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헬파이어 미사일
탱크킬러에서 테러리스트킬러로 발전한 레이저 유도미사일
  • 양욱
  • 입력 : 2021.09.29 08:59
    AH-64 아파치 공격헬기에서 발사되는 헬파이어 미사일 <출처: 미 국방부>
    AH-64 아파치 공격헬기에서 발사되는 헬파이어 미사일 <출처: 미 국방부>


    개발의 역사

    1960년대 NATO가 전진방어 전략으로 서독 동부 국경으로 방어진지를 이동하자, 동구권은 이를 공세적 군사태세로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구상했다. 그리하여 바르샤바조약군은 NATO의 전진방어선을 격파하기 위하여 화력과 기동, 그리고 충격에 바탕하는 종심작전으로 대응했다. 초전에서 NATO의 승리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전구 전략작전의 수행에서 성패를 좌우할 터였다. 이에 따라 소련은 작전기동군(Operational Manoeuvre Group)을 고속으로 첨입시켜 NATO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후속부대를 추가로 투입하는 작전전략을 입안했다.

    소련의 작전기동군 교리에서 기계화보병연대의 편제 <출처: Weapons and Warfare>
    소련의 작전기동군 교리에서 기계화보병연대의 편제 <출처: Weapons and Warfare>

    이러한 작전전략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군은 그 나름의 군사혁신과 훈련을 계속했다. 자퍄드 77 지휘소훈련에서 바르샤바 조약군은 최고지휘부의 공조하에 6개의 전선에서 서독으로 돌격해들어가는 종심작전을 구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면에서 정면돌파를 감행하는 전략에 기갑전력의 우세까지 더해지면서 더 이상 전술핵에 의존하는 방어가 불가능해지면서 미국도 군사혁신에 나섬과 동시에 적극방어전략으로 변화를 추구했다.

    바르샤바조약군의 다면 정면돌파 작전에 대항하기 위하여 미군은 새로운 무기들이 필요했다. <출처: Public Domain>
    바르샤바조약군의 다면 정면돌파 작전에 대항하기 위하여 미군은 새로운 무기들이 필요했다. <출처: Public Domain>

    특히 적의 기갑전력에 대한 대응이 중요해졌다. 게다가 소련이 기존의 서구 대전차무기로는 격파할 수 없는 전차를 개발하고 있다는 첩보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은 더욱 긴급해졌다. 이에 따라 육군에서는 헬기 기반의 대전차 미사일로 소련의 기갑제대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미사일은 현존하는 어떠한 적의 전차도 격파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야만 했으며, 발사후망각(fire-and-forget) 기능으로 여러 개의 표적을 동시에 격파할 수 있어야 했다.

    기존의 대전차 미사일은 유선유도로 조준을 유지해야만 했으므로 다수의 표적에 교전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출처: 미 육군>
    기존의 대전차 미사일은 유선유도로 조준을 유지해야만 했으므로 다수의 표적에 교전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출처: 미 육군>

    1960년 시어도어 메이먼(Theodore Maiman, 1927~2007) 박사가 방산업체인 휴즈(Hughes)의 연구소에서 최초로 합성루비 레이저의 프로토타입을 작동시킨 이래, 미 육군은 미사일사령부 예하의 연구소를 통해 이미 1960년대초반부터 레이저 유도 체계를 개발해오고 있었으며 1967년경에는 이미 휴즈 항공(Hughes Aircraft Company)과 마틴마리에타(Martin Marietta)가 현존기술로 레이저유도 반능동미사일(LASAM, laser semiactive missile)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동년 6월 연구소는 레이저 반능동 사업과 광전자 사업계획을 세우고 인원까지 확충했지만, 9월에는 예산삭감에 따라 레이저 미사일 체계 부서는 축소되고 말았다.

