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1.1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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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베놈 전투기

드 하빌랜드의 자부심이 된 뛰어난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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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베놈. 인상적인 드 하빌랜드의 쌍동체 전투기의 역사를 승계한 걸작 다목적 전투기다. < 출처 : @ron_eisele / twitter >


개발의 역사

제2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46년부터 실전 배치되기 시작한 뱀파이어(Vampire)는 지금은 합병되어 사라진 영국의 드 하빌랜드(de Havilland)가 개발한 최초의 제트전투기다. 1세대 전투기 시대를 대표한 F-86이나 MiG-15에 비하면 유명세가 뒤지는 편이나 3,000여 기 이상이 생산되어 30여 개국에서 사용된 베스트셀러다. 함재기형인 시 뱀파이어는 1945년에 최초로 항공모함 이착함에 성공한 제트기라는 기록도 남겼다.

시범 비행 중인 뱀파이어 전투기. 글로스터 미티어와 더불어 영국의 1세대 전투기 역사를 개막한 전투기이나 지속적인 성능 개선을 실시해야 했다. < 출처 : (cc) Tony Hisgett at Wikimedia.org >

하지만 전성기는 그다지 길지 못했다. 이는 비단 뱀파이어에만 국한된 사례가 아니라 여타 1세대 전투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전투기들은 30년 정도 주력기로 활약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초창기 제트전투기들은 배치된 지 10년 정도면 정상에서 내려와야 했다. 당시의 기술력 수준이 낮은 만큼 시간이 갈수록 발전이 급격하게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배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능이 부족해졌던 것이었다.

당연히 성능이 향상된 후속기들이 속속 등장했는데 대립이 첨예했던 냉전 시대다 보니 시급히 전력화하기 위해 전작의 성능을 향상시켜 후속작을 만드는 방법도 많이 사용했다. 예를 들어 MiG-15의 개량형인 MiG-17이나 F-80을 기반으로 개발된 야간전투기인 F-94 등을 들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방법이 반드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슈퍼세이버라는 야심만만한 이름을 붙였던 F-100은 전작인 F-86이 이룬 명성에 먹칠을 했을 정도다.

베놈 FB.1의 삼면도. 뱀파이어와 비교했을 때 주익 앞전이 뒤로 17도 후퇴한 점이 외형적 특징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런 점에서 볼 때 드 하빌랜드 베놈(de Havilland Venom, 이하 베놈)은 전작인 뱀파이어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은, 오히려 찬사를 받은 성공적인 후계자라고 할 수 있다. 베놈의 탄생이 처음부터 이런 성능의 전투기를 개발하겠다는 의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뱀파이어의 성능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양 기종은 상당히 관계가 밀접하다. 한마디로 전투기 역사의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뱀파이어가 배치되었을 당시에 속속 경쟁기들이 등장하면서 공중전에서 우위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에 드 하빌랜드는 1948년 기존 고블린(Goblin) 엔진보다 추력이 40퍼센트 이상 향상된 고스트(Ghost) 엔진의 개발에 성공하자 이를 뱀파이어에 장착해서 성능을 향상시키고자 했다. 새로운 엔진의 강력한 힘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기체도 그에 맞도록 개선이 이루어져야 했다.

초기 양산형인 베놈 FB.1. 일선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출처 : BAE Systems >

고속 비행에 적합하도록 주익이 17도 뒤로 꺾인 후퇴익으로 변경되었고 대신 저속에서 실속을 막기 위해 상단에 윙 펜스(Wing Fence)가 설치되었다. 강력한 엔진으로 인해 늘어난 연료 소모량을 보충하고 항속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날개 끝단에 보조 연료 탱크를 고정으로 장착했다. 더불어 빨라진 속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기골 보강도 함께 이루어졌다.

개발 당시에 드 하빌랜드는 이를 뱀파이어 F.8로 구분했으나 성능의 차이가 커서 베놈으로 재명명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앞서 언급한 MiG-17이다. 개발 당시에 예정된 명칭은 MiG-15bis45였으나 베놈과 같은 이유로 별개의 제식 부호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개발 도중 베놈은 뱀파이어와 별개의 전투기로 취급되었고 1949년 9월 2일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실시된 각종 실험에서 기대대로 전작을 능가하는 좋은 결과가 나왔다.

정비 중인 스위스 공군 소속 베놈 FB.54. 현지에서 엔진까지 면허 생산한 기종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제식화하려면 해결해야 할 여러 소소한 문제점이 있었으나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을 기화로 제3차 대전이 공공연히 거론될 만큼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1952년부터 영국 공군에 배치가 개시되었다. 때문에 운용과 별도로 성능 개선이 함께 이루어졌다. 뱀파이어로 재미를 보았던 영국은 베놈을 NATO의 표준 전투기 후보로 내세웠다. 비록 계획은 좌절되었지만 대량 해외 판매 성공하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항공모함에서 최초로 이착함에 성공했음에도 시 뱀파이어(Sea Vampire)의 도입을 거부했던 영국 해군은 1950년 발발한 6.25전쟁에서 글로스터 미티어(Gloster Meteor)가 MiG-15에 열세를 보이자 상당히 조급해졌다. 비록 슈퍼마린 어태커(Supermarine Attacker)와 호커 시 호크(Hawker Sea Hawk)의 배치를 결정한 상태였으나 이들 또한 이전 레스프로기를 기반으로 개발된 직선익기여서 속도가 느렸다.

