고 제작된 무기들이 등장한다. 이런 경우는 대개 개발자, 사용자 모두가 성능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일선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성공작의 반열에 오른 사례가 종종 있다. 1960년대에 소련이 T-64 전차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발생한 전력 공백을 급하게 메우기 위해 서둘러 만든 T-62 전차가 대표적이다.

쿠빙카 박물관에 전시 중인 ISU-152. 주포의 공급 문제로 ISU-152의 양산이 지체되자 잠시간 임무를 담당하기 위해 재고 차체를 이용해 ISU-122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제2차 대전 말기에 탄생한 ISU-122 자주포는 오히려 더한 경우다. 원래 필요하지 않았던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개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탄생했고 많이 만들어졌으며 일선에서 호평받았다. 무기의 진정한 성능은 실전을 통해 확인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ISU-122는 생각지도 않은 좋은 무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엉뚱하게 탄생해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ISU-152 자주포와 관련이 많다.

1944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배치가 시작된 ISU-152는 보병 지원은 물론 경우에 따라 대전차전도 마다하지 않았던 걸작 만능 자주포였다. 그런데 양산 초기에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주포인 152mm ML-20S의 조달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생산이 지연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해 여름 소련군은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명명된 대규모 공세를 펼칠 예정이었기에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1945년 동프로이센에서 격파된 IS-2 전차. 소련이 상당히 기대를 걸었던 중전차였으나 쉽게 포탑이 관통 당해 어려움이 많았다. 때문에 개량이 실시되면서 일시적으로 122mm 포가 남아돌았다. < 출처 : reddit.com >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시에 ISU-152의 기반이 되었던 IS-2 중전차가 예상보다 많은 손실을 보고 있었다. 소련 군부는 강력한 122mm 주포를 탑재한 IS-2가 돌파의 중핵이 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전작인 KV 중전차처럼 조종수의 시야 확보를 위해 조종석 전면에 경사를 주지 않고 관측창을 설치하면서 해당 부분의 방어력이 취약했다. 독일이 약점을 파악하고 집중적으로 공격하자 쉽게 격파되어 나갔던 것이다.

계속해서 손실이 커지자 결국 개량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IS-2의 양산이 잠시 유보되었다. 향후 예정된 공세에 앞장세울 예정이던 ISU-152와 IS-2가 동시에 공급 부족이 발생하자 군부는 고민이 컸다. 그러자 대안으로 재고가 많이 있던 ISU-152 차체에 IS-2에 탑재될 예정이던 122mm 포를 결합한 임시 대타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예정에 없던 임기응변이었다. 제2차 대전이라는 격렬한 상황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ISU-122 시제차량의 모습 < 출처 : Public Domain >

이미 차체와 포의 성능은 충분히 검증된 것들이어서 제작에 그다지 문제는 없었다. ISU-152를 개발할 당시에 한때 122mm 주포의 탑재도 고려한 적이 있었기에 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오히려 ISU-152보다 주포의 위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밸런스를 잡기 훨씬 용이했다. 그렇게 ISU-152 차체에 152mm ML-20 포와 동일한 포가를 사용하는 122mm A-19S 포를 결합해서 만든 새로운 자주포가 바로 ISU-122다.

단지 포탑만 없다 뿐이지 차체와 주포가 동일하므로 사실 ISU-122와 IS-2의 성능이나 임무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그런데 독일군만큼 병과 간에 알력이 치열하지는 않았어도 소련군 포병도 자주포에 대한 애착이 상당했기 때문에 ISU-122의 즉시 전력화를 강력히 요청했다. 덕분에 ISU-122는 ISU-152와 동일한 시기에 양산과 배치가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절묘한 상황이 만들어낸 자주포라고 할 수 있다.

폴란드 군사 기술 박물관에 전시 중인 ISU-122. < 출처 : (cc) SuperTank at Wikimedia.org >
이처럼 얼떨결에 탄생했음에도 ISU-122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152mm 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작을 뿐이지 122mm 포도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오히려 포구 속도가 빠르고 연사력도 좋아 근접전 등에서는 더 좋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때문에 뒤늦게 데뷔한 SU-100과 불어 소련군의 구축전차 역할까지도 담당했다. 때문에 종전과 동시에 생산이 종료되었음에도 전후 지속적인 개량을 거쳐 일부가 1960년대까지 치장 물자로 보관되었다.