    세계 최초로 레이저 기구를 개발한 메이먼 박사(좌)와 초기의 루비 레이저(우) <출처: HRL Laboratories,>
    세계 최초로 레이저 기구를 개발한 메이먼 박사(좌)와 초기의 루비 레이저(우) <출처: HRL Laboratories,>

    그러나 레이저 미사일 개발은 1968년 3월부로 미스틱(MISTIC; Missile System, Target Illuminator Controlled)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투개발사령부(Combat Developments Command)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는 육군 지휘부에서 인가받은 정식적인 사업은 아니었다. 한편 다음달에는 레이저 미사일 부서 자체가 폐지됨에 따라 MISTIC 사업은 첨단체계연구실(Advanced Systems Laboratory)로 이전되었다. ASL의 임무는 국방부의 대전차/공격무기 사업에서 계약을 위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었다. 또다른 임무는 레이저반능동 유도 시커와 광학시커 분야에서 첨단기술을 발전시켜 무기체계에 적용하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워낙 예산부족이 심하여 연구실에서는 1969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미스틱 체계 개발 엔지니어를 고용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69년 11월 첨단체계연구실은 미스틱 개념으로 언덕넘어 표적을 제거하는 능력을 제안했지만 예산은 승인되지 못했다. 결국 예산부족은 1971년까지 계속되었다.

    미 국방부는 유선유도방식의 TOW를 대신하여 레이저 유도방식의 미사일을 개발하고자 했다. <출처: US Army AMCOM>
    미 국방부는 유선유도방식의 TOW를 대신하여 레이저 유도방식의 미사일을 개발하고자 했다. <출처: US Army AMCOM>

    1971년이 되자 MISTIC 사업의 예산은 아예 삭감되었다. 그러나 육군부의 연구개발차관보는 이듬해 예산계획에 종말 호밍유도사업을 내세우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생겼다. 이에 따라 새로운 사업에는 헬파이어(hellfire, '지옥불')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사실 이는 'HELiborne, Laser, FIRE and Forget(헬리콥터 기반 레이저 발사후망각)'이라는 단어를 줄여서 만든 약자였다. 1972년 2월 의회에서 예산이 배정됨에 따라 4월 휴즈 항공이 지상형 레이저 조준기(ground laser locator designator, GLLD; '글리드'로 읽음)의 개념개발을 수주했고 이에 따라 시제모델 2개를 제작했다.

    새로운 레이저유도방식의 미사일은 헬파이어로 명명되었다. 사진은 헬파이어 시제미사일을 발사중인 미 육군의 UH-1B 무장헬기이다. <출처: US Army AMCOM>
    새로운 레이저유도방식의 미사일은 헬파이어로 명명되었다. 사진은 헬파이어 시제미사일을 발사중인 미 육군의 UH-1B 무장헬기이다. <출처: US Army AMCOM>

    한편 동년 12월 미사일사령부에 헬파이어 사업국이 설립되면서 사업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3년 4월에는 벨(Bell Aerospace Corporation)과 필코 포드(Philco Ford Corporation)사가 선정되어 항공용 레이저 조준기(aircraft laser locator designator, 이하 ALLD)의 시제를 개발하게 되었다. 결국 동년 12월 연구개발실장은 개념개발 단계의 사업에서 본격적으로 체계개발로 넘어가기 위하여 본격적인 무기개발을 시작할 것을 결정했다.

    헬파이어는 1974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사진은 헬파이어 시제를 발사중인 AH-1. <출처: US Army AMCOM>
    헬파이어는 1974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사진은 헬파이어 시제를 발사중인 AH-1. <출처: US Army AMCOM>

    이에 따라 1974년 3월 록웰 인터내셔널이 120만불 규모로 시험평가를 위한 헬파이어 장비를 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렇게 시험평가를 위한 준비가 끝나고 나서야 동년 12월 록월과 휴즈가 12개월간의 헬파이어 미사일의 심화개발계약을 수주했다. 1975년 1월이 되자 육군부의 연구개발획득 차관보는 헬파이어의 개발방향을 전환하여 헬파이어 미사일에 대체가능한 유도장치를 채용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와 함께 3월에 이르러서는 3군 공통으로 지상용 레이저 지시기의 공동개발을 결정한 가운데, 공군이 레이저 시커 개발의 주관기관이 되어 록웰과 개발계약을 체결했다.

