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VZ-9 애브로카 개념실증기
실존할 뻔했던 지구인의 UFO
  • 윤상용
  • 입력 : 2021.11.12 08:25
    VZ-9 아브로카. (출처: US Air Force)
    VZ-9 아브로카. (출처: US Air Force)


    개발의 역사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크게 한숨을 돌리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직접적으로 전장에서 활용할 군용 무기 개발 대신 새롭게 도래할 전후(戰後) 시대를 선도할 기초과학 분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 과학 연구개발실(US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OSRD)을 지휘한 과학자인 바네버 부시(Vannevar Bush, 1890~1974)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해인 1945년, <과학: 끝없는 경계(Science: The Endless Frontier)>라는 보고서를 제작하며 전후 기초과학 분야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보고서를 통해 연방정부가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재원을 지원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무인 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발사에 성공하면서 탄력을 얻게 됐다. 과학 분야에서 미국이 소련에 뒤처지고 있다는 가시적인 증거가 되면서 충격을 준 것이다. 이에 미 정부는 당장 “현실 세계”에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닌 과학 연구에도 재정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통칭 “블루 스카이 연구(Blue Skies Research) 사업”을 발족시키게 되었다. 이 사업은 목표가 분명하지 않거나 그저 “호기심”을 유발하는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 사업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블루 스카이” 프로젝트는 사실 한참 뒤인 1976년에 붙은 명칭인데, 이름의 유래는 1869년에 “왜 하늘은 파란색인가?”를 놓고 진행됐던 연구 사업에서 명칭을 따왔다. 즉, 당장 직접적으로 가치가 없어 보이는 연구 사업을 통칭한 것이다. 무엇보다 블루 스카이 프로젝트는 항공 분야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그중에는 영국계 항공기 설계자인 잭 프로스트(John Carver Meadows Frost, 1915~1979)가 캐나다의 애브로 캐나다(Avro Canada)에서 일하면서 진행했던 다양한 형상의 항공기 연구도 이 ‘블루 스카이’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추진될 수 있었다.

    최초
    최초 "Y 프로젝트" 당시 제작된 목업 항공기의 모습. 1954년 경에 촬영된 사진으로, 원형으로 제작된 최종 형상과 달리 화살촉 모양을 하고 있다. 조종석도 통상적으로 동체 중앙 상부에 위치했다. (출처: public domain)

    1942년부터 영국의 드 하빌랜드(de Havilland: 1960년대에 호커-시들리에 합병)에서 일하다가 1947년 A.V. 로(A.V. Roe, 이후 Avro로 개명) 캐나다로 이직한 잭 프로스트는 A.V. 로에서 CF-100 카누크(Canuck) 전투기 개발 사업을 맡으면서 “특수 사업단(SPG: Special Projects Group)”을 발족했다. SPG는 A.V. 로 내에서도 비밀사업부로 분류해 2차 세계대전 시기에 건립해 철저한 보안을 자랑한 셰퍼(Shaeffer) 빌딩에 자리를 잡았으며, 항공기 행거(hanger)도 특수 개발 항공기들만 사용하는 별도 장소를 사용했다. 당시 잭 프로스트는 제트 엔진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터빈 엔진의 단순함을 포기하지 않고 압축기(컴프레서, compressor)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고, 영국 왕립공군(RAF)의 항공기 개발가인 프랭크 위틀(Sir Frank Whittle, 1907~1996) 준장이 개발한 “역류(逆流, reverse flow)” 설계가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해 이를 단순화할 방법을 찾았다. 이에 따라 잭 프로스트는 연소 장치를 원심 압축기 테두리 바로 바깥에 위치시켜 바퀴 테두리처럼 만든 새로운 엔진 설계를 고안했다. 터빈은 샤프트 대신 기어링(gearing)으로 압축기를 돌리도록 했으며, 개선된 설계를 반영한 엔진의 결과물은 거대한 원형이 되어 마치 “팬케이크 모양”과 흡사했다. 이 엔진의 제트 추진열은 동그란 엔진 테두리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조였으나, 문제는 이런 형태의 엔진을 현존하는 항공기에 탑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아브로카의 프로토타입 <출처: Public Domain>
    아브로카의 프로토타입 <출처: Public Domain>