특징

탄생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ISU-122는 주포, 조준경 등을 제외한다면 ISU-152와 구조가 동일하다. A-19S 주포가 장착된 ISU-122에 ST-18 조준경이, D-25S 주포로 환장해서 성능을 개량한 ISU-122S에 TSh-17 조준경이 장착되었다는 정도를 제외하고 모델별로 차이도 크지 않다. 그래서 ISU-122를 별개의 자주포로 취급하지 않고 ISU-152의 파생형으로 보는 자료도 상당히 많다.

세바스토폴 사푼 고지 전투 박물관에 전시 중인 ISU-122. < 출처 : (cc) Cmapm at Wikimedia.org >

제작과 배치 시점 때문에 일선에서는 자연스럽게 ISU-152와 비교가 이루어졌다. 임시 대타였음에도 상대적으로 탄약 탑재량이 많고 연사 능력이 뛰어났는데 개량형인 ISU-122S는 분당 최대 4발까지 발사가 가능했다. 더구나 포구 속도가 빨라 위력도 상당했다. 이러한 이유로 처음부터 대전차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음에도 SU-100과 더불어 기갑전도 가능한 소련의 대표적인 자주포라는 명성을 얻었다.

종종 제대로 된 소련 최초의 자주포인 SU-122의 개량형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ISU-122의 기반이 되었던 ISU-152가 SU-152의 개량형이므로 그런 오해가 발생하는 것인데 단지 122mm라는 주포의 구경만 같을 뿐이지 SU-122와는 차체, 주포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자주포다. 당연히 성능 차이도 커서 SU-122는 단지 최초라는 의의를 제외하면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ISU-122는 대단한 성공작 대접을 받는다.

폴란드 포즈난 전쟁박물관에 전시 중인 ISU-122.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운용 현황

ISU-122는 1943년 12월부터 1945년 8월까지 1,735문이 제작되었고 이 중 675문이 ISU-122S로 개량되었다.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처음부터 임시 대타였기에 전후에도 계속 제작이 이루어진 ISU-152와 달리 제2차 대전 종전과 더불어 생산이 종료되었다. 때문에 일부가 1960년대 초반까지 운용되었어도 ISU-122는 오로지 독소전쟁을 위해 탄생했고 생을 마감한 자주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 파디코보 군사 박물관에 전시 중인 ISU-122. < 출처 : Public domain >

원래 ISU-152의 공급 공백을 메워주기 위해 탄생했기에 별도로 ISU-122 부대를 편성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보급이나 유지 보수 등을 고려해 두 자주포를 같은 제대에서 운용하지 않도록 노력했으나 불가피하게 일부 부대는 혼합해서 운용하기도 했다. 애초 목적대로 강력한 화력으로 적의 방어물을 제거한 후 보병과 함께 전선을 돌파하는 용도에 투입되었으며 공격력이 좋아 구축전차 용도로 사용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독일처럼 소련도 122mm, 152mm처럼 대구경 포를 탑재한 자주포로 시가전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ISU-122는 포신이 길어 시가전에 부적합한 편이었다. 또한 주포의 최대 사거리가 14km임에도 보병 배후에서 화력을 지원하는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전쟁 중 총 169문만 완파된 준수한 운용 효율을 보여주었다. 전후 일부 물량이 2선급 장비로 보관되다가 1960년대에 전량 도태되었다.

1945년 4월 14일 부교를 통해 체코슬로바키아의 나이저 강을 건너는 ISU-122.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ISU-122: 양산형

ISU-122 < 출처 : (cc) Dmitry A. Mottlt at Wikimedia.org >
ISU-122S: 반자동 폐쇄기를 장착해 성능을 향상시킨 D-25S 전차포 탑재 개량형
ISU-122S < 출처 : (cc) t.przechlewski at Wikimedia.org >
BTT-1T: ISU-122 차체를 기반으로 한 구난 전차
BTT-1T 구난전차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제원(ISU-122S)

생산업체: 키로프 설계국
도입 연도: 1944년
생산 대수: 2,410문
중량: 45.5톤
전장: 9.85m
전폭: 3.07m
전고: 2.48m
무장: 1×122mm D-25S 전차포
        1×12.7mm DShK 기관포
엔진: V-2IS 디젤 엔진 520마력(382kW)
추력 대비 중량: 11마력/톤
항속 거리: 320km
최고 속도: 40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