    차기 공격헬기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헬파이어의 개발은 가속되었다. 사진은 AAH 후보기종이었던 휴즈의 YAH-64 시제공격헬기이다. <출처: Public Domain>
    차기 공격헬기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헬파이어의 개발은 가속되었다. 사진은 AAH 후보기종이었던 휴즈의 YAH-64 시제공격헬기이다. <출처: Public Domain>

    여기에 더하여 차기 공격헬기(AAH, Advanced Attack Helicopter)의 개발결정은 헬파이어 사업의 변곡점이 되었다. 1976년 3월 국방부 부장관은 AAH의 무장으로 헬파이어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동년 6월 만반의 준비를 마쳤던 록웰과 휴즈는 헬파이어 시제품을 납품했다. 한편 정밀레이저장치(precision laser designator, 이하 PLD) 사업국은 경량 레이저 조준기(Lightweight Laser Designator, 이하 LWLD)와 통합 모듈러 레이저장치(Modular Universal Laser Equipment, 이하 MULE)까지 개발하도록 임무가 늘어났다. LWLD와 MULE은 추후에 레이저표적지시기(laser target designator, 이하 LTD)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PLD 사업국도 이름이 LTD 사업국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 시기에 이르러 ALLD는 ATAFCS(Airborne Target Acquisition Fire Control System)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결국 TADS(Target Acquisition Designation System)로 확정되어 육군 항공개발사령부에서 책임을 맡게되었다. 그리고 11월 부장관은 헬파이어 미사일을 AAH 무장으로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헬파이어 미사일은 기본적으로 공격헬기의 주무장으로 개발되었지만 다양한 플랫폼과 결합되었다. <출처: US Army AMCOM>
    헬파이어 미사일은 기본적으로 공격헬기의 주무장으로 개발되었지만 다양한 플랫폼과 결합되었다. <출처: US Army AMCOM>

    이후부터는 이제 본격적인 체계개발이 시작되었다. 발사후망각 방식의 대전차 미사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육군 수뇌부는 헬파이어 미사일에 적외선방식의 종말호밍유도 방식을 적용하고자 했다. 한편 레이저 시커의 가격이 너무도 높아짐에 따라 사업국에서는 '저가 대안용 레이저 시커(low cost alternative laser seeker system, 이하 LOCALS)'의 개발을 결정하여, 1977년 9월 마틴 마리에타가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1978년에 이르자 드디어 시험평가단계로 넘어가 동년 9월말부터 레드스톤 조병창에서 YAGM-114A 헬파이어 미사일의 첫 발사가 시작되었다. 한편 같은 해에는 해병대의 공격헬기용 대전차 미사일 소요까지 더해져 해병대의 코브라 공격헬기에도 장착되도록 사업이 통합되어 진행되었다.

    글리드 시제품(좌)과 양산형인 AN/TVQ-2 G/VLLD 표적지시기(우) <출처: Public Domain>
    글리드 시제품(좌)과 양산형인 AN/TVQ-2 G/VLLD 표적지시기(우) <출처: Public Domain>

    이후에는 본격적인 개체계개발로 이어졌다. 마틴 마리에타의 LOCALS가 헬파이어의 시커로 결정되었고,휴즈가 지상 레이저 지시기의 양산을 시작하면서 미사일사령부는 지상발사형 헬파이어의 개념개발과 차량과의 통합에 나섰다. 한편 1979년부터는 헬파이어 사업국과 LTD 사업국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1980년 2월 휴즈에서는 최초의 MULE 시제품을 완성하여 9월까지 시제장비 10개의 납품을 마쳤다. 이렇게 조준장치까지 완성되자 1980년 4월부터 6월까지 드디어 YAH-64로부터 헬파이어의 운용시험평가가 실시되었다.

