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FT-17 전차
모든 후대 전차들에게 영향을 준 아버지
  • 남도현
  • 입력 : 2021.11.09 08:11
    르노 FT-17는 전차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후대 전차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 출처 : (cc) Jean-Pol GRANDMONT at Wikimedia.org >
    르노 FT-17는 전차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후대 전차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 출처 : (cc) Jean-Pol GRANDMONT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흔히 바흐(Johann S. Bach)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정작 독일에서조차 그런 말이 없다. 이는 '기생충'이라는 제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반지하의 가족'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처럼, 그대로 놔두지 않고 뭔가 꾸미기를 좋아하는 일본에서 만든 조어일 뿐이다. 사실 바흐가 위대한 작곡가인 것은 맞지만 마치 음악을 창시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호칭은 너무 과하다.

    FT-17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전차의 구조인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포탑을 처음으로 장착한 전차다. < 출처 : (cc) Jean-Pol GRANDMONT at Wikimedia.org >
    FT-17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전차의 구조인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포탑을 처음으로 장착한 전차다. < 출처 : (cc) Jean-Pol GRANDMONT at Wikimedia.org >

    만일 어떤 사물이나 이론에 아버지라는 칭호가 붙는다면 후세에 확고하게 영향을 끼친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제1차 대전 후반기에 등장한 프랑스의 FT-17 전차는 가히 전차의 아버지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다. 전차라면 대부분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차체에 회전식 포탑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FT-17은 최신 전차도 예외 없이 따라 하는 이러한 구조를 처음으로 채택한 선구자였다.

    F-17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것은 초창기 전차의 모습이 그만큼 달랐다는 의미다. 고착된 참호 지대를 돌파하기 위해 탄생한 전차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무기여서 다양한 형태로 개발된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최초의 전차인 영국의 Mk나 프랑스의 CA1만 보더라도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장갑을 두른 차량 정도라는 점을 제외하면 오늘날 전차와의 공통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FT-17은 고속으로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다. 최고 속도가 시속 20km에 불과하지만 이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FT-17은 고속으로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다. 최고 속도가 시속 20km에 불과하지만 이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정부가 주도해서 Mk 시리즈로 단일화된 영국과 달리 여러 업체에서 동시에 개발을 진행한 프랑스의 경우는 특히 더했다. 슈나이더(Schneider), 생샤몽(Saint Chamond)은 전선을 돌파하려면 두터운 장갑을 두른 중전차가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반면 르노(Renault)는 속도를 중시해서 무게가 슈나이더나 생샤몽에서 제작한 전차의 30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 가벼운 경전차에 관심을 갖고 개발에 나섰다.

    FT-17의 시속 20km의 최고 속도는 오늘날 기준으로는 기어 다니는 정도지만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당시까지 제작된 엔진과 동력 계통의 성능 등을 고려하면 그 이상 성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기동력에 신경을 쓰다 보니 FT-17은 방어력과 공격력이 어쩔 수 없이 빈약했다. 엄밀히 말해 전차가 공격력, 방어력의 희생 없이 뛰어난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제3세대 전차가 실용화된 1980년대부터다.

    해치를 개방한 FT-17. 가장 장갑이 두터운 곳도 22mm에 불과해서 방어력이 빈약하다. 다만 등장 당시 기준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해치를 개방한 FT-17. 가장 장갑이 두터운 곳도 22mm에 불과해서 방어력이 빈약하다. 다만 등장 당시 기준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FT-17은 장갑이 얇아 방어력은 소화기의 공격 정도나 막을 수 있었다. 다만 당시 활약한 중전차들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옥 같았던 제1차 대전의 서부전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가 기관총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개발자들의 이런 생각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전차무기는 전차가 등장한 이후에 생겼고 이에 대한 응전으로 전차의 방어력이 증가했다.

