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RT-23 UTTH 몰로데츠
열차에서 ICBM을 발사하는 지상기반 제2격 능력의 시초
  • 양욱
  • 입력 : 2021.11.05 08:37
    RT-23UTTH는 열차를 발사플랫폼으로 하는 ICBM으로, 지상 기반의 제2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냉전의 산물이다. <출처: Минобороны России >
    RT-23UTTH는 열차를 발사플랫폼으로 하는 ICBM으로, 지상 기반의 제2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냉전의 산물이다. <출처: Минобороны России >


    개발의 역사

    핵 전쟁은 인류에게 있어서는 공멸을 의미한다. 2차대전 직후 미국만이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었을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계획을 세우되 그에 의존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1949년 소련이 최초의 핵실험을 성공하면서 핵무장을 성공한 이후 미국은 핵무기를 선제사용할 수 있다는 강경한 의사를 표현했다. 이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핵 선제사용의 교리를 더욱 명확히 했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재래전에서도 언제든 핵을 쓸 수 있게 할 수 있도록 전술핵이 개발되고 NATO나 한반도 등 핵심지역의 방어를 위해 투입되었다.

    미소 핵경쟁 초기에 미국은 선제사용 교리를 내세우면서 소련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사진은 1957년 네바다에서 벌어진 일련의 핵실험인 '플럼밤 작전'의 일부로 6월 24일 37킬로톤의 핵폭탄이 폭발하는 모습이다. <출처: 미 국방부>
    미소 핵경쟁 초기에 미국은 선제사용 교리를 내세우면서 소련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사진은 1957년 네바다에서 벌어진 일련의 핵실험인 '플럼밤 작전'의 일부로 6월 24일 37킬로톤의 핵폭탄이 폭발하는 모습이다. <출처: 미 국방부>

    그러나 실수든 고의이든 한 쪽이 먼저 핵을 사용하고 다른 쪽이 그 보복으로 역시 핵을 사용하면 모두 파멸을 맞이할 것은 명백했다. 이에 따라 핵을 가진 국가는 이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선제 불사용(No First Use)에 관한 논의는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1954년 영국과 프랑스가 제안을 시작한 이래 1957년 UN 군축위원회에 참석한 미국 대표 스타센은 재래식 군사력으로 격퇴가 불가능한 경우 이외에는 핵을 사용하지 말자는 제안을 했다.

    인류 최대의 핵폭발실험인 차르봄바(Царь-бомба)의 폭발장면. 차르봄바의 폭발력은 무려 50메가톤으로, 무려 700km 반경을 파괴했다. 소련은 원래 100메가톤으로 실험하고자 했으나 피해를 우려해 절반의 파괴력만 활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인류 최대의 핵폭발실험인 차르봄바(Царь-бомба)의 폭발장면. 차르봄바의 폭발력은 무려 50메가톤으로, 무려 700km 반경을 파괴했다. 소련은 원래 100메가톤으로 실험하고자 했으나 피해를 우려해 절반의 파괴력만 활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물론 소련은 서구의 제안을 달리 해석했다. 재래식 전력에서는 오히려 서구보다 우월했던 소련은, 서구 측의 선제 불사용 제안이 오히려 재래색 군사력에서 불리하면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1962년 미국의 맥나라마 국방장관이 비군사표적에 대한 핵 선제불사용을 선언하고, 중국이 핵실험 이후 선제불사용을 선언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다. 게다가 1970년대 미소 양진영의 핵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무기 제한협상(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 SALT)이 원만히 진행되자, 소련도 1982년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선제 불사용을 선언하면서 긴장은 더욱 완화되는 듯 했다.