    1982년 3월 헬파이어의 운용시험평가 중인 YH-64 시제공격헬기 <출처: US National Archives>
    1982년 3월 헬파이어의 운용시험평가 중인 YH-64 시제공격헬기 <출처: US National Archives>

    1982년 3월말 드디어 헬파이어 미사일은 양산이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록웰 인터내셔널은 헬파이어 미사일과 발사기의 초도양산계약을 체결했으며, 마틴마리에타는 시커의 생산을 담당하게 되었다. 한편 동년 6월에 이르러서는 글리드의 배치가 결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82공정사단부터 G/VLLD(Ground/Vehicular Laser Locator Designator, 차량탑재 및 휴대용 레이저표적지시기, 글리드의 양산형)와 코퍼헤드 155mm 레이저유도포탄이 배치되었으며, M113 장갑차에 G/VLLD를 장착한 FIST-V 장갑차도 개발이 완료되었다. 이렇게 레이저 조준장치들이 배치되면서 헬파이어를 유도할 수 있는 지상장비들이 육군에 널리 퍼져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84년 에글린 공군기지에서 실시된 시험평가에서 AGM-114A 헬파이어 미사일이 표적에 명중하고 있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1984년 에글린 공군기지에서 실시된 시험평가에서 AGM-114A 헬파이어 미사일이 표적에 명중하고 있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1983년 9월 미군은 헬파이어 미사일의 연합작전능력을 확인하기 위하여 노르웨이에서 NATO군과의 상호호환성 평가를 실시했다. 헬파이어 미사일은 NATO의 플랫폼이나 레이저 표적지시기와도 잘 조합이 되었으며, 특히 다른 항공기에서도 손쉽게 발사가 가능했다. 한편 레이저 표적지시기가 지상군에 보급될 뿐만 아니라 OH-58D 카이오와 워리어 정찰헬기에 장착되면서 1984년 8월 미 육군은 유마 시험사격장에서 헬파이어 미사일의 합동사격을 실시했다. OH-58D가 레이저 표적지시기로 표적을 확보하는 가운데 AH-64A 아파치 공격헬기가 헬파이어 실탄을 사격하여 표적에 명중시켰다. 이후 1985년 헬파이어에 초도운용능력이 인증되는 한편, 1984년부터는 유럽, 1985년부터는 한국에 AN/TVQ-2 G/VLLD가 주둔부대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듬해인 1986년에는 FIST-V 차량이 유럽과 한국으로 배치되었다. 

    1984년 에글린 공군기지에서 실시된 시험평가에서 AGM-114A 헬파이어 미사일이 표적에 명중하고 있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이렇게 레이저 미사일을 위한 전투환경이 구성되는 가운데, 1986년 4월 10일 드디어 미사일사령부는 아파치 공격헬기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보급하도록 승인하였다. 이에 따라 5일 후에 미육군 전력사령부 산하의 제6기병여단 3비행대대가 최초로 아파치 공격헬기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전력화하였다. 헬파이어는 이후 본격적으로 배치를 시작하였으며, 파나마전과 걸프전에서 맹활약을 하면서 미군의 대표적인 대전차 무기로 위상을 굳혔다. 그리고 이렇게 초기형의 보급이 한창 진행되는 사이, 미군은 이를 개량한 헬파이어 II를 1990년대에 선보이는 등 여러 세대 개량까지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헬파이어 미사일은 아파치 공격헬기와 함께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선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출처: US Army AMCOM>
    헬파이어 미사일은 아파치 공격헬기와 함께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선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출처: US Army AMCOM>



    특징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의 정식명칭은 헬파이어 모듈러 미사일 시스템(Hellfire Modular Missile System ,HMMS)이다. 헬파이어는 대전차 공대지 미사일로 성형작약으로 경성표적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헬파이어는 크게 시커부, 탄두부, 유도장치부, 추진부, 제어부의 5가지로 구성된다. 기본적으로 헬파이어 미사일의 제1세대는 시커로 반능동 레이저 유도(SALH, Semi-Active Laser Homing)방식을 채용했다. 이 방식에서는 레이저 표적지시기가 표적을 조사하면 시커가 그 조사된 표적으로 미사일을 유도한다.