    마침 당시 항공업계는 한창 수직이착륙(VTOL: Vertical Take-off and Landing) 항공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던 시점이었다. 전 세계 항공업계가 특히 VTOL 기술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 간의 대결이 첨예해지면서 3차 세계대전은 핵 전쟁이 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핵 전쟁이 시작되면 쌍방은 우선 상대방의 핵 투발 능력 저지를 위해 활주로와 공군기지부터 공격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격받아 짧아진 활주로나 일반 도로, 심지어 들판이나 야지에서도 항공기를 띄울 수 있는 기술 확보가 시급했던 것이다. 항공기 개발 선진국들은 2차 반격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 확보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VTOL 항공기 개발을 시도했으며, 잭 프로스트는 자신이 개발한 신형 엔진이 출력 대비 중량이 우수하므로 VTOL 항공기에 적합할 것이라 판단했다. 문제는 원형 엔진을 어떤 식으로 기존 항공기에 장착시키느냐, 그리고 고리 모양으로 발생하는 출력을 항공기가 전진 비행을 하도록 어떻게 방향을 잡아주느냐였다.

    아브로카의 풍동시험 장면 <출처: Public Domain>
    아브로카의 풍동시험 장면 <출처: Public Domain>

    잭 프로스트는 이 설계안을 토대로 개발 제안서를 캐나다 정부 산하 국방 연구위원회에 제출했으며, 위원회는 1954년 40만 달러로 개발 계획을 승인했다. “Y 프로젝트(Project Y)”로 명명된 이 사업은 초창기에 순항하여 1953년까지 목업(mock-up) 모델을 완성했다. 하지만 이 과정까지만 해도 비용이 상당히 크게 들어갔으므로 캐나다 국방부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국방부 내에서 기류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되자 1953년 2월 11일, Y 프로젝트 내용 일부가 일간지인 토론토 스타(Toronto Star) 지에 게재됐다. 이는 아브로사에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업체 측에서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유출한 것인데, 이때까지 비밀리에 진행되던 사업이 공개됨에 따라 5일 뒤 국방생산장관은 하원에 Y 프로젝트 진행 경과를 처음으로 보고했고, 해당 기체는 비행접시 모양이며 2,400km/h로 비행할 뿐 아니라 수직으로 이륙이 가능한 항공기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기체의 대략적인 내용이 공개된 뒤에도 정부 내 기류는 부정적으로 흐르다가 결국 캐나다 정부는 Y 프로젝트에 대한 추가 예산 지원을 모두 끊어버렸다.

    VZ-9은 캐나다 정부사업으로 시작되다가 지원이 끊기자 미 정부가 맡아서 진행했다. <출처: Public Domain>
    VZ-9은 캐나다 정부사업으로 시작되다가 지원이 끊기자 미 정부가 맡아서 진행했다. <출처: Public Domain>

    캐나다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Y 프로젝트도 중단됐지만, 대신 미 육군이 이 사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54년 7월, 미 정부는 A.V. 로사의 Y 프로젝트를 검토한 후 연구 재개 예산으로 2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 시기쯤 ‘애브로(Avro)’로 사명을 바꾼 A.V. 로는 1958년 정식으로 Y 프로젝트를 미 정부에 보고했으며, 미 육군과 미 공군이 동시에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육군과 공군은 각각 다른 요구도를 요구했는데, 우선 육군은 아음속에 전천후 정찰이 가능하고, 험지를 비롯한 어떤 지형에도 이착륙하여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항공기를 원했다. 육군은 이 신형 항공기가 도입되면 기존에 운용하던 경량형 관측 항공기와 헬리콥터를 대체하길 희망했다. 특히 육군이 주목한 부분은 이 기체가 이론적으로 코안다 효과(Coandă Effect)에 의해 항공기 바닥에 강한 양력층을 형성할 수 있어 뛰어난 호버링 능력을 자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정찰기를 염두에 둔 육군의 요구도는 신형 항공기가 최대 1,000파운드(약 454kg)의 탑재 중량을 갖추고, 최대 시속 30마일(약 48.2km/h)로 최소 30분 이상 비행이 가능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미 공군은 적 레이더 전파 아래로 호버링(hovering) 하다가 로켓 부스터를 이용해 초음속으로 성층권까지 도달할 수 있는 VTOL 항공기를 원했다. 아브로의 엔지니어 팀은 Y 프로젝트의 기본 설계로 육군과 공군의 요구도를 모두 맞출 수 있다고 보았으나, 양쪽 요구도가 너무 판이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시제기를 육군과 공군의 입맛에 맞는 별개의 두 기체로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미 공군과 육군은 모두 아브로카를 원했지만, 목적은 서로 달랐다. <출처: Public Domain>
    미 공군과 육군은 모두 아브로카를 원했지만, 목적은 서로 달랐다. <출처: Public Domain>