    1972년 5월 26일 모스크바에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이 SALT-I(제1차 전략무기 제한협상)의 공동선언문에 조인하고 있다. <출처: Richard Nixon Presidential Library>
    1972년 5월 26일 모스크바에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이 SALT-I(제1차 전략무기 제한협상)의 공동선언문에 조인하고 있다. <출처: Richard Nixon Presidential Library>

    그러나 군사적인 맥락에서 선제 불사용은 반대로 적에게 선제공격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반격을 위해서는 핵무기들은 기동성을 갖추거나 적의 우주정찰체계에 관측되지 않아야만 했으며, 적의 핵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어야만 했다. 게다가 SALT II  협정이 1979년 조인됨에 따라 새로운 제약이 생겼다. 미소 양측은 ICBM과 SLBM의 숫자를 1,200개 이하로 제한했고, 발사중량 105톤 이하의 새로운 핵무기를 한 종류만 더 만들기로 했다. 이러한 SALT-II 협정의 제한을 지키기 위해 소련은 새로운 미사일을 필요로 했다.

    소련은 제2격능력을 다양화 하기 위해서 열차를 ICBM 발사플랫폼으로 사용하는 전투철도미사일체계(BZhRK)를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출처: Public Domain>
    소련은 제2격능력을 다양화 하기 위해서 열차를 ICBM 발사플랫폼으로 사용하는 전투철도미사일체계(BZhRK)를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출처: Public Domain>

    이에 따라 소련은 미국의 피스키퍼 ICBM에 대항하기 위하여 신형 ICBM의 개발에 나섰다. 특히 선제불사용에 따른 생존성을 높이고자 SLBM 이외에도 추가적인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1969년부터 개발을 추진하다가 중단했던 전투철도미사일체계(Боевого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го Ракетного Комплекса, БЖРК, 이하 영문 BZhRK로 표기)에 다시 집중했다. 우크라이나의 유즈노예 설계국이 개발하던 BZhRK는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열차에서 발사하는 시스템으로 개발되었다. 운반수단(미사일)으로는 원래 액체연료 방식인 R-12 중거리탄도미사일을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유즈노예(Южное) 설계국은 고체연료 미사일로 방향을 전환했다.

    블라디미르와 알렉세이 우트킨 형제가 RT-23과 BZHRK의 개발을 담당했다. <출처: Public Domain>
    블라디미르와 알렉세이 우트킨 형제가 RT-23과 BZHRK의 개발을 담당했다. <출처: Public Domain>

    이러한 노선변화는 유즈노예의 설계책임자였던 블라디미르 우트킨(Владимир Уткин)와 알렉세이 우트킨(Алексей Уткин) 형제의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원래 BZhRK의 개발책임자로는 미하일 얀겔이 선임되었지만 그의 죽음에 따라 블라디미르가 설계수석으로 선임되면서 변화가 생긴 것이다. 고체연료 전문가였던 블라디미르는 BZhRK의 미사일 개발을, 알렉세이는 발사체계 전체와 미사일 발사차량을 담당했다. 문제는 무려 150톤에 이르는 미사일과 발사장치를 열차에 탑재하는 것이었다. 열차 자체가 이를 감당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궤도나 교량이 이를 버틸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소련은 지상에서의 제2격능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열차발사형 ICBM의 개발에 나섰으나, 막상 발사체의 선정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출처: Минобороны России >
    소련은 지상에서의 제2격능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열차발사형 ICBM의 개발에 나섰으나, 막상 발사체의 선정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출처: Минобороны России >

    BZhRK에 장착될 고체연료 미사일로는 우선 당시 개발중이던 RT-20P(GRAU분류명 8K99)와 RT-21(GRAU분류명 15Zh41)의 탑재가 고려되었다. 그러나 이 두 기종은 발사기까지 포함한 중량이 각각 30톤과 42톤인 경량 ICBM으로, 국방부는 발사중량 130톤의 강력한 미사일을 요구했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유즈노예는 RT-22(GRAU분류명 15Zh43)를 제안했지만, 국방부는 이 미사일도 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1972년 5월 유즈노예 설계국은 새로운 미사일 사양을 제시하여 1973년 3월 RT-23의 시제 개발로 방향이 잡혔다. 그러나 사업의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BZhRK와 발사체의 개발은 중단되었고, 사업은 잠시 잊혀지는 듯 했다.

