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1.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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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맥심 기관총

대량 살상 무기의 역사를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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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303탄을 사용하는 1895년형 맥심. 기관총의 역사를 개막한 무기사의 걸작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기관총은 오늘날 반정부 무장 조직이나 테러 단체들도 갖추고 있는 무기다. 가장 커다란 수요자라 할 수 있는 군에서는 분대나 소대 같은 가장 말단 소부대의 필수 무장이다. 그만큼 흔하기도 한 데다 소총의 위력이 향상되고 다양한 종류의 휴대용 중화기가 등장하면서 종종 기관총의 위력을 간과하는 경우마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익숙해서 그럴 뿐이지 기관총은 탄생 이후 지금까지 보병용으로는 대단한 화력 투사 수단이다.

제1차 대전 당시에 맥심의 영국산 경량화 버전인 빅커스 기관총으로 전투를 벌이는 영국군. < 출처 : Public Domain >

기관총은 한마디로 역사를 바꾼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총, 즉 화기의 등장으로 역사가 크게 바뀌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고 있다. 많이들 간과하지만 그러한 화기의 시대에서도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기관총은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단발로 사격하는 기존 총과 연사가 가능한 기관총의 위력 차이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인류에게는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른바 대량 살상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맥심(Maxim gun)은 그러한 엄청난 역사를 이끈 최초의 기관총이다. 맥심 이전에도 개틀링(Gatling Gun)처럼 연사가 가능한 총들이 존재했기에 범위를 어디까지로 하냐에 따라 기관총에 대한 정의가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탄생 당시에 맥심과 연사가 가능한 여타 총기와의 기술적 차이는 상이했다. 한마디로 맥심은 현재 사용 중인 모든 기관총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최초의 기관총을 개발한 하이람 맥심. 미국 출신 엔지니어였으나 영국으로 이주해 사업으로 성공하고 작위도 받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 출처 : Public Domain >

1866년 친구를 따라 우연히 사격장을 방문한 하이람 맥심(Hiram S. Maxim)은 사격할 때 발생하는 충격 때문에 사수가 흔들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이를 에너지로 이용하면 노리쇠를 일일이 조작하지 않고도 탄환을 자동으로 급탄하고 발사가 가능한 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동화된 총이 있으면 적은 병력으로도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은 틀림없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1883년에 반동을 이용하는 자동화된 총의 특허를 출원했고 이듬해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그는 이 새로운 총을 자신의 이름을 붙여 맥심이라고 명명했다. 발사에서 장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자동화되었으므로 사수는 오로지 목표물만 바라보고 사격하면 되었다. 분당 최대 650발의 속도는 숙련된 30명의 사수가 발사하는 볼트액션 소총의 화력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1884년 자신이 만든 기관총으로 사격 시범을 보이는 하이람 맥심. < 출처 : Public Domain >

전문가라면 맥심의 위력을 충분히 알았지만 여러 이유로 판매는 부진했다. 너무 무거운 데다 이동 수단의 성능이 떨어지던 시기였기에 용도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거기에다 가격이 비싸서 차라리 소총을 더 많이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았다. 기관총이나 자동화된 소총의 장점이 입증된 20세기 중반까지도 탄의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생산력이 떨어지던 당시에는 더했다.

기대를 많이 가졌던 미군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실망한 그는 영국으로 이주해서 판촉에 나섰다. 병력이 부족해 주로 요새를 거점 삼아 군을 운용하는 식민지 정부 등이 관심을 갖고 시험 삼아 구입했고 1888년 11월, 시에라리온에서 원주민 탄압에 처음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정작 군 당국에서는 이 혁신적인 화기에 대해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아 맥심은 판매를 위해 직접 유럽 각국을 돌며 시범을 보여야 했다.