    사업은 이후에도 계속 캐나다에서 진행됐으나 사업 관리는 미 정부가 진행했으며, 미 정부는 시험용 수직이착륙 항공기라는 의미를 담아 “VZ-9AV(V는 VTOL을, Z는 기술시연기를, AV는 제조사 이름인 ‘애브로’를 의미)”로 제식 번호를 부여했다. “애브로카(Avro Car)”로 명명된 초기 VZ-9AV는 리프트 팬을 안으로 매립한 형태의 설계였으나 곧 설계가 변경되면서 항공기 중앙에 큰 원형 팬이 설치됐고, 세 대의 J69 터보제트 엔진이 장착되어 추력을 아래와 뒤로 뿜을 수 있도록 개발했다.

    아브로사의 팸플릿에서
    아브로사의 팸플릿에서 "나는 지프차"로 묘사된 VZ-9의 모습. 육군은 VZ-9을 가벼운 정찰용으로 운용하면서 우측의 관측수가 간단한 무장을 조작할 수 있는 형태를 원했다. (출처: Public Domain)

    기체는 순조롭게 개발되어 시제기가 예정된 계획대로 완성됐으나, 안타깝게도 실 기체의 성능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시제기 1번기는 미 항공우주국(NASA) 에임스 연구소로 이전되어 풍동(風洞) 실험을 거쳤으나, VZ-9 애브로카는 고속 비행 시 통제력이 부족한 데다 항공역학적으로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축소 모형으로 실시한 시험에서는 기체 하부에서 발생한 ‘에어쿠션(aircushion)’이 지상에서 약간만 떨어지면 불안정해졌지만, 미 육군은 다른 조건이 맞으면 계속 개발을 추진할 의지를 보였으므로 시험도 계속 강행됐다.

    아브로카의 운용개념. 미 육군은 헬기를 대체하여 병력을 투입하는 방안을 구상하기도 했다. <출처: Public Domain>
    아브로카의 운용개념. 미 육군은 헬기를 대체하여 병력을 투입하는 방안을 구상하기도 했다. <출처: Public Domain>

    얼마 후 제작된 시제기 2호기는 풍동 실험 후 지상에서 몇 m 이상 떠오르는 시험 비행을 진행했으나, 이번에는 상하 움직임(pitch)과 가로 움직임(rolling) 통제가 어려웠다. 아브로카는 시속 35마일(56.3km/h)까지 밖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고도를 약간만 올려도 동체 균형이 위태로워졌다. 시험 비행 조종사는 항공기 비행 중 방향을 바꾸기 위해 산소가 원형 엔진의 한쪽에 몰리기만 해도 다른 쪽 균형이 무너진다는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는 평평하지 않은 지형 위를 비행할 경우 호버링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의미했다. 다행히 기체의 호버링 능력 자체만큼은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결국 전반적인 균형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 발견되자 시험 비행 조종사는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 전까지는 절대 민감한 기동을 실시하지 말 것을 명령받았다. 그나마 이후 애브로 사의 시험 비행 조종사인 브와디스와프 포토츠키(Wladyslaw “Spud” Potocki, 1919~1996)는 비행 중 조종간에서 손을 놓는 자동 비행 시험에 성공했으나, 미 공군 시험 비행 조종사인 월터 하지슨(Walter J. Hodgson, ?~1979)과 NASA 에임스 연구소의 수석 시험 비행 조종사인 프레드 드링크워터(Fred J. Drinkwater III, 1926~2012)는 아브로카를 ‘비행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항공기’로 평가했다. 심지어 드링크워터는 애브로카로 비행하는 것을 ‘비치볼 위에서 균형 잡고 서 있는 느낌’이라고 혹평했다.