    BZhRK 체계는 1960년대초부터 개발이 시작되다가 기술적 한계 등을 이유로 취소된 바 있다. 그러나 소련이 공식적으로 핵 선제불사용원칙을 선언하면서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1970년대말 개발사업이 부활하였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BZhRK 체계는 1960년대초부터 개발이 시작되다가 기술적 한계 등을 이유로 취소된 바 있다. 그러나 소련이 공식적으로 핵 선제불사용원칙을 선언하면서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1970년대말 개발사업이 부활하였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하지만 RT-23의 개발은 부활했다. 1976년 6월 정부지침에 따라 유즈노예 설계국은 RT-23의 사일로 발사형인 15Zh44 미사일의 체계개발을 시작했다. 동시에 국방부는 제2격 능력을 위한 요구조건들을 점차 개발해나갔다. 이에 따라 애초에 단일탄두형이던 RT-23은 1979년 6월 1일의 정부명령 제514-175호에 따라 MIRV 장착형으로 바뀌었으며, 10개의 다탄두를 탑재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15Zh44 미사일의 설계는 1979년 4/4분기에 채택되었다. 그러나 열차발사용 ICBM의 개발이 재진행되면서 BZhRK(이 시기에 이르러 GRAU분류명으로 15P952가 부여됨)와 15Zh52 미사일의 기본설계는 1980년 7월 완성되었다.

    소련의 전투철도미사일체계를 묘사한 미군의 예상도 <출처: 미 국방부>
    소련의 전투철도미사일체계를 묘사한 미군의 예상도 <출처: 미 국방부>

    1982년 경에 이르러서는 시제 미사일과 발사열차는 어느 정도 개발이 진행되어, 플레세츠크 인근에 훈련장과 시험발사부대가 준비되었고, 12월에 이르러 15Zh52 미사일과 열차가 플레세츠크에 도착했다. 시험발사는 1983년 1월 18일에 초도 발사가, 동년 12월 28일에 2차 발사가 실시되었다. 이후에도 시험발사가 계속되어 모두 10차례의 시험발사가 실시되었으며, 1985년 4월에 마무리되었다. 시험발사는 모두 성공적이었고, 15P952 BZhRK도 완성에 이르렀지만, 중앙위원회는 아직 체계가 성숙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실전배치를 하지 않았다.

    RT-23UTTH의 열차발사형인 15Zh61의 시험발사 장면 <출처: Минобороны России >
    RT-23UTTH의 열차발사형인 15Zh61의 시험발사 장면 <출처: Минобороны России >

    사실 소련 국가수뇌부는 이미 RT-23의 개량을 예정하여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및 소련 장관위원회 명령 제768-247호(1983년 9월 8일자)를 발행하여 미사일 하나로 사일로 발사, 열차 발사 및 차량 발사의 3가지 수단을 동시에 활용할 것을 지시했다. 특히 소련 전략미사일군 사령부는 RT-23의 성능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고 판단하고 성능의 개량을 요구했다. 특히 핵공격시의 생존성에 중점을 둠에 따라 유즈노예 설계국은 RT-23UTTH(GRAU분류명 15Zh61)를 개발했는데, UTTH(러시아어 УТТХ)란 전술 및 기술 특성 개량형(Улучшении Тактико-Технических Характеристик)의 준말로 우리말로는 단순히 개량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5Zh61은 1985년 2월 27일부터 1987년 12월 22일까지 무려 32차례의 시험발사를 거친 후에 실전배치 되었다. RT-23 UTTH에는 몰로데츠(Молодец)라는 암호명이 부여되었으며,


    특징

    RT-23UTTH의 열차 발사형은 GRAU 분류명이 15Zh61, 사일로 발사형은 15Zh60으로 분류되는데, 사실상 양자의 차이가 거의 없다. RT-23UTTH는 고체연료 3단 추진의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미국의 LGM-118 피스키퍼 ICBM과 유사하다. 1단 추진체는 T9-BK-8E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15D305 엔진(추력 309.9tf)으로, 15Zh44(사일로 발사형 RT-23 시제미사일)에서 채용되었던 엔진을 개선한 것이다. 한편 2단 추진체인 15D339 엔진은 "스타르트(Старт)"라는 신형 고체연료를, 3단의 15D291 엔진에는 강력한 폭발력을 갖춘 AP-65 고체연료를 사용했다.