    F-17은 차체가 작아서 당시 주로 사용하던 75mm 포를 장착할 수 없었다. 대신 르노는 화력은 떨어졌지만 37mm 포를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포탑에 장착해서 모든 방향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당시 여타 전차들은 여러 문의 포를 측면, 정면 등에 장착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포격할 수 있었기에 당연히 FT-17의 작전 효율이 좋았다. 하지만 채택 경쟁에서 프랑스군은 중전차의 손을 들어주었다.

    목재로 주포 모형을 제작한 FT-17 프로토타입. 르노의 제안은 당국이 거부했지만 중전차들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일선의 반응에 따라 개발이 시작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목재로 주포 모형을 제작한 FT-17 프로토타입. 르노의 제안은 당국이 거부했지만 중전차들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일선의 반응에 따라 개발이 시작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런데 중전차가 전선을 돌파해도 속도가 느려서 전과를 확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즉시 피드백이 이루어지면서 르노가 제안한 FT-17의 도입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17년부터 일선에 배치되어 활약했는데 특히 전쟁 말기인 1918년 7월에 벌어진 수아송(Soissons) 전투에서 인상적인 전과를 올렸다. 일선에서 공급 요구가 빗발쳐 르노 이외에 여러 곳에서 생산이 이루어졌고 종전 무렵까지 종횡무진 활약했다.

    이처럼 전과가 좋다 보니 20여 개국에도 공급되었는데 특히 미국과 소련에서 전차 역사를 선도했다. 제1차 대전에 뒤늦게 참전한 미국은 FT-17에 크게 감명을 받아 직도입뿐만 아니라 면허 생산해서 사용했다. 소련은 적백내전 당시 노획한 F-17을 데드카피해서 T-18 전차를 만들었다. 이후 전차 역사에서 이들 양국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F-17은 새로운 역사를 개막시킨 이정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18년 여름 르노 FT-17 전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죠지 S. 패튼 중위. < 출처 : US Army Signal Corps >
    1918년 여름 르노 FT-17 전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죠지 S. 패튼 중위. < 출처 : US Army Signal Corps >



    특징

    FT-17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사용 중인 전차의 기본 구조를 완성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360도 선회가 가능한 포탑과 전차장용 큐폴라를 장착했다는 것만으로도 무기사에 대단한 흔적을 남겼다. 처음에는 지로(Giro)사에서 포탑을 제조했으나 이후 양산이 결정되고 수요가 대폭 증가하자 발리에(Berliet)사에서도 제작이 이루어졌다. 그만큼 일선에서의 반응이 좋았다는 의미다.

    FT-17의 포탑과 주무장인 SA18 37mm포. 분당 15발까지 속사가 가능하지만 저압포여서 대보병 전투에 정도에나 효과적이었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FT-17의 포탑과 주무장인 SA18 37mm포. 분당 15발까지 속사가 가능하지만 저압포여서 대보병 전투에 정도에나 효과적이었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탑재한 37mm 전차포로 전차전은 불가능했고 보병을 근접에서 지원하는 용도로나 사용되었다. 장갑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총, 기관총 등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이어서 FT-17 단독으로 작전을 펼치기는 어려웠다. 차체가 작아 근무 여건이 좋지 않았고 2명의 승조원으로 전투를 벌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많았다. 하지만 구조가 간단해서 제작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짧은 기간 동안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FT-17 기관총 장착형의 단면도. 회전식 포탑 외에 전차장용 큐폴라, 전투실과 분리된 엔진실 등의 구조는 오늘날은 당연히 따라 하는 구조다. < 출처 : Public Domain >
    FT-17 기관총 장착형의 단면도. 회전식 포탑 외에 전차장용 큐폴라, 전투실과 분리된 엔진실 등의 구조는 오늘날은 당연히 따라 하는 구조다. < 출처 : Public Domain >