    헬파이어 미사일의 내부구성도 <출처: Naver 무기백과사전>
    헬파이어 미사일의 내부구성도 <출처: Naver 무기백과사전>

    통상은 AH-64A 아파치 공격헬기나 AH-1W 수퍼코브라 헬기와 결합되어 사용되었으며, 각각 공격헬기가 탑재한 레이저 표적지시기로 목표에 레이저를 쏘아 미사일이 유도하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그러나 이외에도 보병 휴대용의 AN/PAQ-1 LTD나  삼각대 거치형 또는 차량탑재형인 AN/TVQ-2 G/VLLD, 삼각대 거치형 AN/PAQ-3 MULE, 또는 OH-58D 카이오와 워리어 정찰헬기의 마스트 장착형 조준기(Mast Mounted Sight, MMS)에 내장된 레이저 표적지시기 등에서 조사한 레이저로도 표적에 대한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헬파이어는 애초에 발사후망각 미사일로 개발되었지만 헬파이어I에서는 반능동의 레이저 유도방식에 그쳐 발사후망각이 불가능했고, 헬파이어 II에서야 드디어 구현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헬파이어는 애초에 발사후망각 미사일로 개발되었지만 헬파이어I에서는 반능동의 레이저 유도방식에 그쳐 발사후망각이 불가능했고, 헬파이어 II에서야 드디어 구현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발사는 레이저로 표적 조준을 획득해야만 가능하므로, 아파치 자체의 레이저 표적지시기만을 사용하여 다수의 표적을 공격할 때에는 미사일을 순차적으로 발사하여 교전한다. 특히 헬파이어는 미사일을 발사한 후에 레이저 표적획득을 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이러한 발사가 가능하다. 또한 앞서 언급한 다른 레이저 표적지시기들의 도움이 있는 경우 동시에 발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듯 표적에 레이저를 계속 비춰주어야 미사일이 이를 따라 명중할 수 있다. 초기형 헬파이어 미사일은 진정한 발사후망각 방식은 아니었고 AGM-114L 롱보우 헬파이어(헬파이어II)에 이르러서야 발사후망각 방식이 구현되었다.

    AGM-114F 이중성형작약탄두의 구성모습 <출처: Naver 무기백과사전>
    AGM-114F 이중성형작약탄두의 구성모습 <출처: Naver 무기백과사전>

    헬파이어는 성형장약을 장착하여 전차를 격파할 수 있다. 한편 1980년대에 이르러 반응장갑이 보편화됨에 따라서 F형에 이르러서는 이중 성형장약(tandem shaped charge)을 채용했다. 즉 첫번째  장약으로 반응장갑을 격파하고 두번째 장약이 전차를 격파하는 방식이다. 정확한 위력은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단일 탄두의 헬파이어는 균질압연장갑(RHA) 700mm 이상을 관통할 수 있으며, 이중장약의 경우에는 RHA 850mm 이상(1,000mm 추정)을 관통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M120 고체연료 로켓모터의 구성 <출처: Naver 무기백과사전>
    M120 고체연료 로켓모터의 구성 <출처: Naver 무기백과사전>

    로켓의 추진은 티오콜(Thiokol, 現 ATK)사의 고체연료 로켓모터를 사용하는데, 개량형인 B형 이후부터는 TX-657(육군형 제식명 M120E1, 해군형  M120A2) 연기 감소형 로켓모터로 교체하여 발사시 연기로 시야가 가려지거나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줄였다. 이에 따라 헬파이어 미사일은 마하 1.8 (450 m/s)의 속도로 비행하며, 최대 8km까지 교전이 가능해졌다. 한편 로켓모터의 보존기간은 약 20년으로 기간이 끝나면 비군사화 후 폐기하거나 로켓모터를 교체하면 된다.