    RT-23UTTH 미사일의 추진부 구성 <출처: 필자>
    RT-23UTTH 미사일의 추진부 구성 <출처: 필자>

    탄두부는 MIRV(Multiple Independently-targetable Reentry Vehicle, 다탄두 각개목표설정 재돌입 비행체)와 이를 수납하는 PBV(Post Boost Vehicle, 후 추진체)로 구성된다. PBV용 추진장치로 유즈노예 설계국은 RD-866이라는 고출력 액체연료 엔진을 개발했는데, UDMH(Unsymmetrical Dimethyl Hydrazine, 다이메틸 하이드라진)를 추진제로 N2O4(사산화 이질소)를 산화제로 사용한다. RD-866(GRAU분류명 3D65)은 메인 엔진 1개에 스러스터 16개로 구성되어 미세한 자세조정이 가능하다.

    RT-23UTTH의 탄두부 페어링이 접힌 모습의 정면(좌)과 측면(우)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RT-23UTTH의 탄두부 페어링이 접힌 모습의 정면(좌)과 측면(우)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한편 탄두에서 또 하나 독특한 것은 바로 페어링이다. RT-23UTTH는 페어링의 끝부분은 발사관에 수납시에는 접혔다가 발사에 맞춰 펴지도록 설계되었다. 방식은 사일로형과 열차발사형이 다른데, 전자는 접이식이고, 후자는 주입팽창식으로 페어링의 형태를 완성한다. 이는 열차의 크기에 맞추어 만들어진 발사관에 미사일을 수납하기 위한 조치였다. 탄두에는 15F444 MIRV가 최대 10개까지 탑재되는데, MIRV 1개의 파괴력은 430kt에 이른다.

    RT-23UTTH는 15F444 MIRV를 최대 10개까지 탄두에 장착할 수 있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RT-23UTTH는 15F444 MIRV를 최대 10개까지 탄두에 장착할 수 있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비행제어장치는 자동화 및 기계공학 연구소(НПО АП)의 블라디미르 라피긴(В.А. Лапыгин) 박사의 주도로 개발된 제3세대 내장형 디지털 컴퓨터(БЦВМ, Бортовой Цифровой Вычислительный Машин)가 탑재되었고, 시그널-A(Сигнал-А) 전투통제체계와 연동된다. 특히 제2격용 핵무기로서 핵폭발시에도 주요 장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EMP 차폐 등 생존성을 높였다. 지상 자이로컴패스와 광전자수단으로 조준을 확보하면 방위각을 내장된 자이로 안정장치로 전송하여 목표를 조준한다.

    RT-23UTTH의 사일로 발사체계는 GRAU에 의해 15P760으로 분류되며 START-II 협정으로 폐기되었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RT-23UTTH의 사일로 발사체계는 GRAU에 의해 15P760으로 분류되며 START-II 협정으로 폐기되었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발사플랫폼으로는 사일로와 열차의 2가지가 있다. 우선 사일로는 UR-100 ICBM용 사일로를 그대로 사용한다. 이동과 발사를 위한 보관용 통합 컨테이너인 15B222에 수납되어 이동하며, 사일로에 수납하면서 특수충격진동장치를 장착한다. 사일로 발사체계는 GRAU분류명 15P760으로 불린다. 한편 열차발사플랫폼인 BZhRK(전투철도미사일체계)는 RAU 분류명 15P961로 분류되는데, 마치 냉동보관차량을 견인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하였다. 15P961 BZhRK는 RT-23UTTH 발사차량 3량, 지휘통제모듈 7량, 유류 및 윤활유 보관차량 1량, 그리고 DM-62 디젤기관차 2량 등 모두 13량으로 구성된다.