    시험 비행 중인 VZ-9의 모습. 잭 프로스트의 기대와 달리 실제 기체는 지상에서 몇 m 이상 떠 보지 못했고, 그나마도 균형이 매우 불안정해 조종사 탈출이 용이하도록 캐노피를 덮지 않았다. <출처: Public Domain>
    시험 비행 중인 VZ-9의 모습. 잭 프로스트의 기대와 달리 실제 기체는 지상에서 몇 m 이상 떠 보지 못했고, 그나마도 균형이 매우 불안정해 조종사 탈출이 용이하도록 캐노피를 덮지 않았다. <출처: Public Domain>

    애브로 측은 시험 결과를 토대로 항공기 균형 문제 등을 개선하고자 시도했으나, 개선을 하기도 전인 1961년 3월 자로 미 정부의 예산 지원이 끊겼다. 잭 프로스트는 설계를 개선하여 다시 미 정부에 제안했지만 미 정부는 채택하지 않았으며, 사업은 1961년 12월에 공식적으로 취소됐다. 이후에도 애브로는 사비(社費)를 들여 애브로카의 설계를 활용해 관심을 가질만한 제3국에 제안하려 시도했으나 가시적인 결과물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고, 균형 안정 문제는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으면서 사업은 마무리되고 말았다.

    시험 비행 중인 VZ-9의 모습. 잭 프로스트의 기대와 달리 실제 기체는 지상에서 몇 m 이상 떠 보지 못했고, 그나마도 균형이 매우 불안정해 조종사 탈출이 용이하도록 캐노피를 덮지 않았다. <출처: Public Domain>


    특징

    AZ-9 애브로카는 문자 그대로 공상과학 소설에나 등장하는 "날으는 비행접시” 형상을 갖춘 항공기로, 터보제트 엔진을 이어서 장착한 원형의 ‘터보로터(turborotor)’로 추진력을 발생시켜 비행하는 특이한 구조의 항공기였다. 특히 원형 구조의 엔진에서 아래로 추진력을 내뿜을 경우 동체 하부에 “에어쿠션’이라 불리는 지면 효과가 발생하는데, 이를 통해 항공기는 매우 낮은 저고도에서도 안정적으로 떠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이 추진 방향을 뒤로하여 고도를 올리면 가속과 고고도 비행이 가능해지므로, 이 설계 방식 자체는 이론적으로는 VTOL 항공기에 매우 적합한 이상적인 설계였다.

    VZ-9의 주요 구성품. (출처: US Air Force)
    VZ-9의 주요 구성품. (출처: US Air Force)

    AZ-9은 외관부터 독창적인데, 동그란 원형 동체를 사용했으며 주익이나 미익이 없이 동체가 날개 역할을 하는 일종의 전익(全翼) 형태인 ‘원형 날개(circular wing)’를 채택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부에 탑재된 엔진도 원형의 디스크 모양으로 제작됐으며, 엔진 흡입구(인테이크)는 중앙부 팬 좌측 뒤에 위치했다. 조종석은 중앙부 팬 바로 왼쪽에 위치시켰으며, 항공기의 위아래 “뼈대”는 조종석 위치부터 뒤쪽 원형 가장자리까지 이어졌다. 애브로카는 기본적으로 2인승 항공기로 설계되었으므로 중앙의 원형 엔진을 중심으로 좌우에 조종석이 나뉘어 배치됐으나 실질적인 조종은 좌측 조종석에서만 이루어졌고, 우측 조종석은 정확히 말하자면 ‘관측석(observer’s cab)’이었다. 따라서 실제 조종은 한 명으로 충분하므로, 시험 비행 과정 중에도 주로 한 명의 조종사만 탑승하여 비행을 실시했다.

    내부 엔진 배열도. (출처: US Air Force)
    내부 엔진 배열도. (출처: US Air Force)

    프로스트가 도안했던 Y 프로젝트의 최초 설계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항공기였으나, 이것이 최종 단계에서 원형으로 바뀐 것은 미 육군과 공군의 요구도를 모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원형 설계로 잡아야 제자리 호버링과 저고도 기동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원형으로 설계해야만 고리 형태의 엔진이 어느 방향으로든 추진력을 뿜어낼 수 있으므로 최종 설계안은 둥근 디스크 형태의 동체로 확정됐다. 엔지니어들은 고리형 엔진에서 뿜어내는 추진력을 모든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조종사가 조작할 수 있는 플랩(flap)을 원형 동체 테두리 전체에 설치했으며, 이는 “포커싱 링(focusing ring)”이라 불렸다.