    M120 고체연료 로켓모터의 구성 <출처: Naver 무기백과사전>

    발사플랫폼은 AH-64 아파치 공격헬기가 가장 대표적으로, 4발들이 파일런을 최대 4개 장착할 수 있다. 또한 OH-58D 카이오와워리어 헬기와 특수작전 전용인 AH-6 리틀버드 헬기에도 장착되어 운용되었다. 이외에도 해병대의 AH-1Z 바이퍼 공격헬기에도 채용되었으며, MH-60R/S 시호크 헬기에도 통합되었다. 이외에도 선박이나 차량탑재용으로 개발이 되었지만, 헬파이어II 이후에서야 다양한 플랫폼에서 통합될 수 있었다. 한편 MQ-1 프레데터에 헬파이어 발사능력이 부여되면서 운용 초기에는 고가의 헬파이어II를 대신하여 구형의 헬파이어 C형 등이 사용되기도 했다.


    운용의 역사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은 최초 양산형인 AGM-114A가 1982년 양산결정이 내리지면서 배치가 시작되었으며 1983년에 초도작전운용능력(IOC)이 인증되었다. 헬파이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89년 파나마 침공으로, 당시 미군은 7개의 표적을 헬파이어로 공격하여 파괴에 성공하면서 그 성능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헬파이어 미사일은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에서 가장 중요한 작전에 투입되었다.

    헬파이어 미사일은 적 레이더 기지를 파괴하면서 걸프전의 개막을 알렸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헬파이어 미사일은 적 레이더 기지를 파괴하면서 걸프전의 개막을 알렸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1991년 1월 17일  다국적군의 공습에 앞서 미군은 태스크포스 노르망디를 구성하여 미 공군 MH-53J 페이브로우 III 특수작전헬기의 유도 아래 AH-64A 아파치 헬기 8대를 보내, 이라크군의 조기경보 방공기지 2개소를 기습했다. 이거앤빌 작전이라고 명명된 이 공격에서 헬파이어 미사일은 적의 레이더 기지를 격파함으로써 다국적군이 안전하게 초기공습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공중회랑을 여는데 성공하면서, 걸프전의 개막을 알렸다.

    미군은 무려 3천발의 헬파이어를 발사했으며 명중률은 79%에 이르렀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미군은 무려 3천발의 헬파이어를 발사했으며 명중률은 79%에 이르렀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걸프전에서 아파치 공격헬기와 헬파이어 미사일은 맹활약을 거듭하여 무려 3,050발이 발사되었다. 어떤 전투에서는 아파치 편대가 헬파이어 미사일로 적 전차 50대를 격파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미 회계감사국은 걸프전에서 발사된 헬파이어 미사일의 명중률을 분석했는데, 평균명중률은 79%로 확인되었다. 미 육군은 헬파이어가 90%의 명중률을 유지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므로, 원인 분석에 나서게 되었다. 결과 조종사들이 충분한 시뮬레이터 훈련을 거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실탄사격훈련을 받은 조종사/화기관제사는 오직 극소수였다. 이는 아파치 헬기와 헬파이어 미사일이 실전배치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전에 투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훈련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고 숙련된 인원들이 늘어나면서 육군이 목표한 90%대의 명중율을 달성되었다.

    헬파이어의 뛰어난 파괴력은 안타깝게도 아군 오폭에서도 나타나 M1 전차와 M2 장갑차 등을 깔끔히 격파했다. <출처: Public Domain>
    헬파이어의 뛰어난 파괴력은 안타깝게도 아군 오폭에서도 나타나 M1 전차와 M2 장갑차 등을 깔끔히 격파했다. <출처: Public Domain>

    헬파이어는 단일탄두를 장착한 A,B,C형이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생산되었으며, 탠덤탄두를 장착한 F형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생산되었고, 1993년부터는 K형 이후의 헬파이어 II가 생산되면서 이전 모델의 생산은 종료되었다. 헬파이어 I은 수만발 이상이 생산되어 향후 10여년 이상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특히 고가의 헬파이어 II를 대신하여 기존 모델들은 훈련용이나 기타 표적에 대한 공격용으로 사용되었다.