    RT-23UTTH ICBM의 열차기반 발사체계는 BZhRK(전투철도미사일체계)로 불리며, GRAU에 의해 15P961로 분류된다. 애초에 START-II 협정에 따른 폐기대상이지만, 러시아는 미국의 ABM 협정탈퇴를 이유로 존속시켰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RT-23UTTH ICBM의 열차기반 발사체계는 BZhRK(전투철도미사일체계)로 불리며, GRAU에 의해 15P961로 분류된다. 애초에 START-II 협정에 따른 폐기대상이지만, 러시아는 미국의 ABM 협정탈퇴를 이유로 존속시켰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운용의 역사

    RT-23 사업은 사일로 발사용 미사일과 열차 발사용 미사일의 2가지를 동시에 개발하는 작업이었다. 사일로 미사일로서는 '붉은 미니트맨'으로 불리던 UR-100 액체연료 미사일을 교체하여 실전배치될 터였다. 그리고 ICBM의 열차 발사는 소련으로도 최초의 시도였으므로 이미 시험평가 단계부터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열차발사용 시험부대가 1982년 7월 20일 플레세츠크 인근의 NIIP-53 시험평가장 인근에서 창설되어 시험발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1983년 1월 초도시험발사가 끝난 이후, 2월 10일 소련 국방회의는 RT-23과 BZhRK를 시범운용하기로 결정했다.

    RT-23UTTH의 사일로발사형은 UR-100계열을 대신하여 1987년 10월부터 처음 운용을 시작했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RT-23UTTH의 사일로발사형은 UR-100계열을 대신하여 1987년 10월부터 처음 운용을 시작했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그러나 실제로 실전배치된 것은 RT-23의 개량형인 RT-23UTTH였다. RT-23UTTH 사일로 발사형은 1987년 10월 20일부터 준비태세에 돌입했고, 1988년 중반에 이르러서는 5개의 미사일 연대에 배치되었다. 도합 15개의 발사관이 배치되었는데, 4개 연대가 볼가강 인근의 코스트로마(Кострома́) 지구에, 1개 연대가 페름(Пермь) 지구에 주둔했다. 호위부대는 사일로의 4km 권역 내에 위치했으며, 전투임무시에는 산개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RT-23UTTH를 발사하는 15P961 BZhRK는 1989년 11월부터 작전상 운용이 시작되었다. <출처: Минобороны России >
    RT-23UTTH를 발사하는 15P961 BZhRK는 1989년 11월부터 작전상 운용이 시작되었다. <출처: Минобороны России >

    한편 RT-23UTTH 열차발사형(15Zh61)은 1985년부터 2년간 약 32회의 시험발사가 실시되었으며, 그 중에 18회는 전투철도미사일체계(BZhRK)에서 발사되면서 실전능력이 검증되었다. 이에 따라 BZhRK는 1989년 11월 28일부터 운용이 시작되었다. 1991년까지 BZhRK 12세트가 생산되어 3개 미사일 사단이 운용했다. 3개 사단은 코스트로마 지구의 제10 근위미사일사단,  즈뵤즈늬 가라도크(일명 '스타 시티')의 제52미사일사단, 그리고 크라스노야르크(Красноя́рск)의 제36미사일사단이다. 각 미사일사단은 4개 연대로 구성되었으며, 1개 연대마다 BZhRK 1개가 배치되었다.

    이들 BZhRK 배치기지로부터 1,500km 반경에서는 무거운 미사일발사열차를 지지하기 위하여 철도트랙에 대한 모강이 이루어져, 나무침목이 콘크리트 지반으로 바뀌고 레일이 강화되는 등 조치가 이루어졌다. BZhRK 미사일열차는 전개를 시작하면 하루에 최대 1,000km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군축협약에 따라 BZhRK는 열차기지에서 대기하였으며, 실제 철도 위에서 상시대기하면서 운용한 적은 없었다.