    FT-17이 Mk를 비롯해서 동시대에 탄생해서 활약한 여타 전차들과 비교할 때, 일단 가장 오래 사용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가 입증된다. 대부분이 제1차 대전 후 급격히 도태된 것과 달리 FT-17은 전간기와 제2차 대전 당시에도 사용되었다. 물론 이때는 후방 작전용처럼 2선급으로 물러난 상태였으나 일단 실전에 투입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운용 현황

    FT-17은 1917년부터 1919년까지 총 3,728대가 제작되었는데 이는 면허 생산형, 복제형 등을 제외한 수량이다. 원래 프랑스군은 12,260대를 획득할 예정이었으나 종전으로 생산량이 대폭 감축되었다. 데뷔와 동시에 곳곳에서 작전을 펼쳤는데 특히 제1차 대전을 매조지 한 연합군의 마지막 작전이었던 100일 공세 당시에 전선 대부분에서 돌파의 중핵을 담당했다. 제1차 대전을 상징하는 전차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1918년 아르곤 대공세 당시 FT-17로 공격 중인 미군. 놀랍게도 1980년대에도 실전에 투입된 사례가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1918년 아르곤 대공세 당시 FT-17로 공격 중인 미군. 놀랍게도 1980년대에도 실전에 투입된 사례가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 소련에서 전차 역사를 개막시켰고 일본, 이탈리아도 국산 전차 개발에 참조했다. 많은 나라에 공급이 되어 전간기에 벌어진 여러 국지전, 분쟁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전에 1선급 무기로서의 가치를 잃은 상태였으나 1940년 독일의 프랑스 침공 당시에도 무려 500여 대가 활약했다. 공식 기록상으로 FT-17가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전장은 1980년대에 있었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었다.


    파생형

    Char canon: 단포신 37mm Puteaux SA18 포 장착형. 전체 생산량의 60퍼센트.

    Char canon < 출처 : (cc) Paul Hermans at Wikimedia.org >
    Char canon < 출처 : (cc) Paul Hermans at Wikimedia.org >

    Char mitrailleuse: 8mm Hotchkiss M1914 기관총 장착형. 전체 생산량의 40퍼센트.

    Char mitrailleuse < (cc) Hohum at Wikimedia.org >
    Char mitrailleuse < (cc) Hohum at Wikimedia.org >

    FT 75 BS: 단포신 75mm 포 장착형.
     
    FT modifié 31: 7.5mm Reibel 기관총 장착형.

    FT modifié 31 < 출처 : (cc) User:Fat yankey at Wikimedia.org >
    FT modifié 31 < 출처 : (cc) User:Fat yankey at Wikimedia.org >

    FT- Ko: 일본 공급형.

    FT- Ko < 출처 : Public Domain >
    FT- Ko < 출처 : Public Domain >

    M1917: 미국 면허 생산형.

    M1917 < 출처 : (cc) JustSomePics at Wikimedia.org >
    M1917 < 출처 : (cc) JustSomePics at Wikimedia.org >

    T-18: 소련 복제형.

    T-18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T-18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FT CWS: 폴란드 공급형.

    FT CWS < 출처 : Public Domain >
    FT CWS < 출처 : Public Domain >

    M26/27: 케그레스(Kégresse) 궤도를 장착한 수출형.

    M26 < 출처 : Public Domain >
    M26 < 출처 : Public Domain >

    FIAT 3000: 이탈리아 파생형.

    FIAT 3000 < 출처 : Public Domain >
    FIAT 3000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생산 업체: 르노 외
    중량: 6.5톤
    전장: 5.00m
    전폭: 1.74m
    전고: 2.14m
    장갑: 8~22mm
    무장: 37mm Puteaux SA 1918 포×1 또는 8mm Hotchkiss 기관총×1
    엔진: 르노 V4 수랭식 가솔린 엔진 39마력(29kW)
    추력 대비 중량: 5마력/톤
    서스펜션: 수직 스프링
    항속 거리: 60km
    최고 속도: 20km/h(노상)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FT-17 전차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