    헬파이어 미사일은 해병대의 AH-1W 슈퍼코브라 뿐만 아니라 해군의 시호크에서도 운용되었다. 사진은 1995년 헬파이어 시험발사를 위해 지상에 고정된 SH-60F 시호크 헬기이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헬파이어 미사일은 해병대의 AH-1W 슈퍼코브라 뿐만 아니라 해군의 시호크에서도 운용되었다. 사진은 1995년 헬파이어 시험발사를 위해 지상에 고정된 SH-60F 시호크 헬기이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한편 3군 가운데 미 공군은 가장 늦은 2000년에 이르러 헬파이어의 운용을 결정했는데, 이는 당시 공군전투사령관인 점퍼 대장(General John Jumper)의 결심에 다른 것이었다. 점퍼는 이미 1999년 RQ-1 프레데터에 AN/AAS-44(V) 레이저 표적지시기를 장착하여 코소보 항공전에서 운용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무장을 결합할 것을 추진했는데, 여기에는 크게 2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무인기에 무장을 장착하는 것이 INF(중거리핵폐기조약)의 순항미사일에 해당하는가의 문제와, 어떤 무장을 결합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정부의 조약전문가들은 무장을 장착한 무인기는 INF의 규제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순항미사일은 탄두를 내장하지만 프레데터 기체 자체에는 탄두가 내장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헬파이어 미사일은 소형의 무장으로 전차 뿐만 아니라 적의 소형수상함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교전수단이다. <출처: 미 해군>
    헬파이어 미사일은 소형의 무장으로 전차 뿐만 아니라 적의 소형수상함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교전수단이다. <출처: 미 해군>

    다음은 무장이 문제였는데, 당시 미 공군에는 프레데터에 결합할 무장이 없었다. 프레데터에는 아주 작은 무장이 장착되어야만 했는데, 당시 공군은 소형스마트폭탄(이후 GBU-39 SDB로 개발됨)과 경량 항공발사용 순항미사일(LOCAAS) 사업이 있었는데, 이는 아직 개념개발단계에 불과했다. 이런 와중에 육군의 헬파이어는 프레데터에 장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프레데터 사업국으로 기능하고 있던 미 공군의 연구기관인 '빅 사파리(Big Safari)'는 헬파이어 통합계획을 제안했고, 점퍼 대장은 이를 승인했다. 예산은 때마침 빈 라덴의 추적 및 비밀암살작전을 추진하고 있던 CIA로부터 지원이 될 예정이었다. 미 공군의 CIA의 2백만불 후원에 응답하여 프레데터를 아프가니스탄으로 투입하여 빈라덴을 수색하는 '아프간 아이즈' 작전을 2000년 9월 7일부터 수행했다.

    미 공군은 프레데터에 장착할 무장을 헬파이어로 선정했으며, CIA의 지원하에 통합을 진행했다. <출처: NAWS China Lake>
    미 공군은 프레데터에 장착할 무장을 헬파이어로 선정했으며, CIA의 지원하에 통합을 진행했다. <출처: NAWS China Lake>

    이렇게 빈라덴의 수색작전이 펼쳐지는 사이, 미 본토에서는 프레데터와 헬파이어의 통합작업을 차분히 준비했다. 빅 사파리는 2001년 1월 23일부터 차이나레이크 해군항공무장시험장에서부터 헬파이어의 통합 및 시험사격을 실시했다. 프레데터 3034번기가 시제무장기로 개조되었는데, 우선 지상시험사격을 거친 후에 2월 16일 공군 넬리스 사격장에서 비행 중 사격을 성공리에 마쳤고, 21일에는 2천 피트까지 상승하여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최초의 시험평가에서는 AGM-114C가 사용되었으나, 이후 심화개발에서는 신형인 헬파이어II가 통합되었다. 통합작업은 2001년 7월 11일 종료되었으며, 모두 3대의 프레데터가 우선적으로 무장형으로 개조되어 이제 CIA가 원한다면 빈라덴 암살임무에 투입될 수 있는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NSC에서는 프레데터 작전이 아직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며 투입을 중지시켰다.