    아브로카는 포커싱 링을 사용하여 기체를 컨트롤 했다. <출처: Public Domain>
    아브로카는 포커싱 링을 사용하여 기체를 컨트롤 했다. <출처: Public Domain>

    아브로카는 세 개의 엔진을 채택했으며, 추력을 원형 동체 주변에 고르게 분산시키기 위해 세 엔진이 연동된 형태로 모두 90도까지 방향을 꺾었다가 원형 동체 테두리로 추력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게 설계했다. 세 대의 엔진이 압축하여 뿜어낼 산소는 동체 중앙의 팬을 통해 항공기 위의 공기를 빨아들여 공급했다. 조종사는 호버링을 할 경우 ‘포커싱 링’을 조종하여 추력을 고르게 동체 아래로 내뿜게 했고, 호버링 중 전진 비행으로 전환할 경우에는 ‘트랜지션 도어(transition door)’라 명명한 두 개의 비행 면을 움직여 추력의 1/3을 아래에서 뒤로 변환한 후 균형이 잡히면 항공기 추력이 모두 항공기 후면으로 전환되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이 전환 과정에서 상하 움직임이 불안정했으므로 실 기체에서 방향을 전환할 때에는 조종사가 항공기 기수 방향이 너무 위나 아래로 쏠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민감하게 조종간으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아브로카에는 미익이 없었으므로 수평 비행 전환 시 좌우 안정성도 떨어졌는데, 이를 위해 통제용 풍향타(control vane)가 방향 전환 시 자동으로 위아래로 번갈아 움직이며 미익 역할을 대체하도록 설계했다.

    아브로카는 3개의 엔진을 90도로 배치했다. <출처: Public Domain>
    아브로카는 3개의 엔진을 90도로 배치했다. <출처: Public Domain>

    사실 설계 및 풍동 실험 때까지만 해도 애브로카는 그럭저럭 잠재력이 입증됐으나, 시제기 두 대를 이용하여 본격적인 시험 비행에 들어가면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다. 우선 메인 엔진으로 장착한 J69 엔진이 예상만큼의 출력을 내지 못했다. 엔지니어들은 이것이 터보로터를 통해 들어온 찬 공기가 제트파이프에서 뜨겁게 연소 중인 공기와 만나면서 난기류를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추력이 약 30%가량 소실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미 육군 측은 출력 문제가 “반드시 달성되어야 하는 조건”이라 강조했으나 애브로의 엔지니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았다. 일단 일정이 밀리지 않기 위해 애브로 측은 출력이 떨어진 상태로 시험을 계속 진행했다.

    아브로카의 비행 특성 <출처: Public Domain>
    아브로카의 비행 특성 <출처: Public Domain>

    본격적인 호버링과 비행은 시제기 2번기로 진행했으며, 이미 1번기에서 균형 문제가 여럿 발견됐으므로 만일을 대비해 항공기 동체를 케이블로 연결한 후 지상에서 약간만 띄워 시험을 진행했다. 1959년 9월부터 진행된 시험 비행에서 기체가 어느 정도 안정성을 보이자 6주 뒤부터 케이블은 제거했으며, 만일의 경우 조종사가 탈출하기 쉽도록 캐노피는 벗겨 놓은 상태에서 엔진을 최고 출력으로 올리는 시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항공기는 시속 48km 이상 올라가지 못했고, 고도도 3m 이상 오르지 못해 에어쿠션 효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전반적으로 엔진 출력에서 야기된 문제였으나, 엔진 공기 흡입구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기에는 비용이 컸으므로 NASA를 개입시켰다. 하지만 NASA는 엔진 추진력보다 동체 균형 문제를 더 심각하게 보았다. NASA는 시제기를 시속 48km로 설정한 풍동 안에 넣고 비행을 시켰으며, 애브로카는 속도가 올라갈수록 균형이 불안정해지는 특성을 보였다. NASA의 시험 비행 조종사인 드링크워터는 기체가 초반에는 조작하기 어렵지 않다고 평했으나, 에어쿠션 효과에서 벗어나기 위해 충분한 속도를 얻으려고 하면 기체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애브로카는 조종사의 조작이 즉시적으로 이루어질 정도로 반응성이 좋지 않아 더욱 균형을 맞추기 어려웠다.