1895년 공학 잡지 관계자들에게 자신이 개발한 기관총을 소개하는 하이람 맥심.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던 1893년 짐바브웨에서 원주민 저항이 벌어졌을 때 4정의 맥심을 보유한 50여 명의 경비대가 무려 4천여 명의 원주민의 공격을 막아내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학살이었고 이것은 제1차 대전의 비극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그러나 맥심 때문이 아니라 유럽인이 뛰어난 반면 식민지인들이 열등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착각해서 정작 주문량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처럼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준 이가 현재도 세계적인 방산 업체인 빅커스-암스트롱의 전신인 빅커스의 설립자의 아들인 알버트 빅커스(Albert Vickers)다. 기관총의 가능성을 알아본 그의 도움으로 1897년 맥심 총기사(Maxim Gun Company)가 설립되어 보다 체계적으로 생산과 판매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영국군이 제식 무기로 도입하자 자극을 받은 독일과 러시아도 도입에 나섰다.

방독면을 쓰고 빅커스로 전투 중인 영국군. 제1차 대전의 상징인 참호, 가스, 기관총의 모습을 한 번에 보여주는 유명한 사진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성능에 만족한 이들은 직도입뿐 아니라 면허 생산에 나서 자체 개량도 시도했다. 덕분에 빅커스, MG08, PM1910 같은 파생형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각국 기관총 역사의 중간 시조가 되었다. 1905년 발발한 러일전쟁에서 상당한 전과를 남겼고 이후 제1차 대전에서는 최고의 살상 무기라는 명성을 날리며 이후 세계사를 바꾼 도구가 되었다. 그렇게 맥심은 본격적인 기관총의 역사를 열었다.


특징

맥심이 새로운 역사를 개막한 기관총이나 단점도 많았다. 일단 무겁고 부피가 커서 다루기가 어려웠다. 거기에다 최초에는 공랭식이었으나 연사력을 늘리기 위해 수랭식으로 바뀌면서 무게가 더욱 늘었다. MG08의 경우는 모든 부속 장비와 소모품을 포함해 총 69kg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20세기 초에 이동 수단의 성능이 떨어져 주로 진지에 거치해 놓고 방어용으로 사용되었다.

PM1910으로 무장한 1930년대 소련군. 무게가 많이 나가 중화기 취급을 받으며 팀 단위로 운용해야 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보통 4명에서 6명으로 구성된 팀이 운영했다. 사격 시에는 사수와 조수만으로도 가동할 수 있지만 옮기려면 여러 사람이 필요했다. 때문에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중화기 취급을 받으며 대개 독립 중대에서 운용했다. 분당 최대 600발의 연사력은 오늘날 기관총에 비해서는 떨어지나 기관총의 목적이 지역 제압이니 전투를 벌이는 데 충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운용 현황

맥심은 1886년부터 생산되었으나 많은 파생형, 복제형이 존재하면서 언제까지 얼마만큼 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세기에는 주로 식민지 탄압 도구로 이용되었다. 맥심을 보유한 측과 그렇지 않은 상대와의 대결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차이가 극심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사용자가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오히려 위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제2차 대전 당시 PM1910을 4연장으로 연장한 소련군 대공화기. 탄생 이후 수많은 전쟁, 분쟁에 모습을 드러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다가 20세기 들어 같은 맥심을 장비한 정규군 간의 교전이 벌어지고 나서 기관총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특히 제1차 대전의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만일 지금도 방어용으로만 사용한다면 현역으로 충분히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력적이다. 이처럼 혹독하게 당했기에 더욱 기관총에 집착하게 되었고 이후 맥심의 단점을 개선한 다양한 후속작들의 등장이 이어졌다.


변형 및 파생형

빅커스: 영국 개량형.

빅커스 < 출처 : (cc) YORCM : CA78.a-c at Wikimedia.org >
MG08: 독일 개량형.
MG08 < 출처 : Public Domain >
24식 기관총: MG08 중국 복제형.
24식 기관총 < 출처 : Public Domain >
MG 11: MG08 스위스 생산형.
MG 11 < 출처 : (cc) Hmaag at Wikimedia.org >
M/09-21: MG08 핀란드 복제형.
M/09-21 < 출처 : Public Domain >
PM1910: 러시아 복제형.
PM1910 < 출처 : Public Domain >
M/32-33: PM1910 핀란드 복제형.
M/32-33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구경: 7.92mm 외
탄약: 7.92×57mm 마우저 외
급탄: 250발 탄띠
전장: 1,079mm
총열: 673mm
중량: 27.2kg
작동: 반동식
발사 속도: 분당 550~600발
유효 사거리 : 800m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