    무장형으로 개조된 프레데터 무인기는 9.11테러 이후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어 CIA의 암살작전에 활용되었다. 사진은 최초로 헬파이어와 통합된 97-3034번기로 AGM-114C 헬파이어를 장착하고 있다. <출처: GA-ASI>
    무장형으로 개조된 프레데터 무인기는 9.11테러 이후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어 CIA의 암살작전에 활용되었다. 사진은 최초로 헬파이어와 통합된 97-3034번기로 AGM-114C 헬파이어를 장착하고 있다. <출처: GA-ASI>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테러가 발생하고서야 MQ-1L 프레데터 A 3대는 드디어 아프가니스탄으로 투입되었다.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으로 먼저 보내졌으며, 10월 7일 개전에 맞춰 작전을 수행했다. 특히 첫날 "고가치표적"을 탐지하고 헬파이어 미사일로 명중시킴으로써 세계 최초로 무인기를 통한 정밀타격으로 테러범을 사살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헬파이어는 CIA의 암살작전에서 핵심역할을 수행하면서 탱크킬러로서 뿐만 아니라 테러리스트 킬러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파생형

    YAGM-114A: 헬파이어 미사일의 시제모델. 최종시제품은 초도 양산형과 거의 유사했다.

    YAGM-114A <출처: Public Domain>
    YAGM-114A <출처: Public Domain>

    AGM-114A: 초도양산형. M120 로켓모터에 8kg의 단일 성형작약을 채용했다.

    AGM-114A <출처: Public Domain>
    AGM-114A <출처: Public Domain>

    AGM-114B: 헬파이어의 해군형. M120E1 로켓모터와 SAD(Safe/Arming Device)를 채용한 것이 특징이다.

    AGM-114B <출처: 미 해군>
    AGM-114B <출처: 미 해군>

    AGM-114C: 육군개량형. B형을 바탕으로 육군에서 채용한 모델로, SAD 장치만 제거했다.

    AGM-114C <출처: Public Domain>
    AGM-114C <출처: Public Domain>

    AGM-114D: 육군개 업그레이드 제안모델. 기존의 아날로그식 유도장치를 디지털로 교체하는 제안형으로 양산되지는 못했다.

    AGM-114E: 해군 업그레이드 제안모델. D형에 SAD 장치를 추가하는 형상으로 제안되었으나, 양산되지 못했다.

    AGM-114F: 헬파이어의 본격 개량모델로 "잠정 헬파이어(Interim Hellfire)"라고도 불린다. AGM-114C를 바탕으로 개량하여 이중성형작약탄두를 채용했으며, 이에 따라 적 전차 및 장갑차의 반응장갑을 격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AGM-114F <출처: Public Domain>
    AGM-114F <출처: Public Domain>

    AGM-114G: 헬파이어 F형의 해군/해병대 제안형. 양산되지 않고 제안으로 끝났다.

    AGM-114H: 헬파이어 F형의 유도장치 개량제안형. 디지털 오토파일럿을 장착하는 형태로 제안되었으나 양산되지 않았다.


    제원

     

    AGM-114A

    AGM-114B/C

    AGM-114F

    유도 방식

    반능동 레이저 유도방식

    로켓모터

    M120

    M120E1

    직경(cm)

    17.8

    전체 폭(cm)

    33

    전체 길이(cm)

    163

    180

    전체 중량(kg)

    45

    48.5

    탄두 중량(kg)

    8

    (성형작약 HEAT 탄두)

    9

    (이중성형작약탄두)

    속도(m/s)

    425 (마하 1.3)

    사거리(m)

    8,000

    7,000

    단가(USD)

    -

    25,000

    -


    저자소개

    양욱 | 군사학 박사(군사전략)

    헬파이어 미사일

    중동지역에서 군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했으며, 현장에서 물러난 후 국방대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수석연구위원이자, 각 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 및 안보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또한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과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전략과 국방정책 등을 가르치고 있다. 본 연재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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