    아브로카의 비행 특성 <출처: Public Domain>

    애브로는 이것이 조종사 유발 진동(PIO: Pilot-induced Oscillation)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아예 헬리콥터나 VTOL 항공기 비행 경험이 없어 비행 중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버릇이 없는 조종사를 탑승시켜 보았다. 하지만 이들의 시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속도가 48km 이상으로 올라가자 조종석 캐노피에 결빙 현상이 발생해 캐노피를 열고 비행해야 했으며, 저고도에서 비행하면 주변 지형의 얼음과 물을 사방으로 흩날려 조종사의 시계를 심각하게 방해했다. 결국 프로스트는 10년간 사업을 진행하면서 최고 속도 2,414km/h 및 실용 상승 한도 약 30,480m로 잡았던 목표 성능을 고작 최고 속도 48km/h와 고도 0.91m 밖에 검증하지 못했고, 초기부터 문제점으로 발견된 엔진 출력 저하 문제나 균형 제어 문제도 끝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운용 현황

    우선 미 육군과 공군이 애브로카 개념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 항공기가 약속했던 VTOL 성능과 호버링 성능 때문이었다. 초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지만 헬리콥터처럼 제자리에서 호버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임무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무인항공기(UAV/RPAS)처럼 제자리에서 호버링 하면서 적을 관측하고, 저고도로 적 레이더망을 피해 폭격 임무를 수행한 후 초음속으로 현장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이 ‘애브로카’ 한 대가 헬기, 정찰기, 폭격기 역할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발 초기에 예상했던 성능과 실 기체의 성능이 크게 판이해 VZ-9은 양산 단계로 들어가지 못했다. NASA 시험 비행 조종사인 프레드 드링크워터는 이 기체를 평가하면서 “(처음 계획했던 것과) 이 항공기가 실제로 일치하는 능력을 보인 것은 ‘날 수 있다’는 점 하나뿐이다”라고까지 말하며 혹평했다. 그는 훗날 애브로카에 대해 “항공역학적 안정성을 모조리 깨는 데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통제 개념을 거슬렀다"라고 언급했다.

    시험 비행 중인 VZ-9의 모습. (출처: US Air Force)
    시험 비행 중인 VZ-9의 모습. (출처: US Air Force)

    사실 애브로의 수석 엔지니어인 잭 프로스트는 최초 Y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이 기체가 잘하면 우주의 경계까지 도달할 수 있는 극초음속 항공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예산을 댄 미 육군과 미 공군은 이 기체를 아음속~초음속의 VTOL기 개념으로 접근하려 하자 애브로의 엔지니어들은 사기가 크게 꺾인 채 개발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브로 측은 이 독특한 개념을 실제로 실현해 볼 기회라도 찾아왔으니, 일단 이 사업을 성공하고 나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추후 원하는 항공기를 개발하면 된다고 판단하고 사업에 임했다. 결과적으로 애브로카는 사업이 취소될 때까지 2번기 한 대로만 총 75시간 비행을 실시했으며, 실질적인 성과로 볼 때 사업은 어떤 면으로 봐도 실패로 간주됐다. 사실 어느 정도의 성과만 나왔다면 군용으로 사용은 어려웠더라도 민수용 항공기 개발에 응용했을 수 있지만, 이 기술은 어떤 측면에서도 응용하기가 어려워 그대로 사장됐다. 특히 애브로카는 고속으로 비행할 경우 동체 재료가 견디기 어려운 마찰열이 발생하는 데다 특유의 소음이 크게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부분은 정찰기로 운용할 경우 최악의 약점이 될 것이므로 미 육군은 사업 경과를 하나씩 지켜보면서 서서히 사업에서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미 정부가 사업을 인수한 후 공개 중인 VZ-9의 모습. <출처: Avro Canada>
    미 정부가 사업을 인수한 후 공개 중인 VZ-9의 모습. <출처: Avro Canada>

    물론 사업은 대 실패로 끝났지만, 동체 설계만큼은 혁신적이었던 것으로 인정받는다. 이때까지 통칭 “원형 날개”를 채택한 항공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시제기만 제작했다가 개발 실패로 폐기한 AS-6, 그리고 "날으는 팬케이크(Flying Pancake)”이라는 별명이 있던 보우트(Vought)사의 XF5U “플라잉 플랩잭(Flying Flapjack)” 정도가 전부이다. 그나마도 플라잉 플랩잭은 제대로 비행을 소화해 보지 못했으므로, 실제 제작이 되어 수차례 비행을 소화한 원형 날개 항공기는 VZ-9 애브로카가 사실상의 최초로 인정받는다.