1956년 수에즈 사태당시 영국 해군 이글 항모에 불시착한 893대대 소속의 시 베놈 < 출처 : Imperial War Museum >
그래서 최신 트렌드인 후퇴익 주익 구조를 택해 속도와 비행 성능이 향상된 베놈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그렇게 해서 1951년 베놈 NF.2를 바탕으로 함재기형 시 베놈(Sea Venom)이 개발되었고 실험을 거쳐 1954년 3월부터 부대 배치가 이루어졌다. 비록 최초의 함상 제트기라는 타이틀은 놓쳤지만 월등한 성능으로 시 베놈은 영국의 1세대 전투기 시대를 대표한 함재기로 명성을 날렸다.


특징

앞서 언급했듯이 베놈은 기반이 되었던 뱀파이어보다 월등한 성능을 자랑했지만 외형상으로는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차이를 구별하기 힘들다. 그만큼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의미다. 일단 쌍동체를 길게 뒤로 빼서 미익과 연결한 형태는 그대로이고 이는 시 베놈의 후속기인 시 빅슨(Sea Vixen)에게도 이어진다. 한마디로 쌍동체는 드 하빌랜드 전투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베놈 특유의 쌍동체 구조는 드 하빌랜드에서 개발한 제트전투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 출처 :BAE Systems >
뱀파이어보다 향상된 속도와 기동성 덕분에 당시까지 유일한 공대공 전투 방법이었던 독파이팅에서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더불어 기계적인 안정성이 좋은 데다 특히 저고도 저속 비행 성능이 탁월해서 지상 공격 임무도 탁월하게 수행했다. 동시대 활약한 경쟁기를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영국 공군과 해군의 주력기로 활약하는데 크게 모자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운용 현황
아덴만 사태 당시에 니즈와 요새를 공습하는 영국 공군의 베놈.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베놈은 1952년부터 영국 공군에, 시 베놈은 1954년부터 영국 해군에 배치되었다. 양 기종과 면허 생산분을 모두 포함해서 총 1,431기가 생산되었다. 전작인 뱀파이어의 절반 정도지만 원래 뱀파이어의 개량이 목적이었던 데다 성능이 향상된 1세대 전투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량이라 할 수 있다. 이라크, 뉴질랜드, 스웨덴, 베네수엘라,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수출되었고 스위스에서는 베놈, 프랑스에서는 시 베놈이 면허 생산되었다.
호주 해군 소속의 시 베놈 FAW.53 함상전투기 < 출처 : Public Domain >
영국이 참전하거나 관여한 제2차 중동전쟁, 말레이시아 사태, 아덴만 사태 등에서 주로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하지만 여타 1세대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전성기는 길지 않아 베놈은 1962년부터 순차적으로 호커 헌터(Hawkwe Hunter)와 교체되어 도태되었다. 시 베놈도 비슷한 시기에 시 빅슨에 자리를 물려 주기 시작하기 시작해 1970년에 전량 퇴역했다. 스위스 공군은 1983년까지 운용했다.
퇴역 직전인 1983년 시범 비행을 펼치는 스위스 공군의 베놈 편대. < 출처 : (cc) Anidaat at Wikimedia.org >


변형 및 파생형

베놈

DH.112: 뱀파이어 FB.5을 기반으로 한 프로토타입.

DH.112 < (cc) Michael Wolf at Wikimedia.org >
FB.1: 초기 양산형. 375기.
FB.1 < 출처 : (cc) Oren Rozen at Wikimedia.org >
NF.2: 2인승 야간전투기. 91기.
NF.2 < 출처 : (cc) RuthAS at Wikimedia.org >
NF.2A: NF.2 주익 개량형.
 
NF.3: 고스트 104 엔진을 장착한 개량형. 123기.
NF.3 < 출처 : (cc) RuthAS at Wikimedia.org >
FB.4: 고스트 103 엔진을 장착한 최종 양산형. 250기.
FB.4 < 출처 : (cc) RuthAS at Wikimedia.org >
FB.50: 이라크 공급형. 15기.
FB.50<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FB.54: FB.4 수출용.
FB.54 < 출처 : Public Domain >
NF.51: J33이라는 현지 명칭으로 사용된 스웨덴 공급형.
NF.51 < 출처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Fiat G.80: 이탈리아 면허 생산 제안형.

시 베놈

BF.20: NF.2 기반 시 베놈 프로토타입. 3기.
 
FAW.20: 최초 양산형. 50기.

FAW.20 < 출처 : Public Domain >
FAW.21: 캐노피, 에일러론, 미익, 사출 좌석, 엔진 개량형. 167기.
크라쿠프의 폴란드 항공박물관에 전시된 영국 해군의 FAW.21 < 출처 : BAE Systems >
FAW.22: 공대공 미사일의 운용 능력이 추가된 개량형. 39기.
 
FAW.53: FAW.21 오스트레일리아 공급형. 39기.
FAW.53 < 출처 : (cc) Peripitus at Wikimedia.org >
SNCASE Aquilon: FAW.20 프랑스 면허 생산형. 90기.
SNCASE Aquilon < 출처 : (cc) RuthAS at Wikimedia.org >


제원(FB.1)

전폭: 12.7m
전장: 9.7m
전고: 1.88m
주익 면적: 25.9㎡
최대 이륙 중량: 6,985kg
엔진: 드 하빌랜드 고스트 1033 원심형 터보제트(4,850파운드) X 1
최고 속도: 1,030km/h
실용 상승 한도: 12,000m
전투 행동반경: 1,740km
무장: 20mm 기관포 X 4
        RP-3 로켓 X 8
        1,000파운드 폭탄 X 2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