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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어둠의 과학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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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2 03:18

'국제 핵확산 주범'으로 지목되는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 /조선일보 DB

“(조국)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핵무기 개발의 핵심은 고농축 우라늄에 있습니다.” 1974년 네덜란드 민간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우라늄 농축 전문가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해 5월, 숙적인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하자 부토 총리는 “풀만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 선언했지만 진전이 없어 답답해하던 터였다. 칸 박사의 편지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부토 총리가 조국에 돌아올 것을 권유하자 칸 박사는 유럽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귀국했다. 그는 300달러의 적은 월급을 받아가며 개발에 착수한 지 불과 7년 만에 핵무기 제조에 성공했다. 변변한 제조업도 없는 기술 후진국에서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1998년 공식 핵실험에 성공해 파키스탄을 이슬람권 최초의 핵 보유국으로 만들어준 그는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로 국가적 영웅이 됐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우리 귀에도 낯익은 칸 박사가 코로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국내외 언론은 ‘국제 핵 확산의 주범’이란 수식어를 붙여 그의 죽음을 전했다. 2000년대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 등 서구 사회는 파키스탄 정부가 북한 등에 핵 기술을 이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그를 주요 인물로 지목했다. 급기야 그는 2004년 기자회견을 자청, 북한·이란·리비아 등 3국에 핵무기 기술을 판매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파키스탄 정부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는 믿지 않았지만 파키스탄 대통령은 그를 사면했고 가택연금 조치로 끝냈다.
▶그는 북한·이란·리비아에 고농축 우라늄 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기술이나 장비를 전수해줬다. 세 나라 중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이 북한이었다. 파키스탄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과 미사일을 제공받는 대신 우라늄 농축 기술·장비를 제공하는 ‘기브 앤드 테이크’ 방식이었다.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던 그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하기 7년 전에 이미 북에서 3개의 핵무기 장치를 목격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칸 박사가 북한 핵 개발에 어느 정도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선 전문가 사이에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그가 북한 핵 개발, 특히 북 핵무기의 주류가 된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는 사실에 대해선 이론이 없다. 일각에선 그가 히틀러처럼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광기(狂氣) 어린 과학자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가 도움 준 북핵을 자나 깨나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로선 그의 죽음에 착잡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