    15P961 BZhRK는 마치 민간의 냉동 수송열차로 위장하고 ICBM의 제2격 임무를 수행했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15P961 BZhRK는 마치 민간의 냉동 수송열차로 위장하고 ICBM의 제2격 임무를 수행했다. <출처: ОРУЖИЕ ОТЕЧЕСТВА>

    한편 원래 START II 협정에 따라 러시아는 RT-23UTTH 체계 전체를 2003년까지 해체하기로 미국과 합의했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에서 ABM 협약을 파기함에 따라 러시아도 더이상 START II가 유효하지 않다고 밝히며 몰로데츠를 계속 운용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 전략로켓군은 2012년 BZhRK를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겠다고 밝히고 2016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고 발표했지만, 2017년 해당 계획은 취소된 것으로 알려진다.


    파생형

    RT-23 시제모델

    15Zh44(15Ж44): RT-23의 초기모델로 사일로 발사전용 ICBM. 열차개발의 한계로 인하여 사일로 발사용으로만 개발되었으며, 단일탄두형으로 R-36M과 유사한 재진입체를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최초의 시험발사는 1982년 10월에 실시되었지만 1983년 2월 소련 국방부는 추가개발을 취소했다. NATO식별명은 SS-24 PL-4이다.

    15Zh44 (NATO명 SS-24 PL) <출처: © А.В.Карпенко>
    15Zh44 (NATO명 SS-24 PL) <출처: © А.В.Карпенко>

    15Zh52(15Ж52): 15Zh44를 수정하여 만든 사일로 및 열차발사 겸용 ICBM. 15Zh44를 개수하여 열차발사가 가능하도록 만든 모델로 1985년 4월 개발이 완료되었다. 이에 따라 1987년 11월부터 운용이 시작되었으나 이는 시범운용에 그쳤으며, 본격운용은 개량양산형인 RT-23UTTH에서 예정되었다. NATO 식별명은 SS-24 Mod 0이다.

    15Zh52 (NATO명 SS-24 Mod 0) <출처: © А.В.Карпенко>
    15Zh52 (NATO명 SS-24 Mod 0) <출처: © А.В.Карпенко>


    RT-23UTTH

    15Zh60(15Ж60): 15Zh52를 개량하여 양산형으로 만든 사일로발사형 ICBM. UR-100 계열을 대체하여 사일로에 장착되었으며, 1989년 11월 28일부터 작전을 시작하였다. 최종적으로 모두 56개의 사일로에 배치되었다. NATO 식별명은 SS-24 Mod 2이다.

    15Zh60 (NATO명 SS-24 Mod 2) <출처: © А.В.Карпенко>
    15Zh60 (NATO명 SS-24 Mod 2) <출처: © А.В.Карпенко>

    15Zh61(15Ж61): 15Zh52를 개량하여 양산형으로 만든 열차발사형 ICBM. 발사플랫폼과 전체를 합쳐 15P961 BZhRK(전투철도미사일체계)로 불리며, 13량짜리 열차와 15Zh61 ICBM 3발로 구성된다. NATO 식별명은 SS-24 Mod 1이다.

    15Zh61 (NATO명 SS-24 Mod 1) <출처: Public Domain>
    15Zh61 (NATO명 SS-24 Mod 1) <출처: Public Domain>



    제원

    모델: RT-23 UTTH (15Zh61 열차발사용 미사일)
    추진방식: 고체연료 방식
    추진체: 3단 상승 + PBV
    전장: 23.30 m
    직경: 2.40 m
    발사중량: 104,800 kg
    탑재중량: 4,050 kg
    탑재탄두: MIRV (0.43Mt) x 10발
    최대사거리: 10,100 km 이상 
    정점고도: 1,000 km
    CEP: 300 m


    저자소개

    양욱 | 군사학 박사(군사전략)

    RT-23 UTTH 몰로데츠

    중동지역에서 군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했으며, 현장에서 물러난 후 국방대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수석연구위원이자, 각 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 및 안보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또한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전략과 국방정책 등을 가르치고 있다. 본 연재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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