    아브로카는 풍동시험에서는 상당한 가능성을 보였지만 실제는 안정된 비행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아브로카는 풍동시험에서는 상당한 가능성을 보였지만 실제는 안정된 비행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애브로카를 통해 연구된 디스크 방식의 엔진 및 항공기 동체 설계 기술은 오늘날 소수의 항공기에 응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애브로카 개발 사업은 1961년 12월에 취소됐을 당시 1천만 달러(2021년 물가 기준으로 약 9,200만 달러) 가량을 소진했다. 애브로카는 캐나다 국적의 항공사가 개발했지만 사업 중반부터 미 정부가 예산을 댔기 때문에 시제기 두 대의 소유권도 미 정부가 행사했다. 사업이 중단된 뒤, NASA에서 풍동 실험용으로 쓰던 시제기 1번기(기체 번호 58-7055/AV-7055)는 창고로 들어갔다가 1966년 미국 메릴랜드주 스위트랜드(Suitland, MD)에 위치한 국립 항공우주박물관에 기증됐다. 하지만 이 상태로 다시 40년간 창고에 들어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다가 2007년 미 공군 국립 박물관에 이관되었으며, 분해 상태로 재조립을 기다리다가 2008년 6월, 소실된 캐노피 등을 복원해 박물관 내 냉전 시대 전시관 및 대통령 항공기 전시관에 전시되었다. 1번기는 2016년부터 박물관 내 연구개발 전시관으로 이동하여 전시 중이다. 실제 시험 비행용으로 사용한 시제기 2번기(기체 번호 59-4975)는 버지니아주 유스티스(Eustis, VA)에 소재한 미 육군 수송박물관에 기증되어 전시 중이다.

    VZ-9 아브로카는 실제 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원형날개 항공기이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VZ-9 아브로카는 실제 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원형날개 항공기이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애브로카 개발이 추진된 계기였던 “블루 스카이” 사업은 미국 기초과학의 토대를 탄탄하게 쌓는 데 큰 공헌을 해 훗날 줄기세포 기술이나 유전공학 등에서 큰 진전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구 결과물이 직접적인 성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었고, 무엇보다 연구비 ‘투자’가 회수되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오래 지속되기 힘들었다. 결국 이 사업은 정치적으로 방향이 이리저리 엇갈리기도 했고, 중간에 실생활에 반영이 가능하거나 이윤이 남는 방향으로 연구 목표가 변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용 때문에 아무도 손대지 않던 영역의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 뿐 아니라 과학적 기술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파생형

    AZ-1 애브로카 1번기(기체 번호 58-7055): 원형 동체를 기반으로 한 시험 비행용 항공기. 풍동 시험용으로 제작되었으며 실제 시험 비행은 수행하지 않았다. 현재 미 공군 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미 국립 공군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VZ-9. (출처: US Air Force)
    미 국립 공군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VZ-9. (출처: US Air Force)

    AZ-1 애브로카 2번기(기체 번호 59-4975): 실제 비행 시험용으로 제작한 형상. 하지만 불안한 통제력과 낮은 추력 문제 등으로 지상에서 0.9m(3피트) 정도만 이륙했으며, 최고 속도도 시속 56km까지만 검증한 후 사업이 취소됐다. 현재 미 육군 수송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서부 캐나다 항공 박물관에 전시 중인 VZ-9 아브로카. 2006년 경에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public domain)
    서부 캐나다 항공 박물관에 전시 중인 VZ-9 아브로카. 2006년 경에 촬영된 사진이다. (출처: public domain)



    제원

    VZ-9의 외관 도면. (출처: public domain)
    VZ-9의 외관 도면. (출처: public domain)

    용도: 기술실증기
    제조사: 애브로 캐나다(1962년 CF-105 애로우 전투기 사업 취소 후 도산)
    승무원: 2명 (조종사/관측사)
    지름: 5.5m
    높이: 1.07m
    날개 길이: 5.48m
    날개 면적: 23.6㎡
    자체 중량: 1,361kg
    최대 이륙 중량: 2,522kg
    추력체계: 660파운드(2.9kN)급 컨티넨탈(Continental) J69-T-9 터보제트 엔진 x 3
    최고 속도: 480km/h(목표 속도), 56km/h(실제 검증 속도)
    항속 거리: 1,601km(목표 거리), 127km(실제 검증 거리)
    실용 상승 한도: 3,000m(목표 한도), 0.91m(실제 검증 한도)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VZ-9 애브로카 개념실증기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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